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히나]안녕하세요, 표류자입니다. 2-1
“그런데 치비짱은 왜 카라스노가 아니라 조센지에 온거야?”
그 날 저녁, 짐을 풀고 저녁을 먹은 오이카와는 앞으로의 계획을 짜기 위해 히나타에게 전화했다. 라인도 괜찮았지만 마침 같은 방의 선배도 없겠다. 친목을 다질 겸 전화를 한 것이다.
“아- 물론 말하기 힘들면 말 안 해도 돼. 지뢰였다면 정말 미안.” 이미 오이카와는 한번 히나타의 지뢰를 밟은 적이 있다. 고의건, 고의가 아니건 히나타에게 있어 금기시된 영역을 건들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히나타는 신경 쓰지 말라고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오이카와는 과거의 일을 물을 때에는 신중히 다가가고 있었다.
[ “아니아니아니, 괜찮대두요? 대왕님이 조심해줬으면 한건 이미 다 말했고!! 그거 외엔 물어도 정말 괜찮다니까요!!? 아니, 까!” ]
어떻게든 반말에 익숙해지기 위한 모습에 오이카와는 자신도 모르게 푸읍, 하고 웃었다. 뇌리에서 허둥 지둥대는 히나타의 모습이 떠오르면 반사적으로 나오는 것이다. 노력하는 아이를 좋아하는 오이카와였기에 그렇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물론 카게야마는 예외다) 선후배라는 의식이 빠지지 않은 것은 히나타 뿐만은 아니라는 증거였다. 뭐어, 첫날이니 괜찮겠지. 이것도 느긋하게 익숙해지는 것을 기다려야한다고 생각하는 오이카와였다.
[ “으음, 물론 카라스노에 가고 싶었는데 말이죠…. 아니아니, 말야? 집의 주소가 바뀌어있었어! 예전에는 산 하나만 넘으면 바로 카라스노였는데 지금은 산 4개정도 넘어야 카라스노라니까요? 그래서 가족에게 반대 당했더라고요…….” ]
어깨를 축 늘어트리는 것 같은 목소리로 히나타가 답했다. 처음에는 예전처럼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면서 설득을 해보았지만, 하지만 그러면 수업시간에 자지 않느냐고 묵직한 팩트 폭력을 당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자 아버지가 그럼 한번 시도를 해보라고, 마침 내일이 토요일이니 한번 카라스노에 가보라고. 버스와 자전거, 무엇을 사용해도 좋다. 단 배구부의 아침 연습시간까지는 도착해야한다. 그게 이루어지면 카라스노에 가도 좋다고. 그리고 결과는 히나타의 참패였다.
처음엔 어머니의 말대로 버스를 타고 카라스노로 향했다. 5시의 첫 버스로 가보았지만 아침 훈련은커녕 HR이 시작될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해버렸다. 다음엔 자전거로 가보았다. 1교시가 끝날 때 쯤 도착해버렸다. 자취라도 할까 생각했지만 현재 히나타네의 가정은 자취를 지원해줄만한 돈도 없었으며, 나츠가 가지 말라고 우는 바람에 무산되어버렸다는 기억이 있다고 히나타가 말했다. 히나타는 오이카와와 다르게 ‘이쪽’의 기억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오이카와처럼 커다랗게 어긋나는 점은 없어 생활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말했다.
[“그래서 집에서 가까운 조센지로 왔어요. 마침 거기에도 배구부는 있다고 하고! 물론 아직 카라스노에 미련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지만….”]
물론 미련이 철철 남았겠지. 오이카와도 아직 아오바죠사이에 대한 미련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부활을 은퇴하고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렇기 어느 정도는 마음정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히나타는 아닐 것이다. 오이카와와 상황이 너무나도 틀리니까. 크게 한숨을 내쉬며 오이카와가 머리를 긁적였다.
‘……시간에게 맡길 수 밖에 없겠지.’
아무리 자신들이 지금 상황에 불안하고 초초하다고 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그렇구나. 라고 대답하는 것 외에는.
[“그러니까 얼른 배구부를 만들어서 연습해요!! 연습!!”]
