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으로, 보고를 마칩니다.”
시마다와 함께 모아온 정보를 전부 보고하며 야마자키가 고개를 숙였다. 사카모토 료마를 비롯한, 쵸수파의 낭사들의 움직임 같은 것을 시마다와 함께 나름대로 조사하고 분석한 내용이었다. 그 정보를 들은 히지카타가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보면 야마자키를 책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저 야마자키가 내놓은 보고를 듣고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걸 알기에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고했다. 야마자키. 시마다. ”
이 이상 그에게 무언가를 시킬 생각이 없는 것인지, 히지카타는 그 한마디만을 내뱉었다. 그러자 야마자키와 시마다는 짧게 대답을 하고 구석에 있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감찰반이라고 해도 간부들보다 지위가 낮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본 히지카타는 다른 간부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변경사항은 없다. 일이 생기면 그때그때 보고하도록. 알겠나?”
“네-”
“그럼 주 회의는 여기까지로 하고…. 다른 질문사항이나 건의사항 같은 것이 있으면 지금-”
“네-네- 저 있어요- 건의사항-.”
히지카타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오키타가 그의 말을 잘라버리고 방실거리며 손을 들었다. 그 미소가 불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히지카타와 야마자키의 표정이 급속도로 썩어 들어갔고, 다른 간부들은 ‘저게 또 무슨 일을 저지르려고’라는 듯이 질린 듯 한 표정만을 지어보았다.
“오오. 소지. 무슨 일이냐. 말해봐라.”
하지만 그 곳에서 유일하게 콘도만이 사람 좋은 미소를 띄웠다. 그동안 회의를 해도 지루해하기만 하던 오키타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하는 것이 기쁜 모양이었다. 그걸 알아차린 헤이스케가 콘도씨, 그거 아냐. 라고 옆에서 외치고 싶었지만 오키타가 무서워서 그저 소리 없는 아우성만을 외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헤이스케에게 시끄러워. 라고 입모양으로 말해준 오키타는 여전히 싱글벙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최근에 치즈루 짱이 너무 재미없는데 그냥 베어버리면 안될까요-?”
그 한마디에 그 자리가 얼어붙었다. 이 자식이 대체 지금 뭐라고 하는 걸까. 히지카타와 야마자키 뿐만이 아니라 다른 간부들도 얼굴에 그렇게 쓴 채로 오키타를 바라보았다. 왜 저런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베어버리겠다고 이 자리에서 건의하고 있는 걸까. 장난하지마. 라고 히지카타가 미간을 찌푸리며 호통을 치려는 것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콘도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소지. 네가 유키무라 군을 걱정하는 마음은 잘 알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걱정된다면 걱정된다고 솔직히 말하렴.”
“네- 콘도 씨-”
“아냐, 콘도 씨! 그거 아냐! 그거 아닐거야!! 그리고 이 녀석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생각 안하고 있을 거라고!!!!!”
“헤이스케. 시끄러워.”
-베어버린다?
어째서일까. 말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들려오는 이유는. 헤이스케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었는지 콘도와 오키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오키타를 바라보았다.
“뭐어…. 소유자가 이상한 말을 했긴 하지만 치즈루에 관해서라면 나도 할 말은 있어. 그 녀석 최근에 기운 없어 보이더라.”
“아아. 우리들 앞에서는 억지로 웃고는 있지만…. 혼자 있으면 바로 우울해지더라.”
“신팟 짱이 눈치 챌 정도다 이거…?”
“게다가 타케다 씨도 걱정하더라. 치즈루를.”
“그거 걱정이었어????”
“비아냥 아니었어???”
치즈루의 화제가 나오자 방금 전 까지 조용했던 회의장이 소란스러워졌다. 방금 전과 전혀 다른 분위기에 히지카타가 시끄럽다고 호통을 치려했지만, 거기에 콘도와 이노우에까지 합세해 버리는 바람에 히지카타는 호통도 치지 못하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화를 어떻게든 삼키며 가슴팍을 팍팍 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야마자키는 봐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오키타가 즐거워하는 것을. 역시 이 사람은 히지카타를 놀리기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 점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 그것을 발언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부글부글 속에서 무언가가 끓고 있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히지카타와 즐거워하는 오키타를 번갈아보며 야마자키는 내심 한숨을 쉬었다.
“그… 뭐시기냐. 역시 치즈루 짱이 그러는 것은 그 ‘오니’라는 녀석들 때문이라는 거지?”
“……아마도. 그들 외에는 생각하기 어려워.”
신파치의 말에 사이토가 조용히 동의했다. 신파치가 말하는 ‘오니’라는 것은 며칠 전 니죠 성에서 나타난 세 명의 남자들을 뜻하는 것이었다.
사츠마 번의 카자마 치카게.
똑같은 사츠마 번의 아마기리 큐조.
쵸수번의 시라누이 쿄.
처음에 그들의 목적은 무조건 쇼군이라고 생각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목적은 치즈루였다. 예상외의 목적에 놀랐고,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야마자키는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치즈루의 아버지인 유키무라 코우도는 이 나라에서 가장 오치미즈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신선조처럼 코우도를 노리고 치즈루를 납치하자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말하는 ‘오니’는 어쩌면 암호일지도 모르지.’
오니라는 것은 허구의 존재다. 나찰이 존재하는 마당에 오니가 없을 리가 없냐는 반박이 들어왔지만, 나찰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그들에게 붙인 이름이며, 그들은 약 때문에 상태가 이상해져버린 인간일 뿐이니 오니가 있을 리 없다. 라고 반박했었다. 그정도로 야마자키의 머리에서 오니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인식되고 있었다.
‘오니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 그러니 아마도 유키무라 군은 그의 암호를 알아듣고 저렇게 된 거라고 생각했지만....’
신선조에 해가 되는 일일지도 모르는 이상, 그 이야기를 상세하게 들어야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러기엔 치즈루의 상태가 너무나도 이상했다. 물론 자신의 가설은 치즈루에게 전했다. 하지만 치즈루는 전혀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자신의 가설이 틀렸다거나, 아니면 암호를 말했지만 치즈루가 몰랐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뭐, 그런 무서운 녀석에게 끌려갈 뻔했으니 기운이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어라, 신파치 씨. 잊었어? 우리도 그녀에게 똑같은 짓 했는데?”
