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박앵귀

[야마치즈] 아와유키 0.

카멜리스 2017. 3. 13. 09:53

0.

 

스르륵, 하고 붕대가 풀리는 소리가 히로마(広間)에 조용히 들려왔다. 원래라면 아주 작은 소리여서 제대로 들릴 일은 없겠지만, 붕대를 맨 대사와 그것을 지켜보는 헤이스케를 포함한 다른 대사는 그 소리가 지금은 무엇보다 크게 들려왔다. 오랫동안 붕대를 매고 있던 탓일까. 대사의 다리에는 붕대와 각목을 댄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실례합니다. 예의바르게 환자에게 양해를 구한 치즈루는 그의 다리의 상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꿀꺽, 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고 환자가 생각하고 있으면, 진찰을 끝낸 치즈루가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

축하드려요! 완치에요!!!”

오오오오오!!!”

, 이자식! 축하한다!!!!!”

, 아파요! 아픕니다 토도 조장!!!!”


그녀의 완치 선언에 그 자리에 있던 오키타를 제외한 소수의 대사들이 환자보다 먼저 일어나 환호했다. 완치 선언을 받은 대사는 지금 내가 뭘 들었나,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곧 토도의 헤드락 공격에 겨우 현실로 돌아왔는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토도가 겨우 자신을 놔주자 그는 자신의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통증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방방 뛰고, 잠시 바깥으로 나가 가볍게 달리기를 하고 왔다.

아프지 않다. 그 사실이 겨우 머리로 인식되었는지 그는 살짝 눈물을 머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대사- 카와구치는 코를 훌쩍하더니, 울었다는 것을 얼버무리기 위해 실망이라는 듯이 크게 어깨를 떨구는 제스처를 취했다.


-. 완치라니. 이제 다시 나가쿠라 조장의 지옥 훈련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그 모습에 치즈루는 후후, 하고 조용히 웃었고, 헤이스케를 포함한 다른 대사들은 헤죽헤죽 웃고 있었다. 둔한 치즈루도 눈치 챌 정도로 그의 연기는 정말 어색했다. 그래서일까, 다들 저 녀석을 놀려주자. 라고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는 헤이스케의 의견에 찬동하듯이 다들 살짝 고개를 끄떡였다. 다들 자신의 의견에 찬성하겠다는 의사를 확인한 헤이스케는 옆에 앉아있던 치즈루에게도 까발리지 말라는 듯 검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며 씨익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 즐거워보였기 때문일까. 헤이스케처럼 장난기가 발동한 치즈루는 그의 장난에 동조하겠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그래 너! 그 동안 훈련 빠져서 살 맛 났지?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고?”

맞아 맞아. 꽤 대사들 사이에서 유명했었지. 카와구치 군.”


멈칫.


헤이스케와 오키타의 말에 공포를 느낀 탓일까. 마치 오뚝이가 움직이다가 갑자기 멈춘 것처럼 카와구치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게 멈추었다. 사람이 저런 자세로 오랫동안 멈출 수 있구나. 내심 대단하다고 느끼는 치즈루와 달리 이 상황이 즐거운지 악당 같은 미소를 짓고 있던 헤이스케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내가 신팟 짱에게 잘 말해서 늦은 만큼 확실히 훈련은 하게 해 줄 테니까 걱정 말고?”

, , , ,토도, 토도 조장.”


하고 싶은 말은 확실히 있는데 그것이 제대로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지 카와구치가 정신 줄을 놓은 듯 어버버 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불쌍했지만 아직 밝히지 말라는 오키타의 제지에 치즈루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야기를 해버릴 것이라고 멋대로 생각했기 때문일까. 다른 대사들이 그녀의 말을 막듯이 웃으며 묵직한 한 마디를 웃으며 내뱉기 시작했다.


그래그래. 너 저번에 스즈키가 나가쿠라 조장에게 굴려질 때 엄청 놀려댔잖아. 그 대가라고 생각해.”

맞아 맞아. 다른 사람들에게 막 말한 만큼 대가를 받는 거야. 포기해.”

, 으으으…….”


절망했다는 표정으로 카와구치가 털썩 주저앉았다. 저렇게 큰 소리가 나는데 무릎은 괜찮은 걸까. 의사의 딸이자 현 신선조의 의료 쪽을 맡고 있는 치즈루는 방금 완치 판정을 받은 그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을 안쓰러운 눈으로 보고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일까. 카와구치가 빼액소리를 질렀다.


동정하지 마! 동정하지 말라고! , 흐윽. 흐극흐그그극.”

, 저 나가쿠라 씨가 그렇게 까지는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치즈루가 아는 나가쿠라는 상냥한 부류에 속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물론 초반에는 치즈루를 경계하느라 차가운 태도를 취하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이것저것 챙겨주고 있는데다 치즈루를 보는 눈도 상냥해져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런 나가쿠라를 이렇게까지 무서워하는 그가 치즈루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하고 있으면, 절망하던 카와구치가 치즈루의 어깨를 딱 하고 잡았다.


잘 들어. 유키무라. 확실히 다른 조장들도, 토도 조장의 훈련도 빡세고 힘들고 울고 싶지만, 그 중에 나가쿠라 조장의 훈련은 그야말로 지옥이라고!!너같이 근육도 없고 뼈만 있는 꼬맹이는 금세 나가 떨어질걸??????”

, 하아.”


속사포로 나가쿠라의 무서운 점을 쏟아내는 카와구치를 상대로 치즈루는 하아, , 그렇군요. 라는 긍정의 답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가쿠라의 무서운 점을 이야기하고 있으면, 그는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다는 표정으로 벌떡 고개를 들었다.


그래! 유키무라! 너도 같이 훈련 받자!! 나가쿠라 조장의 특별 훈련! 그럼 이 빈약하고 계집애 같은 몸에 조금이라도 근육이 생겨서 듬직해 질...푸악!!!”

작작 해라. 이 망할 녀석아.”


