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4. 20. 01:31

야마자키랑치즈루인가. 그 짐은 뭐지?”


식사를 마친 후에 기다리는 것은 눈을 돌리고 싶은 현실이었다. 이 딱 봐도 무거워 보이고 양만 많은 쓸데없는 것이 많은 종이더미를 둔소로 가져가는 일에서 눈을 돌리고 싶어 하는 기색이 상당한 야마자키와 함께 치즈루는 종이를 나눠들어 가게를 나섰다. 멀리서 봐도 눈에 띄는지 창피하다는 마음을 꾹꾹 눌러 참은 채 야마자키와 함께 둔소로 돌아가고 있으면, 마침 순찰을 거의 끝낸 3번대와 사이토와 마주쳤다. 그쪽도 당연히 야마자키와 치즈루가 분담해서 들고 있는 짐이 신경 쓰였는지 다들 시선을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종이 뭉치로 향했다.


야마자키. 책을 가지러간다고 하지 않았나?”


순찰을 하러가기 직전, 사이토는 야마자키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기 위해 그를 찾아갔다. 사이토가 부탁한 것을 들은 야마자키는 맡겨놓은 의학서적을 받고서 해도 되겠습니까라는 대답을 했고, 사이토는 정말 급한 용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사이토는 조금이지만 야마자키의 일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순찰을 하다가 만나면 책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치즈루가 함께 하고 있는데다 두 사람의 손에는 먹 투성이의 종이뭉치가 가득 들려있었다. 평소에 감정의 동요가 없는 사이토라도 이 광경엔 한 순간은 동요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게 의학서입니다.” 

이게????”


자기가 말했지만 어처구니없고 양심에 찔렸기 때문일까. 보기 드물게 야마자키가 사이토의 시선을 피하며 어렵게 입을 열자, 경악의 목소리를 낸 것은 사이토가 이끌고 있는 3번대의 대사들이었다. 물론 사이토도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두 사람이 들고 있는 종이 뭉치를 번갈아 바라보고선, 곧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요즘 의학서는 그렇게 나오는군. 알았다. 기억해두지.”

일단 의학의 길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말하는데,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이게 이상한 거 에요.”


납득하는 사이토에게 아니라는 듯이 정색하며 야마자키가 딱 잘라 말했다. 그 기백에 눌린 탓일까, 사이토는 답지 않게 눈을 돌리며 ………미안하군.’이라며 사죄를 입에 담았다. 대강 사정을 설명하고 나면, 3 번대의 조원들은 뭐야. 그거. 라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물론, 거기에 대해서 야마자키와 치즈루는 묵비권을 행사할 수 밖에 없었다. 두 사람도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그나저나 들고 다니기에는 눈에 좀 띄는 것 같군. 의학서는.”

. 그래서 둔소에 두고 다시 나갈 생각이었습니다. 애초에 평범한 두께의 책이라 생각해서 들고 다닐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확실히. 이런 걸 예상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사이토의 말에 동의하듯이 치즈루도, 3번대 대사들도 비슷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였다. 보통 저런 것을 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니 야마자키에게는 잘못이 없다. 야마자키 본인도 그걸 알고 있지만 이 종이뭉치를 보게 되면 머리가 아파오게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 그거, 저희들이 가져다 드릴까요?”


그렇게 제안한 것은 야마자키와 치즈루와 안면이 있는 대사였다. 훈련을 할 때 자주 다치는 바람에 치즈루나 야마자키에게 치료를 많이 받았기 때문일까, 이럴때만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심정으로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내뱉어버렸다.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자 그 대사는 한순간 움츠렸지만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다른 대사들도 자기가 들고 가겠다며 한 명 두 명씩 자원하기 시작했다.


맞아요, 그렇다면 저희가 갖고 가죠! 어차피 순찰도 곧 끝나고!”

언제나 유키무라에게는 언제나 신세 지고 있으니까요. , 물론 야마자키 씨한테도 말이죠. 곤란해보이니까 제가 갖고 갈께요!”


이들이 자기가 들고 가겠다고 자원하는 이유는 어느 의미로 치즈루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최근에 갑자기 우울해 보이는데다가 도와주려고 해도 제가 할 수 있어요라면서 모든 잡무를 혼자서 하기 시작하는 치즈루를 그들 나름대로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어느 의미로 기회였다. 여기서 자신들이 짐을 옮겨준다면 그녀의 도움이 되는 일이며, 잘하면 그녀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라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는 대사들도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착각이며, 바램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바램을 산산조각낸 것은 묵묵히 입을 닫고있던 사이토였다.


너희들. 순찰은 돌아갈 때 까지가 일이라는 것을 잊은 건가.”

만약 이걸 들고 가다가 전투를 하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 그거야. 어느 한쪽에다가 두고.”

그럴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러다가 한 장이라도 잃어버리게 된다면? 이 종이뭉치는 보기에는 쓰레기같지만

저기요.”


사이토의 막말에 야마자키는 한마디 하고 싶다는 얼굴로 그 한마디를 내뱉었지만 야마자키가 한마디를 한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사이토는 말을 이어갔다.


내용물은 두 사람에게 중요한 의학서다. 제대로 묶여있지 않는 이걸 한 장이라도 잃어버린다면 곤란해지는 것은 이 야마자키와 유키무라다. 그럴 경우에는 어떻게 책임을 질 거지? 두 발로 뛰어서 잃어버린 종이를 찾아올 건가?”


사이토의 냉정한 말에 대사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이 맞다. 게다가 잃어버리는 걸로 끝나면 다행이다. 흙이나 피가 묻어서 못쓰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큰 참사다. 겉보기에는 정말 하찮아 보이는 것이더라도 내용물은 외국의 의학서이니 그 가치는 자신들이 생각하기에는 엄청난 것이겠지. 최악의 가정을 생각하며 긴장하고 있는 대사들을 둘러본 치즈루는 어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 괜찮아요! 저희들이 갖고 가면 되고…….”

“-아뇨. 그래도 혹시 괜찮으시다면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

 

살짝 침울한 공기를 깨부순 것은 의외로 야마자키였다. 웬만해서 자신의 일을 남에게 맡기지 않으려는 그가 자신의 일을 남에게 부탁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파장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잠시 야마자키가 일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했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3번대 대사들은 멍한 표정을 짓더니, 소리 없이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다들 왜 그런 표정인지 전혀 이해가 가질 않는데.”


사이토는 물론이고 치즈루도 놀라고 있는 것을 본 야마자키는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취급을 받을 이유를 알 수 없다. 자신의 그동안의 행동을 돌이켜보았지만 전혀 찔리는 것이 없었다. 그런 야마자키를 치즈루도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가장 먼저 진정한 사이토가 입을 열었다.


정말 괜찮나? 한 사람에게 몰아주면 어려운 일은 아니긴 하지만, 종이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는데?”

원래부터 이 앞 가게에서 끈을 사다 묶을 생각이었습니다. 칭칭 감으면 종이 몇장만을 잃어버리는 것은 걱정 없겠죠.”

