소설/하이큐

[오이히나]안녕하세요, 표류자입니다. 1-2

카멜리스 2017. 1. 1. 13:08

[ “치비 짱은 토스를 올려주고 싶은 스파이커네.” ]


 그 말을 내뱉은 것은 언제였을까. 아마도 시라토리자와 vs 카라스노의 시합의 결과가 나왔을 때였을 것이다. 그 시합을 본 후, 오이카와의 안에서 히나타 소요라는 아이의 인상이 크게 바뀌었다. ‘성가신 꼬맹이에서, ‘토스를 올려주고 싶은 스파이커. 물론 자신이 더 이상 그와 부딪칠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 모른다.

 작은 체구라는 핸디캡을 갖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 탐욕스럽게 볼을 쫒는다. 어떻게든 상대에게 대항할 수 있는 무기를, 기술을 찾아 대적한다. 다른 사람들의 힘이 컸지만, 히나타는 지지 않고 성장해왔다. 점점 탐욕스러워져 간다. 그렇기 때문일까, 오이카와는 그 아이에게 토스를 올려주고 싶어졌다.

 만약에 자신이 아이를 쓴다면 어떻게 쓰면 좋을까 생각도 해본 적이 있었다.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것은 얄밉고 증오스러운 후배의 얼굴이었다. 현재 아이와 괴짜 콤비라 불리고 있는 후배는 이 미야기 현 내에서 아이를 가장 능숙하게 잘 쓸 수 있는 사람이었다. 분하지만 그는 오이카와와 달리 천재다. 공을 다루는 기술은 오이카와보다 훨씬 뛰어났기에 괴짜 속공 같은 터무니없는 기술도 쓸 수 있는 것이다. 완벽한 타이밍에, 스파이커의 최고 타점을 포착해서 공을 보낸다니, 그런 기술은 천재가 아니면 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이카와는 자신이 아이를 완벽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은 처음부터 버렸다. 아마도 평생 아이와 같이 싸우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오이카와의 치비짱?’이라는 말을 들었는지 그의 황금색 눈동자가 오이카와를 향했다. 코트에서 보았던 눈동자다. 그 모습에 순간 자신이 알고 있는아이가 눈앞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받았지만, 그럴리는 없다며 오이카와는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오이카와가 아는 세계와 틀리다. 그러니 눈앞에 있는 아이도 자신을 겁먹은 표정으로 대왕님이라고 부르던 아이가 아니다.


“-대왕님???”


-라고, 생각했는데.

신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깜짝 상자를 준비해준 모양이었다. 실수했다는 듯이 입을 틀어막는 아이를 보고 오이카와는 그렇게 확신하며 어이없다는 웃음을 터트렸다.


, . 혹시 너희들, 오랜만에 만난. 친구냐?”


 히나타와 오이카와의 사이에 이상한 기류가 흐르자 히나타의 앞에 서 있던 교사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히나타는 오이카와를 힐끔거리며 어, , 그게. 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당연하겠지. 오이카와는 히나타가 자신이 알던 히나타라는 것을 알지만 히나타는 눈앞의 자신을 이 시간대의 오이카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오이카와를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그의 머릿속에선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딱 봐도 그는 머리가 좋아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실례되는 생각을 하며 오이카와는 패닉에 빠진 히나타를 바라보며 웃었다.

 ‘아는 사람이에요라는 선택지는 없다. 최선의 선택지는 잘못 봤습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일 텐데 머리가 거기까지는 돌아가지 않는지 히나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허둥지둥 거리고 있었다.


오랜만! 치비 짱! 나 오이카와 씨야-!”

에에에에엑??!!!”