더 이상 못 들어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이 상황을 즐기며 실실 웃던 헤이스케가 표정을 싹 바꾼 채 카와구치의 팔뚝부근을 뻥하고 차버렸다. 옆으로 찬 덕분에 카와구치가 치즈루에게 해를 입일 일은 없었지만, 현재 헤이스케의 얼굴은 그야말로 오니 그 자체였다. 갑자기 험악해진 분위기 탓일까. 그 누구도 말을 하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었다. 다들 이 분위기가 된 이유를 금방 알아챘지만 단 한사람. 이 분위기를 만들어 낸 카와구치만은 사태를 이해하지 못하고 눈만 멀뚱멀뚱 뜬 채 그에게 차인 팔뚝부분을 잡으며 헤이스케를 올려다보았다.


, 헤이스케 군.”

저기 말야. 카와구치 군. 그런 말 보다 먼저 치즈루 짱에게 해야 할 말이 있는 거 아닐까?”

……할 말?”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오키타도 조금은 화가나 있었는지 카와구치에게 던지는 질문에 가시가 돋쳐 있었다. 오키타의 질문과 헤이스케의 태도를 곱씹어보아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지 카와구치는 헤이스케에게 맞은 부위를 어루만지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가 얼굴을 찌푸린 것은 맞은 장소가 아파서였지만, 그게 지금 상황에 대한 불만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를 내려다보던 헤이스케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넌 널 열심히 치료해준 녀석에게 고맙다는 말은 거녕 매도 하냐?”

……….”


그제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는지 카와구치가 납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케다야 사건 때 다리에 부상을 입었었다. 하지만 원래라면 이렇게 시간을 끌만한 부상은 아니었다. 실제로 이케다야 사건 때 카와구치보다 더 심하게 다친 사람도 지금은 대부분 완치해 텐노 산으로 향했으니까. 하지만 카와구치는 그러지 못했다.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붕대는 갑갑하다고 풀질 않나. 나는 이 정도 상처에 굴복하지 않는다. 정신력으로 다 나았다는 헛소리를 하며 다친 다리를 마구 쓰지 않는 둥 여러 기행을 일삼았고, 의료담당인 야마자키와 치즈루에게 나는 이미 다 나았다며 허세를 부렸다. 부상자들 중에 치즈루는 물론, 야마자키의 지시에 제대로 따르지 않은 대사들은 많았지만, 그 중 으뜸을 뽑는다면 두사람은 망설임없이 카와구치라고 말할 것이다. 그 정도로 카와구치는 골칫덩어리였다.

하지만 아픔이라는 것은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오래 가는 법. 결국 카와구치는 다리가 너무 아프다, 이제 못 쓰는 게 아니냐고 반쯤 울면서 야마자키에게 달라붙었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게 그는 장기임무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카와구치의 치료는 치즈루가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치즈루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그였지만, 지금 자신을 치료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녀밖에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는지 치즈루에게 치료를 맡기고 그녀가 지시하는대로 따랐다. 하지만 예전부터 치즈루를 계집애 같은 놈, 비실비실한 놈, 눈엣가시 같은 놈으로 취급하던 카와구치였기에 치료를 할 때마다 치즈루에게 시비를 걸었지만, 치즈루는 카와구치의 치료를 대충하지 않았고, 그 결과 완치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고맙다는 말은 거녕 매도를 하고 있으니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는 헤이스케와 오키타는 물론,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평대사들도 이건 아니라며 카와구치에게 비난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주위의 공기도 그렇고,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급히 치즈루와 시선을 맞추고 고개숙여 사과했다.


미안했다. 유키무라. 그리고 고마워. 나는 평생 이 다리로 살아가야한다고 생각했어. 여태까지의 무례를 용서해줘.”

, , 그게. 저는 괜찮아요.” 

아니, 그동안 나는 너를 밥이랑 방만 축내는 쓸모없는 식객이라 생각했어! 실은 이렇게 실력 좋은 의사였는데도 말야! 너는 내 검의 길을 구해준 은인이야!”

그래, 유키무라! 너는 이 놈의 은인이야! 처음에는 검도 제대로 못 쓰는 호리호리하고 계집애 같은 녀석이 갑자기 나타나서 부장님의 시동이 되고 간부들의 사랑을 독차지해서 얼굴로 꼬셨나하고 생각했지만 전부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사과할게! 부장님이 그냥 얼굴로 사람을 뽑을 사람은 아니지! . 이제 납득했어!”

맞아! 우리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

너희들, 그거 칭찬?”

당연하지요!”

……. 너희들. 해도 되는 말이 있고 해선 안 되는 말이 있는 거, 모르냐?”


카와구치가 사과했기 때문일까. 다른 대사들도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한명 두 명 그녀에게 그동안의 무례를 사과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게 정말 사과인지 아닌지 미묘하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계속되는 그녀를 향한 계속되는 무례한 말에 오키타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다들 무슨 소리냐는 듯이 칭찬하고 있다, 사과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헤이스케는 그걸 그녀에 대한 모독이라고 받아들였는지 낮은 목소리로 평대사들에게 조용히 경고를 보냈다. 이게 어딜 봐서 고맙다고 하는 사람의 태도인가.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그들을 노려보면, 평대사들은 오해라는 듯이 손 사례를 쳤다.


, 아니에요. 저희는 그저 유키무라에게 그동안의 무례를 사과하고 싶어서……!”

처음에는 얼굴도 이름도 계집애 같은 게 어디서 우리 신선조에, 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케다 야에서 활약하는 것을 보고 인정했다고요!!! ”

맞아요!!! 저도 그 후로는 유키무라를 깔보지 않는다고요!!! 그가 온 후로 밥도 맛있어졌고, 깨끗해지고 옷도 찢어지면 정비되고!! 오히려 감사하고 있다고요??”


하지만 전혀 감사하는 것 같지 않다. 인식이 바뀌었다는 것은 확실히 알겠지만, ‘쓸모없는 비실이에서 쓸모 있는 비실이로 승격했다는 듯 한 인식에 오키타는 살짝 한숨을 쉬고선 입을 열었다.


