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치즈]아와유키 3.
“유키무라 선배, 어떻습니까! 저희들의 차는!”
“내가! 내가 더 잘 끓였죠? 그쵸??”
-아아. 나는 여기서 죽는 건가.
-아버지. 찾지 못하고 먼저 가서 죄송해요.
한순간 정신이 아늑해지는 것을 느끼며 치즈루는 죽음이라는 것이 이런 걸까. 라고 한 순간 생각해버렸다.
신선조가 니시혼간지로 이사를 온지 5개월 이상이 지났다.
여러 가지의 변화가 있었지만,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을 뽑자면, 코우도랑 지인이자 치즈루가 쿄에서 만나려고 했던 난방의, 마츠모토 쥰이 신선조에 자주 와주며 치료를 해주게 되었다. 그도 오치미즈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코우도의 행방을 찾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 이였기에 그는 기꺼히 치즈루의 조력자가 되어 주었다. 둔소를 자유롭게 나가지 못하는 치즈루를 도와 자신 나름대로 코우도에 대한 정보를 모아주건 했지만, 결정적인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다며 치즈루에게 미안하다 사과를 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치즈루는 마츠모토가 사과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코우도 찾기에 적극적이지 못한 자신이 사과해야했으니 말이다.
두 번째로는 둔소가 깨끗해졌다. 마츠모토가 왜이리 더럽냐, 라는 일갈 때문인지 다들 이주일에 한번정도는 제대로 된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주로 치즈루가 청소를 했는데, 이 변화로 치즈루의 일감이 조금은 줄었다.
세 번째, 대사가 많이 늘었다. 애초에 니시혼간지로 이사 온 이유 중 하나가 대사들이 많아졌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케다야, 금문의 변 등 명성을 높인 덕분에 신선조에 들어오겠다는 사람도 많이 늘었고, 헤이스케의 지인인 이토 카시타로를 간부로 맞은 효과로 그를 따르던 사람도 자연스럽게 신선조의 대사가 되었고, 그 결과로 신선조의 인원이 불어난 것이다. 갑자기 늘어난 대사의 수에 치즈루도 처음엔 허둥지둥 댔지만 지금은 익숙해져서 대량의 빨래도, 음식도 무리없이 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치즈루에게 후배가 생겼다.
소우마 카즈에. 노무라 리사부로.
나이는 둘 다 치즈루보다 연상이었지만 그들은 자신보다 시동 일을 오랫동안 한 치즈루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선배라고 불러주며 존경해주고 있었다.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치즈루를 높이 사고 있어 주위에서도 ‘잘 따르는구나’ 라면서 흐뭇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노무라와는 그가 신선조에 입대했을 때 처음 만났지만, 소마랑은 신선조가 이케다야의 사건을 겪기 전에 처음으로 만났었다. 물론, 소마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첫 만남이었겠지만.
테라다라는 여관에 코우도가 있다. 그 소시을 들은 치즈루는 사이토와 함께 그곳으로 가려했지만 히지카타는 후시미에 있을 확률이 더 높다며 하라다와 나가쿠라, 헤이스케의 순찰에 동행하라고 했고, 치즈루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물론 테라다야에서 코우도를 보았다는 목격정보도 신경 쓰였다. 하지만 여관에 있다면 사이토가 반드시 데려올 것이라고 믿고선 3사람의 순찰에 동행했고, 그곳에서 소마를 처음 만났다.
싸움이 일어난 낭사들을 신선조가 체포하려는 도중, 그는 도망가는 낭사를 막으려다가 오히려 한 대 맞고 떨어져나갔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인 자신들을 도와줘서 고맙다고 헤이스케가 감사의 인사를 했지만 오히려 그는 ‘공에만 눈에 먼 피에 미친 미부로 따위에게 인사 받아도 기쁘지않다’라는 식으로 폭언을 내뱉었다. 그 한마디가 하라다의 공분을 샀고, 다툼이 벌여지려는 찰나 그는 한 장의 그림을 떨어트렸고, 그것 때문에 소마는 신선조의 둔소로 연행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그림은 나찰을 그린 그림이었다.
다행히 그 나찰그림은 한 장 뿐이었고, 그린 이도 간부들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었는지 그것만 확인하고 소마를 돌려 보내주었다.
그 ‘화가’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다, 라는 것은 거짓말이 된다. 하지만 그 당시 치즈루에게 있어서 ‘안다’라는 것은 그녀의 입장을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었기에 치즈루는 물으려 하지 않았고, 물었다 해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을 것 이다. 그 당시 치즈루가 알 수 있었던 것은 딱 두 가지. 그 ‘화가’가 잘 살고 있다는 것을 간부들 대부분이 기뻐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은 그 얼굴도 모르는 화가를 ‘부럽다’라고 생각한 것 뿐이었다.
그렇게 소마와의 첫 만남은 그리 나쁘지 않게 끝났다. 그렇게 다른 번 사람인 그를 만날 일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치즈루의 예상을 깨고 소마와는 금문이 변 이후로 다시 한 번 더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는 알지 못했다. 설마 그가 탈번을 하고 신선조에 들어오고, 그것도 자신의 후배가 된다는 것을. 지금 생각하면 정말 인생은 예상치 못하는 일의 연속이라고 치즈루는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자신을 이렇게 따를 줄은 정말 몰랐다는 점이었다.
치즈루에게는 평범한 일을 그들은 치즈루가 하는 일 하나하나를 굉장하다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대단하다며 존경한다고 몇 번이나 말하고, 표현해주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자신을 존경해주고 따라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부담스럽다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우리는 무엇을 하면 될까요?” 라는 말을 들으면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건 아직까지도 고쳐지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려 보거나 시켜본 적이 없었던 치즈루에게 있어선 그 일이 가장 어려웠다. 왜냐하면 자신은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쪽이었지 누군가에게 지시를 해 본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상대는 편하게 대해달라고는 하지만 연상의 남자다. 아무리 저쪽은 자신의 사정을 모르고 있다고 해도 그렇다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연상의 남자에게 깍듯하고 정중히 대해지는 것은 처음인 치즈루는 몇 번이건 도망치고 싶다는 감각을 맛보아야만 했다.
간부들에게 상의해보아도 ‘익숙해져라’라던가 ‘잘 따르니까 좋지 않으냐’라던가 ‘너는 너무 자신의 위치를 낮게 잡는 경향이 있으니 이 기회에 상사의 감각을 익혀봐라’ 라고 하는 등등 치즈루의 도망칠 길을 전부 막아버렸다. 처음에는 다들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심 우울해 있는 치즈루에게 사정을 아는 하라다가 ‘좀 더 자존감을 높이라는 뜻이다’라고 알려주었다.
그걸 들은 치즈루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것저것 걱정 끼치는 것 같아 죄송하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걱정 끼치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잘 해내가는 모습을 보여보자고 생각하며 치즈루는 두 사람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선배가 되자고 남몰래 결의했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지만 말이다.
이야기를 되돌려서, 치즈루는 지금 ‘정말 죽을지도’라는 감각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이 후배들이 만사에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청소도 빨래도 차도 제대로 끓여본 적이 없는 그들이 어떻게든 일을 익히려고 치즈루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익히려고 하고, 나가쿠라에게 엉망이 되면서까지 훈련을 받으며 좀 더 나은 자신이 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노력을 치즈루는 건방진 생각이지만 이 둔소의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이런 자신을 믿고 따라주는 후배들이다. 그러니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해주자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죽음까지 경험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오키타의 방을 몰래 청소하는 겸 둔소의 방 하나하나를 전부 청소하고 있으면, 그걸 본 훈련을 끝낸 두 사람이 도와주겠다며 활짝 웃으며 달려왔다. 그렇게 두 사람에게는 히로마의 청소와 마루를 맡기고 원래 목적이었던 오키타의 방도 청소하고 왔다. 원래라면 한 이틀은 걸릴 작업이었는데 소마와 노무라가 도와준 덕분에 되도록 빨리 끝낼 수 있었다.
“덕분에 일찍 끝났어! 오늘도 고마워.”
언제나 자신이 곤란할 때 도와주는 후배들에게 오늘도 감사인사를 하며 차를 내오겠다고 하자, 두 사람은 이번엔 자신들이 내오겠다며 치즈루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바로 주방으로 달려가버렸다. 그리고 나온 차가 바로 이것이었다. 치즈루가 아는 일반적인 차와 달리 색도 탁하고 냄새도 이상한 것 같은 이것을 차라고 불러도 되는 것일까 한순간 고민했지만 두 사람은 얼른 마셔주세요, 라는 눈빛을 치즈루에게 보내고 있었다. 왜 이게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두 사람이 열심히 끓인거고, 보기에는 이렇지만 의외로 맛은 괜찮을지 모른다. 이것을 마신다는 것에 용기가 필요했지만 차에 대한 수상함 보다 두 사람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렇게 안일한 마음으로 차를 마시고-, 지금 이 사태에 이르렀다.