 히나타가 계속 당황해하자 교사가 오이카와를 바라보는 눈이 이상해졌다. 그제서야 오이카와는 이 상황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3자가 이 상황을 보면, 히나타가 마치 겨우 헤어졌던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를 만나 이렇게 허둥지둥 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점점 오이카와를 바라보는 교사의 눈이 혹시 이 녀석?’이라고 무언으로 말하고 있기도 했으니까. 이대로라면 자신은 옛날에 히나타를 괴롭힌 아이라는 오명을 쓴다. 그렇게 생각하며 오이카와는 히나타에게 달려가 반갑다는 듯이 그에게 헤드락을 걸었다.


초등학교 때 배구하면서 같이 놀았던 동네친구에요! 그치-? 치비 짱?”

, , …….”

치비 짱. 선생님 전혀 믿어주지 않는 얼굴이야. 제대로 대답해줬어야지!!!!’


발을 밟거나 옆구리를 꼬집고 싶었지만 눈앞의 선생에게는 전부 간파 당할 것 만 같았다. 나중에 불만불평을 말해주겠다고 생각하며 오이카와는 활짝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선생님. 선생님이 배구부의 고문인 아나바라 선생님이세요?” 

뭐냐. 너도 배구부 입부 희망자냐.”


 안경을 검지로 고쳐 쓰며 아나바라가 입을 열었다. 다행히 오이카와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는 일단 거둬진 것 같았지만, 다음부터는 조심하자고 생각하며 오이카와는 히나타를 흘깃 바라보았다. 아마도 그도 자신과 같은 생각으로 여기에 온 것이겠지. 그도 어쩔 수 없는 배구바보니까.

 계속해서 그가 자신이 알고 있는 히나타 소요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나오자 오이카와는 내심 안도하며 아나바라를 바라보았다.


. 맞구나. 그럼 선생님에게 입부 신청서 내면 되나요?”


 최대한 나이스 스마일을 띄우며 오이카와가 묻자, 아나바라는 맞긴 하지만, 이라고 잠시 곤란하다는 듯이 중얼거리더니. 크게 한숨을 쉬고선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현재 배구 부는 폐부 상태다.”

……………?”

네에에에에에에에겍???!!!!”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에 오이카와는 사고가 멈추었고, 히나타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다시 한 번 기차화통을 삶아먹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지금 그는 뭐라고 말 한 거지. 이쪽에 와서 몇 번이나 한 말을 떠올리며 오이카와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배구부가 폐부되었을 거라곤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안했다는 것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굳어버린 두 사람을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아나바라는 크게 한숨을 쉬더니. 살짝 미안하다는 얼굴로 일단 종이를 받아들였다.


 “일단 너희가 2명이니까. 앞으로 4명 정도 더 찾아서 나한테 와라. 그때까지 이건 맡아두마.”


 그럼 나는 체육관 점검 해야 하니 이만. 두 사람의 입부신청서를 파일속에 끼워두며 아나바라는 굳어 있는 두 사람을 지나쳐 체육관에 딸려 있는 창고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 폐부라니 언제부터인가요??”

 “이번 년도부터. 작년에는 그나마나 인원이 있었지만 전부 3학년이여서 말이지. 그 놈들이 졸업해서 사실상 폐부 상태가 된 거다.”


 먼저 패닉에 빠져나온 오이카와가 급히 묻자, 아나바라는 창고의 손잡이를 잡은 채 그의 말에 대답해주었다.


 “자세한 건 매니저에게 물어봐라. 다른 1학년, 아니, 2학년은 이야기조차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니까.”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딱 봐도 바빠 보이는 그의 뒷 모습에 오이카와도 히나타도 아무 것도 말 하지 못한 채 체육관을 나왔다. 두 사람 다 충격이 컸기 때문일까. 한동안 체육관 문 앞에 서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마치 혼이 빠져나간 사람의 모습이었다.


 “으아아아아!!!”

 “??!!!”

 

 그렇게 얼마나 멍 때리고 있었을까. 갑자기 히나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주위에 오이카와 외의 사람은 없었지만, 갑자기 자신과 똑같이 멍 때리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지르면 그 누구도 심하다고 생각 할 정도로 깜짝 놀랄 것이다.