우울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수화기 너머에서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럴때만 눈치가 빠르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오이카와가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대왕님은 왜 조센지로 왔어요? 아오바죠사이는? 떨어졌어요?”]
“-내일을 기대해. 치비 짱.”
[“히, 히이이익! 잘못했어요!!”]
오이카와의 살기어린 목소리를 캐치했는지 히나타의 비명이 오이카와의 귀에 닿았다. 그 목소리가 유쾌했는지 오이카와가 다시 한 번 웃자, 그제서야 자신이 놀림 당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히나타가 분하다는 듯 한 목소리를 내었다. 너무해요, 대왕님. 항의한 목소리를 대강 넘겨들으며 오이카와는 자신의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나는 정신차려보니 조센지 입학이 확정되어있더라. 그 녀석, 그렇게도 가고 싶었나. 여기.”
조센지는 아오바죠사이와 비슷한 학벌의 학교였다. ‘저쪽’에선 오이카와는 추천으로 아오바죠사이에 가게 되었지만, 합격할 수 있을 만큼의 성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쪽의 오이카와는 한번 다 필요 없어 때려쳐, 라는 시기가 있었는지 크게 놀았던 흔적이 있었다. 예전 사진을 보면 머리를 금발로 염색하고 있었던가, 방을 청소하다 찾은 성적표는 이게 정말 내 성적표인가, 라고 할 정도로 점수가 낮다던가. 절로 한숨이 나올만한 흔적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그랬던 그가 열심히 공부해서 조센지에 입학을 한 것이다. 대체 이 학교에 무엇이 있는 걸까. 배구 외에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오이카와에게 있어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렇게 좋은 곳은 아닌 것 같은데 말야. 배구부도 없고.”
[“맞아요 맞아요! 배구부가 없는 학교가 좋은 곳일 리가 없어!”]
조센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듣는다면 한 대 맞을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두 사람은 그럼 한동안 연습은 어디서 할까, 라며 장소까지 지정하기 시작했다. 배구부가 폐부되었으니 체육관은 쓸 수 없다. 여기 근처에 배구 동호회가 쓰는 곳이 있는데, 라면서 오이카와의 아이패드와 히나타의 머릿속의 지리를 풀가동 시키며 이야기하고 있으면, 결론이 났는지 두 사람은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럼 내일은 매니저 씨에게 가서 이야기 듣는 걸로?”]
“그래야겠지. 1학년에서 인재를 찾는 건 좋지만 내가 아는 실력자들은 당연히 여기에는 없을테고……. 그러니까 2학년이나 3학년을 공략하는 게 나을지도.”
배구 부를 부활시키는 것은 되도록 빠른 것이 좋다. 적어도 인터하이에는 참가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히나타도 마찬가지였는지, 선배들 쪽을 공략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 오이카와의 의견이었다.
“그나저나 치비 짱은 조센지와 싸운 적 있었지? 어떤 느낌?”
[“으음-. 전력으로 진심을 다해 논다, 라는 느낌이었어요!”]
“놀아?”
자신이 의문을 입에 담자 히나타가 수화기의 저편에서 히나타가 고개를 끄떡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생각한대로 몸을 움직이고, 공을 다룬다. 조센지의 강함은 즐기는 강함. 틀에 사로 잡혀있지 않다는 느낌이었어요.”]
보통은 언더핸드 패스로 안전하게 돌릴 상황에서 뒤를 돌아보며 강타를 치거나, 세터가 ‘치게 해 달라’라면 누군가가 토스를 올려준다. 엉망진창이지만, 그것이 그들만의 ‘놀이’방식이었다. 먼저 지쳐 놀지 못하는 쪽이 지는 게임. 그것이 히나타가 본 조센지라는 팀이었다.
“어딜 봐서 질실강건이야. 그거.”
조사를 해보면 조센지의 현수막에 써 있는 것은 질실강건이라는 단어였다. ‘꾸밈은 없지만 본질이 충실해서 씩씩함, 또는 성실 한 것’이라는 뜻의 그 단어와 지금 히나타가 이야기 한 이야기는 어울리지 않았다. 아이패드로 조센지를 검색해도 나오는 것은 그것 외에는 없었다. 역시 이 배구부는 약한 쪽에 드는 것일까. 순간 막막해지는 마음을 삼키며 오이카와는 히나타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래서, 조센지와 싸운 감상은 어때?”