안일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한 순간 죽음을 볼 정도로 맛이 없을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차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건지 묻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저 잘했죠? 맛있게 잘 우려냈죠? 라고 눈으로 묻듯이 눈을 빛내고 있는 후배들에게 차마 그 한마디를 하지 못한 채 제정신을 잡으려 어떻게든 고군분투하고 있으면, 그런 치즈루를 구원의 손길을 내미려는 듯이 누군가가 다가왔다.
“얼레. 치즈루 짱. 왜 그렇게 죽어가는 얼굴을 하고 있는거야? 후배들이 하극상이라도 치룬거야?”
“오, 오키타 씨.....”
아니, 구원의 손길이 아니라 혼돈의 시작을 열 사람이 와버렸다. 지금 순찰에서 돌아온 듯 물색 하오리를 걸치고, 다른 한 손에는 이마보호대를 들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오키타를 보고 치즈루는 조심조심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오키타에게는 실례되는 생각이라는 것은 알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의 존재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만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걸 느끼며 오키타를 바라보고 있으면, 방금 오키타의 말을 듣고 흘릴 수 없다는 듯이 노무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항의하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에요, 오키타 씨! 우리가 왜 유키무라 선배에게 하극상을 하겠어요!”
“그렇습니다. 오키타 씨. 방금 발언은 정정해주세요. 저희는 진심으로 유키무라 선배를 선배로서 존경하고 있어요!”
“헤에, 정말? 치즈루 짱은 여자 같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치즈루 짱’이라는 호칭이 정착되어있고, 약하고, 검술에 재능이 없잖아? 그런데도 선배라고 생각하고 존경할 수 있어? 신선조 내부에서도 너희가 불쌍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던데-?”
오키타의 가시 돋친 말에 치즈루는 입을 닫았다. 두 사람은 자신을 잘 따라주지만 다른 대사들-, 특히 이토 파 사람들 사이에서는 소마와 노무라를 동정하는 목소리가 꽤 있었다. 물론 치즈루도 잘 알고 있다. 몇 번 치즈루에게 들으라는 듯이 크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두 사람에게 미안해서 더더욱 힘내야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뭐어, 그렇-”
“그렇지 않습니다. 유키무라 선배에게는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있어요. 다른 간부들만큼 존경하고 있는 분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요!”
“맞아요! 유키무라 선배는 대단한 분이라고요! 그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 못해!”
‘뭐어 그렇죠’ 라고 힘없이 웃으려는 순간, 마치 치즈루에게 그 말을 내뱉게 하지 못하려는 듯이 두 사람이 필사적으로 반박해왔다. 이렇게 힘 있게 부정의 날아올 줄은 몰랐기 때문일까, 치즈루도 오키타도 놀란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반박이 기뻤기 때문일까. 감동받은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치즈루와 달리, 오키타는 그들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입 꼬리를 올리고선 두 사람에게 방긋 웃어보았다. 하지만 그 표정이 일명 ‘히지카타에게 장난을 치료는’ 표정이라는 것을 읽은 치즈루는 당장 두 사람에게 도망가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너희들의 치즈루 짱 사랑은 잘 들었어. 그런데 말야, 너희들은 보통 그 ‘존경하는 선배’에게 이런 걸 먹이는구나-. 헤에-. 말과 행동이 틀리지 않아? 너희들?”
그 짧은 시간에 치즈루의 표정과 낯빛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사람 같이 되어있는지 그 시간 안에 파악한 오키타가 치즈루의 앞에 놓여져 있는 노무라와 소마가 탄 차를 바라보았다. 내가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차이올시다, 라고 주장하는 듯한 모습의 찻를 바라보며 오키타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허탈하게 웃었고, 그 다음에 그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할지 예상했는지 치즈루는 할 수 있는 한 필사적으로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이 헛수고라는 듯이 오키타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치즈루 짱. 왜 이런걸 마셔. 이거 먹고 편해지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둔소 생활이 힘들었어?”
“……그, 그런 거, 아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오키타 씨! 마치 저희들의 차에 문제가 있는 것 같잖아요!”
“………………나는 가끔 노무라 군의 뻔뻔함이 대단하다고 생각해.”
지금 대화의 흐름으로 자신들이 타온 차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이 새파래져버린 소마와 달리, 노무라는 자신의 타온 차가 뭐가 문제냐고 오히려 당당하게 묻고 있는 걸 보자 오키타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양심이 없는 건지, 아니면 무엇이 문제인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느쪽이던 악질 그 자체다. 이 녀석은 제정신인 걸까, 라는 해괴하는 것을 보는 눈으로 오키타가 노무라를 바라보는 것을 눈치챈 치즈루는 어떻게든 말려야한다며 선배로서의 책무를 다하려는 순간, 오키타가 왔던 곳의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다. 혹시 이토파 사람인 걸까. 하고 살짝 긴장하며 그쪽을 바라보면, 모퉁이에서 아는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야마자키 씨.”
“아, 유키무라 군. 찾고 있었어. 지금 시간 괜찮아?”
“네? 아. 네. 괜찮아요. 무슨 일이신가요?”
살짝 표정이 굳은 것을 보아하니 무언가 심각한 일이 있다. 그렇게 읽은 치즈루는 덩달아 살짝 딱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였다. 무슨 일일까.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소마와 노무라도 치즈루와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야마자키를 바라보았지만 야마자키는 그들의 시선에는 전혀 신경쓰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유키무라 군이 주방담당이 아닌 건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차를 내올 때 자주 쓰잖아? 그래서 묻는 건데.”
“네.”
“…오늘 혹시 차 탄 적이 있어?”
“아, 아뇨. 아직은 없는데요. 무슨 일이신가요?”
주방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예전에 둔소에 고양이가 들어왔던 사건을 떠올리며 치즈루가 되물었다. 혹시 지금 주방이 심각한 상황이 되어있는 걸까. 그 때 보았던 주방의 광경을 떠올리며 치즈루가 묻자, 야마자키는 멋쩍어하며 입을 열었다.
“주방에서 정체불명의 냄새가 나서 말야. 정리는 잘 되어있는데 냄새가 뭐랄까, 적의 코를 마비시키려는 그런 류의 냄새 같단 말이지. 혹시 오늘 주방에 갔다면 혹시 아는 게 있나 싶어서 묻-”
“그 냄새, 혹시 이걸 말하는 거야? 야마자키군?”
야마자키의 말에서 모든 것을 알아챘는지 오키타가 방실방실 웃으며 소마와 노무라의 차를 야마자키의 눈 앞에서 흔들어 보았다. 그제서야 그 찻잔에서 나는 냄새가 주방에서 나던 냄새와 같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야마자키의 얼굴이 험악하게 물들어갔고, 오키타는 재미있는 일이 시작 될 것이라고 예감하는 아이처럼 그저 싱글 싱글 웃고 있었다.
“오-키-타-씨!!! 또 당신입니까! 이젠 하다하다 못해 먹을 것에 장난치시나요! 심지어 또 어디다가 쓰시려고 이런 병기 같은 차를 만드신건가요! 부장님에게 먹이려든다면 그땐 정말 부장 독살 혐의로 넘겨 버릴 겁니다!! 그리고 이런 차를 만들고 유키무라 군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드시지 않는건가요!”
야마자키의 사정없는 독설에 소마와 노무라는 심장, 혹은 마음에 깊은 타격을 입었는지 쿨럭 기침을 하고선 가슴팍을 움켜잡았고, 치즈루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두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허둥지둥 대고 있었다. 그런 세 사람을 곁눈질로 바라본 오키타는 푸풋, 하고 공기 빠지는 듯 한 소리를 내더니, 곧 배를 움켜잡고 숨죽여 웃기 시작했다. 제 3자가 보면 웃다가 죽을 것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며 웃는 오키타를 보며 야마자키는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래. 야마자키의 입장에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오키타의 입장에서는 웃겨 죽을 것 같았다. 범인은 저 두 사람 인지도 모르고 언제나 오키타에게 하던 대로 막 내뱉다니, 유쾌한 상황이었다. 착각하는 야마자키도 우스웠고, 충격을 받고 있는 소마와 노무라도 재미있었고, 가장 재미있는 것은 허둥지둥대는 치즈루의 모습이었다.