오키타의 발언에 그 자리가 다시 얼어붙었다. 확실히 신선조도 자신들의 사정 때문에 치즈루를 이 곳에 감금 및 감시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치즈루는 둔소에서 도망친 나찰이 흡혈을 하는 장면을 똑똑히 목격했다. 덕분에 신선조는 처음에 그녀를 죽여야 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었지만, 결국 목숨은 살려주는 대신 그녀를 감금 및 감시상태로 만들었다. 지금은 그 당시보다 많이 자유로워진 편이지만, 그녀가 이 둔소에 왔을 때를 생각하면 그녀가 어떻게 이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었다. 이 둔소에서 나갈 수 없다. 언제 나갈지도 기약이 없는데다 살아서 나갈 수 있는 보장도 없다. 게다가 이 둔소의 모든 사람의 감시를 받아야하며,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색을 보이면 베인다. 그리고 그 말을 그녀는 틈만 나면 여러 사람들에게 듣고 있었다.
만약 야마자키가 그 기약 없는 상황에 계속 놓이게 된다면 일단 버틸 자신은 있었지만, 그녀처럼 웃으며 버틸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강한 사람이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야마자키는 내심 그녀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이케다 야 사건 때당시 야마자키는 그 생각을 다시 재확인했었다. 검과 인연이 별로 없었을 텐데, 그 공포를 이겨내고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해냈다.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딱딱하게 굳은 예전 일을 잠시 회상하고 있으면, 한 쪽에서 조용히 앉아있었던 사이토가 입을 열었다.
“그쯤 해둬라. 소지. 이미 지난 일이니.”
“어라어라, 하지메 군. 그런 매정한 말 할 줄 몰랐는데? 이미 지나간 일이니 상관없다는 거야?”
무언가 건수가 걸렸다는 듯이 오키타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런 오키타를 곁눈질로 바라본 사이토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한 점 동요 없이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그녀에게 심한 짓을 한 것은 사실이지 않나. 그리고 조금은 나아졌다 해도 현재도 진행되고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입장을 바꿀 수도 없지 않나. 나찰의 건도 있고, 오니의 건도 있다. 그녀를 내보내기엔 위험하다. 그건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나.”
“흐응.”
사이토의 반박에 오키타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전혀 흥미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보통이라면 네가 이야기를 꺼낸 주제에 이제 와서 무슨 태도냐고 화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그 누구도 오키타의 태도에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았다. 지적을 해도 지금처럼 한 귀로 흘려들을 뿐이다. 그것이 ‘오키타 소지’라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다들 어처구니없는 표정만을 지을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으, 으음…. 지금은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일단 그녀의 기운을 북돋아주는 것을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 다들.”
“네에- 콘도 씨.”
콘도의 말에 언제 풍파를 일으켰냐는 듯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 모습을 가증스럽다고 생각하며 야마자키가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사이에, 어느 샌가 회의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치즈루를 기운 차리게 할 수 있을까’라던가 ‘뭘 해야 치즈루가 좋아할까’로 바뀌어있었다.
“역시 시마바라지! 시마바라에서 파악하고 놀고! 맛있게 먹고 마시면 대부분의 걱정은 사라지니까!”
“모두가 신팟 짱처럼 단순하지 않다고?? …그래도, 거기서 맛있는 걸 먹자는 건 찬성이지만. 요리도 맛있고.”
“좋았어. 그럼 돈은 헤이스케가 내는 걸로 하고. 다 함께 시마바라로 가자!”
“왜 내가 내는 건데????”
신파치의 말에 바로 헤이스케가 반박하며 일어섰다. 방금 전까지 엄숙했던 분위기와는 정 반대의 분위기가 되자, 히지카타가 무언가를 말하고 싶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포기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니들 멋대로 해라.”
“이얏후! 헤이스케의 돈으로 시마바라다!!”
“잠깐, 신팟 짱, 그거 결정된 거 아니니까!!”
“아무튼 시마바라는 확정인거지? 좋아. 내가 치즈루 데리고 나올 테니까 오늘밤에라도 가자. 헤이스케의 돈으로.”
“그러니까 왜 내 돈이냐고-!”
성을 내는 헤이스케와 그것을 재밌다는 듯이 낄낄 웃으면서 그를 놀리는 신파치와 하라다를 보며 야마자키는 내심 안도했다. 어차피 자신이 나서봤자 이 일은 해결되지 못한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낫다. 이것이 야마자키의 솔직한 의견이었다. 저 세 명은 자신보다 치즈루와 친하니 저들에게 맡기면 문제 없을 것이다.
‘그녀를 미소 짓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더 잘하니까.’
그러니 이걸로 됐다. 자신은 나서지 않는 게 좋다. 어차피 히지카타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은 이상 자신이 나설 이유도, 필요성도 없다.
[ “…………아.” ]
그렇게 생각하며 야마자키는 애써 뇌리에 떠오르는 영상을 지웠다.
“흐응. 그게 과연 쉽게 되려나?”
시마바라의 돈을 누가 내느냐로 이것저것 소리를 지르고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며 오키타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오키타의 옆에 있던 야마자키만이 겨우 들을 수 있을 만큼의 목소리였기 때문일까. 다른 사람들은 그 목소리를 제대로 주워듣지 못한 채 세 사람에게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겨우 그 소리를 주워들은 야마자키가 그것의 진의를 물으려 했지만, 곧 히지카타의 호통이 빗발치는 바람에 야마자키는 그 말을 묻지 못한 채 그저 입을 다물 뿐이었다.
* * *
“어째서야….”
“그러게다….”
그리고 이틀 째 되는 날, 야마자키가 본 것은 초췌한 얼굴을 하고 있는 신파치와 헤이스케였다. 이 사람들은 자신이 할 일도 있을 텐데 왜 이렇게 널부러져 있는 것일까. 일 안하십니까. 라는 눈으로 쓰레기처럼 어딘가에 기대거나 누워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으면 옆에서 무기를 손질하고 있던 하라다가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니들, 방해야. 여기 있지 말고 손을 움직여! 같이 검 손질하자고 하지 않았냐?”
“그치만 사노-.”
“그치만이건 뭐건, 이건 치즈루의 문제잖아. 우리가 기운 풀어! 라고 해도 그렇게 훅 풀리겠냐고.”
“…사노 씨도 시마바라에 가면 치즈루가 기운 차릴 거라고 했으면서.”
“그렇다고 한 적 없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좀 기운을 차리지 않을까. 라고 했을 뿐이지.”