저기, 너희들.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지 않을래? 지금 너희들이 한 말을 사과랍시고 들어봐. 어떤 기분일 것 같아?”


오키타의 지적에 잠시 히로마에 침묵에 내려앉았다. 치즈루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헤이스케가 그걸 말리고선 오키타에게 소지, 나이스. 라고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오키타는 그의 신호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그제서야 자신의 말 실수를 알아차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평 대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해했으려나?”

, !! 죄송합니다! 오키타 조장!”

너희들, 진짜 머리 나쁘네. 사과해야 할 사람은 다른 사람이잖아.”

죄송했습니다! 유키무라 씨!!”

도게자도 필요 없으니까-!! 정말 괜찮아요! 괜찮아!!”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오키타가 싸늘한 미소를 짓자, 그 모습에 겁을 먹은 평대사들은 바로 치즈루에게 석고대죄를 하며 입을 모아 외쳤다. 치즈루가 정말 괜찮다고 옹호를 했지만 그 사죄는 약 몇 분간 이어졌고, 그 상황을 만든 오키타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치즈루를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 일단 완치 판정도 받았겠다. 슬슬 카와구치를 쓸 만한 것으로 만들어볼까. 신팟짱들도 슬슬 텐노 산에서 돌아올 때고?” 


곤란해하는 치즈루를 도와준 것은 헤이스케쪽이었다.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나더니 뚝뚝 소리를 내며 몸을 풀며 그렇게 말하자 그 자리에 있던 평대사들의 얼굴이 일제히 새파랗게 질렸다. 신선조 중 지옥 같은 훈련을 시키는 것을 누구냐고 한다면 다들 나가쿠라의 이름을 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조장들의 지도도 편하다는 것은 아니다. 나가쿠라보다는 덜하지만 헤이스케의 지도도 죽을 맛이 드는 정도였다. 그런 그의 지도를 이렇게 불시에 받게 되다니, 대사들은 다들 죽을 것 같은 표정을 한 채 터덜터덜 일어났다. 그런 대사들의 기합 빠진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헤이스케는 얼른 얼른 안움직이냐고 크게 외쳤고, 그 호령에 대사들은 알겠습니다라고 외치며 4발로 달려나가거나 달려나가다가 넘어지는 둥 온몸으로 다급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이 달려나갈 때 눈물이 맺혀있었던 것 같은 건 기분탓일 것이다. 그렇게 본 것을 외면하며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치즈루에게 헤이스케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다가왔다.


치즈로. 미안. 저 녀석들 제대로 혼내 놓을 테니까.”

, 아냐! 헤이스케군 !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치만 저녀석들. 치즈루가 얼마나 도움을 주고 노력하는데 그렇게 말하고.”

아냐. 헤이스케 군. 저분들은 날 인정 해주신 거야. ”


치즈루는 그들의 인식이 올바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신선조에게 있어서 치즈루는 짐 같은 존재다. ‘보아서 안될 것을 본 목격자인 그녀는 신선조에 있어서 위험요소였다. 처음에는 여자라는 이유로 바로 살해당하지 않고 처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 회의가 열렸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유키무라 코우도라는 것을 알고서는 그의 수색을 도우라는 이유로 둔소에 부장의 시동이라는 직책으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간부들도, 평 대사들도 그녀의 존재를 환영하지 않았다. 오키타는 계속 그녀를 베겠다고 말버릇처럼 말하고, 히지카타는 가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는가 하면, 하라다나 나가쿠라, 헤이스케도 치즈루를 좋게 봐주건 해주기는 했지만 곤란한 것을 보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건 했다.


, 치즈루. 그건.”


그녀의 인정이 무슨 뜻인지 알아챈 헤이스케가 당황하며 뭐라 변명하려 했지만, 치즈루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다른 간부들도 지금 나한테 잘해주시고……. 헤이스케 군도 오키타 씨도 나를 많이 도와주시는걸. 나는 그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해.”

치즈.”

치즈루 짱은 바보구나.”


감동받은 헤이스케의 기분을 깨버리듯이 오키타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내뱉었다. 그리고 헤이스케가 자신의 말에 반박하기 전에 그의 행동을 봉쇄하듯이, 그의 머리에 자신의 팔과 톡을 올려놓았다. 밑에서 헤이스케가 무겁다고 항의를 해보았지만 오키타는 그저 좋은 위치에 팔걸이가 있다며 헤이스케의 항의를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겨우 그런 걸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얼마나 행복의 기준치가 낮은 거야.”

아뇨. 충분히 행복한걸요.”

……이상한 아이네.”


오키타의 쓴 웃음이 섞인 악평에도 치즈루는 그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오키타는 비릿한 미소를 띄우며 계속해서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다.


그래도 말야. 치즈루 짱. 잊으면 안돼? 우쭐해져서 이상한 짓을 하면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널 베어 버릴 거니까.”

소우지!”


그가 웃으면서 내뱉은 냉철한 말에 헤이스케는 당황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돌아온 것은 왜 그래. 사실이잖아라는 정론이었다.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는지 헤이스케가 입을 다물었지만 그녀에게 무어라 해주고 싶었는지 뭐라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만을 지으며 입만 뻥끗거리고 있었다.


, 아냐. 헤이스케 군. 괜찮아. 잘 알고 있는걸!”

그래도…….”


치즈루가 괜찮다는 듯이 두 손을 내저었지만 헤이스케는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끙끙거리고 있었다.


헤이스케. 슬슬 저 녀석들 훈련 봐주러 가야하지 않아? 조장이 여기서 땡땡이 치고 있어도 되는 거?”


정말 괜찮다니까. 치즈루가 그렇게 말해도 끙끙대고 있던 헤이스케의 등을 밀어 준 것은 이 대화를 딴 나라의 일처럼 여기고 있던 오키타였다. 그 말에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듯이 헤이스케가 작게 비명을 지르자, 오키타는 조장이 그래도 되는 건가-? 히지카타씨에게 일러버릴까-. 라며 재미있는 것을 보는 표정으로 헤이스케에게 계속해서 한마디 두 마디 던졌다.