“오키타 씨. 무슨 말을 좀….”
“……야, 야마자키 씨.”
“그러니까 소마 군… 이었던가. 잠시 이야기는 나중에 하면 안될까.”
“그, 그게. 그 차 말입니다만……. 저희들이 유키무라 선배에게 대접하기 위해서 우린 차,입니다…만.”
소마의 발언이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기 때문일까, 야마자키가 마치 고장 난 고양이처럼 굳어버렸다. 분명히 오키타가 했다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건만 다른 사람이, 그것도 착실해 보이는 소마가 이걸 만들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혼돈이다. 치즈루의 예상대로 이 공간에는 혼돈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여전히 고장 난 고양이인 마냥 놀란 얼굴로 굳어있는 야마자키를 비웃는 오키타라던가, 나는 유키무라 선배를 독살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맛있게 드셔주셨으면 하는 바램 뿐 이었다라며 치즈루에게 사죄를 하며 변명을 하는 소마라던가, 그렇지 않다며 우리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 차가 문제라고 옆에서 위로해주는 노무라라던가. 이 혼돈의 공간속에서, 치즈루는 혼자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며 먼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곧 아니다, 이건 자신이 어떻게든 해야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 잡고 입을 열려는 차, 야마자키가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사람 보는 눈을 좀 더 기르지 않으면.”
“무, 무슨 뜻 인가요 그건!”
“야마자키 군, 야마자키 군. 이건 하극상이 아닐까? 아니, 이걸 마시게 했으니 암살미수? 히지카타 씨에게 그렇게 보고해야하지 않을까?”
“우와 너무해! 두분의 악평이 너무해!!! 암살도 아니고 하극상도 아니라고요! 저희들은 그저 존경하는 선배를 위해 차를 타온 귀여운 후배 1,2일 뿐이라고요!”
“노무라 군. 혹시 양심이라는 단어 혹시 알고 있어?”
평소의 오키타 답지 않게 ‘나 정말 당황했는데?’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오키타가 진지하게 묻자 소마는 눈에 보일 정도로 더 의기소침해졌고, 그와 반대로 노무라는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결백을 외쳤다.
“아 진짜 너무하시네! 유키무라 선배도 한마디 해주세요!”
“…………………….”
“유, 유키무라선배에에에”
“주, 죽진 않았어요. 저, 살아있으니까요. 멀쩡해요. 네. 음.”
“………….”
“노무라 군. 이게 양심이라는 거야.”
“으어어어어어어억”
치즈루도 마음 같아서는 제대로 변호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차들을 한 모금씩 마시고 나서 정말 이대로 죽는 것이 아닐까, 라고 진심으로 생각할 정도로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치즈루는 제대로 부정의 말을 해줄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미안해, 라는 사죄뿐이었다.
“미,미안해….”
“그 사과가 더 마음이 아픕니다….”
“……미안.”
“적어도 저희들의 눈을 바라봐주세요…….”
“미안………….”
소마가 반쯤 절망한 목소리로 애원해보았지만 치즈루는 그들과 제대로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지금 그들의 얼굴을 보면 그 차가 어떻게 끔찍했는지에 대해서 세세하게 기억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상태로 그들과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계속 미안이라며 사과의 말만 입에 담고 있으면, 그 상황이 즐거운지 오키타가 큭큭큭, 하고 웃기 시작했다.
“저, 정말 오키타 씨! 웃을 일이 아니라구요!”
“그렇지만 웃기잖아. 이 상황. 풋…크큭…. 역시 치즈루 짱이야. 너무 재밌어!”
“전혀 우습지 않습니다만.”
너무 웃는 오키타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내며 야마자키가 반박해보았지만 오키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계속 웃고 있었다.
“야마자키 군이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 게 아니고?” 물론 이런 도발도 빼놓지 않았다. 그런 오키타에게 뭐라 한마디 하고 싶다는 얼굴로 바라보던 야마자키는 곧 지쳤다는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너희들은 뭘 어떻게 하면 이런 걸 만들 수 있는 거지.”
“아니, 그보다 치즈루 짱. 이거 마셨다고 했지? 다시 한 번 묻는거지만 목숨을 포기 하고 싶을 정도로 둔소 생활이 힘들었어?”
“…….”
더 이상 오키타를 상대하다가는 자신의 체력이 먼저 바닥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지 야마자키는 더 이상 오키타에게 신경쓰지 않기로 생각했는지 일절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두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야마자키의 질문에 오키타는 아까 전 치즈루의 말에 그녀가 이 물체를 마셨다는 걸 떠올리고선 제정신이야? 라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날 먹으면 죽어!’라고 주장하고 있는 찻물은 야마자키가 보아도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오키타와 같은 의견이라는 것이 좀 거부감이 들었지만 이걸 차라고 주장하는 것은 양심이 정말 있는지 의심될 정도였다. 하지만 노무라는 정말 억울한 지 온몸으로 나는 정말 억울하오, 라고 주장하듯이 입을 열었다.
“저희는 그저 유키무라 선배가 알려 준대로 끓였을 뿐이라고요!”
“…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항의를 하는 노무라와 달리 소마는 체념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말 두 사람은 언제나 고생하는 치즈루에게 맛있는 차를 타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걸까. 지금까지의 경위를 떠올리며 소마는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작게 중얼거렸다.
“기합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기합으로 만들어지면 안 될 것을 만든 게 참 신기한데.”
“윽”
오키타의 사정없는 공격에 소마는 가슴팍을 부여잡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히는 것이 괴롭다. 점점 우울해져가는 소마가 안쓰러워보였기 때문일까, 치즈루는 어떻게든 그를 격려하기 위해 애써 웃어보았다.
“괘, 괜찮아! 소마 군!!!! 노무라 군! 정말로 괜찮아!”
“…저는,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요. 유키무라 선배.”
“정말 괜찮아, 소마 군! 첫술에 배부를 리가 없잖아. 나도 처음엔 엄청 고생했고……. 해보지 않은 일은 언제나 처음이 힘든 거야! 그렇게 나아져 가면 되는 거고! 그, 그래! 검술! 검술이랑 같은 거야! 검술도 처음엔 잘 안되다가 숙련되면 잘 할 수 있는거 잖아! 그러니까 그렇게 우울해하지 않아도 돼!”
“유키무라 선배….”
치즈루의 힘있는 설득에 소마와 노무라가 감동받은 얼굴로 치즈루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내심 안도하며 이걸로 이 자리가 어떻게든 마무리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그런 치즈루의 예상을 뒤엎어버리겠다는 듯이 오키타가 싱글벙글한 웃음을 띄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이게 처음이 아니잖아? 몇 번 연습하지 않았어? 차 타는 연습.”
“윽”
“아픈 곳을”
“정말! 오키타 씨!”
어떻게든 두 사람을(주로 소마)를 위로하겨고 애쓰던 시도가 오키타의 몇 마디에 무산이 되자 치즈루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높혔다. 하지만 오키타는 그저 하하 웃으며 “나는 틀린 말 안했어~”라는 태도를 취하며 그저 웃고 있을 뿐, 전혀 반성의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언제나의 일이지만 막상 이 태도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콘도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상대의 이야기는 잘 들으려 하지 않는 오키타의 태도에 야마자키와 치즈루는 한숨만을 내쉴 뿐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최근의 오키타는 치즈루가 이렇게 반박을 하면 정말 즐거운 듯 웃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착각이겠지?’
오키타에게 대놓고 묻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치즈루는 방금 전의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리곤 저는 정말 괜찮은가요, 라고 자신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소마와 오키타의 독설에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노무라를 어떻게든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주먹을 꽈악 쥐었다. 자신은 선배니까. 후배들을 격려하고 도와주는 것이 일
이다. 그렇게 자신은 선배다, 라고 몇 번이고 되내이며 입을 열었다.
“지, 지금은 무리지만…! 저녁 식사후에 내가 제대로 봐 줄테니까! 소마 군과 노무라 군이 맛있는 차를 탈 때까지 몇 번이건 함께 해줄 테니까!!”
“정말입니까! 유키무라 선배!”
“으, 응!”
“이런 저라도, 누군가를 죽이지 않는 차를 끓일 수 있을까요! 유키무라 선배!”
“소마 군도 노무라 군도 아무도 안 죽였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유키무라 선배…!”