그런가. 그럼 그 짐은 우리 3번대가 책임지고 맡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사이토가 살짝 웃으며 답하자 야마자키도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끈도 우리가 사서 묶고 갈테니 너희들은 볼일을 보러 가도록.”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나도 너에게 부탁한 몸이니까 말야. 네가 부탁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할 테니 필요하면 불러줘. 물론, 유키무라도.”

. 저요?”


갑자기 이야기의 화살이 자신에게 올 줄 몰랐기 때문일까. 치즈루가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어떻게 보면 바보 같은 행동 같았지만 그 누구도 그걸 신경 쓰지 않은 채 사이토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 그래. 유키무라도 최근에 무리하는 것 같으니까. 경내 청소라던가 그런거 가끔 우리에게 떠넘겨도 좋고?”

또 미키 씨 언저리에게 무슨 말 들으면 말하고!”

멍청아. 너에게 말해서 뭐 어쩌라고. 오히려 시비 걸리고 있을 때 부장님이 부르신다고 하고 빼오는 게 안전하지!”

그건 그래!”


유쾌한 웃음소리가 3번대 내에서 울려 퍼졌다. 그 때문일까, 처음에는 어색한 웃음만을 짓고 있던 치즈루도 그들의 감정에 동화되었기 때문일까, 후후후,하고 작게 웃었다.


그럼 저희는 마저 용무를 마치고 오겠습니다. ,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우리 3번대가 책임지고 맡을 테니 안심해도 된다. 그리고 야마자키. ‘그 건. 잘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자. 유키무라.”

, ! 여러분. 잘 부탁드립니다!”


야마자키의 재촉에 치즈루가 급히 사이토와 3번대의 대사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야마자키는 그녀가 인사를 하는 기다렸다가 함께 인파속으로 걸어갔다. 그 둘의 모습을 뒷모습을 바라보던 사이토는 지금 막 노끈을 사왔다는 대사의 말을 듣고 슬슬 움직이자며 노끈을 묶도록 시켰다.


역시 산책해서인가. 유키무라 녀석. 얼굴색 조금 좋아진 것 같지 않아?”

. 다행인일이지.”

그런데 사이토 조장. ‘그 건이라는 건 대체 뭔가요?”

………….”


그동안 그들 나름대로 치즈루를 걱정했었는지 종이 뭉치를 꽉 묶으며 대사들이 안심했다는 듯이 한마디씩 하는 모습을 아무말없이 바라보던 사이토에게 대사 한 명이 물었다. 하지만 사이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대답하기 꺼려졌는지. 사이토는 그것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은 채, 준비가 다 되었다는 걸 확인하고선 순찰을 재개하자는 말만 할 뿐이었었다.

 


* * *

 


단순히 저녁에 쓸 재료를 사와 달라는 이야기였다만?”

……?” 


야마자키와 사이토의 대화에 의문을 가진 것은 3번 대의 대원 뿐 만이 아니었다. 치즈루도 그 건에 대해서 신경 쓰였다. 하지만 야마자키와 사이토가 굳이 그 건이라고 말 한데다가 자신이 주제넘게 묻기도 무서웠다. 하지만 신경쓰인다는 태도는 무의식적에 드러났는지 야마자키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던 치즈루도 야마자키의 끈질긴 물음에 결국 실토하고 말았다. 치즈루의 물음에 처음에 잠시 어안이 벙벙한 듯 눈을 껌뻑이던 야마자키였지만 그녀의 물음에 있는 그대로 대답해주었다.


오늘 저녁 담당이 사이토씨라는 건 알고 있나?”

.” 

원래는 미소시루를 중심으로 이것저것 만들 생각이었는데 점심 담당이었던 대원이 재료를 다 쓴 모양이었는지 새로 주문을 넣어달라고 하셨어. 되도록 두부를 많이 부탁한다. 라면서.”

, 그렇군요. 저는 그 건이라고 하길래 아무에게 말하기 어려운 일인줄 알고.”

일하는 도중 대사들 앞에서 저녁 재료를, 특히 두부를 많이 사다달라는 말은 꺼내기가 그렇지.”


야마자키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사이토를 변호하자 치즈루는 그렇군요, 라며 고개를 끄떡였다.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는 것만으로 착각을 한 것이 부끄러워서였을까. 치즈루는 살짝 빨개진 얼굴을 감싸며 그렇군요. 라고 고개를 끄떡였다. 그런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바라본 야마자키는 뭐, 상관없나.라고 결론지었는지 묵묵히 시장을 향해 걸었다.


일단 사올 목록은 감자와 쌀, 두부랑 무 정도야.”

그래도 신선조분들 전체가 먹을 양이니 꽤 될 것 같은데. 저희 두 사람이 다 사갈 수 있을까요?” 

물론 두 사람이 신선조 전체가 먹을 양을 사가는 것은 무리지. 그러니까 우리가 할 일은 두 가지. 재료를 선별하고, 배달시킨다. 그거면 돼.”


치즈루의 옆에서 야마자키가 손가락을 꼽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시장골목이라 많이 붐빌 텐데 굳이 자신의 보폭에 맞추어 걸어주는 야마자키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치즈루였지만 지금은 고마웠다. 그러니 적어도 빨리빨리 움직이자고 생각하며 치즈루는 최대한 빠르게 걷자, 야마자키는 그럴 필요 없다는 듯이 치즈루의 보폭을 유지한 채로 걸었다.


유키무라 군. 서두르를 필요는 없으니 천천히 가자.”

그치만.”

확실히 이 후에는 예정이 있어. 하지만 서두르지 않아도 충분히 전부 끝낼 수 있어. 그러니까 굳이 빨리빨리 가지 않아도 괜찮아.”

………알겠어요.”


확실히 이 속도를 유지하면 빨리 지쳐버릴 것이다
. 그 편이 야마자키에게 더 민폐가 되겠지. 자신의 머릿속에서 그렇게 납득한 치즈루는 순순히 자신의 속도를 유지했다. 다시 한 번 그녀의 속도에 맞추며 야마자키는 이 후의 일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유키무라 군의 의견을 참고하고 싶은 곳이 있어. 같이 가 줬으면 해.”

제 의견이요? 어디인가요?”

대놓고 말하긴 뭐하니 일단 같이 와주었으면 해. , 물론 이상한 곳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아줬으면 해.”……. 야마자키 씨가 저를 이상한 곳으로 데려 갈거라 생각하지 않는데요.”


자기도 모르게 그 말이 입에서 나왔다는 것을 자각하자 치즈루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 당혹함이 옮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치즈루의 말 때문일까. 야마자키는 자신의 얼굴, 특히 귀에 열이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거기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치즈루는 자신의 말에 당혹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입에서 막 나오는 대로 변명을 시작했다.


, , 다른 뜻은 전혀 없고요! 야마자키씨는 예전에 이케다 야 사건 때도 그렇고, 지금도 사전에 이야기를 해 주셨잖아요? 그러니까 걱정 없다는 거 였어요! 물론 이번에도 처음엔 당황했지만 저를 위해서 데리고 나와 주신 거고.”