 “괜찮아!! 중학교 때도 나 혼자였는걸!!! 괜찮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 되는 거야!”


 그러니 다리에 힘이 풀릴 뻔 한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자신에게 되뇌이고 있으면, 그렇게 외친 히나타는 급히 어디론가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혼자서 이것저것 생각하는 것은 좋지만 말야.” 


 그 행동은 오이카와가 히나타의 뒷덜미를 잡은 것으로 인해 저지되었다.

. 깜빡했다. 오이카와의 존재를 지금에서야 눈치챘다는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히나타를 한 대 치고 싶다고 생각하며, 오이카와는 최대한 환한 미소를 지어보았다.



일단 나랑 이야기 좀 할까? 치비 짱? 시간은 당연히 내주겠지?”


 하지만 그 말을 하며 히나타를 내려다보는 오이카와의 눈은, 그야말로 마왕 그 자체였다고, 나중에 이 일을 회상하는 히나타의 입에서 그 말이 빠지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 * *



 

 “, 대왕님도 죽어서 여기에 온 거에요? 심지어 신년에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뭐야. 그 얼굴. 오이카와 씨의 마지막 장소가 도서관이라는 것이 그렇게 의외?”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은 오이카와 쪽이었다. 아나바라의 이야기를 들은 후 부터는 오이카와에 대한 것은 완전히 잊고 있었는지 그는 오이카와에게 덜미를 잡히자 그대로 굳어버렸다. 마치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한 사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야 그렇다. 오이카와 자신도 여기에 와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고, 그게 히나타일줄은 전혀 몰랐다. 거기다 배구부는 폐부가 되었다고 하고, 머리가 펑크가 나도 이상하지 않다.

 물론 오이카와도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보다 더욱 더 패닉에 빠진 사람이 옆에 있으면 냉정해지는 법. 그 덕분에 오이카와는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일단 굳어버린 히나타를 데리고, 음료를 사서 적당히 이야기 할 수 있는 곳에 앉았다. 히나타의 취향은 모르니 적당히 오렌지주스로 했다. 거기에 뭐라고 하면 사주는 거니 그냥 먹으라고 일침을 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 쥬스 팩을 그의 앞에 둘 때까지 히나타는 계속 굳은 상태였다. 계속 기다려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오이카와는 201712일에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다가 지진이 나서 빠져나올새도 없이 책과 책상에 깔려죽었더니 20141223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처음에 이 이야기를 말할 때 제대로 들을까 걱정했었는데, 반응이 돌아오는 것을 보니 제대로 듣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걸 내심 안도하며 오이카와는 말을 이어갔다.


 “내가 우에노 누나도 아니고. 하필 책에 깔려서 죽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 차라리 배구공에 깔려서 죽는 게 낫. 아니, 이건 꼴사납구나. 역시 배구하다가 죽는 게 나았어-.”

 “……그것도 좋지만은 않아요.”


 낮은 목소리로 히나타가 중얼거렸다. 흠칫하며 오이카와가 히나타를 바라보면, 히나타의 얼굴에는 눈에 띌 정도로 그늘이 내려앉아있었다.


 -, 실수했다.


 아마도 지금 자신의 말은 히나타에게 있어서 터부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오이카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오이카와는 물론이고, 그의 주위 사람들도 배구를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다들 반쯤 진심, 반쯤 장난으로 배구하다 죽는 게 나아-’라는 말을 입에 담건 했었다. 지금의 오이카와도 반쯤 자신의 죽음을 얼버무리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이었는데. 눈앞의 소년은 정말 배구를 하다가 죽은 모양이었다.


 “……. 배구하다가 죽었어요. 다행이었다면 체육관이 잠겨있어서, 밖에서 연습을 하고 있어서 체육관에 깔리지 않았지만, 도망치려다가 넘어져서, 그 순간에 무언가에, 찔려서.”

 “치비 짱. 내가 미안해. 경솔했어. 그러니까!”