, 치즈루! 이따 방으로 갈께! 이따 봐!”

헤이스케 군! 조심해!”


방금 전 대사처럼 지금이라도 성대하게 구를 것 같은 헤이스케의 뒷모습에 치즈루가 충고를 했지만, 지금의 헤이스케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복도 쪽에서 그가 성대하게 구르는 소리가 날 것 같아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치즈루와 달리, 오키타는 개구쟁이의 표정을 지으며 복도를 쿵쾅쿵쾅 뛰어가는 헤이스케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대사들의 기합소리가 들리는 것을 확인한 오키타는 재미없다는 듯이 하품을 하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그럼 나도 들어가서 낮잠이나 잘까나-.”

. 그럼 약을 먼저 드시고 주무시는 게…….”


오키타가 이번 텐노 산 전투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는 감기였다. 그래서 히지카타가 출병하기 전에 그녀에게 오키타를 잘 봐달라고 부탁을 했고, 부탁을 받은 치즈루는 시간이 되면 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그때마다 오키타는 싫은 표정을 대놓고 짓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제 먹었잖아.”

이 약은 식후에 드시는 거에요. 오키타 씨.”

………….”

라고, 제가 누누이 말씀드렸죠.”


치즈루의 말에 오키타는 시선을 돌린 채 묵비권을 시전 했다. 이런 대화가 이루어진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불리해지면 입을 닫는 오키타였지만 치즈루는 익숙하다는 듯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라고 선언하며 치료도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여유로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일까. 오키타는 다시 한 번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다.

“-너도 참 힘들겠네. 자신의 처우가 바뀌는 노력을 하느라. 나 같은 것도 돌봐야하고.”

그 말은 어디까지나 치즈루의 동요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말이었다. 평소에는 자신의 한마디 한마디에 여러 반응을 보여주는 그녀가 치료에 관해서는 전혀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

오키타의 악의에 가득 찬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치즈루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씁쓸해 보이는 미소를 띄우며 오키타를 바라볼 뿐이었다.


불만이 있으면 말하던가?”


하지만 오키타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지 그렇게 내뱉었다. 하지만 치즈루는 여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선 치료도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일단 이걸 원래자리에 두고 올게요. 약은 언제나처럼 오키타 씨의 방으로 가져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안 먹을 건데?”


소소한 반항을 해보는 오키타였지만, 치즈루는 그가 자신이 약을 갖고 오면 투덜투덜 대면서 먹어줄 거라는 걸 알기에 치즈루는 그저 방긋하고 웃을 뿐이었다. 콘도가 약도 잘 먹고 착한 아이로 있어야 한다.’ 라고 했기에 오키타도 어쩔 수 없이 치즈루가 가져온 약을 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은 걸까. 오키타는 크게 한숨을 쉬고 치즈루에게 빨리 나가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그런 그에게 실례합니다, 라고 살짝 목례를 한 치즈루는 치료도구가 든 바구니를 든 채 히로마를 나섰다.

복도를 걷고 있으면 저 멀리에서 헤이스케에게 훈련을 받고 있는 대사들의 구령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잠시 멈추어 듣고 있던 치즈루였지만, 곧 이럴때가 아니라며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처우가 바뀌는 노력이라.’


그의 말대로, 지금 치즈루는 이것저것 노력을 했기에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입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케다 야 사건 때. 치즈루는 산난의 명으로 야마자키와 함께 목숨을 걸고, 다리가, 폐가 찢겨져나갈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면서 시고쿠야에 있는 대사들에게 전언을 전하고, 이케다야에 들어가 부상을 대사들을 옮기는 것을 돕고, 전투가 끝난 후에는 코우도에게 배운 지식과 그가 치료하는 방식을 본 기억을 총동원해서 부상자들을 치료했다. 그 후, 피가 잔뜩 묻은 대사 복을 세탁하고 수선하는 등 싸움이 끝난 후에도 이것저것 많은 노동을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조금씩 인정해주기 시작 한 것은. 그 사실을 자각 한 것은 이번 아이즈 번()에서 출동이 내려졌을 때 간부들에게 너도 참가할래?’라고 권유받았을 때였다.

하라다는 상냥하지만 매사에 냉정하고 정에 그렇게 쉽게 휩쓸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만약 그가 치즈루가 쓸모없다고 판단했다면 그렇게 권해주지는 않았겠지. 게다가 치즈루의 합류를 원한 것은 하라다 뿐만이 아니었는지 사이토도 그녀의 합류에 찬성한다는 듯이 치즈루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건 그들이 치즈루의 존재를 인정해주었다는 것으로 봐도 좋은 것이겠지. 자신이 없다는 듯이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치즈루는 정원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슬슬 돌아오실 때가 되었지. 다들.’


누군가가 전령으로 와주지 않는 한 출진한 신선조가 어떻게 되었는지 둔소에 있는 사람들은 알 수 없었다.


산난 씨는 슬슬 야마자키 씨가 올 거라고는 했지만.’


어제 저녁 식사를 할 때 산난이 싸움이 슬슬 끝날 때가 되었으니 야마자키 군이 오겠군요.’ 라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 말은 즉 저쪽의 싸움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떻게 알 수 있냐는 치즈루의 말에 그는 그저 평소의 미소를 지으며 단순한 감이라 대답했지만, 그 자리의 그 누구도 산난이 감 따위에 의지해 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치즈루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산난의 말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을 수 있었다.


………야마자키 씨라.’

 

[ 나는 감찰반으로서 당신을 신용하지 않아. 그게 나에게 내려진 임무다. ]

 

예전에 둔소에 고양이가 들어와 모든 것을 휘젓고 다니던 사건이 있었을 때, 야마자키는 치즈루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신용 받지 못하는 관계. 감시받고 감시하는 관계. 그것이 현재 치즈루와 야마자키의 관계였다.