치즈루는 자신의 일에 대해서 많이 둔감하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의학서를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가 자신을 데리고 나온 것은 자신을 걱정해서라고 치즈루는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자의식 과잉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니 불안하지 않아요. 제가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두 손을 꽉 쥐며 치즈루는 웃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되는 것은 기뻤다. 누군가가 자신을 필요로 해주는 것도 기뻤다. 그래서일까. 치즈루는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야마자키는 어떻게든 자신이 빨개진 얼굴을 숨기며 쑥스러운 듯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생각해줄 줄은 몰랐어. 고마워. 유키무라군. 나를 신용해줘서.”

, 아뇨! 오히려 주제넘은 말을 해서 죄송해요!”


이번엔 야마자키의 열이 치즈루에게 옮겨간 것일까. 새빨개진 얼굴로 치즈루가 손사례를 치며 외쳤다.


………아니, 그렇지 않아.”


그 모습에 야마자키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소리가 작은 탓일까. 그 한마디는 주위의 소음에 섞여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야마자키는 그걸로 상관없다고 생각했는지 굳이 두 번 말하지 않았다.


. 저긴가요? 자주 이용하는 가게가."

벌써 거의 다왔나. 그럼 유키무라 군. 고르는 쪽은 부탁할게. 배달 시킬거니 걱정하지 말고 최대한 많이 부탁한다. 다른 대사들을 위해서도 유키무라 군의 안목을 충분히 발휘해주길 바래.”

! 맡겨주세요!”


어느 음식이던 밑재료가 좋아야 맛이 좋은 법이다. 어릴 적부터 기회가 되면 이웃집 어머님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것들을 떠올리며 치즈루는 가판대로 향했다. 가장 먼저 감자를 고르기 시작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야마자키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곤란하군.”


방금 전 자신의 행동에 쓰게 웃은 야마자키는 곧 고개를 저었다. 곤란하다고는 하지만 일단 허용의 범주가 아닐까 라고 잠시 생각하던 야마자키는 치즈루에게 다가갔다. 아직은 괜찮다. 아직은 괜찮은 범주다. 그렇게 생각하며 야마자키는 치즈루에게 이것이 좋은 채소다라는 강의를 듣고선 신선조까지 배달을 부탁하며 선금을 지불했다.


 

* * *



…………???”


무사히 저녁재료를 주문하고 난 뒤,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야마자키는 치즈루의 의견을 듣고 싶다며 어떤 장소로 안내했다. 어떤 곳일까. 역시 약재 같은 걸까. 그쪽은 자신 없는데. 등등 의학 쪽 방향으로만 생각하던 치즈루는 막상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반짝반짝반짝.

화려한 장신구와 아름다운 무늬가 수 놓여 있는 예쁜 기모노들. 조개껍데기나 예쁜 통에 담겨있는 화장품들. 치즈루의 연령대의 소녀라면 대부분 흥미를 가질만한 예쁜 물품들의 향연에 치즈루는 그 자리에 서서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잘못온 게 아닐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이 야마자키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 유키무라 군의 취향에 맞는 물건들을 되도록 많이 골라줬으면 해. 주로 장신구나 화장품 위주로. 기모노는 적어도 2벌 이상 부탁해.”

, ??? , 야마자키 씨. 그게 무슨. 아니, 어디다 쓰시려고.”

물론 임무에 쓸 거야.”

임무


그것 외에 다른 용도가 있느냐는 듯이 야마자키가 갸웃거렸다. 하지만 치즈루는 이걸 어떤 임무에 쓰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한 두 개라면 선물용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되도록 많이 골라달라니,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런 것에 제대로 된 흥미를 갖지 않았던 나보다는 네가 더 그럴 듯 한 걸 고르겠지. 실제 여성들이 어떤 걸 선호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러니 유키무라 군은 이게 예쁘다. 라는 걸로 골라주면 돼. 그거라면 써도 괜찮겠지.”

써도 괜찮!”


써도 되겠지라는 말을 듣자 치즈루의 머릿속에서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혹시 여장이 아닐까.


꽤나 핀트가 나가버린 답이었지만 현재 치즈루가 도출 할 수 있는 답은 그것 뿐 이었다. 확실히 야마자키는 미형이다. 잘만 꾸미면 거리에 스며들어도 위화감이 없는 여성은 물론, 누구든지 돌아볼만한 여성이 되는 것도 문제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야마자키의 직업은 감찰반. 정보를 얻는 것. 그러니 여장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결론이 치즈루의 머릿속에 내려졌다.


좋았어. 야마자키 씨에게 어울릴만한 물건을 찾는 거야!’


혹시 주위에 야마자키 이외의 누군가가 있고, 지금 이 생각을 입 밖으로 꺼냈다면 그게 아닐걸?? 아마도 그게 아닐거야! 라며 태클을 걸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치즈루의 생각을 멈춰줄 사람은 없었다. 그런 치즈루의 생각도 모른 채, 야마자키는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되도록 여러 종류로 부탁해도 될까.” 

맡겨주세요! 야마자키 씨에게 어울리는 걸 책임지고 찾아올 테니까요!”

?”


한 순간 치즈루의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은 모양일까. 야마자키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얼빠진 목소리를 내었다. 야마자키 씨의 도움이 되어야겠다며 기합이 들어가 있는 치즈루는 그런 야마자키의 상태를 눈치 채지 못한 채 먼저 장신구부터 골라 봐도 될까요? 라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 잠시. 잠깐만 기다려줘 유키무라 군. 방금 뭐라고 했어?”

? 책임지고 찾아올게요라고?”

그 전에.”

야마자키 씨에게 어울릴만한 걸?”

그거야! 유키무라 군! 그게 이상해! 어째서 나한테 어울리는 걸 찾아오겠다고 하는 거야??”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평소의 모습과 달리, 눈에 띄게 당황하는 야마자키의 모습에 치즈루는 그저 고개만을 갸웃거리고 있었다. 이야기가 맞지 않는다. 자신의 어깨를 잡고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야마자키의 모습에 치즈루도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는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야마자키를 바라보았다. 그래. 유키무라군은 크게 착각하고 있어. 그 표정을 보고 겨우 눈치채주었다고 생각했는지 야마자키는 힘 빠진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 죄송해요!”

아냐. 괜찮아. 오해가 있었던 것 뿐이-”

여장을 하는 건 비밀이셨군요.. 저는 그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죄송해요!” 

…………….”


고개를 푹 숙이며 반성의 기색을 보이는 치즈루를 보며 야마자키는 환장하고 싶은 심정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야마자키는 감찰반이다. , 정보를 위해서라면 여러 가지의 변장도 한다. 그리고 그 중에는 여장도 있을지도 모른다-. , 치즈루의 생각이었다. 정말 죄송해요. 얼른 잊어 버릴께요. 라고 허둥지둥 사과하는 치즈루를 바라보던 야마자키는 순간 정신이 멍해지는 감각을 받았다가, 얼른 현실로 돌아오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해야. 오해다! 유키무라 군!”