“하지만 치즈루 짱. 아직도 저 상태란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신파치가 턱을 괸 채 어느 한 곳을 바라보자, 야마자키도 따라서 신파치의 시선의 끝을 눈으로 쫒았다. 그리고 역시나, 그 시선의 끝에는 치즈루가 있었다. 뒤를 돌아보고 있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뒷모습에서 기운이 없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묵묵히 청소를 하던 그녀는 저 멀리서 소마와 노무라가 오자마자 만면의 미소를 띄웠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그렇게 몇 마디를 나누고, 두 사람은 할 일이 생각났는지 급히 치즈루의 곁을 떠났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치즈루는 정신을 차리려는 듯이 고개를 젓더니, 다시 청소를 재개했다. 방금 전 같은 쓸쓸함이 느껴지지 않는 뒷모습을 보며 하라다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자기를 신경 쓰는 걸 눈치 채고 평소에도 괜찮은 척 하기 시작한 것 같아. 저렇게 혼자가 되도 계속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계속 긴장하고 있고 말야.”
“저러다 쓰러질 것 같아서 걱정이라니까.”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해도 아무런 해결책도 안 될 것 같군요.”
“-그러게 말야. 정말 바보 같고 건방진 아이라니까.”
여기에 존재하지 않은 5명 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네 사람은 깜짝 놀란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우스웠기 때문일까. 키득키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지붕위에서 무언가가가 떨어져 내려왔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신파치와 헤이스케와 하라다가 기겁을 하자, 그 모습이 즐거웠는지 원흉은 하하하, 라고 세 사람을 비웃었다.
“너무 놀란거 아냐. 신파치 씨. 헤이스케. 사노 씨. 그 얼굴 걸작이었어.”
“소지! 니가 야마자키도 아니고 왜 지붕에서 툭하고 나타나! 놀랐잖아!”
“……….”
왜일까. 왜 자신이 신파치에게 악담을 들은 것 같을까.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신파치를 바라보자, 신파치가 말을 잘못했다, 라는 듯 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고, 헤이스케와 하라다가 그런 신파치를 시선으로 비난했다. 그 광경이 우스웠던 탓일까. 오키타가 키득키득 웃으며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 눈치 못 챘어? 정말? 나 네 사람이 여기 오기 전부터 있었는데?”
“지붕위에 올라가 있으면 누가 알아채!”
“그냥 수행이 부족한 게 아니고? 야마자키 군에게 닌자 수행이라도 받아보면?”
“…거기까지 하죠. 여러분.”
이러다가 쓸데없는 분쟁이 일어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 야마자키는 서둘러 헤이스케와 오키타의 사이를 중재했다. 이렇게 소란스러우면 치즈루에게 자신들이 보고 있었다는 것을 들키고 만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이 천아귀같은 남자는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내심 오키타를 경계하며 야마자키가 그 자리를 중재시키고 있으면, 살짝 뚱한 표정으로 하라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너는 대체 또 뭐가 불만인데?”
“제가요? 제가 무슨 불만이 있다고 하세요? 이상하시네.”
딱 봐도 나는 지금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라고 주장하는 듯한 오오라를 풍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키타는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거에요, 라며 뻔뻔하게 미소를 띄웠다.
“전 그냥 콘도 씨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계속 저 상태인 저 아이가 마음에 안들뿐인데.”
“그게 불만이 있다는 겁니다. 오키타 씨. 그래서, 뭐가 문제입니까?”
“야마자키군. 혹시 너는 배려가 없다라는 소리 자주 안들어?”
“오키타 씨 한정입니다.”
1초도 생각하지 않고 반박하는 야마자키를 정말 싫다는 듯이 노려보는 오키타였지만, 그런 시선 따위 따갑지도 가렵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야마자키가 오키타 씨, 라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얼른 말하라는 의미였다.
“아아-. 짜증나. 그냥 확 말하지 말까.”
“소지. 너 말야.”
“알았어요. 알았어.”
야마자키는 둘째쳐도 하라다까지 잔소리를 시작하면 귀찮아질 거라 판단했기 때문일까. 오키타가 귀찮다는 티를 팍팍 내며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순찰 끝나고 방으로 돌아가다가 회의 때의 이야기가 신경 쓰였는지 콘도 씨가 일부러 비싼 가게의 양갱을 사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었는데(이 부분을 유난히 강조했지만 그 누구도 태클을 걸지 않았다) 계속 저 상태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때 말야, 치즈루 짱에게 ‘그럴 거면 그 양갱, 반만 나눠달라’고 했거든?” “그걸 또 빼앗았냐!!!!!!”
“왜 그렇게 되는 건데요???”
“왜???”
“소우지, 나도 그런 짓은 안해!!! 그녀에게서 먹을 걸 빼앗다니!”
하지만 더 이상은 태클을 걸지 않을 수 없었는지 결국 헤이스케와 야마자키, 하라다, 신파치의 순으로 소리를 질러버렸다. 콘도가 그걸 그녀를 위해서 사온걸 알고 있음에도 그걸 굳이 빼앗아 먹다니. 해도 해도 너무한 수준 아닌가. 하지만 오키타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듯 한 얼굴로, 아니,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는 듯한 억울한 표정으로 반박을 시도했다.
“아니, 그 아이가 더 웃기지 않아? 콘도 씨가 준 걸 그대로 나에게 다 줘버렸다고? 콘도 씨가 기껏 자기를 위해서 사왔는데 그걸 나에게 홀랑 넘겼다고?”
“그러니까 그거 분명히 당신 탓일 겁니다. 오키타 씨. 내놓으라고 무언의 압박이라도 줬겠죠.”
목구멍 끝까지 올라오는 화를 꾸욱 억누르며 야마자키가 반론했다. 오키타가 콘도를 정말 존경하고 좋아한다는 것은 신선조대사라면 누구나 아는 사항이었다. 그런 그가 “헤에, 콘도 씨가 너를 위해 사온 과자라고? 내놔”라고 무언의 압박을 준다면 백이면 백 다들 헌상할 것이다. 거기서 주지 않는다면 나중에 어떤 보복이 날아올지 모르니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데 치즈루라고 두렵지 않을 리가 없지 않는가.
이야기를 들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오키타의 잘못뿐인데, 왜 치즈루가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하는 것일까. 네 사람이 한 마음이 되어 오키타를 바라보고 있으면, 오키타는 여전히 네 사람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왜 그런 표정이야? ‘전 괜찮으니 오키타씨에게 주세요’라고 한 치즈루 짱이 더 나쁘잖아?”
“내가 예상하는데, 너만 없었음 치즈루가 그거 다 먹었을 거다.”
하라다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떡였다. 오키타가 삥만 뜯지 않았어도 치즈루는 콘도의 호의를 받아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이 나쁜놈. 애한테 그러고 싶냐. 그 마음을 담아 다들 오키타를 노려보고 있으면, 오키타는 여전히 반성의 기색은 거녕 적반하장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는데, 치즈루 짱이 먼저 나에게 줬다고? 아까 전에도 말했잖아. ‘그럴 거면 그 양갱, 반만 나눠달라’고.”