치즈루의 필사적인 말에 감동받았기 때문일까, 어둠속에서 한줄기 빛을 본 사람 마냥 소마가 환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 표정을 보고 꼭 노무라와 소마에게 맛있는 차를 끓이게 해주겠다고 다짐하는 치즈루였다. 그렇게 마음속으로부터 맹세하고 있는 치즈루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야마자키는 열의에 불타고 있는 치즈루를 잠깐 흘깃 보더니 후, 하고 작게 웃더니, 곧 그 표정을 지우고선 오키타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오키타 씨. 순찰 보고는 끝나셨습니까?”
“하하하. 했을 거라 생각해?”
“…당장 보고 하고 오세요.”
뻔뻔스러울 정도로의 당당함에 야마자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 표정이 오키타가 원하던 표정이라는 것을 급히 깨닫고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그것이 재미없었기 때문일까. 오키타는 일부러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싫은데?”
“…오키타 씨.”
두 사람이 무언의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하자 이야기를 끝낸 소마와 노무라와 치즈루의 얼굴에 긴장이 맴돌았다. 상사가 갑자기 살기를 풍기며 신경전을 시작하면 긴장하지 않는 부하는 별로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이 세 사람은 오키타 처럼 능청스럽게 넘어갈 수 없는 신경을 갖고 있었기에 더욱 더 긴장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분명히 치즈루가 차를 끓이는 방법을 전수해준다고 한 시점에서 훈훈하게 끝났어야하는데 왜 이렇게 되버린걸까.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세 사람을 옆 눈으로 바라본 오키타는 무언가 생각났는지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나는 단지 조금만 더 치즈루 짱이랑 소마 군이랑 노무라 군으로 더 놀고 싶은 것뿐이라고?”
“어, 저기. 지금 내가 뭔가 잘못 들은 건가? 지금 오키타 씨가 우리들‘로’ 놀고 싶다고 한 것 같은데.”
“…….”
“……………….”
오키타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까, 노무라가 현실도피 발언을 입에 담으며 치즈루와 소마를 바라보았다. 지금 내가 뭔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정정해 주지 않을래? 라는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지만 치즈루도 소마도 야마자키도 아무런 정정도 할 수 없었다. 소마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 사람 같은 표정을 지었고, 야마자키는 먼 눈을 하고 있었고, 치즈루는 그저 어설프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것이 ‘우리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 네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다’라는 의미를 알아차린 노무라의 얼굴이 충격에 휩싸이자, 오키타는 재미있는 것을 관람하는 사람처럼 하하하, 하고 웃었다.
“노무라 군. 노무라 군은 좀 더 자신에게 자신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해. 네가 생각하는 그게 맞으니까.”
“알고 싶지 않았어……!”
머리를 쥐어짠 채 절규하는 노무라가 즐거웠기 때문일까, 오키타는 손에 턱을 괸 채 소리를 죽인 채 쿡쿡 웃고 있었다. 이쯤이면 노무라가 불쌍할 정도였다. 그런 노무라가 안타까웠기 때문일까, 야마자키는 크게 한숨을 쉬고선 단호한 목소리로 오키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오키타 씨. 이쯤 놀렸으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얼른 가세요. 당장”
“야마자키 군도 참 사람이 너무하다니까. 이렇게 재밌는 상황을 두고 재미도 없는 히지카타 씨에게 가라고 하다니 말야.”
“보고는 제대로 해야 하지 않습니까.”
“내가 안 오는 게 보고가 되지 않을까?”
“당신이란 사람은 대체….”
머리가 아파온다는 듯이 이마에 손을 대며 야마자키가 무겁게 한숨을 쉬었다. 야마자키는 이해를 할 수 없지만 오키타는 히지카타를 정말 싫어했다. 그래서 그를 곤란하게 하는 행동을 자주 취했고, 히지카타는 그 행동으로 인해 자주 골머리를 썩었었다. 오늘처럼 콘도가 없는 날에는 제때 순찰 보고를 하러 오지 않는다거나, 히지카타의 하이쿠집을 훔쳐 어딘가에 숨겨놓는 등 사사롭지만 당하면 빡치는 행동 위주로 히지카타를 괴롭히고 있었다. 물론 무슨 일이 생길때는 콘도에게 민폐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제깍제깍 보고를 하고 있기에, 히지카타의 머릿속에 오키타가 보고하러 오지 않으면 이번 순찰은 문제가 없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오키타는 1번대 조장이라는 위치에 이다. 그러니 다른 대사들의 본보기가 되어야하니 제깍제깍 보고하러오라고 히지카타가 계속 잔소리를 하고 있긴 하지만 오키타는 개선할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콘도가 둔소가 있을 때라던가 콘도가 나가기 전 오키타에게 당부를 하면 순찰이 끝나자마자 보고하러 가는 모양이었다. 왠만해선 외출할 때 당부해주건 하는데 오늘은 정말 바빴는지 콘도는 그냥 나가버린 모양이었다. 이 사람은 왜 계속 어린애같은 짓만 할까. 그저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오키타의 행동에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으면, 계속 상황을 지켜보던 치즈루가 조심조심 입을 열었다.
“그, 그래도 오키타 씨. 슬슬 가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뭐야. 치즈루 짱. 치즈루 짱도 야마자키군 편이야? 둘이 합심해서 나를 쫒아내려고 짰어?”
치즈루가 야마자키 쪽으로 붙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일까, 방금 전 까지의 웃음 기를 싹 지운 채 오키타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치즈루를 바라보았고, 그 시선을 받은 치즈루는 한 순간 뱀 앞에 서 있는 개구리의 심정을 맛보았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누구에게라도 좋지 않다. 이대로 보고를 미루면 나중에 곤란해지는 것은 오키타고, 야마자키도 이대로 오키타와 함께 있으면 말싸움이 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뒤에서 눈빛으로 응원을 보내는 후배들을 생각하며, 치즈루는 용기를 짜내어 입을 열었다.
“그, 그게 아니고요! 이대로라면 오키타 씨가 또 혼날 테니까…!”
“……….”
“그, 그리고 히지카타 씨도 오키타 씨를 기다리고 계실 테니까...!”
“……하아”
오키타가 한숨을 내뱉기까지 잠시 짧은 침묵이 흘렀다. 분명히 짧은 침묵이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치즈루는 그 침묵을 내심 길다고 느꼈다. 귓가에 쿵쾅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는 오키타의 한숨소리로 어느 정도 지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심장소리가 귓가에 들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별로 그 사람이 나를 기다린다고 해도 상관없는데 말이지.”
“-부장님은 그리 한가하신 분이 아냐. 곤란하게 해드리는 건 정도 것 해라. 소지.”
“!!!!”
오키타가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크게 한숨을 쉬며 불평을 입에 담자, 이 자리에 없을 제 3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치즈루는 물론이고, 그녀와 가까이 있던 노무라와 소마도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거나 어깨를 움찔했다. 하지만 오키타와 야마자키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지 세 사람처럼 놀라지는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야마자키는 눈에 띄게 안도했고, 오키타는 체념했다는 표정을 지었다는 것이다.
“……하지메 군도 사람이 정말 나쁘네. 계속 숨어서 엿보고 있고 말야.”
“말에 어폐가 있군. 소지. 나는 숨지 않았어. 그저 말을 걸 적기를 찾고 있었던 것 뿐이야.”
“아 네네. 그러셔요. 그래서 왜 왔어? 하지메 군? 하지메 군도 바쁠텐데 말야.”
사이토가 자신을 데리러 왔다는 것을 눈치 챘음에도 불구하고 오키타는 최대한 시치미를 뗐다. 그 와중에 나는 정말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했지만 그게 사이토에게 통할 리 없다. 오키타의 의향을 싹 무시한 채 사이토는 여전히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용건만을 입에 담았다.
“부장님이 찾으신다. 같이 가줘야겠어.”
“아- 싫다. 히지카타 씨 하지메 군 쓰는거 비겁해-”
“전부 자업자득이지 않습니까.”
여기서 야마자키에게 하던 대로 가지 않겠다고 뻐팅길수도 있지만 그 방법을 취하면 나중에 귀찮아지는 것은 오키타 쪽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끝나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오키타는 어기적 어기적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대로 순순히 끌려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일까,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곧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눈을 빛냈다.
“소마 군. 노무라 군. 그 차….”
“필살!! 찻잔 뒤집기!!!!!”
오키타의 속셈을 눈치 챘는지 그가 말을 끝내기 전 야마자키가 마룻바닥을 쾅, 하고 쳤다. 예전에 시마바라에서 다다미를 날려서 공격하던 그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야마자키가 바닥을 내리친 반동으로 가만히 있던 찻잔은 중심을 잃더니 그대로 내용물을 흘리며 넘어지고 말았다.