정말 오해다. 야마자키는 여장을 할 생각도 전혀 없었고, 그럴 의도로 여성용 물품을 사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치즈루에게는 악의가 전혀 없다는 것도 야마자키의 환장 포인트였다. 오키타 같이 악의가 빤히 보이는 사람이라면 대처하기가 쉽다. 그의 비아냥과 놀림에 익숙해졌기에 더욱 더 쉬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오키타와 반대로 치즈루처럼 순수한 의도로 자신을 도우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악의를 가진 사람처럼 강하게 나갈 수 없는 이유는.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야마자키는 크게 한숨을 쉬고선 치즈루를 바라보았다.


, 저는 별 생각 없어요! 편견 같은 건 없고오히려 열심히 하는 야마자키 씨를 존경하는 걸요!”

칭찬은 고마워! 하지만 정말 네가 생각하는 것은 아니니 내 이야기를 들어줘!”


주위의 시선이 모여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임무를 하는 중이라면 모를까. 현재 야마자키의 머릿속에서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치즈루의 오해를 푸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금의 이성은 남아있었기 때문일까, 야마자키는 어떻게든 흥분을 가라앉히고 치즈루만 들릴정도의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방물장수로 분장하기 위해서 골라달라고 하는 것 뿐이야.”

“‘쓴다라는 표현에서 오해가 있었던 모양인데, 방울장수로써 쓴다는 의미였지 내가 여장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야.”

, 죄송해요!”


야마자키의 반론에 치즈루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착각했던 자신이 부끄럽다. 신나했던 자신이 부끄럽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채 치즈루는 모기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사과했다. 야마자키 쪽도 답지 않게 흥분을 한 것이 창피했는지 살짝 빨개진 얼굴로 괜찮아. 라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 아무튼 부탁해도 될까? 유키무라 군. 나는 어떤 것이 좋은 물건인지 알 수 없어서 말야. 비싼 거라고 전부 다 좋은 것도 아닌 것 같고.”


가까운 곳에 있던 가판대의 비녀를 보며 야마자키가 쓰게 웃었다.


장사치라면 모름지기 고객의 마음에 들어야하는 상품을 내놔야하는데, 이 분야는 잘 몰라서 말야.”

저에게 맡겨도 괜찮으신 건가요?”


조심조심 치즈루가 물어왔다. 치즈루도 장신구에 흥미는 많지만 많은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자신이 그런 중대한 일을 맡아도 되는 걸까. 그렇게 쭈볏쭈볏하고 있으면 야마자키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나는 네 또래 여자아이의 취향을 알고 싶은 것 뿐이야. 간단한 일이니까. 그냥 유키무라군은 이거 예쁘다, 이 장식이 마음에 든다. 이 색깔이 좋다. 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알려주면 되는 거니까. 물론 전부 다 사는 것도 아냐. 그러니까 마음 편히 골라줬으면 좋겠어.”

!”


너무 진지해질 필요가 없다고 덧붙이며 야마자키가 살짝 웃자, 치즈루도 살짝 긴장이 풀린 얼굴로 맡겨주세요, 라며 물건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게 괜찮아 보인다. 이 무늬는 조금 화려한 것 같다. 등등 치즈루는 자신이 물건을 고르거나, 야마자키가 이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는 물건들에 대한 감상을 말했다. 하지만 야마자키의 도움이 조금이라도 더 되고 싶었는지 치즈루는 치즈루 나름대로 이 물품은 이래서 괜찮아 보인다를 설명해주었고, 그녀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며 야마자키는 장신구 몇 개를 샀다. 그 와중에 일에 쓸 도구다. 라고 치즈루에게 몇 번이나 쐐기를 박는걸 보아하니 방금 전 여장에 쓸 것이냐는 말에 살짝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죄송해요. 잘 알고 있어요. 용도를 제대로 이해했다며 앞으로는 조심하겠다는 치즈루에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며 살짝 실랑이를 벌이던 두 사람은 주인의 자신들을 노려보는 것을 깨닫고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났다.


 

* * *


 

오늘은 정말 감사했어요. 야마자키 씨.”


어느새 저녁이 되었는지 하늘에는 방금 전 까지 머리 위에 있었던 태양이 뉘엿뉘엿 져가며 주위를 붉게 물들어갔다. 그 광경을 잠시 멍하게 보던 치즈루는 무언가 생각났는지 야마자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야마자키는 반쯤 포기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걸. 감사받아야할 사람은 나인데 말야.”

확실히 야마자키씨는 자신의 볼일을 위해 절 데려온 걸테지만..그래도 저는 큰 도움이 됐어요. 그리고 이건 제 생각일 뿐이겠지만.. 제가 걱정되어서 데리고 나와 주셨죠?”


정신없이 끌려나온 탓에 처음에는 눈치 채지 못했다. 야마자키는 치즈루에게 책의 번역을 도와달라고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책을 가지러 함께 나올 필요는 없었을 터. 모르는 것이 있다면 자신의 방으로 책을 갖고 오면 되는 일이었다. 장신구도 마찬가지다. 방물장수로 위장하기 위해서 상품을 함께 골라달라고 했지만 원래라면 그럴 필요 없이 주인장에게 추천을 받으면 되는 일이었다. , 자신을 데리고 나온 것은 최근에 상태가 이상한 자신이 걱정되어서였겠지. 모든 것은 자기를 위해-, 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왠지 부끄럽고 건방지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것 외에는 정당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치즈루는 감사인사를 했다. 알아버린 이상, 자신은 거기에 대한 감사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주변사람들이 자신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챈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더 감추려고 했는데, 이 사람에게는 그 마음마저도 간파당한 모양이었다. 야마자키에게 미안하고, 이런 자신이 한심하고, 자괴감이 들었다. 고개를 숙인 채 밀려오는 감정을 어떻게든 소화시키려 노력하고 있으면, 머리 위에서 야마자키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전부 나를 위해서였어. 유키무라 군. 그러니까 유키무라 군이 신경 쓸 일은 아무것도 없어.”


예상대로의 답에 치즈루는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몇 번이건 선을 넘을 뻔했다는 자각도 있었고, 결심도 흔들렸다.

오늘은 정말 즐거웠다.

설령 야마자키의 의도는 아니었을지라도 치즈루는 오늘 하루 계속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그걸 입밖으로 꺼내기 무서워 그저 발 밑만을 바라보고 있는 치즈루를 바라본 야마자키는 말을 고르듯이 잠시 입을 다물더니, 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는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유키무라 군. 오늘은 즐거웠나?” 


얼른 네.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치즈루는 한순간 말을 망설였다. 즐거웠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것은 무서웠고, 동시에 이 말은 야마자키에게 실례가 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야마자키는 감찰반의, 신선조의 일을 위해서 외출한 것인데 자신이 즐거웠다고 말해도 좋은 것일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 즐거웠어요.”


하지만 정직하게 대답하지 않는 것이 더 실례라고 생각한 치즈루는 있는 그대로 말했다. 솔직히 무서웠다. 이렇게 말을 꺼내는 것으로 선을 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잔뜩 긴장한 채로 그 말을 입에 담으면, 치즈루와 상반되듯이 야마자키가 살짝 안도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런가.”


딱 한마디였지만 그 말투에서 정말 안도했다는 듯한 감정이 묻어왔다. 그 표정을, 그 목소리를 들자 치즈루는 죄악감을 느꼈다.