그제서야 네 사람은 오키타가 처음에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그랬었던 것 같다. 대놓고 빼앗은 게 아니라, ‘안 먹을 거면 나줘’라는 뉘앙스로 오키타가 말 했다는 것을.
“아무튼 결국 뺏은 거잖아, 치즈루 껄!”
그렇다고 해서 오키타의 결백이 증명된 것은 아니다. 어투가 그렇다고 해도 ‘내놔. 그거 내놔’라는 오오라를 뿜으며 그렇게 말했다면 백이면 백 다 바쳤을 게 틀림 없을 테니까. 심지어 신파치도 그런 식으로 몰리면 내놓는 일이 몇 번은 있었다. 그런 수준인데 치즈루라고 바치지 않았겠는가. 어떻게든 오키타가 나쁜 쪽으로 몰고 가고 싶었는지 헤이스케가 버럭하며 소리를 지르자, 하라다는 지쳤다는 듯이 어거지로 헤이스케를 앉혔다.
“그만하자. 계속 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간 끝이 없겠다. 여기서 끝내자고. 이 이야기는.”
거기에 동의하지? 그렇게 말하는 하라다의 말에 동의하듯이 야마자키가 고개를 끄떡였다. 의외로 신파치도 거기에 동의한다는 듯이 입을 다 물었다. 계속 이 이야기를 하면 끝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탐지한 것이겠지. 두 사람이 동의하자 헤이스케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삼켰다. 여전히 얼굴에는 아직도 납득하지 못했는지 불만이라고 씌여 있었지만, 야마자키도 하라다도 신파치도 그것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은 채 오키타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오키타 씨가 말하고 싶은 바는 무엇입니까.”
여전히 무표정인 채로 야마자키가 물었다. 오키타 소우지라는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에는 언제나 평정을 가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이야기를 할 때 하고 싶은 말을 먼저 하지 않고 배배꼬아서 대화하는 사람들을 짜증나게 만드는 단점이 있다. 물론, 콘도 이사미라는 한 사람을 제외하면 말이다.
인내다. 인내다. 야마자키 스스무. 여기서 화를 내면 오키타만 더 재미있어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야마자키는 인내 있게 오키타의 말을 기다렸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콘도 씨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쥐어준 것도 다 그런 식으로 거절한다는 거. 어제 이노우에 씨가 억지로 쥐어주는 걸 봤는데 꽤 탐탁지 않아하더라-?”
의외로 오키타가 순순히 말하는 것을 보고 잠시 하라다와 헤이스케와 야마자키가 신파치가 움찔했지만, 곧 짐작 가는 바가 있는지 다들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라다의 경우에는 과일이었다. 그다지 신선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잘 익은 과일이었기에 사서 치즈루에게 선물해주었지만, 그녀는 배가 부르다며 거절했다.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하라다는 다음에는 더 좋은 것을 가져오겠다며 물러났다. 하지만 그 후에도 계속 먹을 것을 주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거나, 그 자리에서 같이 먹게 되는 일이 많았다.
‘먹는다고 해도… 유키무라군은 제대로 먹지 않고 사온 사람이 거의 다 먹었었지.”
예전에 야마자키가 신파치가 치즈루가 무언가를 같이 먹는 것을 우연히 목격했을 때, 치즈루는 대부분의 간식을 신파치에게 양보했었다. 신파치는 ‘괜찮아 괜찮아, 너를 위해 사온 거다’라고 계속해서 말했지만, 치즈루는 그저 식욕이 없다라며 기어코 거절했었다. 하라다도 헤이스케도 비슷한 일을 당했는지 으음, 하면서 복잡 미묘한 표정을 띄우고 있었다.
“그리고 다들 들어본 적 없어? ‘더 이상 저에게 이렇게 잘 대해주지 않으셔도 되요’라고.”
“……윽.”
짐작 가는 것이 있다는 듯이 네 사람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한번 씩은 들어본 이야기였으니까. 그럴 때마다 ‘그런 이야기 하지 마’ 라던가 ‘너무 신경 쓰지 마.’라는 둥 치즈루에게 말하고 있지만, 그녀는 그저 웃어보일 뿐, 알겠어요. 라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아아. 예전에는 재미있었는데 지금의 치즈루 짱은 너무 재미없어.”
“그녀는 당신의 장난감이 아니…….”
“-게다가 점점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단 말이지. 저거.”
오키타의 말에 살짝 울컥한 야마자키가 반론을 하려던 차, 오키타의 입에서 그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고, 어렴풋이 알아채고 있었던 사람도 있었기에 이 침묵이 생겨난 것이다.
“……과대해석 아닙니까?”
그리고 야마자키는, 어렴풋이 그렇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면서도 그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치즈루는 잠시 방황하고 있는 상태다. ‘오니’들의 납치 미수에, 자신들이 모르는 이야기들이 의문만 남기고 사라져서 혼란스러운 상태다. 혼자 시간을 갖고 고민하고 싶어도 아직 그녀는 야마자키를 포함한 다른 대사들에게 감시당하는 상태였기에 혼자만의 시간도 갖지 못한다. 다른 대사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런 그녀에게 미안함을 갖고 있기에 더더욱 잘 해주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그걸 알고 사양하는 것 뿐이다- 라고,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는데.
[ 자기 존재를 지우려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단 말이지. 저거 ]
그 말에 자신은 그저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버렸다. 제대로 자각하고 있는 사실에서 눈을 돌리다니, 감찰반 실격인 행동이다. 하지만, 믿을 수 없었다. 그녀가, 치즈루가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는 것을.
이케다야 사건 때는 어디까지나 다시 체감한 것과 다름없다. 야마자키가 처음으로 그녀를 처음으로 그렇게 인식한 것은 그녀가 이 둔소에 채제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였다. 그때 그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아무리 주위에서 여러 말을 들어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주위에게 조금씩 인정을 받고 지금의 위치에 발을 딛고 설 수 있었던 것이다. 존재를 지운다는 회피를 하려면 그때 했어야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 와서 그런 행동을 보이는 걸까. 무엇이 그녀를 방황하게 만든 것일까.
‘………아.’
어떻게 하면 치즈루를 기운 차리게 해줄 수 있을까, 라는 주제로 하라다와 헤이스케와 신파치가 토론하고 있을 때, 야마자키는 계속 마음에 걸렸던 장면을 다시 뇌리에 떠올렸다.