지금 뭘 한 거지. 갑작스럽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야마자키의 행동에 치즈루와 소마와 노무라는 물론이고 사이토까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와중에,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오키타뿐이었다.
“-야마자키 군. 나는 야마자키 군 같이 눈치 빠른 녀석이 싫어.”
“칭찬 감사합니다. 오키타 씨. 가져가게 내버려 둘 것 같았습니까.”
“아아- 야마자키 군은 왜 내가 하려는 일에 초를 치는 걸까.”
승리자의 미소를 짓고 있는 야마자키가 짜증이 났는지 오키타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비꼬았지만 야마자키는 전혀 타격이 없다는 표정으로 오키타에게 반박했다.
“오히려 감사받아야하지 않나요. 저 차를 부장님에게 마시게 한다면 오키타 씨에게 신선조 부장 암살 의혹이 씌일텐데요?”
“아아…이젠 놀랍지도 않아. 마음은 아프지만.”
끝날만하면 계속되는 자신들의 차에 대한 악평에 슬슬 마음이 꺾였는지 노무라가 우는 소리를 냈다.
“아, 아니야. 포기하면 안돼. 노무라! 우리 유키무라 선배에게 제대로 배우기로 했잖아! 그 누구도 죽게 만들지 않는 차를!”
“그래도, 그래도 이쯤되면 누군가가 독살당하면 우리들이 문답무용으로 범인으로 몰릴 것 같잖아! 우리들은 진짜 평범하게 끓인 건데!”
“괜찮을 거야, 노무라! 유키무라 선배가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줄테니까! 유키무라 선배를 믿자!”
“소마!!!! 유키무라 선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 상황이 사이토를 놀리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이토가 당혹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상황을 아무것도 모르는 3자가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혼란의 장이라는 것을 깨달은 치즈루는 간결하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했고, 사이토는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그만 웃고 얼른 움직여라. 소지.”
그리고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는 생각을 포기했는지 배를 감싸 쥐고 웃고 있는 오키타를 재촉했다. 무언으로 계속 웃고 있는 자신을 계속 내려다보고 있는 사이토의 시선이 슬슬 거북스러운지 오키타는 크게 한숨을 쉬고 ‘알았어 알았어’라며 항복 의사를 표명했다.
“그럼 나는 이만. 치즈루 짱. 나중에 보자. 소마 군과 노무라 군은 나중에 그 차 좀 끓여주고.”
“……안 끓일 겁니다.”
“그래요 그래요! 우리들은 유키무라 선배의 가르침으로 새로 태어날거니까!”
“………….”
후배들의 과도한 기대 때문일까, 치즈루의 얼굴이 점점 새빨갛게 익어갔다. 신뢰해주는 것은 고맙긴 하지만 이렇게 까지 강렬하게 신뢰되니 몸둘 바를 모르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사이토에게 반쯤 끌려가는 듯이 히지카타의 방으로 가는 오키타를 보며 조금씩 진정하고 있으면, 오키타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지친다는 표정으로 노무라가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말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나 오키타 씨 좀 불편해….”
“해선 안 되는 말이라고 알면서 왜 굳이 입에 담는데.”
“그러는 소마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데. 솔직히 말해봐.”
“…일단 너랑 같은 의견이긴 해.”
“거봐.”
죄악감을 가득 담은 채 소마가 대답하자 노무라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역시 입대한지 일주일도 안 되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아니. 들어온 시기와는 관계없을 거라 본다만.”
“!!”
야마자키가 대화에 끼어들 거라 생각도 못했기 때문일까. 소마와 노무라가 놀란 얼굴로 급히 야마자키를 돌아보았다. 일단 상사의 뒷담을 하는 거라고 자각하고 있었기에 옆에 있던 치즈루에게도 잘 안 들리게 할 정도로 최대한 작게 작게 이야기했는데 이게 그의 귀에 들어갈지 몰랐다. 식은땀을 흘리며 죄인이 된 심정을 한 채 두 사람이 야마자키의 말을 기다리고 있으면, 야마자키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 정도는 뒷담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다음부터는 주의해줬음 해.”
“네, 넷!!”
다행히 생각했던 것처럼 불호령이라던가 처벌이 내려지지 않자 두 사람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실은 두 사람 다 신선조에 들어올 때 엄청나게 빡빡한 규율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한 것처럼 그리 빡빡한 규율이 아니어서 내심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간부들에게 들킬 때 마다 비웃음을 당하거나 어처구니 없다는 시선을 받건 했다. 물론 지금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선조를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라는 듯 한 시선을 받으며 잠시 어설프게 웃던 소마는 다시 자세를 바로 잡고선 야마자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 야마자키 씨. 유키무라 선배. 오키타 씨는 어떻게 대해야할까요. 이대로라면 오키타씨에게 실례되는 행동도 할 것 같아서….”
착실한 소마답게 이 이후에 오키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혼자서 고민해봤자 답은 나오지 않는다 생각했는지 두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다. 분명히 자신보다 그와 함께 한 세월이 긴 두 사람이라면 분명히 답을 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서 한 부탁이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어렵다는 표정뿐이었다.
“으으으음…. 요령…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뭐, 평소에 뭘 생각하시는 지 알 수 없는 분이니까. 하지만 어렵게 생각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무리한 요구는 죄송합니다, 저한테는 무리에요. 라고 하면 될 것 같고. 뭐, 한 소리는 듣겠지만.”
어째서일까. 야마자키의 대답에 치즈루의 머릿속의 오키타가 갑자기 ‘그 말은 맞지만 야마자키 군에게 들으니 짜증이 나네’라는 말이 연상되었다. 그가 여기에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야마자키가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말을 이어갔다.
“저 사람에 대해서 너무 깊이 생각해선 안 돼. 그냥 흘려버려…라기엔 무리가 있지만 너희들을 놀린 땐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 그러면 조금은 머리가 안 아플거야.”
“아프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는 거군요…. 감사합니다. 공부가 되요.”
“어라, 이거 공부였어?”
또 다시 이게 뭐냐는 듯 한 얼굴로 노무라가 옆에서 무어라 딴지를 걸어 보았지만 소마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더 오키타 씨에게 당할 것 같은데 말이죠.”
이 이상 이야기에 따라가기 지쳤는지 노무라는 치즈루가 있는 쪽으로 와서 한숨을 쉬었다. 치즈루도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채 그저 웃을 뿐이ᄋᅠᆻ다.
“…유키무라 선배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 나?”
“네. 어떻게 해야 오키타 씨와 잘 해나갈 수 있을까요.”
야마자키의 의견만 들었다 생각했는지 소마가 치즈루를 돌아보며 물었다. 자신에게 질문이 돌아올 것이라 생각지도 못해서 일까. 치즈루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생각에 잠겼다.
어려운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소마처럼 ‘이렇게 대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였을까. 치즈루는 얼굴의 표정이 이상할 정도로 생각하다가, 역시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미안. 나는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아.”
“아, 아뇨.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해야하는데….”
“그, 그게 아니라…. 타인과 어떻게 해 나갈지는 그 사람마다 틀리다고, 생각해.”
“네?”
“소마 군은 소마 군 나름대로 오키타 씨와 해내가면 된다고 생각해. 물론 남의 의견을 참고하는 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답은 아닐 테니까.”
애초에 소마와 치즈루는 입장이 너무 틀렸다. 치즈루는 나찰의 존재를 알고 있고, 코우도를 찾기 위해 신선조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지 소마처럼 정식의 대사가 아니다. 그런 자신의 입장을 참고해봤자 소마에게 좋을 것이 없을 것이다. 그 생각으로 조언을 하자, 소마는 무언가 크게 깨달은 사람 같은 표정으로 치즈루의 말을 반복했다.
“…나는, 나 나름대로.”
“확실히 유키무라 군의 말대로야. 이런 것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소마 군은 내가 하는 방식으로 저 사람을 대할 순 없잖아?”
“…네.”
소마의 성격으로는 오키타가 무리난제를 밀어붙여도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그에게 야마자키가 하는 식으로 오키타를 대하라니,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할 것이다.
“…뭐, 그 사람을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니 말야.”
야마자키의 말에 치즈루는 마음속으로 긍정했다.
오키타 소지라는 사람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적어도 치즈루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고, 조금은 이해했다고 생각한 순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점이 생겨난다.