그 분도 조금은. 날 신용해주실까.’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그가 감찰반이 아니라도 야마자키는 치즈루를 신용 할 수 않을 것이고, 신용할 생각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거기까지 생각한 치즈루는 바보 같아, 라고 머릿속으로 중얼거리며 생각을 떨쳐내듯이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환경이 바뀐 탓일까. 자기도 모르게 옛날에 다짐한 것들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 같았다.


……괜찮아.’


그래, 괜찮다. 그렇게 자신에게 되내이며 치즈루는 고개를 숙였다.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 인정해주시지 않아도 괜찮아. 원래부터 그래왔으니까.’


에도에 있을 때부터 치즈루는 그래왔다.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 좋게 보여 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그런 것을 바라지 않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만을 하면 된다. 라고 코우도에게 배워왔기 때문이었다.


[ 절대 무언가가 돌아올 것을 바라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선을 긋고 행동하렴. ]


물론 처음에는 어째서 그래야하는 것인지 몰랐다. 그래서 계속해서 질문을 해보았지만 코우도는 네가 좀 더 자라면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왜 대답을 알려주지 않은 것인지, 왜 코우도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치즈루가 조금 더 성장했을 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신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틀린 무언가가 있다.


그것도 크게 알려지면 평화롭게 살 수 없는 무언가가.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치즈루는 그제서야 코우도의 말을 이해했다. 절대 남에게 무언가를 바라지 말고, 일선을 그은 상태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전력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특별해지는 일은 없어야 하고, 될 수 있는 남과 선을 그으면서 살아야 한다. 그것 외에 자신이 평범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어린 치즈루는 그렇게 깨달아버렸다. 그리고 그 생각은 성장한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야. 괜찮아.’


에도의 진료소에서, 쿄의 신선조의 둔소로.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다. 물론 불안하고, 신선조의 비밀을 알아버린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치즈루 본인도, 간부들도 모른다. 치즈루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자신이 할 수 있은 일을 하며 코우도를 찾는 것. 그것뿐이었다.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크게 한숨을 내뱉더니, 힘내자, 라고 중얼거린 치즈루는 바구니를 꼭 껴안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유키무라 군.”

???!!!!”


생각을 가다듬고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으면, 갑자기 누군가가 치즈루의 뒤에서 말을 걸었다. 그러자 치즈루는 새파래진 얼굴로 꼴사나운 비명을 지르며 손에 들고 있던 바구니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바구니에 들어있던 약들과 붕대와 도구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불쾌한 소리를 냈지만, 치즈루는 그걸 주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식은땀을 흘리며 그 자리에 정지해 있었다.

산난은 이 앞의 방에, 나머지 대사들은 헤이스케와 함께 중원에, 그리고 오키타는 히로마에 있을 것이다. 간부의 방은 이 앞에 있으니 아직은 방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순간 그 날 밤 일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하얀색 머리에, 붉은 눈의 괴물. 마치 미친것처럼 피만을 찾아 쫒던 괴물들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치즈루는 필사적으로 그건 아니라고 부정했다. 그들은 말을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아니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자신을 안심시키며 치즈루는 지금이라도 튀어나오고 싶다고 주장하는 심장을 억누르기 위해 왼쪽 가슴팍을 꽉 누르며 뒤를 바라보면, 그곳에는 치즈루의 머리에 한 순간 떠올린 하얀 머리에 붉은 눈을 가진 괴물이 아닌, 갈색머리에 청록색의 기모노를 입고 있는 남자가 서 있었다.

짧은 앞머리와 달리 그의 뒷머리를 길게 아래로 늘어져 있었지만, 그 머리카락을 꼬랑지처럼 단정히 묶었기 때문일까. 왜나 깔끔한 인상을 주는 남자였다. 하지만 그의 보라색 눈동자와 날카로운 눈매 때문일까. 깔끔하다는 이미지보다는 냉철하고 날카로운 인상을 주고 있었다.


“-야마, 자키. .”

항상 치즈루를 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그였는데, 치즈루의 비명에 놀란 탓일까. 야마자키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놀랐다는 빛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 미안하다. 유키무라 군. 그렇게 놀랄지 몰랐어.”


치즈루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야마자키도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평소답지 않게 말을 더듬으며 입을 열자, 치즈루는 여전히 새파란 얼굴로 두 손을 내저었다.


, 아뇨, 아뇨. 괜찮아요. 저야말로 놀라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야마자키 씨.”

아니, 나도 무턱대고 말을 건 잘못도 있어. 미안하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이어서 그럴까. 치즈루의 얼굴색이 조금은 나아졌다. 그 모습을 본 야마자키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며 정중하게 사과했다.


, 아뇨! 제가 멍하게 있던 게 문제인 걸요! 저야말로 갑자기 비명질러서 죄송해요!”


다른 생각에 집중하고 있던 탓에 야마자키가 오고 있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자신이 나쁘다. 두 손을 모아 허리를 굽히며 치즈루가 계속해서 사죄하자, 야마자키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그럴 필요가 없다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 아냐. 내가 무의식적으로 발소리를 죽인 탓이야. 방금 전 토도 조장에게도 기척지우지 말라고 한 소리 들었고. 미안하다. 이후론 조심하지.”

, 아니에요. 사과하지 않으셔도……. 오히려 제가!”


만약 이 곳에 오키타가 있었다면 너희들, 뭐해?’ 라며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 태클을 걸 정도로 두 사람은 그 상태로 끝나지 않는 사죄의 주고받기를 하고 있었다. 몇 초 뒤 그 사실을 깨달은 야마자키가 여기까지 할까, 라며 쓴웃음을 짓자, 치즈루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네. 그러도록 해요. 라며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


, 야마자키 씨. 어째서 여기에...? 혹시 전령 역으로 오셨나요?”