[“재미있었어요!”]
히나타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물론 힘들긴 했어도 전력으로 노는 느낌이라 정말 재미있었어요!”]
“……응, 그래. 나도 재미있는 팀이 될 것 같아.”
배구는 놀이. 승부는 놀이. 하지만 그들은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놀려 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는 것은, 진지하게 시합에 임하고 있다는 것. 탐욕스럽게 승리를 먹어 치우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승리하고 싶다.
-이기고 싶다.
그 요소만 있다면 오이카와는 어떤 팀이던 상관없었다. 어떤 팀이던 능숙하게 지휘자로써 팀을 지휘한다. 그것이 오이카와의 이상적인 세터의 모습이었으니까.
앞으로 조센지가 히나타가 아는 조센지가 될 거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심장이 뛴다. 이 감정은 불안이 아니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기대’다. 여러 가지 불안요소가 많은 건 사실이고, 모일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일지 오이카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앞의 플레이를 기대하는 선수처럼 오이카와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 미래가 진짜 미래가 될 수 있으면 좋겠네.’
전력으로 노는 배구를 하는 팀. 그 팀 가운데에 자신과 히나타가 있는 것을 상상하며, 오이카와는 눈을 감았다.
* * *
전 배구부의 매니저, 미사키 하나는 당혹해하고 있었다. 점심시간 때 후배들이 불러, 클래스메이트에게 그렇게 듣고 밖을 나가보면, 그 곳에는 두 명의 남자아이들이 있었다. 갈색의 머리를 세팅한 키가 큰 아이와, 주황색 머리의 작은 아이였다. 특히 갈색머리의 아이는 이른바 ‘미소년’에 속하는 부류였어서, 교실 안에서는 흥미가 있는지 미사키 쪽을 힐끗 힐끗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도망치고 싶다. 갑작스러운 방문과 무수히 쏟아지는 시선에 견디며 그녀는 눈앞의 후배들을 바라보았다. 넥타이 색이 작년 3학년의 색이었으니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은 1학년이다. 1학년이 무슨 일일까. 전혀 짐작 가는 것이 없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먼저 주황색머리의 아이가 입을 열었다.
“부탁 드립니- 읍읍읍!!!”
아니,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 정확할지 모르겠다. 마치 볼륨을 최대로 올렸다는 것을 잊은 채 음악을 튼 사람의 표정을 지은 갈색머리의 후배가 주황색머리의 후배의 입을 막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3학년 복도의 모든 시선이 후배들과 미사키를 향해버렸으니까. 당황해하는 갈색머리의 후배와 달리 오렌지머리의 후배는 떳떳한 듯 미사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놀란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있으면, 갈색머리의 후배가 억지로 오렌지머리의 후배의 고개를 숙이게 하며 사죄했다. 마치 아이와 보호자 같다. 그렇게 생각하며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으면, 갈색머리의 후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배구 부 전 매니저, 미사키 하나 선배님 맞으시죠?”
“으, 응…. 그런데.”
설마. 그 후에 이어질 말을 기다리며 미사키가 입을 닫았다. 설마 이 후배들은 자신이 원하고 있던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을 가진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으면, 오렌지 색 후배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희, 배구 부를 부활시키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후배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자 미사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들이 아픈 곳을 찔렀기때문이 아니라, 그것은 미사키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자리를 옮길까.”
그동안 바래왔던 말을 들었지만, 이곳에 계속 있기에는 너무 이목이 집중되어있다. 여기서 이야기를 해도 되지만 계속 이목이 집중된 상태로 이야기를 하기에는 미사키는 간이 작았다.
‘게다가, 그 이야기를 하려면 역시 자리를 옮겨야겠지.’