불안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치즈루의 모습이었다. 그건 니죠 성에서 그녀를 ‘오니’에게서부터 피신시키고 다시 돌아가려고 했었을 때였다. 치즈루는 무언가 말하고 싶어 했지만, 자신은 바쁘다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히지카타가 있는 곳으로 가버렸다.
‘…그게 원인은, 아니겠지.’
자신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저렇게 되다니. 그건 자의식 과장이다. 한 순간 떠오른 생각을 창피하다고 생각하며 부정했다. 치즈루는 강한 아이다. 단순히 불안할 때 곁에 있어주지 않았다고 이렇게 도망치려는 행동을 취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 정도로 몰려 있다면?’
그녀가 오니와 연관되어있다.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은 이 신선조에 없었다. 콘도도 히지카타도 치즈루의 결백을 믿고 있고, 야마자키도 자신 나름대로 조사해서 그녀의 결백이라는 결과를 찾아냈다.
그럼 어째서? 다시 한 번 몇 번이나 생각했던 의문을 떠올렸다.
‘지금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부장님과 다른 조장들이 그녀를 구하러 오기 전에 그들에게 무언가 들었다는 것…. 정도인가.’
그렇다면 지금의 행동도 납득이 된다. 하지만 추측만 할 수는 없는 일. 진실을 얻고 싶다면 자신이 움직이는 수 밖에 없다.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그것이 야마자키가 감찰반을 하며 얻은 교훈이자, 방식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렇게 움직일 뿐. 그렇게 생각하며 야마자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부장님이 오라는 시간이 되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오늘 하루 야마자키는 비번이다. 물론 히지카타의 호출따윈 없었다. 하지만 지금 바로 히지카타에게 간다고 하면 다들 이유를 물을 테고, 야마자키는 그것에 답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야마자키는 그 이유를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으아…. 야마자키군 언제 쉬는거야, 대체.”
“나중에 쉬는 날 한번 한잔하러가자고.”
“물론 야마자키가 내는거지만 말야.”
“신파치, 너 진짜….”
어떻게든 자신이 내지 않기 위해서 추하게 발버둥치는 신파치의 태도에 하라다가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친구가 이런 사람이라고는 알고 있지만 도가 지나칠 때마다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하라다에게 왜, 뭐. 라고 뻔뻔하게 말하는 신파치를 한번 슥 바라본 야마자키는 고개를 끄떡이며 입을 열었다.
“시간이 되면, 말이죠. 일단 다녀오겠습니다.”
“-뭐, 열심히 해보면?”
오늘도 일이라고 하는 야마자키에게 동정하는 두 사람과 달리 오키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우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알아채고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여전히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것인지, 야마자키에게는 알 방도가 없었지만 굳이 그것에 대한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오키타가 저러는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니 그냥 넘기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야마자키는 네 사람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후 부장실로 향했다.
***
* *
“………….”
눈에 보이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광경. 들려오는 것은 사람들이 입과 행동에서 내는 소리가 섞여 만들어진 소움. 평소라면 인연이 없을 왁자지껄한 시장의 광경을 보며 치즈루는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왜 자신이 여기 있는거지. 라고 생각하면서.
진정하고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방금 전 까지 자신은 청소를 하고 있었을 텐데, 갑자기 야마자키가 오더니 잠깐 자신을 도와달라며 치즈루에게 빠져나갈 틈도 주지 않은 채 이 곳, 시장으로 데러와 버렸다.
‘유키무라군. 시간 있나? 있는 거겠지? 그럼 나랑 잠시 어디 좀 가 줬으면 해.’
대답도 듣지 않았다. 평소와 달리 강압적이었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치즈루는 불안감을 느꼈다. 야마자키가 자신에게 해를 끼칠 리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혹시 이번 일로 치즈루에게 의혹이 씌워졌다 해도 성실한 그는 먼저 자신에게 이야기를 하고, 간부에게 알려서 회의를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해나갈 것이다. 그러니 먼저 자신에게 해를 끼칠리 없다. 그렇게 믿고는 있지만, 아무 말 없이 치즈루와 나란히 서서 걷고 있자니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유키무라 군.”
그런 치즈루의 감정을 읽었기 때문일까, 옆에서 걷고 있던 야마자키가 입을 열었다.
“강압적으로 데려와서 미안해. ……실은 의학에 대해서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말야. 네 지식을 빌리고 싶어서 데려왔어.”
“엇…. 난방쪽의 지식이라면 처음 말했듯이 저도 많이는 모르는데…”
“알고 있어. 처음에 말했듯이 아는 범위에서만 알려주는 것 만으로도 충분해.”
“알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지식을 알려달라고 해도 구체적으로 뭘 하면 좋을지 현재로써는 알 수 없다. 야마자키가 치즈루에게 이런 방면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이번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에 치즈루는 당황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바깥으로 데리고 나온 것은 처음이다. 내심 긴장을 하며 야마자키의 말을 기다리고 있으면, 야마자키는 어려운 것은 아니야, 라고 운을 띄우며 말을 이어갔다.
“
아는 사람에게 책을 받으려고 했지만 그가 바쁘다고 해서 어느 가게의 점주에게 맡겨놨다고 하더군. 일단 그 곳에서 책을 받은 후 내용을 확인해 줬으면 해.”
“책이라면, 어떤?”
“오란드의 책을 번역한 의학서다. 물론 우리들도 읽을 수 있도록 일본어로 써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외국어가 섞여 있다고 해서 말야. 그걸 한번 봐줬으면 해.”
치즈루의 부친인 유키무라 코우도는 난방의다. 난방의란 정확히 서양-, 정확히는 오란드(네덜란드)와 교류가 있고, 그들의 의학을 배워온 사람을 뜻한다. 즉, 코우도는 네덜란드어의 서적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었고, 그의 일을 도왔던 치즈루도 아주 조금은 네덜란드 어가 가능했다. 본인은 아주 간단한 것 밖에 모른다고는 하지만, 까만건 외국어요, 하얀 건 종이니라라는 것 밖에 알 수 없었던 야마자키에게 있어서 그녀는 정말 대단한 사람으로 보였다. 회화는 아예 못하지만, 코우도가 어떤 물건을 가져오라고 부탁할 때가 많았기 때문에 치즈루는 어떤 물건이 어떤 명칭으로 불리고 읽히는 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편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간부들의 표정이 살짝 존경의 색이 물들었었다는 사실은 치즈루밖에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전부 해석할 수 있을 자신이…없어요.”