치즈루의 질문이 이외였기 때문일까. 야마자키의 눈동자가 순간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였을 뿐,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미안하단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 , 미안하다. 유키무라 군. 솔직히 나는 유키무라 군이 아무것도 모를 거라 생각했어. 얕봐서 미안하다.”

?”

내가 전령으로 왔다는 걸 모르고 나를 보면 바로 다른 분들은요? 라고 다른 분들을 찾으실 거라 생각했거든.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네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무시하는 생각이었어. 미안하다.”


, 그는 그녀가 전장의 체계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을 거라 멋대로 얕잡아보고 있었다는 것을 사과하고 있는 것이다. 예상치도 못한 사죄에 치즈루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푸후스 하고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일까. 야마자키가 당혹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치즈루는 웃음을 진정시키며 죄송해요, 라고 작게 사과하며 이유를 입에 담았다.


방금 사과하지 말자며 결론지었는데 또 사과하셔서. 후후.”

………그것에 대해서 사과, 아니. 사과하면 안 되지. 하지만 제대로 사과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너는 이제 감시만 받는 입장이 아닌데다 우리들의 뒤에서 이것저것 도와주고 있는 입장이니까. 그런 네가 아무것도 모른다, 무지하다, 라고 생각하는 방식이 틀린 거야. 너를 인정하지 않는 거니까. 그러니까 이것만큼은 사과하게 해줘. 미안하다. 유키무라군.”

인정하지, 않는 것.”

유키무라 군?”


야마자키의 말에 치즈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정답이겠지. 실제로 그 한마디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자신도 모르게 내뱉었기 때문일까. 급히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은 치즈루는 얼른 또 다시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방금 전의 자신의 말을 얼버무렸다.


정말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요. 저도 산난 씨에게 들어서 야마자키씨가 전령으로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 뿐이고!”

, 그런가.”

!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아주세요! 실제로 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자신의 무지를 강조하듯이 두 주먹을 꽉 쥐며 말하자, 이번에는 야마자키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 웃음이 전염되기라도 했을까. 치즈루도 다시 쿡쿡하고 웃기 시작했다.


참고로 전부 끝났다. 일단 간부들도 상처 하나 없이 전부 무사하시다. 물론 부상자가 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자세한 건 산난 총장에게 보고 하는 것을 들어주길 원한다만…….”

그렇군요! 다행이에요!”


모두가 무사하다는 소식에 치즈루의 표정이 화악하고 밝아졌다. 부상자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모두가 무사하다는 것이 어디인가. 안도하는 그녀의 눈동자가 착각이라는 것은 알지만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을 내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살짝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으면, 갑자기 야마자키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그렇지, . 이라고 중얼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유키무라군. 평 대사들과 무슨 일 있었나?”

?”

방금 전 말했듯이 이 곳으로 올 때 평대사들이 있는 중원을 통해 왔다만. 거기서 다들 유키무라 군에 대해서 대화하고 있었거든. 무슨 일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싶긴 했지만 전부 듣기 전에 토도 씨와 만나서 제대로 못 들어서 말야. 혹시 무슨 일 있었나?”


야마구치의 말에 치즈루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평 대사들과 무슨 일이 있었다 해도 짐작 가는 것이 전혀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방금 전 부터의 일부터 거슬러 올라간 덕분일까, 치즈루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 아마도 카와구치 씨. 때문일지도?” 


방금 전 히로마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자, 야마구치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예전에는 다들 갑자기 굴러들어와 방 한 켠을 차지한 치즈루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들 뒤에서 험담을 하건 했다. 간부들의 영향 덕분인지 다행히 폭력이나 노골적인 괴롭힘은 받지 않았지만, 적의가 섞인 시선을 받는 것은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케다야 사건 때의 공적과 평대사들을 치료해준 것 덕분에 인식이 꽤나 바뀐 듯 했다.


저쪽에서 부상자가 발생했을 때 다른 평 대사들도 유키무라 군이 있어주었다면, 이라고 이야기하던 걸 들었다. 여기에 녹아들어서 정말 다행이야. ”

야마자키 씨.”

노력했구나. 유키무라군.”


안도했다는 듯이 미소 짓는 야마자키와 달리, 치즈루는 복잡한 표정을 띄우며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너도 참 힘들겠네. 자신의 처우가 바뀌는 노력을 하느라.

-노력했구나. 유키무라 군.


 

순간 오키타와 야마자키의 말이 겹쳐 들렸기 때문일까,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치즈루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물론 오키타와 달리 야마자키는 치즈루를 칭찬해주기 위해서 그렇게 말했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왜 그 말에 이렇게 반응해버리는 걸까. 이래서는 안 된다. 야마자키를 곤란하게 만들 뿐이다. 그러니까 평소처럼 감사합니다, 라고 웃으며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고개를 들어 미소를 만들지 않으면.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는 듯이 고개를 든 치즈루의 시야에는 당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야마자키가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유키무라 군.”

, 아뇨! 괜찮아요! 잠시 멍하게 있었던 것 뿐이에요! 그보다 괜찮으세요? 산난 씨에게 가는 도중이었던 것은...”


자신 때문에 꽤나 시간이 지체되어 있었다는 것을 지적해보았지만, 야마자키는 고개를 저으며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확실히 산난 총장에게 가야하지만. 조금 정도라면 괜찮겠지. 게다가 그런 표정을 짓는 널 내버려두고 그냥 가기에는 너무 신경이 쓰여서 말야. 둔소 내부의 싸움을 중지하는 것도 내 임무중 하나고.”

, 싸움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치즈루에게 변명할 시간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야마자키가 그녀의 말을 잘랐다. 본능적인 감 덕분일까, 치즈루는 그가 자신이 제대로 말할 때까지 이 곳에서 꼼짝하지 않겠다는 것을 알았다. 치즈루의 성격상으로 자신 때문에 일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 죄악감을 가질 테고, 그러면 마지못해 이야기를 하겠지. 치사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 치즈루는 그에게 숨길만한 입장이 아니었다. 분명히 잠시만의 침묵이었을 텐데, 치즈루에게는 정말 오랜시간으로 느껴졌다. 그 침묵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일까. 치즈루가 각오를 다졌는지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심조심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오키타 씨에게, 들었어요. ‘처우가 바뀌는 노력을 하느라 고생이 많네하고.”