. 미리 말해두는데 일단 내 볼일에 너를 억지로 동행시킨 거니까 말야. 그런 점에서 걱정이 되어서-”

야마자키 씨.”

“-들어주셨으면 하는 게 있어요.”


정신을 차려보면 그렇게 말하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지만 치즈루는 그 발언을 철회하지 않았다. 이 사람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치즈루는 두 손을 모은 손에 힘을 주었다.



* * *



“-들어주셨으면 하는 게 있어요.”


치즈루가 결심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말하자. 이 고민을. 그렇게 결심했는데도 치즈루는 마음 속 어디선가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정말 말해도 될까. 전부 말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려니 무서움이라는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 이 괴물아! ]

 


어릴 적의 기억이 한순간 스쳐지나갔다. 뇌리 속에 박혀있는 그 공포는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사라지지 않는다. 분명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겠지. 하지만 공포는 사라지지 않지만 조금은 누그러들 수 있다. 그렇기에 치즈루도 지금 이렇게 말을 꺼내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심을 해도 바로 실행으로 옮길 수 없었는지 치즈루가 선뜻 말을 꺼내고 있지 못하고 있으면, 계속 입을 다물고 있던 야마자키가 입을 열었다.


그건. 요 사이 유키무라 군이 이상했던 일과 관련이 있는 건가?”

………역시 야마자키 씨네요. 아니, 제가 읽기 쉽다는 점도 있는 거겠죠.”


예전에 오키타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치즈루는 씁쓸하게 웃었다. 너는 읽기 쉬우니 숨기려 들지 말라고. 치즈루도 그것을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개선할 수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중요한 것은 간파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보자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계속 쉽게 간파당하니 자신의 노력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의기소침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큰 고민이지 않았나? 그걸 왜 나에게 말하는 거지?”

역시 민폐인가요.”

그건 아냐.”


생각할 필요도 없듯이 야마자키가 딱 잘라 말했다.


말했지. 듣는 거라면 얼마든지 해주겠다고. 그런데, 나에게 말한다는 건 히지카타 부장님의 귀에도 들어갈 확률이 높아. 그래도 괜찮다면 듣겠지만.”


방금 전 이야기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덧붙이며 야마자키는 다시 한 번 치즈루의 판단을 기다렸다. 이건 야마자키가 듣기 싫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치즈루는 알 수 있었다. 야마자키는 감찰반. 신선조의 눈이며, 귀다. 그러니 야마자키는 만약 치즈루의 고민이 신선조에 관련된 일이라면 그는 치즈루의 고민을 히지카타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다. 오히려 미리 이야기를 해준다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상냥함이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텐데.’


낙담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안일하다고는 생각했다. 막연히 이 사람에게는 말해야한다- 라는 심정이었으니까. 역시 입 다물고 있는 편이 나았을까, 일단 이 고민이 신선조와 관련이 없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판단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계속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면, 야마자키 쪽에서 질문을 던졌다.


유키무라 군. 이건 개인적인 질문이다만. 그 고민은 부장님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부류인가?”

……….”


야마자키의 질문에 치즈루는 입을 다물었다. 히지카타는 무섭지만 의지가 되는 상사다. 하지만 이 고민은 개인적인 것이라는 점도 그렇고, 그에게 상담을 한다면 자신이 무슨 체질인지 다 말해버릴 것 같은 위험성이 컸기에 히지카타에게는 상담하기가 꺼려졌다. 그 눈 앞에서는 뭐든지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으니까. 처음 만났을 때의 히지카타를 떠올리며 치즈루는 계속 침묵을 지켰다.

그녀의 침묵을 긍정이라고 받아들인 것일까. 야마자키는 살짝 난처하다는 얼굴로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어째서 나에게 이야기하려고 생각한 건지 물어봐도 될까. 다른 분들도 있잖아. 미리 해명하는데, 이건 순수한 의문이야. 둔소에는 나보다 더 고민을 잘 들어주거나 해결책을 제시해 주실 분들이 많이 계시잖아. 이노우에 씨라던가. 하라다 씨라던가. 그런데 어째서 나에게? 내가 그저 듣기만 하겠다라고 해서?”


다른 대사들과 야마자키의 차이는 그것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치즈루의 이야기를 듣고 상냥한 말을 해주거나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해줄지 모른다. 그 오키타조차도 입으로는 치즈루에게 비아냥거리면서 조언을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야마자키는 그 어느 것도 해줄 자신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듣는 것 뿐. 게다가 비밀보장도 해줄 수 없다. 그 점에서 고민하고 있는 치즈루를 바라보며 야마자키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네가 나에게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기쁘다고 생각해. 하지만 내가 걸리는 것은……. 내가 과연 유키무라 군의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어서 말야.”

저는, 도움을 바라고 야마자키 씨에게 말하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저. 야마자키 씨는 오늘 절위해서 이것저것 많이 해주셨으니까...”

그건. 내가 너를 위해서 오늘 하루 움직였으니 보답으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말하자고 생각한 건가?”

……….”


오늘 하루 야마자키는 치즈루를 위해서 많은 걸 해주었다. 하지만 치즈루는 그것에 대한 보답을 할 수 없었다. 물론 야마자키는 그걸 위해서 치즈루를 데리고 나온 것은 아니었을 테지만, 치즈루는 그래야한다고 머릿속으로 강박감 비슷한 것을 받고 있었다. 이런 자신을 위해서 여러 가지를 해줬는데, 자신은 그동안의 행동을 말하는 것 조차 할 수 없는 것이냐고.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걸 당당하게 말하기 어려웠다. 이 생각이 마치 잘못된 생각인 것처럼 죄악감을 느끼며 고개를 끄떡이자, 야마자키는 다시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유키무라 군. 그런 배려는 필요 없어.”

……죄송해요.”


어디까지나 이 대가는 치즈루 혼자서 생각한 사항이었다. 야마자키가 그렇게 해 달라 요구한 것도 아니고, 그저 치즈루가 이걸 알려주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생각한 것뿐이다. 이것저것 생각하며 입을 다물고 있으면, 야마자키도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낌새를 보이며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유키무라 군. 나는 단지 거래방식으로 유키무라 군의 사정을 듣는 것이 싫을 뿐이야. 확실히 유키무라 군의 최근 행실을 보면 가장 먼저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야. 개인적으로는 이유도 알고 싶지만. 이렇게 억지로 듣는 것은 나나 유키무라 군에게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 억지로 이유를 듣는다고 좋은 해결책을 낸다는 보장도 없고 말야. 뭣보다 이렇게 듣게 되면 너에게 호의를 보였으니 당연히 보답을 드려야지라는 고정관념을 주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저는, 그럴 생각은


거기까지 말하던 치즈루는 입을 닫았다. 물론 야마자키에게 말하고 싶어서 들어달라고 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왜 자신은 말해야겠다고 생각한 걸까.


 

-야마자키가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그가 이유을 알아야하는 건 당연한 것이 아닐까?