 떠올리지 마. 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오이카와는 급히 히나타의 앞에 섰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붙잡더니 필사적으로 흔들었다. 오이카와도 죽었을 당시의 기억은 괴롭다. 한동안 악몽을 꾸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였다. 한동안 책도, 책장도 보기 싫어서 방 안의 책장에 책을 전부 밀어 넣고 책장을 천으로 덮어놨을 정도다. 지금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게 되었지만, 되도록 책은 아이패드로 이북이나 킨들로 보고 있었다. 끔찍하게 죽은 지 겨우 3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3개월로는 극복하기는 부족했지만, 오이카와는 평정을 가장하는 법을 익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게 그 사건을 악몽으로 치부하고, 머리 한 켠으로 치워버리고 장난스럽게 말하는 법을 익혔다. 이상하지 보이지 않기 위해, 그 일을 아무것도 아닌, 그저 끔찍한 악몽이라고 치부하려 노력했지만, 그래도 그 공포는 쉽게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 자신을 덮쳐오는 감각은 일상에서 그리 쉽게 맛볼 수 있는 감각이 아니었다. 이걸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시간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하고 있었다. 그 아픔과 고통을 잘 알고 있는데, 그걸 끄집어내버렸다. 몰랐다. 라는 한마디로는 끝나지 않는다. 좀 더 신중하게 이야기를 했어야했다.


 “치비 짱. 정말 미안!”


 사과 외에 다른 말을 해야 한다. 어떤 말을 해야 할까.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며 적당한 말을 고르고 있으면, 계속 아래를 내려다보았던 히나타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그래도 다행이에요!”


 갑작스러운 기습에 무심코 그의 어깨에서 손을 떼었다. 여전히 그의 어깨는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다는 듯이 히나타는 주먹을 꽉 쥐고선 오이카와에게 외쳤다.


 “체육관 안에서 무너졌다면! 3개월이 지났다고 해서 체육관 안에서 배구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물론 체육관 앞은 무섭지만. 눈을 감고 지나가야하지만. 그래도, 안에서 배구는 할 수 있어요! 게다가 여기랑 카라스노의 디자인은 틀리니까 체육관 근처에서도 배구는 가능해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벌떡 일어나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갈색 눈동자에 오이카와는 숨을 삼켰다. 자신을 이 눈을 알고 있다. 시합에서 몇 번이나 보던 눈이었다. 탐욕스러운 짐승의 눈. 어떤 역경에도 승리라는 먹이를 먹어치우기 위해 끊임없이 빛내고 있던 눈이었다. 그리고 그건 아이가 포기하지 않았다는 의미하는 눈빛이기도 했다. 한번 끔찍하게 죽었어도. 아무것도 모르는 곳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져도, 설령 옛날처럼 배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도 아이에게는 포기라는 선택지는 없는 것이었다.


 “없다면 다시 만들면 되죠! 앞으로 4명 더 모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미야기 현 대표로 도쿄로 가는거에요!!!”


 2. 2일후면 그는 미야기 현의 대표로써 오렌지 코트에 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루지 못한 채 죽어버렸다. 이곳에 와버리고 말았다. 가장 큰 무대가 눈앞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절망했겠지. 괴로웠겠지, 슬펐겠지.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을 원망했겠지. 그 절망은 오이카와는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해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오이카와가 히나타에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죽을 때의 순간뿐이었다. 그 외의 것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오만일 뿐이다.

 하지만 히나타는 일어섰다. 계속 땅바닥을 보고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오이카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모습에 오이카와는 전율을 느꼈다.


 “-그래. 가자.” 

 그리고 문득 생각해버렸다. 눈앞의 아이가 함께 있다면,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그와 함께한다면, 다시 한 번 더 바닥에서부터 기어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확신하며 오이카와는 씨익 웃었다. 그 와중에 대왕님, 표정 사람 하나 죽일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히나타의 정수리에 촙을 먹인 후,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기숙사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럼 난 슬슬 기숙사로 가서 짐 풀어야하니까, 배구 부 부활 플랜은 내일 짜자. 휴대폰정도는 있지? 치비 짱?”