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의외로 자신은 그 한마디에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자각한 치즈루는 입술을 한번 깨물고선 말을 이어갔다.


제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한건, 언제 살해당할지 모르는 공포를, 잊기 위해서, 였어요.”


사람 베는 집단이라 불리는 신선조. 그 악명은 치즈루의 고향인 에도에서도 소문이 퍼져있었다. 그 악명 높은 집단의 비밀을 알게 되고, 그들의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은 채 초반의 치즈루는 방구석에서 떨며 지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몸은 그때의 공포를 잊지 못한다는 듯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든 일어서기 위해 택한 것이 바로 가사일 이었다. 그나마 이야기가 통할 것 같은 이노우에에게 허락을 받고 자신에게 주어진 방을 청소했을 때, 깨끗해진 방을 본 치즈루는 경 자신의 이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복도를 청소하고, 바느질을 하고, 요리를 하면서 치즈루의 정신상태는 안정되어갔고, 지금은 에도에 있었을 때만큼 안정되었다. 물론 이 행동이 자신을 잘 봐달라고 아양을 떠는 것으로 비추어진다는 것은 먼 옛날부터 뼈저리게 자각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무서움만을 없애기 위해 가사 일을 열심히 했으나, 헤이스케의 그런 것을 해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듣고 자신의 이 행동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다른 의도로 비춰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이것이 자신이 이 장소에서 호흡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신선조의 여러분께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히 있어요. 하지만, 제가 가사 일을 시작한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보신(保身)을 위해서였으니까. 오키타 씨의 말이 맞는 게 아닌가, 생각해서. 그래서. ”


그래서 야마자키의 말에 죄악감이 스멀스멀 올라온 것이다. 하지만 그 한마디는 입에 내뱉기 힘들었는지, 치즈루는 입을 꾹 다물었다가 고개를 들더니, 야마자키를 향해 억지웃음을 지어보았다.


고맙습니다.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누군가에게 털어놓았더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어요.”


얼른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과 진심으로 고마움을 담아 치즈루가 고개를 숙였다. 여러 가지 일로 인해 바쁜 그가 이렇게 자신에게 신경써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도 고마움과 죄악감이 들었다. 그래서 얼른 산난에게 가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유키무라군.”


얼른 이야기를 끝내고 싶어 하는 치즈루와 달리, 야마자키는 아직 그녀와 이야기를 끝낼 생각이 없다는 듯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한순간 겁을 먹었는지 치즈루의 어깨가 눈에 띄게 움찔했다. 그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까. 야마자키는 한 순간 말을 하는 것을 망설였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 행동은 동기가 어찌되었건 신선조의 도움이 되고 있어. , 빨래, 수선, 청소, 그리고 나와 함께 의료활동까지 해주고 있지. 게다가 너는 다른 대사들과 다른 시점을 갖고 있기에 우리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데다, 그 점을 이용해 우리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은 부장도 국장도 아시는 일이다. 게다가. 자신의 보신을 위해서 일을 시작했기에 죄책감을 느낀다고 너는 그랬지만, 나는 별로 그 점에 대해서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본다만.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생각해.”

……?” 


야마자키의 대답이 의외였기 때문일까. 치즈루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선 그를 바라보았다.


애초에 유키무라 군이 우리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유키무라 군이 우리들에게 신뢰를 심어줄 수 있는행동을 해줬기 때문이야. 물론 네 입장은 변하지 않고, 아직 너를 경계해야하지만. 그래도 만약의 날이 올때까지는 유키무라 군이 평온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물론 나만의 생각은 아냐. 국장도, 부장도, 다른 간부들도 그렇게 생각하시분이 많아.”

야마, 자키 씨.”

유키무라 군. 자책감 가질 필요 없어. 지금 이 상황은 너에게 주어진 보상일 뿐이야. 보상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혹시 그래도 네가 자신의 노력에 쓸모없는 죄악감을 갖는다면, 내가 몆번이던 말해주지. -애썼어. 노력해줘서 감사해. 유키무라 군.”


그 말과 함께 야마자키가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치즈루는 손을 내저으며 그에게 고개를 들어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걸 막으려는 듯이 그녀의 갈색 눈동자에서 눈물이 투두둑, 하고 떨어졌다.


, 어어어?”


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야마자키의 말에 무언가가 끊어졌는지 계속해서 그녀의 뺨을 타고 후두둑하고 떨어져 내려갔다.


, 어어.., 죄송해요. 울 생각, 전혀, 없었는, .”


어떻게 해서든 눈물을 멈추려고 노력을 하며 치즈루가 계속 사과를 입에 담았다. 손으로 훔치고 손으로 닦아도 눈물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자 치즈루는 계속해서 죄송해요, 죄송해요라고 똑같은 말만 반복하며 한쪽 손을 내저었다. 그런 그녀의 손에 야마자키가 손수건을 쥐어주자, 치즈루는 처음에 당황하며 괜찮다고 하려고 했지만 야마자키가 가져가라는 듯이 꼭 쥐어주자 조심조심 그것을 받아 얼굴에 가져가 대었다.


조금은 진정 됐나?”


그 손수건에 얼굴을 묻은 채 어떻게든 울음을 멈춘 치즈루가 조심조심 고개를 들자, 거기에는 약통들을 제대로 바구니에 넣고선 정리하고 있는 야마자키의 모습이 있었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이 방금 자신이 떨어트려버린 의료기구라는 것을 알아차리자 치즈루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버렸다. 자신의 일인데 그가 하게 만들어버렸다. 그것에 대한 미안함이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오려던 차에, 야마자키가 괜찮다는 듯이 씁쓸하게 웃었다.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내가 말만 걸지 않았어도 떨어트리는 일은 없던 것이었으니까.”