 


결론을 찾아내자 치즈루는 방금 전의 죄악감의 이유도, 떳떳하지 못했던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자신의 발언을 돌아보면 그의 말 대로였다. 자기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준 그가 알아야만 한다고,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 죄송해요! 야마자키 씨에게 실례되는 행동이었어요! 정말 죄송해요!”


거기까지 자각한 치즈루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한걸까.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급히 사과하는 치즈루의 반응을 예상했는지 야마자키는 당황하지 않고 괜찮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치즈루에게 있어 이 몇 가지 문답은 그동안의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어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문답이었다. 그동안의 자신의 생각이 부끄럽다. 왜 깨닫지 못한 걸까.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혼란스럽다 못해 제대로 정리도 하지 못한 채 식은 땀만을 흘리고 있으면, 그제서야 치즈루가 생각보다 크게 충격 받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야마자키가 허둥지둥대며 말을 덧붙였다.


, 괜찮아. 유키무라 군. 사과하지 않아도. 네가 무엇에 대한 이야기를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건 너에게 있어서 정말 심각하고 남에게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라는 것만은 알겠어. 유키무라 군이 무언가의 대가로서 내놓을 정도로 가치있는 정보다. 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군요.”


야마자키의 말에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치즈루가 입을 열었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치즈루에게 있어 자신의 이야기는 그저 숨겨야할 것이고, 남이 알아봤자 서로에게 좋은 일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라며 치즈루는 작은 목소리로 야마자키의 말을 계속 곱씹었다. 다른 사람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시점이 달라지는 걸까. 아니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어느 쪽이던 치즈루에겐 충격적인 말이었다.


……야마자키 씨. 역시 들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 물론 민폐가 아니라면..”

괜찮겠나? 제대로 된 답을 줄거란 보장은 없어. 그리고. 내용에 따라서 히지카타 부장님에게도 보고할지도 몰라.”

무섭지만, 괜찮아요. , 물론 전부는 못 말하지만... 그래도, 괜찮, 을 것 같아요. 야마자키 씨라면.”


아까 전과 다른 의미로 야마자키가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의무감이 아니라, 여기서 그에게 말하지 않으면 자신은 계속 이대로일거라는 예감이 들었으니까.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었다. 아주 잠시만이지만 보지 못했던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치즈루는 손에 힘을 꼬옥 주었다.


……일단 자리를 옮길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야마자키도 야마자키 나름대로 어떻게 하는게 두 사람에게 좋을지 잠시 생각하더니, 평소와 같은 무표정으로 알겠다는 말을 그 말로 대신하며 사람이 한적한 곳으로 치즈루를 안내했다.

 


* * *

 


“-저는, 특이한 체질이에요.”


사람이 별로 없는 길목에 도착하자, 몇 번 심호흡을 한 치즈루는 그렇게 운을 띄웠다. 어떤 체질인지는 말하지 않았고, 다행히 야마자키는 그것에 대해서 추궁하지 않았다. 그걸 다행으로 여기며 치즈루는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남과 선을 그으며 사는 방법을 터득했어요. 알려지면 저도 그렇고 아버님도 이상한 눈으로 바라봐지게 될 거고... 그리고 다르다라는 것은 상대방에게 커다란 공포를 주거나 괴롭힐 이유를 주게 되니까.. 그럴바에는 차라리 평생을 숨기면서, 고독하게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물론 고독도 무섭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이 체질을 들키는 거에요. 그런데.”

……니죠성에서 만난 그들이 네 체질을 알고 있었던 건가.”


야마자키의 질문에 치즈루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역시 야마자키 씨 상대로는 숨길 수 없네요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감찰반인 야마자키는 여러 가지를 보고, 여러 가지를 추론해서 움직이는 직업이다. 그러니 몇 가지 정보만 준다면 어느 정도 추론이 가능한 것이겠지. 역시 야마자키 씨는 대단해요. 라고 힘없이 웃어 보이면, 야마자키는 씁쓸해하며 입을 열었다.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어디까지나 내가 생각한 추론을 말한 것뿐이야. 일단 네가 이상해진 것은 니죠성에서 그 오니라는 녀석들을 만난 후고 말야. 그리고 지금 네가 자신의 체질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낸 걸 생각하면. 결론은 나오지. 히지카타 부장이나 사이토 씨나 산난 씨도 거기까지 들으면 나와 똑같은 결론을 내렸을 거라고 생각해. 아니, 오키타 씨도 눈치 챌 수 있겠군. 그 사람 쓸데없이 눈치만 빠르니까.”


살짝 뭐 씹은 표정으로 오키타의 이야기를 하던 야마자키는 곧 자신이 이야기를 탈선시켰다는 자각을 하고선 헛기침을 몇 번 했다. 그리고 미안, 이라고 사과한 뒤 치즈루에게 계속 이야기를 해달라는 행동을 취했고, 그 모습에 치즈루도 네. 라고 당황하며 대답한 뒤 이야기를 이어갔다.


예전부터 이 체질 때문에 사람과 그다지 많이 접촉하지 않았어요. 아버님도 그러는 편이 좋다고 하셨고요. 그래서 을 만들어 놓았어요. 제가 넘어가지 않으면 상대방도 그 선을 넘어오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그리고 상대방이 넘어오려고 해도 제가 열심히 그 앞을 지키면 상대방도 절대로 그 선을 넘어오지 않았고……. 그렇게 평생 살아가겠다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쓸쓸하고 외로웠지만... 그래도 이 체질이 알려지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래서 아버지의 실종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버지인 코우도가 치즈루의 앞에서 사라진다면 치즈루는 완벽한, 영원한 고독에 빠지고 만다. 코우도도 걱정된다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코우도를 찾으러간다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였다.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며 치즈루는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니죠 성에서 깨달아버렸어요. 저도 모르게 선을 넘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들에게서 거리를 두려고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건가.”


치즈루가 고개를 끄떡였다.


………정말, 즐거웠어요.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대로 발을 붙이고 있다는 감각이 너무나도 좋아서, 여러분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너무 즐거워서, 선을 넘었다는 것 조차. 아니, 선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어요…….”


신선조에 오게 된 계기는 최악이었다

신선조의 사람들을 좋아하게 된 지금도 치즈루는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무섭고, 나찰에 대한 공포도, 진심으로 살해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공포도 아직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 두려움을 잊기 위해 노력했던 행동들이 계기가 되어, 치즈루는 난생처음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즐겁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편안함이, 그 기쁨 때문에 자신이 선을 그어야한다는 사실을 바보처럼 잊고 있었다.

이런 자신이 한심하면서도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반발감이 계속 치즈루의 안에서 존재하고 있다. 이런 모순덩어리인 자신이 싫다고 생각하며 치즈루는 말을 이어갔다.


제 체질은 정말 특이해서 다른 사람들이 보면 기분 나쁘니까.. 여러분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는 것이 본심이에요. 그래서……. 예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사실은 평소처럼 지내고 싶었다. 평소처럼 이야기를 하고, 웃고 떠들고, 차를 내오고, 평화롭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둔소에서 그들과 지내던 시간들이 좋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괴물이라고 불리던 이 체질을 그들이 알기를 원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자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 , 죄송해요. 금방, 멈출 테니까.”