예를 들어, 산난이 오치미즈를 마신 그 날처럼. 그 사람은 치즈루에게 계속 선을 그었다. 입으로도 계속 말하듯이 이 선을 넘으면 베어버릴 거야. 라고 무언으로 말하건 했다. 하지만 그 날, 치즈루가 알던 오키타라면 치즈루에게 이 앞은 넘어오지 말라고 위협했을 것이다. 혹은 자신이 산난에게 죽어가도 도와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무서운 일이 생기면 소리를 질러서 도움을 청해라’라고 했다. 그 말이 없었다면 치즈루는 아마 산난에게 목이 졸려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왜 그때 자신에게 그 말을 해준 걸까.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두려워서 묻지 못했다. 여전히 치즈루에게 있어서 오키타는 종잡을 수 없는 존재였지만 그를 전부 이해하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가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원하지 않는데다 치즈루는 타인을 완전히 이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야마자키 씨. 유키무라 선배. 답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공부가 되었어요.”
“도움이 되었다면 오히려 다행이야. 솔직히 도움 안되는 말만 한 것 같고.”
“아니요, 오히려 이야기를 들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맞아요. 게다가 야마자키 씨와 오래 대화를 했다는 게 가장 수확인 것 같고요!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나랑?”
의미를 알 수 없다는 듯이 야마자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간부들이라면 모를까, 자신과 이야기해야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인사는 이미 끝냈고 안면도 익혔다. 그리고 그들에게 특별한 용건은 없었다. 잠시 입을 닫고 생각해보았지만 역시 그들이 자신과 이야기 할 이유는 없다. 그런 야마자키에게 대답을 주듯이 소마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유키무라 선배가 자주 이야기해주셔서요. 게다가 다른 대사들에게 듣기로는 두 분은 의학 쪽으로는 사제 같다고 하셨기에. 어떤 분이신지 궁금했습니다.”
“에”
“엇”
그 한마디에 치즈루와 야마자키의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확실히 치즈루도 자신이 야마자키를 언급하는 일은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대사들도 그만큼 많이 이야기해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두 사람이 관심을 가질 정도로 많이 이야기를 한 걸까. 그렇게 자각하니 치즈루의 얼굴에 열리 급속도로 올랐다. 그 열을 식히기 위해 양손을 볼로 가져가댔지만 손에도 열이 오르는 것 같아 역효과가 났다고 생각했다.
“근데 막상 말을 걸기 힘들어서…. 용건도 없이 말 거는 것도 그랬고.”
“게다가 내가 감찰반이었기에 말을 걸기 힘들었던 것도 있었겠지?”
“아 맞다. 보통 감찰반은 다들 피하지.”
야마자키가 쓴 웃음을 지으며 덧붙이자 두 사람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한 내용이 나왔다는 듯이 눈을 껌뻑거리며 야마자키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야마자키에게 당황을 줬기 때문일까. 야마자키의 얼굴이 살짝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뭐 우리는 꺼림 직한 짓은 안했으니까요! 괜찮아!”
“감찰반 보다는 분위기가 ‘나에게 다가오지 말라’여서…. 그래서 섣불리 말을 걸지 못했습니다. 일도 방해할 것 같았고.”
“…….”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야마자키가 입을 다물었다. 지금 저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에 치즈루는 후후후, 하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확실히 야마자키의 첫 인상은 무섭다. 무표정인데다가 감정의 기복도 잘 보이지 않는다. 감찰반으로서는 좋은 자세지만, 야마자키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저 사람은 다가가기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치즈루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케다야 사건이 일어난 그 날 밤, 그 때 야마자키를 만나고, 그에 대해서 알게 되고 그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았다면 치즈루는 그와 빨리 친해지는 것은 힘들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막상 대화해보니 어땠어?”
“유키무라 군.”
쓸데없는 것을 묻지 말아달라는 의미를 담아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야마자키였지만, 치즈루딴에선 야마자키가 이대로 오해받는 것이 싫어 물은 것이었다. 지금 후배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의 인식이 바뀐 것도 말이다. 그렇게 확신하고 있는 치즈루의 질문에 두 사람은 네, 하고 망설임없이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역시 좀 그랬지만…. 그래도 오늘 대화를 나누어보고 존경할만한 분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역시 유키무라 선배의 선배세요!”
“아니, 나는 유키무라 군의 선배가 아니라”
“나는 처음에 사이토 씨처럼 그 무엇에도 동요하지 않는 분이라 생각했긴 한데 지금이 오히려 더 좋달까! 다가가기도 좋고! 아, 물론 야마자키 씨가 멋지지 않다는 거 아니고요! 고고한 느낌에서 좀 친근감이 생겼다고 해야할까!”
“………….”
정말 어떻게 반응해야하는 걸까.
그런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는 야마자키였지만, 두사람은 이미 야마자키를 존경하는 선배의 선배로 인식해버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야마자키는 그걸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ᄋᅠᆻ다.
애초에 전제부터가 잘못되어있다. 야마자키의 본직은 어디까지나 감찰반이고, 치즈루는 그냥 시동이다. 직함으로 봐선 야마자키가 치즈루의 선배가 될 수는 없는데, 왜 이 두사람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까지 야마자키와 치즈루를 그렇게 엮어버리는 걸까. 단순히 같이 의학을 연구해서라는 이유라고 그렇게 불리기에는 야마자키는 납득할 수 없었다.
일단 집안이 동양학이었기에 다른 대사들을 치료하는 일이 많았고, 치즈루가 난방학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어서 업무의 일환으로 그냥 토론을 몇 번 한 것 뿐인데, 왜 사제 이야기가 나오고 선배 이야기가 나오는 걸까. 이대로는 안된다. 정정해야한다는 일념으로 야마자키가 고개를 든 순간, 다음에 날아온 질문에 야마자키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쵸, 유키무라 선배? 야마자키 씨 정말 멋지죠!”
“……뭘 묻는 거야 노무라 군.”
“아, 으응.”
“??????”
이상한 이야기를 묻지 말라며 야마자키가 급히 제지에 들어갔지만, 치즈루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긍정했다.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긍정한 탓일까. 야마자키는 당황한 얼굴로 치즈루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치즈루는 자신의 말에 무슨 이상한 점이 있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야마자키 씨?”
“…아무것도 아냐.”
뒤이어 소마와 노무라도 알 수 없다는 듯이 야마자키를 바라보자 야마자키는 생각을 관두었다. 여기서 이 화제에 계속 이야기를 하면 제 무덤을 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뭣보다 치즈루에게 별 생각이 없다면 이 이야기는 여기서 관두는 것이 옳다. 하지만 복잡미묘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지 야마자키는 계속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야마자키 씨. 주방 문제로 여기 오셨다고 하지 않으셨던가요……?”
“……아.”
치즈루의 말에 야마자키는 그제서야 자신이 이곳으로 온 목적을 깨달았는지 야마자키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오키타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한 순간 자신이 왜 치즈루를 찾은 것인지, 부엌의 원인을 알았다면 바로 이노우에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린 자신이 한심했는지 야마자키는 자괴감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전부 오키타 탓이다. 그 사람이 가장 문제다. -라고, 모든 문제를 오키타의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걸 치즈루는 둘째 치고 신입인 노무라와 소마 앞에서 상사를 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목구멍까지 올라온 오키타에 대한 불만과 욕을 어떻게든 다시 목구멍 속으로 넘겼다. 정말 힘들어 보이는 야마자키가 안쓰러웠기 때문일까, 치즈루는 괜찮다는 듯이 두 주먹을 꽉 쥐고서는 필사적인 얼굴로 야마자키를 향해 입을 열었다.
“괘, 괜찮아요! 야마자키 씨! 잊어버릴 수도 있는거에요! 정신없었던 것은 사실이고!”
“마, 맞습니다! 그 누구라도 정신없는 상황에서는 잠깐 잊을 수 있는겁니다! 게다가 얼른 생각해 내셨으니 문제없습니다!”
“맞아요! 게다가 오키타씨 상대로는 누구나 그럴거에요! 그쵸! 유키무라 선배!”
“으...응.”
오키타의 험담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일까. 치즈루는 애매하게 웃으며 흘러넘기고 말았다. 확실히 오키타와 대화를 하면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이리저리 휘둘리고 만다. 그 히지카타마저 오키타에게 휘둘리는 경우도 많으니 말은 다한 샘이다. 그저 어설프게 웃고있는 치즈루를 보고, 괜찮다며 필사적으로 자신을 옹호해주는 소마와 노무라를 바라본 야마자키는 씁쓸하게 웃더니 후, 하고 한숨을 쉬고선 입을 열었다.
“…고마워. 다들.”
“별말씀을요!”
“맞아요. 정말 야마자키 씨는 잘못 없… 유키무라 선배?”