, 그래도! 죄송합니다! 야마자키 씨! , 손수건도, 빨아서 다시 돌려 드릴께요!”

아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래도-”


안되겠다. 이대로 가다간 다시 한 번 끝나지 않는 대화가 이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대화를 끝낼 방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혼란스러운 머리로 치즈루가 무어라 입을 열려는 순간-.


끼야아아악!!!!!!!!!!!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토도 조장!!”

시끄러! 이것도 못 버텨서 어떻게 싸우려고!!!!!”


저 멀리서 카와구치의 울음 섞인 목소리와 헤이스케의 호통이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헤프닝에 야마자키와 치즈루는 놀란 표정으로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며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더니, 곧 동시에 푸웃, 하고 작게 웃기 시작했다.


……앞으로 유키무라 군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


그렇게 얼마나 웃었을까.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간 야마자키가 입을 열었다.

알고 있다.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저 감시 대상이었던 치즈루가 다른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는다는 것은 그 당시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으니까. 그러니 앞으로 치즈루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상태를 유지할 수도 있고, 아니면 일이 틀어져서 살해당할 수도 있다. 치즈루도 그 사항을 잘 알고 있는지 두 손을 모은 채 그저 그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 그때의 그 눈이다.’

 

[너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어. 그래도 괜찮다면 부디, 나를 따라와 줬으면 해.]

 

야마자키의 눈을 본 순간, 치즈루는 예전의 이케다 야 사건 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날 밤 자신에게 부탁을 하던 그 눈이다. 그 눈에서 자신에게 해를 입히려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일까. 치즈루는 그 시선을 똑바로 바라보며 야마자키의 말을 듣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감찰반이라는 입장에서 유키무라 군을 의심하지 않으면 안 돼. 그래도 네 처우가 좋아지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 나는 감찰반이라는 입장 상 당신을 신용하지 않아. 그것이 나에게 내려진 임무니까. 하지만, 나 스스로 당신의 적이 될 생각은 없어. ]



그 말에 치즈루는 방금 전에 떠올렸던 신선조 둔소에 고양이가 들어왔던 사건을 떠올렸다. 그 때와 비슷한 말이었지만, 의미는 확연히 달랐다. 이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보상이라는 것일까. 그에게 무어라 말 하고 싶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보라색 눈동자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치즈루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니 나도 지금 이상으로 코우도 씨의 탐색에 힘을 쏟아보려 한다. 하지만 역시 나 혼자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어. 그러니까 내가 빠트린 부분을 유키무라 군이 메워줬으면 해. -부탁합니다.”


야마자키가 고개를 숙였다. 그때와 똑같이 마지막은 정중하게 부탁한다는 듯이 존댓말로 바뀌었지만, 현재 야마자키의 인식은 그때와 확연히 달라져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을 향해서 고개를 숙이는 야마자키의 모습에 한동안 사고가 정지한 치즈루였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모은 채 입을 열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해주세요. 저는 여러분의 힘의 되고 싶으니까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치즈루도 야마자키와 똑같이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가 말하는 내가 빠트린 부분이라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부상자의 치료와 코우도의 수색관련이다. 감찰반의 일로 둔소를 자주 비우는 야마자키와 달리 치즈루는 이 둔소에 계속 있을 테고, 그렇다면 야마자키가 없어도 대사들의 치료를 맡길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코우도를 몇 번밖에 만나지 않은 대사들과 달리 치즈루는 그와 함께 몇 년을 함께 해왔다. 그녀도 아무리 코우도가 변장을 하고 있어도 알아챌 수 있다고 그들에게 당당히 선언한 바 있었다. 그러니 대사들 보다 코우도를 발견 할 수 있는 확률은 치즈루가 높았다.


고마워. 유키무라 군.”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야마자키 씨.”


서로의 대답을 듣자 두 사람은 동시에 미소 지었다. 이 공기가 익숙하지 않지만 그래도 싫지는 않다. 그건 야마자키도 마찬가지였는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그럼, 나는 산난 총장에게 보고를 올리러 이만 가봐야겠어.”


저 멀리서 대사들의 비명소리가 계속 들려오자 야마자키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그 사실을 인식한 치즈루가 죄송하다고 다시 고개를 숙이자, 야마자키가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이건 내가 가는 길에 원래장소에 놔둘 테니까, 괜찮다면 유키무라 군은 산난 총장의 방으로 차를 가져와주지 않겠어? 그리고 된다면 오키타 씨와 토도 씨도 불러줬으면 해.”


원래 저 치료도구는 야마자키의 것이다. 그러니 내가 가져다두겠다며 보충설명을 붙이자, 치즈루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 ! 3잔이면 금방 가져갈 수 있어요!”


간부 전원의 차를 준비하는 것보다 시간은 빨리 걸릴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치즈루가 웃으며 대답하자, 야마자키는 아니, 라며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유키무라 군의 것까지 4잔 부탁한다.”

.”


그 말은 즉, 함께 전장의 보고를 들어도 된다는 의미였다. 산난이 예측으로 몇 가지 알려준 것이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이지, 진실이 아니다. 전장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자세하게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중요한 곳에 자신이 있어도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에 포기하고 있었는데, 지금 동석해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졌다. 치즈루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보자 야마자키의 얼굴에 미소가 더 깊어졌다. 마치 그녀의 미소가 전염된 것 같은 광경이었다.


, 손수건…….”

손수건은 나중에 깨끗이 세탁해서 가져다줬으면 하는데, 괜찮나?”

, !!!”


야마자키의 부탁에 치즈루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 모습을 여전히 미소를 띄우며 바라보던 야마자키가 슬슬 가보겠다고 하자, 치즈루는 얼른 두 사람을 불러올게요, 라며 꾸벅 고개를 숙이고서는 헤이스케와 오키타가 있을만한 곳으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던 야마자키는 이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산난의 얼굴을 떠올리고 쓴 웃음을 짓더니,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그의 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