이야기를 들어주는 야마자키를 당혹시킬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울면 안 된다고 자신에게 계속 되내이며 치즈루는 급히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둑이 터진 듯 눈물은 계속 흘러나오자 치즈 루는 죄송해요, 죄송해요라고 사죄를 반복하며 눈가를 벅벅 문지르고 있으면, 그러지 말라는 듯이 야마자키가 치즈루의 팔을 잡았다.


, 진정해. 유키무라 군. 너는 나에게 사과 할 이유가 없어.”

, 그치만.”

정말 괜찮으니까.”


눈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울면 당혹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야마자키는 몇 번이나 괜찮다고 하며 갖고 있던 천을 그녀에게 건네주었고, 치즈루는 죄송합니다. 라고 다시 한 번 사과하며 그 천으로 눈가를 눌렀다.


그러고 보니 이 손수건. 그때 내밀어 주신 것과 똑같은 거네.’


그때도 그랬다. 갑자기 울어버리는 치즈루에게 야마자키는 같은 손수건을 주었다. 그래서일까. 평소라면 거절했을 텐데 자신은 이 손수건을 사용했다. 계속 갖고 다녀서인지 야마자키의 냄새가 살짝 베여있는 그 손수건이 어째서인지 안심이 되어서, 치즈루는 조금씩 진정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야마자키가 유키무라 군, 이라며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유키무라 군. 듣기만 한다고 했지만. 주제넘지만 내 의견을 말해도 될까.”

……….”


야마자키가 말한다고 하자 치즈루는 손수건을 눈가에서 떼었다. 야마자키가 울음을 그칠 때 까지 기다려준 덕일까. 더 이상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 사실에 야마자키도 치즈루도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인데, 굳이 선을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치만.”

네가 자신의 체질문제로 고민하는 건 확실히 알았어.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은 확실히 괴로운 일이지. 하지만 네가 그 상태로 계속 선을 긋고 있으면 오히려 체질을 들키게 되지 않을까.”

………….”


야마자키의 말도 일리가 있다. 확실히 지금의 치즈루는 모두가 이상하게 여기고 있다. 지금은 치즈루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서로 이야기를 끝냈는지 딱 봐도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고 있는 치즈루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하는 것은 그저, 무언가를 같이 먹자고 권한다던가, 오늘은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라고 즐거운 이야기를 하는 횟수가 늘은 정도일까. 하지만 치즈루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고, 치즈루는 최근의 분위기로 봐서 눈치 채고 있었다.


……확실히. 이 상황이 계속 된다는 보장도 없어.’


치즈루를 걱정해서 행동에 나선 대사가 치즈루의 체질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최악이다. 그 사태만큼은 막고 싶다. 야마자키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자, 야마자키는 일단 진정하라며 다시 혼란스러워하는 치즈루를 진정시키고선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다만... 그 상태로 모두에게 선을 긋고 있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해. 그 사람들이 엉망진창이라는 건 너도 알잖아. 그 사람 중 누군가는 네가 굳건히 그 선을 지키려고 해도 강제로 넘어 올거야.”

………….”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람들이 네가 곤란해 하고 괴로워하고 있는데 그냥 지나칠 리가 없어. 어떻게는 그 선을 넘어서 너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겠지. 이제 와서 선을 긋는 걸 용납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잖아?”

………. 맞아요.”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치즈루가 대답했다.

처음에 신선조의 사람들은 치즈루를 귀찮은 것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리고 치즈루 본인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최대한 없는 것처럼 지내려고 했었다. 하지만 여러 전장을 함께 거쳐 온 덕택일까. 지금은 간부도 물론, 간부 외의 대사들에게도 조금은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치즈루가 곤란할 때, 누군가는 반드시 손을 내밀어 주었다. 지금 이 상태를 고수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분명 야마자키가 멋대로 그어놓은 경계선을 깨부수고 손을 내밀어주겠지.


정말정말 괜찮을까요. 선을 그어 놓지 않아도

괜찮아. 네 체질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걸로 너를 저버릴 사람들이 아니야.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할 수 있는 한 네 변호를 해줄게.”


야마자키의 선언에 치즈루의 눈이 커졌다. 야마자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언제나 신선조를 먼저 생각하는 그가 자신의 변호를 해준다고 했다. 한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하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지만 야마자키의 표정을 봐서는 자신이 잘못들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아뇨. 야마자키 씨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고...”

민폐가 아니야.”


당황하며 그렇게 말해보았지만 야마자키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유키무라 군의 체질이랑 신선조의 사정과는 관계없잖아. 그렇지?”

, 그렇긴 하지만…….”

그럼 문제없다고 본다만.”

………….”


확실히 문제는 없다. 자신의 체질은 사람들이 꺼려하고 무서워하는 그런 부류다. 상처가 낫는다는 점에서 나찰과 흡사하지만 자신에게는 흡혈충동도, 나찰에 대한 특성도 없다. 게다가 나찰은 만들어지는 것. 태생부터가 이런 자신과는 상관없지 않을까, 라고 판단했다. 조금은 꺼림 직한 기분은 들었지만 치즈루는 그 점을 머릿속 한 구석으로 밀어두었다.


게다가 우리는 우리들의 사정으로 너를 그곳에 가두어두고 있고 말야. 게다가 히지카타 부장님도 그런 걸로 널 저버릴 사람이 아니야. 일단 너는 우리들의 감시 대상이자, 보호대상이기도 하니까. 예외는. 그래. 유키무라 군이 우리들의 비밀을 발설할 때려나.”

, 그런 짓은 안 해요!”

알아.”

.”


야마자키가 또 다시 단언하자 치즈루는 한 순간 얼빠진 목소리를 내었다. 단언해도 괜찮은걸까. 놀란 표정으로 야마자키를 바라보고 있으면, 야마자키는 치즈루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아챘는지 물론, 감찰반으로서는 완전히 신용하고 있지 않지만이라고 덧붙였다.


, 그 말씀은. 야마자키 씨 개인으로서는 신용 해주신다는 건가요?”


정신을 차려보면 그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치즈루의 질문이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기 때문일까. 야마자키가 놀란 얼굴로 치즈루를 내려다보자 치즈루는 그제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자각하고 무심코 자신의 입을 두 손의 끝부분으로 막았다.

정말 무의식 적이었다. 확실히 신용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저 한마디를 생각한 적은 없었다.

정말 바보같은 질문이었다. 애초에 신용에 공과 사가 공존할 수 있을 리 없지 않는가. 개인적으로 신용한다고 해도 공적으로 의심한다면 그것은 신용하는 것이 아니다.


, 죄송해요. 바보 같은 질문이었어요. , 저도 이 말이 왜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어요. , .”


혼란스러운 탓일까.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조차 제대로 알 수 없다. 뭘 말해도 변명밖에 들리지 않는 말을 계속해서 횡설수설하고 있는 치즈루와 달리, 야마자키는 방금 전 치즈루의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듯이 무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혼란스러운 와중 진정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도 진정되는 법칙이 적용한 덕분일까. 야마자키의 그 옆모습을 바라보며 횡설수설 거리던 치즈루는 점점 복작복작하던 머리가 정리되는 기분을 받았다.