그동안 야마자키가 질문했던 것들도 완벽히 해석한 적이 없다. 야마자키는 언제나 치즈루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해주고 있지만, 치즈루는 자신이 정말 도움이 되는 것인지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 불안이 얼굴에 드러난 것도 모른 채 치즈루가 땅바닥으로 시선을 떨어트리면, 걱정 말라는 듯이 야마자키가 후, 하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건 알고 있어. 하지만 유키무라 군은 코우도 씨처럼 오란드 어를 제대로 배운 것도 아니야. 겉핥기로 이정도 할 수 있으면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 그런 유키무라 군을 존경하고, 언제나 감사하고 있어.”
“야마자키 씨.”
“자신에게 자신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유키무라 군이 있어줘서 다행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으니까.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유키무라 군은 도움이 되고 있어. 그것 하나 만큼은 알아줬으면 좋겠어.”
상냥한 목소리에 치즈루는 무의식적으로 야마자키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시야에 목소리랑 똑같이 상냥한 눈을 한 야마자키의 모습이 들어와서-, 치즈루는 살짝 울고 싶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다시 떨구었다.
* *
“엄…. 그러니까 아마도 이 단어는………. 그러니까 붕…대? 붕대에요!”
“붕대에 관련된 건가. 맥락을 읽어보면 붕대 감는 법이겠군.”
야마자키의 말에 치즈루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야마자키가 가게주인에게 받아온 것은 엄밀히 말하면 ‘책’이 아니라, 종이뭉치에 가까웠다. 내용을 대강 휘갈려 쓴 종이뭉치를 빠져나가지 않게 적당히 묶여있는 종이뭉치의 외관은 물론이고, 그 양에 치즈루는 자기도 모르게 정신이 한 순간 날려버리고 말았다. 평범한 서적의 10배정도 되는 그것은 존재만으로도 압박을 받을 만 했으니까. 그것을 갖고 온 점주도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야마자키에게 정말 이것이 맞느냐. 이걸로 되느냐. 라고 아름다운 얼굴을 당혹으로 물들이며 몇 번이건 물었다. 야마자키도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지 점주의 말에 당황한 기색을 꾹꾹 누르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할까. 살짝 먼 눈으로 바라보던 야마자키는 밥 시간도 되었으니 일단 밥부터 먹자, 라는 결론을 지었다. 여기까지 옮겨준 점주에게는 사례는 했지만 그래도 요리찻집에 왔으니 음식은 먹고 가야한다라는 것이 야마자키의 의견이었다. 처음에는 야마자키의 ‘내가 사줄 테니 밥을 먹자’라는 의견에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라고 손사례를 쳤지만 확실히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는 것도 실례라고 생각했는지 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소바 두 개를 시킨 후,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음식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침묵이 무겁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치즈루가 종이뭉치를 봐도 되냐고 물어왔다. 야마자키도 밥을 기다리는 도중에 보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는지 서로 자료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정독한 결과, 왜 한권이었을 의학서가 번역하니 왜 이렇게 양이 많아졌는지 이해하고 말았다.
이것은 해석본이라고 하기 보다는 낙서장에 가깝다.
일단 위에다 오란드 어로 문장을 쓰고, 밑에 해석의 문장을 달아놓았다. 그렇게 해도 내용물이 두 배로 늘어나게 되는 것은 당연한데, 거기다 중간중간 배가 고프다라는 둥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낙서 같은 것도 눈에 띄었다. 이러니까 분량이 늘어나는 거지…. 라며 먼 눈으로 보고 있으면, 야마자키 쪽에서 미안하다라고 사죄의 말이 흘러나왔다. 내용을 보면 볼수록 얼굴을 쓸어내리거나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걸 보아하니 야마자키도 이 사태를 예상하지 못한 듯 했다.
처음에는 바로 둔소로 가져가는 걸까 했지만, 답지 않게 반쯤 해탈한 야마자키가 현실을 외면하는 행동을 취하더니,
[“밥 먹고 가지.”]
라는 한마디를 내뱉고 자리에 앉아버렸다. 본인 말로는 여기까지 옮겨줬는데 식사라도 하지 않으면 실례라고 하고 있지만, 살짝 둔한 치즈루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는 동요하고 있었다. 확실히 아무것도 주문하고 가지 않는 것도 실례다. 야마자키의 행동이 도피로 보였지만 그것을 굳이 지적하지 않은 채 야마자키의 앞에 앉았다. 소바를 주문한 것은 좋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어색했기 때문일까. 치즈루가 기다리면서 잠시 종이를 보여달라고 했고, 야마자키도 내용이 신경 쓰였는지 둘은 대화도 잊은 채 자료를 읽기 시작했다. 오란드 어를 안다고 해도 조금밖에 알지 못하는 치즈루에게 있어서 내용은 어려웠지만, 오란드 어의 기초조차 모르는 야마자키에게 있어서는 다른 세계의 언어였다. 그래서 야마자키는 계속해서 치즈루에게 제대로 해석되지 않은 단어를 물었고, 치즈루는 아는 지식을 짜내서 그것을 맞추었다. 마치 퀴즈게임 같은 대화에 두 사람은 눈치 채지 못하고 야마자키는 치즈루가 알려준 문장이나 단어로 의미 없는 번역을 돌리며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가끔 그 주제에 흥미가 생기면 그것에 대해서 토론을 하건 했다. 그런 두 사람을 학구열이 굉장한 사제구나, 라고 생각하며 주위가 훈훈하게 바라보는 것도 모른 채, 두 사람은 필사적으로 문제 맞추기를 하고 있었다.
“소바 두 개 나왔습니다!”
“!!!”
그렇게 주변이 보기에 강렬하고 열렬하고 훈훈한 토론을 하고 있으면, 어느새 자신들의 앞에 온 점원이 생글생글한 얼굴로 소바 두 개를 내왔다. 그제서야 지금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를 자각한 치즈루는 갑자기 창피해진 탓일까, 새빨개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죄, 죄송합니다! 시끄러웠죠!”
“후후, 아니에요. 두 분의 학구열에 감동받았는걸요. 그리고 가게는 언제나 떠들썩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맛있게 드시고 더 이야기하고 가세요!”
후후후, 하며 두 사람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응원을 하던 점원은 주방에서 카요, 라고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더 주문하고 싶으신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주방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어색하게 웃으며 바라보던 치즈루는 잘먹겠습니다, 라고 두손 모아 말하는 야마자키를 따라 자신도 잘먹겠습니다 라고 말한 뒤 식사를 시작했다.