아마도 이 후배들과 이야기를 하면 옛날이야기가 분명히 나올 것이 분명했다. 미사키에 있어서 그 과거는 쓰라리고, 말하기 껄끄러운 과거지만, 자신이, 후배들이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후배들에게는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왠지 그들이라면 계속 틀어박혀있는 작년의 1학년들을 끌어내 줄 수 있을지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다시한 번 죄송합니다. 라고 하는 두 사람에게 쓴 웃음으로 괜찮다고 안심시킨 그녀는 그들을 데리고 밖에 있는 벤치로 향했다.
“…………….”
그 모습을 금발의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말이다.
* * *
“죄송합니다. 우리 치비 짱이 난리를 쳐서.”
여기서 이야기할까. 그녀가 두 사람을 데리고 온 곳은 밖에서 이야기나 밥을 먹을 수 있게 테이블까지 만들어진 벤치였다. 점심시간대라서 사람이 좀 있을 줄 알았지만 어째서인지 주변에 사람은 없었다. 그 사실에 감사하며 세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중간에 자판기에서 뽑은 음료수를 서로의 앞에 둔 오이카와는 다시 한 번 히나타와 함께 죄송했습니다, 라고 사과를 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부탁 합니다’라며 교실 앞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신들 때문에 여기까지 이동한 것이다. 게다가 음료수까지 사주었다. 그저 죄송합니다, 라는 말만을 반복하는 두 사람에게 그만해도 된다고 쓴 웃음을 지은 미사키는 주스 팩에 빨대를 꽂았다.
“정말 괜찮아. 너희들은 나중에 확실히 목적도 알려줬는걸. 그래도 이목이 주목되니까 앞으로는 좀 조심해주면 될 것같아.”
“넵!!!!”
“알겠습니다. 그보다 치비 짱. 목소리 너무 크다니까. 체육계인 티 너무 낸다구.”
오이카와가 옆에서 태클을 걸어보았지만 히나타의 목소리는 작아질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마지 말을 전혀 듣지 않는 아이다. 머리가 아파온다는 듯이 크게 한숨을 쉰 오이카와는 미사키를 바라보았다.
“저희들의 용건은 하나. 배구 부를 부활시키고, 인터하이도 춘고도 가고 싶어요. 3학년이라 수험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인터하이때 까지만 이라도 배구부에 돌아와 주시면 안 될까요.”
“좋아.”
“!!!”
“엇.”
망설임 없는 그녀의 대답에 히나타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과 달리, 오이카와의 얼굴은 복잡 미묘하게 변했다. 그 이변을 눈치 챘을까, 히나타가 대왕님? 이라며 오이카와의 얼굴을 밑에서 올려다보면, 그는 아니, 라고 운을 띄우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물론 나도 기쁘기는 한데, 너무 빨리 대답해주셔서 놀랐다고 할까………. 꽤나 장기전이 될 거라 생각했거든.”
1학년이 대거 탈퇴했다는 작년. 그 사건에 대해서 오이카와는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건은 당시의 배구부원들에게 있어서는 꽤나 커다란 트라우마일 것이다, 라고 멋대로 생각해버렸었다. 보통 하급생이 대거로 탈퇴한다는 것은 그 부에 싸움 비슷한 트러블이 일어났다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보통, 권위적이었던 선배가 후배의 의견을 대부분 묵살했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당시 2학년인 부원은 그녀 혼자. 그렇다는 것은 이 상황은 제 작년부터 이어진 것이 아닐까, 라는 것이 오이카와의 견해였다. 그래서 그녀가 즉답을 해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다.
“-단.”
하지만 조건을 붙이는 그녀에게 오이카와는 역시, 하고 납득했다. 차라리 이 편이 나았다. 나중에 복잡한 일이 생기는 것 보다는, 오히려 처음에 그녀의 조건을 들어주고 그녀를 영입하는 것이 더 낫다. 조용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있는 오이카와와 어떤 조건이 나올지 긴장하고 있는 히나타를 똑바로 바라본 그녀는 살짝 살짝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조건을 입에 담았다.
“작년에 탈퇴했던 1학년이었던 7명을 권유해줄 것. 그리고 된다면 그들 중 4명 이상 정도 부에 돌아오게 설득을 해줬으면 좋겠어. 그게 내 조건.”