 “, ! 있어요!”


 허둥지둥 온 몸을 뒤져 휴대폰을 찾아낸 히나타는 그 자리에서 번호와 라인의 친구등록까지 해버렸다. 보통 휴대폰을 쓰지 않는 히나타였기에 오이카와가 라인까지 교환하자, 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려 원시인 취급을 받았다는 것은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치비 짱. 몇 반?”

 “어 그러니까. c반이요!”

 “. 바로 옆이잖아. 점심시간 때 찾으러 갈게. 같이 밥 먹으러 가자. , 혹시 치비 짱은 도시락 파? 그럼 오이카와 씨는 매점으로 가도 되고

 “……………


 히나타의 입에서 의문이 튀어나왔다. 마치 오이카와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오이카와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히나타와 똑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히나타를 바라보고 있으면, 히나타가 삐질 삐질 식은 땀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 저기. 대왕님. 바로 옆이라는 건, , .” 

 “? 왜 그래? 내가 b반이니까 바로 옆이잖아. 교실 안 들어가 봤어? 설마 HR도 빠지고 체육관에 왔어?”


 히나타라면 왠지 그럴 것만 같다. 의심을 가득 담은 눈으로 히나타를 바라보자, 히나타는 그건 아니지만, 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더듬고 있었다.


 “치비 짱. 확실히 말해. 뭐가 문제야?”

 “, 대왕님. , 그러니까. 현재, 학년이?”

 “1학년.” 

 “!!!!!!!!!!!!!!!”


 히나타의 소리 없는 절규가 그 자리에 울려 퍼졌다.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경악하는 히나타를 보고 처음에 오이카와도 놀랐지만, 곧 그가 자신을 아직까지도 3학년으로 보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럴 만 하다. 여태까지 혼란과 혼돈과 카오스로 이루어져있는 사실만 들어왔다. 그러니 눈치 채지 못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선 연장자의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자고 생각하며 오이카와는 씨익 웃었다.


 “그런고로 여기서 제대로 자기소개나 할까? 치비 짱?”

 “자기소개요?” 


 히나타가 눈을 깜빡였다. 히나타가 의도를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도 자신의 이야기가 맥락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갑자기 자기소개라니, 초등학생도 아니고. 그도 이제 와서 자기소개를 하기는 부끄러웠지만, 여기서는 제대로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지금의 자신들의 입장을.


 오이카와가 자신의 동급생이 되었다는 사실에 당황한 것은 히나타뿐만이 아니었다. 오이카와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에서 앞으로 동급생이 될 옛날의 후배에게 서로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그의 입으로 알고 싶었다. 그렇게 설명하자, 히나타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여주었다.


 “그럼 나부터 할까.”


 오이카와가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왠지 고백을 하는 상황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생각하며 오이카와는 히나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밝은 색의 갈색 눈동자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 그 눈동자를 바라보며 오이카와는 입을 열었다.


 “키타자와 중학교 출신인 오이카와 토오루입니다. ‘이쪽의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학교 2학년 여름에 배구를 관뒀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오이카와 토오루 따위 인정하지 않아요.”


 그래. 인정할까보냐.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오이카와는 배구를 하지 않는 오이카와 토오루는 오이카와 토오루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도 중학교의 암흑기 때문이겠지. 두 번 다시 그 바다 속으로 떨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연습을 한동안 안한 모양인지 예전만큼 몸이 따라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거기서 말을 자른 오이카와는 다시 심호흡을 하고선 히나타를 바라보았다. 히나타는 조용히 오이카와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배구를 관뒀다는 부분에서 살짝 움찔했지만, 눈 앞의 오이카와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고선 살ᄍᆞᆨ 안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6명이서 전부 쓰러트리고 전국에 가고 싶어.”