……야마자키씨?”

이부키 군이 들으면 웃겠네. 이거.”


곤란한 듯 야마자키가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치즈루가 야마자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깜짝 놀란 듯 야마자키의 어깨가 움찔했고, 한 순간 상황을 이해못한 듯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곧 치즈루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했는지 아무것도 아니야, 라며 곤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미안. 유키무라군. 잠시 다른 생각을 했어.”

, 아뇨! 저야말로 이상한 말을 했는걸요. 잊어주세요. 오늘따라 이상한 이야기만 하네요.”

아니, 이상하지 않아. . 뭐랄까. 옛날일이 떠올라서 말야. 옛날에 나한테 모두를 그런 눈으로 보는 것이 괴롭지 않냐, 라고 묻던 녀석이 있었거든. 어째서인지 갑자기 그 일이 떠올라서 말야.”

지금 신선조에 계신 분인가요?”

……아니. 지금은 없어.”


그렇게 말하며 야마자키가 씁쓸하게 웃었다. 지금은 없다는 것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인 것일까. 야마자키의 표정을 보며 치즈루는 그 사람이 야마자키에게 있어서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튼 사과는 내가 해야지. 이야기 도중 다른 생각을 해버렸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야마자키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 이야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는지 자연스럽게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더 이상 묻지 않는 것이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야마자키를 바라보고 있으면, 야마자키는 방금 전 이야기 말인데, 라며 입을 열었다.

동시에 치즈루의 얼굴에 긴장이 돌았다.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건 야마자키도 알고 있을텐데. 무슨 말을 할까 살짝 긴장하며 야마자키의 말을 기다렸다.


확실히 감찰반으로서 유키무라군을 신용하지 않으면서 개인적으로 신용한다고 말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신용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말할게. ‘나는 유키무라 군을 신용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것은 야마자키에게 있어서 최대한의 신뢰의 말이라는 것을 치즈루는 알 수 있었다. 예전의 야마자키는 치즈루를 믿지 않는다고 했다.

 


[ 나는 감찰반이라는 입장 상 당신을 신용하지 않아. 그것이 나에게 내려진 임무니까. 하지만, 나 스스로 당신의 적이 될 생각은 없어. ]

[ 나는 감찰반이라는 입장에서 유키무라 군을 의심하지 않으면 안 돼. 그래도 네 처우가 좋아지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

 


그때나 지금이나 야마자키는 감찰반으로서는 신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점점 갈수록 치즈루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주겠다고 했고, 지금은 신용하고 싶다고 했다. 신선조에 해가 되지 않을 선이라면 치즈루의 편을 들어주겠다고 해 주었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기뻤다.


, 안 돼. 계속 이 사람의 앞에서 울 수 없어.’


이 사람의 앞에서 더 이상 울고 싶지 않다. 하지만 긴장을 놓으면 울어버리게 될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지금의 야마자키의 말은 너무나도 기뻤다. 눈에 힘을 주며 이를 악물고 있는 치즈루의 상태를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야마자키는 말을 이어갔다.


……라고,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방심은 하지 않아. 앞으로 나는 계속 유키무라 군을 의심하면서 신용하고 싶다고 생각하겠지. 모순된 감정으로 널 대하겠지. 지금의 유키무라 군이 신선조에 해가 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진심은 상황에 따라 변하고, 사정이라는 것은 언제 생길지 아무도 모르니까.”

그래도 저는,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기뻐요. 정말.”


그에게 신용받는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기뻤다. 기뻐서 울고 싶다는 충동을 꾹꾹 눌러 참은 채 치즈루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미소를 지으며 고맙습니다, 하고 하면, 야마자키는 그저 그녀에게 아무 말 없이 살짝 웃어주었다.


내 말이 도움이 되었다니 나도 기뻐.”

…….”

혹시 괜찮다면 하나만 더 부탁해도 될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야마자키의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사실 하나만을 생각하며 치즈루는 바로 대답했다. 그가 어떤 부탁을 할지 고민하거나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치즈루를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은 야마자키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결심했는지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유키무라 군에게도 사정은 있고, 들키고 싶지 않은 일도 한두가지 정도는 있겠지. 이번 일도 그것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 하지만. 우리에게 너무 떨어지려 하지 말아줘. 그 사람들도 그렇지만, 나도 쓸쓸하거든. 유키무라 군이 나한테 거리를 두는 것이.”


그 말이 결정타였을까. 치즈루는 더 이상 눈물을 억누를 수 없었는지 야마자키의 손수건에 얼굴을 묻었다. 아직 자신의 체질을 밝히는 것은 두렵다. 실은 이 말을 하기까지도 치즈루는 여러 생각을 했고, 두려운 생각만 했다.

괴물이라고 불리며 돌을 맞았던 유년 시대의 나쁜 기억은 아직도 치즈루의 뇌리에 뿌리내려 있었다. 야마자키의 몇 마디 말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 기억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자그마한 기대감을 안으며, 치즈루는 야마자키의 손수건을 꽈악 쥐었다.

그런 치즈루를 다독이며, 야마자키는 말없이 그녀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곁에 있어주었다.

 


***

 


오늘은 정말 야마자키 씨에게 너무 민폐를 끼쳤어.”


오늘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이불속으로 들어간 치즈루는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는 야마자키에게 당장 달려가서 사죄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기분 전환을 도와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지막에는 울어버린 자신을 위로해주었다. 덕분에 치즈루의 눈가의 붓기가 빠질 때 까지 두 사람을 둔소에 들어갈 수 없었다. 어떻게든 저녁식사시간까지는 들어갈 수 있었지만 야마자키의 일정을 방해한 것이 아닐까, 라는 죄악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괜찮으시다 고는했지만.”


치즈루가 계속 죄악감을 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야마자키는 치즈루의 붓기가 빠질 때까지 방금 전 받았던 의학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거나 의견을 물으며 그런 생각을 하지 않도록 유도했었던 것 같다. 왜 이걸 지금 깨달은 걸까.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가 왜 그랬지?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이야기를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고민은 아직 남아있다. 하지만 야마자키에게 말하고, 그에게 조언을 들은 것만으로도 조금은 후련해졌다. 그 변화를 눈치챘기 때문일까. 저녁식사 때 다들 웃으며 치즈루에게 말을 걸거나 반찬을 주거나 했지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지는 않았다. 그들의 상냥함에 마음속으로 몇 번이건 감사하며 치즈루는 다시 한 번 울어버릴 것 같은 감정을 꾹꾹 눌러 참으며 그들이 준 반찬을 전부 다 먹어버려 한동안 소화가 안되서 미련하게 소화불량으로 고생하고 말았다.


……그래도 다행이다. 다시 그렇게 지낼 수 있어서.’


여전히 거리를 좁히는 것은 무섭다. 이 체질이 밝혀지는 것도 두렵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이라면 야마자키의 말대로 이런 자신이라도 긍정해주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디까지나 희망적인 관측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은 야마자키 덕분이다. 내일, 다시 한 번 그에게 감사인사를 하러가자. 그렇게 생각하며 치즈루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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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멜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