소바는 놀랄 정도로 맛있었다. 심지어 간도 쿄 식이 아닌 에도 식이다. 오랜만에 먹게 된 고향의 맛에 살짝 감동하고 있으면, 앞에서 묵묵히 우물거리던 야마자키가 입을 열었다.
“이 요리찻집은 원래 에도에 있었던 가게였다만…. 한동안 주인장의 딸 부부가 쿄에 머물며 가게를 운영한다더군. 이 서…. 서적…. 서적….같은 것도 반의 반은 에도에서 갖고 와줬어.”
“그, 그랬군요…. 무거웠을 텐데 감사하네요…….”
종이뭉치들을 서적이라고 하기에는 양심이 찔렸는지 야마자키가 서적이라는 단어에서 말을 더듬었다. 그 마음은 이해가 가요. 야마자키 씨. 그렇게 생각하며 옆에서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종이뭉치를 흘깃 바라보며 치즈루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자, 야마자키는 후하고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반의 반 정도지만 말이지. 일단 부탁은 하긴 했지만 나도 초면에 가까운 상대에게 이만한 양을 가져다달라는 무리한 부탁은 하지 않아. ‘일’에 관련된다면 모를까.”
“초면…. 인가요.”
“아아, 방금 전의 점원의 아버지가 내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교류하는 사람과 지인이라서 말이지. 원래라면 내가 가지러가는 것이 도리지만 이 곳을 떠날 수 없어서 말야. 무리와 실례를 무릅쓰고 부탁했지”
“………….”
“그런데 결과가 ‘저거’라니. 본 순간 좀…. 현기증이 났다.”
여전히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종이 뭉치를 흘깃 바라보며 야마자키는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머리가 아파오는지 몇 번 한숨을 쉬고 머리를 짚는 야마자키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치즈루는 다시 종이뭉치에 시선을 주었다.
“이 책이 그렇게 중요한 책인가요?”
“아직은 몰라. 읽어봐야 알 수 있으니까.”
“모르시는건가요.”
“일단 ‘오란드의 의술서’라는 점에 가치를 두고 구했거든. 나는 동양학쪽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으니 말이지. 그래서 다른 의료법을 보고 싶었어.”
“다른 의료법…….”
“애매하다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나 자신도 그걸 잘 인지하고 있고. 하지만 한 우물만 파기에 내 실력은 부족하고, 시간도 별로 없어. 그러니까 쓸 수 있는 무기를 몇가지 더 상비해두는 거지. 그게 내 전투방식이고 말야.”
먹 투성이의 종이를 만지작거리며 야마자키는 무표정으로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눈 앞의 종이가 머리가 아 팠는지 크게 한숨을 쉬고 소바에 딸려온 생강을 우물거렸다.
‘그러고 보니 야마자키씨의 이런 이야기를 듣는 건 처음이네.’
새삼 생각해보면 치즈루는 야마자키 자신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다른 간부처럼 언제나 함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가끔 그가 임무에서 돌아왔을 때 몇 마디 나누거나 의료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기에 모르는 것이 많은건 당연했다. 그래서일까, 그가 자신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기쁘면서도, 간지러운 감각. 그 감각이 치즈루의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 퍼져가는 것 같았다.
치즈루에게 있어서 야마자키는 먼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이렇게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해준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다. 마치, 그와 가까워진 것 같아서.
-그러면 한 발자국 더 물러나야지.
하지만 기뻐하지 말라는 듯이 머릿속에서 경고음과 함께 경고의 문장이 떠올랐다.
그 말이 맞다. 선을 넘으면 안 된다. 에도에 있을 때처럼 언제나. 웃으며 상대방에게 파고들지 않으며, 자신에게도 파고들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그렇게 다시 한 번 다짐하고 있으면 부엌으로 사라졌던 점원이 미소를 지으며 당고 두 접시를 두 사람 앞에 내려놓았다.
“우리는 소바만 시켰는데?”
소바만 나올 줄 알았던 치즈루의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이 야마자키가 물었다. 그들의 반응이 이해가 간다는 듯이 점원이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열심히 하고 있는 사제에게 특별히, 라고 남편이 가져다 달라고 해서요.”
그러니 사양 말고 드셔주세요. 그 한마디를 남기고 점원은 웃으며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생각지도 못한 행운에 치즈루가 눈만 껌뻑이고 있으면, 야마자키가 그렇군. 이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치즈루의 앞에 접시 하나를 밀어주었다.
“아, 저. 야마자키 씨. 야마자키 씨가 두 개 다 드셔주세요.”
“하나는 네 몫이야. 사양하지 말고.”
“그치만…. 이런 걸 받을 이유가 없어서.”
가게를 소란스럽게 해서 폐를 끼쳤다면 모를까, 그 반대를 한 기억이 없다. 그래서 눈 앞의 호의에 당황해하는 치즈루를 똑바로 바라보며 야마자키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간부들이 갖고 온 간식들도 그런 식으로 사양했었지.”
야마자키의 지적에 치즈루는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했다.
선을 넘어가지 말자고 결심한 그날부터 치즈루는 간부들의 호의를 거절하기 시작했다. 그들과 더욱더 정을 쌓으면 ‘그 순간’을 들킬 것만 같아서. 나중에 올 그 순간을 버티기 힘들 것 같아서. 그 순간을 본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려워서 계속 옛날로 돌아가자고 생각하며 치즈루는 그렇게 행동해왔다.
선을 만든 것은, 다른 사람과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평범한 생애를 보내면 그렇게 아플 일도 없다. 울 일도 없었다. 물론 마음이 졸이는 일은 많겠지만 상처받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런데 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욕심이 났다. 선을 넘어가고 싶다는 욕심이. 실제로 니죠 성에서 자각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어떻게 살자고 결심했는지 조차 잊고 있었다.
즐거워서.
누군가와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왁자지껄하게 있는 것이 즐거워서.
물론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두려움은 즐거움으로, 그들을 좋아하니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 어디선가 에서는 이렇게 생각해버린 것이다.
이 사람들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라고.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한 자신이 창피했고, 용서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선을 더욱 굳건히 하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이유를 물으니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다른 사람들에게처럼 ‘기분 탓 이에요’ 라고 말하면 좋겠지만 그 말을 간파하지 못할 야마자키가 아니었다. 그는 감찰반. 정보를 얻기 위해서 사람의 거짓말을 가려내는 것에 특화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서투른 거짓말 따위 금방 알아차리겠지.
‘………아니, 다른 분들도 눈치 채신 모양이지만.’