 6명이 강한 쪽이 강하다.

 한번 죽었다 살아나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히나타도 그 생각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작은 체구인 만큼 다른 선수들과 힘을 합쳐 플레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선수다. 그렇기 때문에 오이카와의 방식을 부정하지 않겠지.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히나타도 그것에 대해 별 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존댓말을 쓴 것은, 눈앞에 있는 상대를 얕보지 않고, 후배로 보지 않고, 자신과 똑같은 스타트라인에 서 있는 동등한 사람으로서 보겠다는 의미였다. 그 의미를 알고 있는지, 모르는 것인지 오이카와는 알 수 없었지만 히나타도 오이카와와 똑같이 존댓말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유키오카- 아니, 콘크리트 출신 히나타 쇼요입니다! 중학교 3학년 때 배구가 너무 하고 싶어서 혼자 배구는 했고, 대회는 다른 애들의 힘을 빌려 딱 한번밖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축구부와 농구부의 도우미로 뛰어서 체력은 예전보다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리시브도 어설프고, 카게야마가 없으면 반쪽자리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시라토리자와 때 보다 보는 눈과 생각하는 머리를 키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저도 전부 쓰러트리고 전국에 가고 싶습니다!”

 

 이번에야 말로, 그 오렌지코트에. 염원을 담아 히나타가 외치자 오이카와는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리 말하는데 치비 짱. 나는, 토비오 짱 같은 속공은 못써.”


 그것은 천재의 기술이다. 그렇기에 범재인 오이카와는 쓰지 못한다. 분하지만, 그래도 인정해야할 것은 인정해야한다. 저쪽의 경험을 토대로 오이카와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그렇기에 나는 내 방식대로 치비 짱에게 이길 수 있는 토스를 올릴 거야.”

 

 그렇다고 자신이 카게야마에게 뒤처지는 것은 아니다. 그 증거로 아직까진 카게야마와의 승부는 1:1. 무승부다. 씨익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히나타의 옅은 갈색 눈이 빛났다. 마치 어떤 토스가 올라올지 지금부터 기대하는 눈치 같았다.


 “그럼, 이제부터 동급생으로써 잘 부탁해. 치비 짱. 아아, 존댓말은 하지 말고.”


 그렇게 덧붙이자 히나타가 무슨 말을 하고 싶다는 듯이 입을 열었지만, 곧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았다. 동급생인데 존댓말을 하는 것은 이상하다. 카라스노의 2학년 중 같은 2학년에게 존댓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오이카와는 반말을 원했다. 이미 아나바라에게 히나타를 괴롭혔을지도 모른다는 낙인이 찍힌 상태다. 웬만해선 교사에게 마크당하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 노력해, 볼게, ……………….”


 히나타 자신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어떻게든 동급생을 대하는 말투로 대하려 했지만, 끝내 존댓말을 붙이고 말았다. 말투가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게 분했는지 히나타가 괴상한 표정으로 읊조리자, 그 표정이 우스웠는지 오이카와가 푸핫,하고 웃었다. 별로 이야기는 해보지 않았던 탓일까. 아니면 성가신 꼬맹이라고만 인식하고 있어서 그럴까. 이렇게 유쾌한 아이인 것은 처음 알았다.

 그만 웃어요. 얼굴을 우습게 찌푸린 채 항의하는 모습은 성난 원숭이 같기도 해서, 오이카와의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만족할 정도로 웃은 오이카와는 히나타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적당히 사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뭐어, 그 문제에 대해선 차차 연습하자. 앞으로 3년이나 있잖아. 시간은 충분하다고. 그러니까-”


 그 말이 끝나는 동시에 오이카와가 한쪽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 치비 짱.”

 “………! !!!”


 오이카와의 말에 히나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의 손을 두 손으로 꽉 잡고서 힘차게 대답했다.

훗날, 마왕과 괴물콤비라고 불리는 콤비의 탄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