씁쓸하게 웃으며 야마자키가 일어서자, 치즈루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그녀도 야마자키를 따라 급히 일어났다. 야마자키는 둘째 치고 치즈루까지 찻잔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기 때문일까. 소마와 노무라가 의문을 띄우며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방금 전 떠오른 가설에 표정을 굳히며 조심조심 야마자키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 저, 야마자키 씨. 지금 막 생각 난건데, 그렇다면, 이노우에 씨는 지금.”
-혹시 주방의 그 냄새를 혼자서 수습하시고 계신 건가요.
치즈루가 굳이 거기까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뒷말을 예상했는지, 소마와 노무라의 표정도 함께 창백해졌다.
“이, 이노우에 씨.. 지금 주방에 계시죠? 지금 가도 늦지 않았겠죠???”
그 부엌을 난장판으로 만든 것은 소마와 노무라다. 그런데 그 뒤처리를 상사가, 그것도 이노우에가 하고 있다는 소식은 두 사람의 머릿속에 경종을 울리게 만들었다. 그런 두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치즈루도 얼른 도우러 가야 한다는 생각에 다급한 목소리를 내었다.
“우리가 그 난장판을 발견 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아직 괜찮다고 생각해. 게다가 내가 유키무라군을 찾은 건 도와달라고 하려던 이유도 있었고.. 청소를 시작한다고 해도 얼마 안됐을 거야.”
주방의 참상을 생각해 낸 야마자키는 한숨을 쉬었다. 분명히 주방은 깔끔했는데 왜 그런 냄새가 나는 걸까. 이노우에가 안되겠다며 다시 청소를 해보자고 다급하게 말하는 얼굴을 떠올리며 야마자키는 또 다시 허망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눈을 보고 지금부터 향할 전장이 생각보다 험난한 것이라 예측한 치즈루는 각오를 다진 얼굴로 고개를 끄떡였다.
“알겠습니다. 가죠, 야마자키 씨! 제가 얼마나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주방의 냄새를-”
“아, 아뇨! 유키무라 선배! 야마자키 씨! 두 분은 여기 계셔주세요!”
“소마 군?”
얼마 되지 않았다면 지금 가도 늦지 않는다. 결의를 다지고 전장이라 쓰고 주방이라고 읽는 곳으로 향하려는 찰나, 소마가 진지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막아섰다.
“저희만 가겠습니다. 선배. 유키무라 선배는 야마자키 씨와 마저 자신의 할 일을 해주세요!”
“뭐, 애초에 우리가 뿌린 씨앗이고 말이죠! 싫지만 자기가 싼 똥은 제대로 치우고 이노우에씨에게 제대로 혼날테니 이쪽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요!”
“그, 그치만….”
“너희 둘이, 청소 인가….”
“우와, 너무해 야마자키 씨! 불신의 눈으로 우릴 보고 있어!”
“너희들이 저지른 짓이 좀 커서 말이지.”
“역시 그렇죠....”
이번 사태의 원인이었기 때문일까, 야마자키가 불신의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처음에 그런 야마자키의 눈빛에 잠시 주춤한 소마와 노무라였지만, 곧 고개를 젓고선 야마자키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더더욱 저희들에게 실패를 만회할 기회를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필사적으로 외치며 소마가 야마자키에게 고개를 숙였다. 매사에 착실하고 진지하게 임하는 그에게 있어서 방금 전 자신들이 저지른 ‘신선조 둔소 주방 초토화 사건’은 용납 할 수 없는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니 지금 무슨 일이 있어도 주방을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겠다는 각오를 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소마를 말 없이 바라보던 야마자키는 그 눈에 못당한다고 생각했는지 후, 하고 웃고선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 그 정도 각오가 되어있다면 믿고 맡겨보지. 부탁한다. 두 사람 모두.”
“…! 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께요! ……근데 우리들에게 만회할 기회를 줘서 정말 감사하긴 한데.. 왜.. 엄청 중요한 임무에 가는 분위기가 된 거죠. 이거.”
“아하하하. 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방금 전 자신도 이 분위기에 휩쓸려 자각하지 못했지만, 이야기에 끼어들지 못하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촌극인건가, 하고 의문을 가질만한 광경이었다. 오키타가 보면 너희들 대체 뭐하는 거야? 나를 웃겨주려고? 라고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대놓고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없는 치즈루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어설프게 웃는 것뿐이었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일단 맡겨달라고 해서 나는 가지 않겠지만…. 그래도 일단 이 근방을 걸레질 하고 있을 테니 필요하면 불러줘. 바로 갈게.”
“네!! 역시 유키무라 선배! 의지가 되요!”
“그래도 저희 선에서 끝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자기가 한 일은 자신이 책임져야하는 법이니까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다녀올께요~”
“엇.”
일을 저지른 자신들 대신 이노우에게 고생하고 있을 거라 생각해서였을까, 소마와 노무라는 야마자키와 치즈루에게 꾸벅 인사하고서는 급히 주방을 향해 뛰어갔다. 그 기세가 너무 강했기 때문일까, 치즈루는 다급한 목소리로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두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
“처, 천천히 가!! 급하게 가다간 다쳐!”
복도에서 뛰는 것은 위험하다. 원래라면 두 사람 다 잘 알고 있는 사항이었지만 사항이 사항이라 저렇게 뛰는 것이겠지. 두 사람의 마음은 이해 할 수는 있다. 자신이 저지른 짓을 상사가 대신 뒤처리를 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웬만한 양심 없는 사람이 아니면 피가 말리는 감각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얼른 자신이 수습하러 가야한다는 생각에 서두르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렇다고 해서 저렇게 위험하게 복도를 달려도 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천천히 가! 두 사람!! 다치니까!”
“괜찮습니다! 주의하고 있어요!”
이미 모퉁이 너머로 사라진 두 사람에게 치즈루가 최대한 힘껏 큰소리로 외쳐보면, 아직은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는 반경에 있었는지 소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마의 대답에 그게 주의한다고 되는 게 아냐, 라고 야마자키가 중얼거렸지만 그 목소리가 그들에게 닿을리 만무했다. 하지만 치즈루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 말에 동의하며 다시 한 번 뛰지 말라고 하려는 순간, 뒤이어 들려오는 노무라의 말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아, 그래도 다치면 바로 유키무라 선배에게 갈께요! 일본 최고의 의사!”
“-나는 소동이라니까! 노무라 군!!!”
필사적으로 노무라의 반쯤 농담인 말에 반박하는 치즈루였지만, 이미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ᄁᆞ지 가버린 것인지, 아니면 그들도 말했는데 치즈루들에게 닿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왜 그렇게 되어 버린걸까. 분명히 자신은 소동이라고 했고, 히지카타와 콘도도 치즈루를 ‘소동직의 선배’라고 소개해 주었을 터. 그런데 왜 자신의 직업이 의술사로 바뀌어 있는 걸까. 치즈루의 의문이 얼굴로 나왔기 때문일까, 그 의문을 알아챈 야마자키는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는지 머슥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내 탓도 있는 것 같은데….”
“네?”
“저번에 갖고 온 그 의학서를 기억해? 그걸 같이 연구하고 있는 걸 본 대사들이 꽤 있는 모양이라 말야. 덕분에 우리 둘다 의술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해. 나도 내가 감찰반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러고 보니 저도 이토 씨에게 들은 적이 있었어요. 히지카타 씨의 소동인거냐, 아니면 신선조에 소속되어 있는 의사인거냐고.”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솔직하게 저는 히지카타 씨의 소동인데, 아버지에게 배운 지식으로 조금이나마 치료에 보탬을 하고 있다고 했어요.”
“그래. 좋은 대처라고 생각해. 거짓말은 안했으니까.”
현재 신선조는 눈에 보이지 않는 파벌싸움에 들어가 있었다. 콘도파와 이토 파. 대놓고 공적으로 싸우지는 않았지만 물 밑에서는 인재 빼돌리기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실제로 이토는 하라다와 나가쿠라를 빼돌리려고 한 전적이 있었다. 이토의 연회에 초대된 두 사람은 확실히 거절하고 왔다고 히지카타에게 보고했고, 거기에 치즈루는 안도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야마자키도 자신이 감찰반이라는 것을 굳이 신인대사들에게 말하지 않고 있었고, 최근엔 둔소에 들어오지 않고, 온다고 해도 대사들의 눈에 띄지 않게 물 밑에서 정보만을 모집하고 있다고 했다. 그 때문에선지 치즈루도 야마자키를 자주 볼 수 없었다.
“그나저나 예상 외 인걸…. 이토 씨가 유키무라 군을 후보에 넣을 줄은 몰랐어.”