치즈루는 거짓말에 서툴다. 물론 치즈루의 성격 때문인 탓도 있었지만 사람과 많이 대화를 하지 않은 탓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개선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것에 대해서 주로 오키타에게 놀림을 받건 했지만 꼭 고쳐야 한다는 압박감은 없었다. 지금도 조금 더 거짓말이 능숙했다면 다른 분들게 걱정을 끼쳐드리지는 않았을텐데, 라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치즈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당고를 내려다보며 침묵을 지키고 있었고, 야마자키는 그런 치즈루를 무언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만의 침묵이 흘렀을까,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야마자키 쪽이었다.
“일단 먹지.”
“……네?”
분명히 다른 간부들처럼 요즘 너 왜 그러는 거야,라던가 무슨 고민이 있어?라는 물음이 돌아올줄 알았다. 그래서일까, 치즈루가 예상한 질문과 전혀 다른 말을 입에 담는 야마자키의 행동에 치즈루는 그저 눈만 껌뻑일 뿐, 얼빠진 대답만 되돌려주었다. 그런 그녀의 태도를 예상하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별 생각이 없었는지 아무 흔들림 없이 다시 한 번 말해주었다.
“일단 먹어둬. 둔소와 달리 여기는 가게니까.”
“…아.”
그렇다. 간부들이 같이 먹자며 가져오는 것과 달리 이것은 가게에서 내놓은 것이다. 만약 거절한다면 그 사람들의 성의를 무시하게 되는 것은 물론, 이 가게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돌지도 모른다. 물론, 마지막은 치즈루의 망상일 뿐이지만. 최악의 가정을 하며 얼굴이 새파래졌다 납득했다를 반복하고 있는 치즈루의 얼굴에서 모든 것을 읽었기 때문일까. 또 쓸데없는 걸 생각하고 있는 건가,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야마자키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뭘 생각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걸 안 먹는다고 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기껏 주신거다. 감사히 먹는 편이 좋다고 봐. 나는.”
“아, 네.”
읽히고 있었던 걸까. 치즈루는 창피함에 달아오른 얼굴을 감싸 쥐며 야마자키의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 얼굴의 열이 가실 즈음, 치즈루는 살짝 어두운 얼굴로 방금 전까지 의문을 품고 있었던 것을 입에 담았다.
“야마자키 씨는”
“?”
“야마자키 씨는, 왜 묻지 않으세요?”
-제가 이러는 이유를.
마지막 말 까지 말할 자신이 없었는지 치즈루는 거기서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무덤을 파는 행위라고는 생각하고 있다. 왜 그러냐고 걱정해주는 다른 사람에게는 그런 거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그냥 기분 탓이라고 생각해요, 라고 변명을 한 주제에 그냥 넘어가 준 사람에게는 왜 그러냐고 묻는다. 어째서 물은 걸까. 묻고 싶다고 생각한 걸까. 자신의 모순을 이해할 수 없어 혼란스러워하는 치즈루를 응시하며 야마자키는 입을 열었다.
“나는 네게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어.”
“…………….”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왜 우리에게…. 아니, 그 사람들에게 그런 태도를 취하게 되었는지, 그 계기도, 고민도 몰라. 짐작은 간다만…. 그 짐작도 어디까지나 내 짐작일 뿐 확신할 수는 없어. 이 생각이 맞는지 아닌지. 그걸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너뿐이니까 말야.”
“………제가, 나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세요?”
처음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치즈루는 신선조에서 감시받는 입장이다. 그리고 산난이 오치미즈를 마시는 사건 때문에 오치미즈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야마자키의 입장에서는 더욱 더 감시해야할 입장이겠지. 그렇기 때문에 야마자키가 묻지 않는다는 것이 치즈루에게는 의외였다.
“확실히 지금의 너는 이것저것 알아버린 상태라 미묘한 상황에 있지. 하지만 부장님과 국장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고, 다른 간부들도 지금의 상황을 바꾸지 말자는 의견을 내셨다. 물론 다들 경계는 하시겠지만…. 그래도 네가 이제 와서 무언가를 할 거라고는 생각하진 않아. 그리고 너는 산난 씨를 돕기 위해서 위험한 다리를 건너려고 했었지.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네가 신선조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시고 계셔. -물론, 나는 감찰반으로써 완전히 신용하지는 않지만 그건 이해해주길 바래.”
[ 나는 감찰반의 입장 상 너를 신용하지 않아. ]
그 말을 들은 치즈루는 예전에 그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감찰반은 사람을 의심하는 직업이다. 그것이 설령 동료라도, 선배라도, 후배라도, 친한 사람이더라도. 언젠가 변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을 의심하고 누군가가 그 조직에 해가 되는 행동을 취하기 전에 먼저 손을 쓴다. 그것이 감찰반이다. 그런 그가 그렇게 말해주었다.
마지막에는 그 때와 비슷한 말을 했지만, 지금은 그때와 의미가 틀리다. 완전히 신용하지는 않지만, 완전히 신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의미에 치즈루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런 치즈루의 상태를 눈치 채지 못한 채 야마자키는 말을 이어나갔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기다릴 생각이야. 물론 네 성격에 쉽게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나는 유키무라 군 같은 사람이 무언가 남들에게 말하기 어려운 고민을 안고 있을 때, 그걸 근거 없이 해결해 주겠다며 말해보라는 것을 강요하라는 것은 상처를 헤집는 것이나 같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유키무라 군의 고민을 상담할 수 있을 만큼의 그릇을 가진 사람도 아니야. 알다시피 나는 말 주변도 잘 없고 네가 원하는 말이 무엇인지 고를 자신도 없는 서투른 남자니까.”
“…………….”
“내가 유키무라 군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들어주는 것 뿐이야. 네가 껴안고 있는 것이 감당이 안될 때, 어딘가에 뱉어내고 싶을 때 그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것 뿐이야. 괜찮다면 기억해줘.”
야마자키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그가 해준 말이 말이 너무 따뜻해서 일까. 치즈루는 살짝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쁘다. 하지만 동시에 죄악감이 들었다. 이런 자신이 이런 신뢰를 받아도 되는 걸까. 하고. 그런 불안함을 감추려는 듯이 치즈루는 얼른 눈 앞의 당고하나를 입에 집어넣었다. 입안에 퍼지는 팥의 달콤함이 조금이나마 불안감을 녹여주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치즈루는 힘없이 웃었다.
“………맛있어요. 야마자키 씨!”
“그 말은 나중에 가게를 나설 때 점원에게 해줘. 기뻐할거다.”
그런 그녀의 불안을 굳이 들춰내지 않으려는 듯이, 야마자키는 같이 딸려온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무의식적으로 살짝 웃어주었다.
마치 안심하라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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