오이카와와 히나타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쪽에게도 좋은 조건이다. 어느 쪽이던 사람을 좀 더 모으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니까. 하지만 좋아요, 라고 히나타도, 오이카와도 바로 말하지 못했다.
“저, 죄송한데.. 작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도 되나요?”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그들에게 가서 ‘배구해요!’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자신들의 행동은 그들의 상처를 도려내는 행동이다. 히나타도 오이카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조심조심 미사키에게 물었다.
그들이 그 질문을 할 것이라고 미리 예상하고 있었을까. 그녀는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괜찮아. 라면서 웃었다.
“상관없어. 창피하지만 3, 2학년은 이미 알고 있는 상태니까. 좀 입소문을 많이 탔거든.”
미사키가 창피하다는 듯이 볼을 긁으며 말을 이어갔다.
“사정을 모르면 설득도 하기 힘들 테니까. 으음, 나를 찾아왔다는 것은 조금은 알고 있는 것이 있어? 그 사건에 대해서.”
“아나바라 선생님에게 자세한건 선배에게 들으라고 해서 찾아왔어요.”
“어째서 아나바라 선생님이?”
“? 그 분이 배구부 고문이시잖아요.”
“뭐어???”
처음 들었다는 듯이 미사키가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반응에 오이카와와 히나타는 순간 어깨를 움찔했지만, 그녀는 그런 것을 상관하지 않은 채 정말, 진ᄍᆞ? 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
“아, 아…. 네. 배구부라면 아나바라 선생님에게 가라, 라고 다른 선생님에게 안내받았어요. 그치? 치비 짱?” “네! 저는 처음에 시마…. 시마…. 시마자키? 아무튼 시마로 시작하는 선생님에게 갔다가 이제 배구 부 고문은 자신이 아니라면서 아나바라 선생님에게 가라고 하셨어요!”
“……그렇구나.”
믿어지지 않는 표정으로 미사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살짝 안도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미안,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거든’이라며 사과를 해오자, 거기에 괜찮다라며 그녀를 안심시킨 두 사람은 입을 다문 채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나바라 선생님은, 다른 별말씀은 안하셨고?”
두 사람이 고개를 끄떡이자 미사키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하는 게 좋을까, 라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
“……처음부터 배구 부는 최악이 아니었어. …라고, 믿고 싶어.”
그렇게 몇 분정도가 지났을까. 오랜 침묵에 히나타가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을 무렵, 미사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때 상급생이 너무 권위적이었거든. 감독님이 하도 빡세게 훈련을 시키니까 1학년에게 이것저것 시키는 거야. 그리고 시합에도 못나가게 하고. 설령 2, 1학년이 자신들보다 더 잘한다고 해도 말이지. 그래서 1학년들이 전부 나가버렸어. 나를 제외하고는 말이지. 그리고 그 다음 년. 내가 2학년이 되었을 때는 3학년들은 대부분 자포자기한 상태여서, 그냥 시합은 좋은 추억만 만들기로 생각하고선 전혀 연습을 안했어. 내가 그래도 괜찮냐고 하니까 괜찮다고. 1학년들에게는 우리 나간 후에 새로운 거 만들라고 계속 그러는 거야. 물론 1학년들도 처음에는 연습했어. 차라리 저런 선배들 대신 우리가 시합에 나가자고. 그랬는데 인터하이 예선에 뽑힌 것은 3학년들뿐이었어. 이유는 간단. ‘그들이 상급생이기 때문이다’였어.”
니들에게는 미래가 있지 않냐. 현재 3학년들을 불쌍하게 여긴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1학년들은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것도 안하고, 놀기만 하고, 그런 사람들보다 자신들이 시합에 나가는 것이 합당한데. 연장자라는 이유 하나로만 뽑힌 것이다.
불합리하다고 미사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항의도 해보았지만 감독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고, 1학년들은 전부 그만둬버렸다고 한다.
‘불만이 있으면 1년 더 기다려라’ 1학년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생각은 전혀 없는 그 한마디가 방아쇠였다. 너희에게는 미래가 있지 않느냐. 라는 말로 좋게 포장하려는 것 같지만, 이 말은 즉 ‘나는 너희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다’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1학년들은 퇴부 신청서를 냈다. 그리고 미사키와 단 한사람 외에는 그들이 나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고 했다.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 뭐 이런 씁쓸한 이야기였다는 거지.”