“그, 그럴 리 없어요. 그냥 분에 맞지 않은 짓을 해서 신경 쓰인게 아닐까요...”
“아냐. 유키무라 군은 재능이 있어. 제대로 공부만 한다면 한 사람 몫은 할 걸. 마츠모토 선생님이 그러셨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너, 너무 평가해주시는 거 에요….”
살짝 빨개진 얼굴로 치즈루가 우물쭈물하자 야마자키는 살짝 웃었다. 그 미소에 치즈루의 얼굴은 점점 더 빨개져갔다. 그는 거짓말로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더 창피하다고 생각했다.
“너를 이런 일에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말야. 나도, 국장님과 부장님도.”
“…….”
“그리고…. 너에게 사과하고 싶은 것이 있어. 유키무라 군.”
“네?”
사과라니, 무엇을. 의문을 입에 담기 전에 먼저 야마자키가 치즈루에게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그 행동에 당황하기도 전에 야마자키는 먼저 자신의 행동의 이유를 입에 담았다.
“내가 할 일을 유키무라 군에게 떠넘겼어. 아무리 내가 임무로 바빴다고 해도…. 그렇게 떠넘기는 식으로 내 일을 맡겨서는 안 되었어. 미안해.”
무엇을, 이라고 치즈루는 되묻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치즈루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으니까.
-이것은 자신이 오키타의 방을 청소하는 일을 치즈루에게 말없이 떠넘기게 만든 것에 대한 사죄다.
마츠모토가 처음 신선조의 둔소에 왔을 때, 마츠모토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 그를 데려가 그에게 그의 병은 결핵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결핵. 폐병.
그것은 절대 나을 수 없는 불치병이라고 불리는 최악의 병이었다. 그 이야기를 우연히 들은 치즈루는 놀란 나머지 오키타에게 들킬 뻔했지만, 다행히 사이토와 야마자키덕분에 오키타에게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는 사람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은 치즈루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치즈루에게 있어서 오키타는 살짝 불편한 사람이다. 아니, ‘였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이 둔소에 처음 왔을 때는 물론, 지금도 툭하면 ‘베어버린다’라는 둥 심술궂은 말을 치즈루 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건 했다. 처음엔 계속 자신에게 그런말을 하는 그가 너무나도 무서웠다. 하지만 이 곳에서 오랫동안 지내다보니 그 말이 반쯤은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성가셔하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기에, 치즈루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그는 절대 자신을 도와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에게 있어서 자신은 신선조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성가신 존재니까. 그러니 위험에 처해도 굳이 구해주지 않고 알아서 사라줘서 고마워- 라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줄 인상이있었다.
그 날, 오키타에게 도움을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산난을 위해서 간부들이 말하던 ‘약’을 조사하려던 그 날 밤. 치즈루는 신선조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오치미즈.
그걸 마신 평범한 인간에게 강력한 힘을 주고, 치명상인 상처조차 낫게 하는 비약. 하지만 강한 힘에는 대가가 따르듯 이 약에도 커다란 부작용이 있었다. 햇빛을 괴롭다고 느끼게 되고, 피를 마시고 싶다는 갈증과 충동에 휩싸이게 된다. 언 듯 들으면 매력적인 약이지만, 이걸 마신 시점에서 미쳐버리게 된다는 미래를 피할 수 없었다. 이 약의 성능을 들었을 때, 치즈루는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치즈루를 절망시킨 것은 그 약의 연구에 자신이 그렇게 찾던 아버지인 유키무라 코우도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기억 속에서 그렇게 상냥했던 그가,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의학에 힘썼던 그가 신선조를 실험장으로 삼아 이 약을 연구하고 있었다는 진실에 치즈루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려준 산난은 그녀가 충격에 잠겨있을 시간조차 주지 않은 채 그녀의 눈 앞에서 그 약을 마셔버렸고, 제정신을 잃고 치즈루를 공격했다.
[ 만약 무서운걸 본다면 사양하지 말고 소리를 질러서 도움을 청하는 거야? ]
만약 오키타의 그 한마디가 없었다면 치즈루는 그대로 미쳐버린 산난에게 목 졸려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희미해져가는 의식속에서 그 한마디를 떠올린 치즈루가 그 말대로 목소리를 높혀 도움을 청하면, 오키타가 달려와 치즈루를 구해주었다. 살기위한 길을 제시해주고, 목숨을 구해주었다. 자신이 그동안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결과에 치즈루는 한동안 혼란스러워했지만, 머지않아 깨달았다. 이제 것 자신은 오키타의 한쪽면만 보고 그의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있었다는 것을. 여태껏 오키타에게 실례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 치즈루의 안에선 오키타는 ‘알 수 없는 사람’으로 인상이 바뀌었다. 좋은 사람이라고는 알고있지만, 여전히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던 데다 오키타도 치즈루가 자신에 대해 알려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 오키타에 대한 인상은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남아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지 그저 몇 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설마 오키타가 결핵에 걸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솔직히 지금도 믿어지지 않았다. 마츠모토가 오키타에게 병명을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치즈루는 충격과 동시에 참담하고 비참한 심정을 맛보았다. 왜 저 사람이 저런 병에 걸리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냐고 생각했다. 사이토에게 오키타는 자신들에게 맡기라는 말을 들었어도 치즈루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키타가 힘들어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아무리 불치병이라고 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터. 그 몰래 그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터. 그리고 야마자키와의 대화에 청결은 병의 천적이라는 것을 깨닫고선 예전보다 둔소를 깨끗이 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물론, 오키타의 방도 말이다.
오키타의 방을 청소한 계기는 단순했다. 오키타의 방을 몰래 청소하려고 하는 야마자키를 발견하고 같이 청소하게 된 것이다. 오키타의 병은 다른 대사들은 물론, 히지카타와 콘도도 모르는 극비였기에 이렇게 몰래 청소하고 있다고 했다. 그 때 치즈루도 돕겠다고 나서준 덕분에 시간이 있는 사람이 틈틈이 오키타가 없는 틈을 타서 오키타의 방을 청소하자는 결론을 내렸지만, 며칠 후 이토 파의 조사로 인해 나가있는 야마자키 대신 치즈루가 오키타의 방 청소를 하게 된 것이다. 지금 그가 한 말은 그것에 대한 사죄라는 것을 깨달은 치즈루는 정말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오히려 청소는 저에게 맡겨주셨음 해요! 저는 야마자키 씨처럼 대단한 일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기뻐요! 이쪽은 걱정 마시고 야마자키 씨는 일과 휴식에 힘써주세요!”
“……언제나 그 말에 의지해서 미안해.”
죄악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야마자키가 사과하자 치즈루가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치즈루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다. 오히려 자신도 야마자키처럼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역량을 알기에 그저 자신이 잘 하는 이 분야를 더 열심히 하자고 생각한 것 뿐이다. 당황하며 그렇게 야마자키에게 전하면 야마자키는 잠시 벙찐 표정을 짓더니, 곧 치즈루를 향해 몇 번이나 지어주었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언제나 고마워. 의지하고 있어.”
“별말씀을요. 더 힘 낼께요!”
“아, 아니. 너무 힘내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해. 유키무라군은 무리를 잘하니까.”
“무리 같은 건….”
본인은 무리한다는 자각이 없다. 하지만 야마자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은 모양이었는지 다시 한 번 ‘무리는 금물이야’라는 말을 듣자 치즈루는 점점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 야마자키는 무언가 더 하고 싶다는 말이 있는 듯했지만 그 말을 집어삼켰다.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다, 그녀의 최근 생활패턴을 보지 못했기에 본인이 괜찮다고 하면 더 이상 말하는 것도 그렇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떡였다. 물론, 납득하지 못한다는 표정이었지만 말이다.
“….”
“……………….”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야마자키도 치즈루도 무엇을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서로를 흘깃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다무는 일을 연속으로 그 와중 치즈루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야마자키 씨. 다 잘 되겠죠?”
무엇을? 이라고 야마자키는 되묻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것도 주어가 들어가면 여러모로 곤란한 질문이었다. 그녀가 묻는 것은 이토파와의 대립과, 오키타의 병세를 말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야마자키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라는 것이 정답이겠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버린 치즈루는 살짝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조용히 자신의 소원을 입에 담았다.
“…다, 잘됐으면 좋겠어요.”
이토파의 일도, 오키타의 병세도, 다 잘됐으면 좋겠어요. 라고.
하지만 그 소원은 며칠 가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날것이라고, 지금의 치즈루와 야마자키는 내심 예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