이야기를 끝맺는 이야기꾼이 하듯이 미사키가 짝, 하고 박수를 쳤다. 확실히 들으면 속도 기분도 나빠지는 이야기다. 딱 보면 상급생들 때문에 부가 나중에 폐부가 되는 민폐적인 상황까지 가버렸지만, 오이카와는 전부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주라면 모를까. 동정은 하지 않았다. 그 사이 미사키는 예전 1학년들의 이름을 수첩에 쓰고선 찢어서 두 사람에게 건네주었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그 애들에게 권해줬으면 해.”
“그런데 선배는 이야기 해보지 않으셨어요? 배구를 다시하자고.”
쪽지를 받아들며 히나타가 물었다. 그의 질문에 미사키는 당혹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어설프게 웃어보았다.
“나, 나는…. 안 된다고, 생각해.”
“어째서요? 선배도 선배들이 배구를 하는 것을 원하고 있잖아요?”
“치비 짱.”
그만하자. 오이카와의 제지가 들어오기 전에 히나타는 다시 어째서요? 라고 순수한 의문을 입에 담았다. 하지만 그것은 제 3자가 보기에는 상대방의 마음을 궤뚫어보려는 듯 한 모습 같았다. 저 눈동자가 자신에게 향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오이카와도 순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버렸으니까. 그러니 그 시선을 직접 받는 미사키는 어떤 심정일까. 눈에 띄게 동요하고 있는 그녀의 표정을 본 오이카와는 안 되겠다, 라고 생각하며 히나타를 제지하려고 했지만, 그 전에 미사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자격이 없으니까.”
두 사람의 시선이 미사키를 향했다.
“나는 2학년들도, 3학년들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하지만 1학년들이 피해자라는 것은 사실이야. 그리고 나는 어느 의미로는 방관자에 가까웠던 위치라고 생각해.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생각은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말 그게 최선이었을까.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까. 라고 자괴감만 들어. 이런 내가 어떻게 그 아이들에게 다시 배구를 하자, 라고 말 할 수 있겠어? 그 애들에게 있어서 그 장소는 전장이나 다름없었는걸.”
‘전장’. 그 한마디에 오이카와는 예전 중학교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눈앞에는 높고 높은 벽이 있다. 벗어 날수도, 뛰어넘을 수도 없던 그 벽은 오이카와는 닿지도 못했다. 오히려 현실은 그 벽에 닿는 것은 거녕 오이카와를 절망속의 바다에 가라앉혔다. 그렇게 오이카와는 살아남기 위해, 벽을 뛰어넘기 위해 혼자만의 전쟁을 시작했었다. 조센지의 1학년이었던 사람들과는 다른 형태였지만, 부활동이 전쟁터로 느껴졌었다.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일까. 오이카와는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부활은 전쟁터가 아니다. 언젠간 ‘저쪽’의 이와이즈미가 알려줬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오이카와는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알았어요! 맡겨주세요! 선배!”
오이카와의 대답이 튀어나오는 것보다 먼저 히나타의 긍정이 먼저 튀어나왔다. 놀란 얼굴로 오이카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도 모른 채, 히나타는 똑바로 미사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선배들이 과거에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 몰라요. 어떤 일을 당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당사자들 외에는 모를 거라 생각해요. 남의 생각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없으니까요.”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구를 하는 것이, 배구부가 그저 살아남기에 급급했던 전장이라고만 생각 하고 그만두는 것은 역시 아깝다고 생각해요! 배구의 즐거움을 모르고 모든 것을 끝내는 것은 역시, 아깝다고 생각해요!”
그의 말에 미사키도 오이카와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그 말이 돌아올줄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듯이 한 대 얻어맞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오이카와는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히나타는 두 사람이 자신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자리에 일어서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니까, 데려올게요! 그리고 다 함께 배구하죠!”
그 말에 미사키는 잠깐 벙찐 얼굴을 하더니, 살짝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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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안녕, 나는 표류자로 바꿀까 고민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