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23. 01:05

“-라고, 큰소리를 친 것은 좋은데. 무슨 대책이라도 있어? 치비 짱?”


방과 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공원에서 두 사람은 오이카와 선생님의 1:1 리시브 강습교실을 펼치고 있었다. 확실히 히나타의 리시브 실력은 늘어있었다. 하지만 그건 오이카와가 마지막에 보았을 때보다 조금 늘어있었다는 것이지, 지금 히나타가 그렇게 잘한다, 라고 하기에는 아직 그의 실력이 부족해보였다. 분명히 이쪽으로 올 때 스테이더스가 전부 초기화된 탓이다. 분명히 할 수 있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그의 어설픈 플레이는 그것 때문이겠지. 그리고 오이카와도 상황은 똑같았다. 서브도, 리시브도, 토스도 자신이 머릿속에서 그린 것과 다른 형태로 이루어진다. 확 사촌동생이 다니는 배구클럽이나 히나타와 함께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물론 창피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오이카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백의 2년을 채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세계에도 우시와카 짱이 있으니까.’


어떻게 잊겠는가. 잊을 수 없다. 오이카와를 절망의 바다로 빠트린 그 장본인을. 본인은 그런 자각이 없었다는 것이 오이카와에게 있어서 엄청난 절망이었다. 아마도 정말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모든 기억을 잊는다 해도 그 절망은, 그 증오는 아마도 잊혀 지지 않을 것이라고, 오이카와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 시간 선에 왔을 때, 원래 시간선의 미련을 떨쳐버릴 수 있었던 것은 이 곳이라면 그를 꺾어버릴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라는 것이었다. 헛된 희망이라고 비웃음 당해도 상관없다. 생각지 못했던 기회가 온 것이다.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기회가.


그런데 이 상황이지.’


, 하고 배구공이 오이카와의 팔등을 맞고 히나타를 향해 튀어 올렸다. 그 공을 언제든지 받을 태세를 하며 히나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으면, 그 공을 어떻게든 오이카와에게 올리며 히나타가 입을 열었다.


, 으으음……. , 어어어어……. , 모르겠어요.”

모르겠다니. 치비 짱. 맡겨달라고 하지 않았어?” 


오이카와의 지적에 히나타가 찔린다는 듯 한 모션을 취했다. 분명히 아무 대책 없이 말한 것이겠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히나타를 바라보면, 그것이 자신을 책망하는 눈빛이라고 생각했는지 히나타가 새파래진 얼굴로 굳어버렸다. 그래서일까. 그대로 오이카와가 리시브한 공을 아무 모션도 하지 못한 채 안면리시브 해버리고 말았다.


, 치비 짱??!! 괜찮아??”

, 괜찮…….”


급히 히나타에게 달려가 상태를 확인 해보면, 다행히 코피는 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사실에 내심 안도하면서도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하고 있으면, 오이카와의 시야에 배구공이 누군가의 발치로 굴러가는 것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그거 저희 공이에요!”


굴러온 공을 주워 올렸기 때문일까, 오이카와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지나갔다. 가끔 남의 공을 말도 하지 않고, 본인이 보는 앞에서 자기 것이라는 듯이 가져가는 미친놈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던 오이카와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배구공은 보통 540엔정도의 가격부터 비싼 건 5천엔정도 하는 물품이다. 두 사람이 연습에 이용하고 있는 것은 그렇게 비싼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도난당해도 괜찮을 물건은 아니었다. 살짝 얼굴을 굳힌 채 남자를 노려보고 있으면, 남자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가볍게 서브했다.

배구하고 있는 사람이다.

오이카와가 그렇게 인식을 하기도 전에 공은 히나타에게로 향했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공을 보고 히나타는 무심코 리시브로 공을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그리곤 우연일까. 그 공은 오이카와의 두 손 위에 푹, 하고 떨어졌다.


오오오! 대왕님! 나이스 캐치!”

………아니, 이건 어느 의미로 치비 짱이 대단한 거 아냐...?”


어디까지나 우연에 지나지 않은 기행이었지만, 히나타는 눈을 빛내며 오이카와를 응시했다. 그 눈빛이 부담스럽다는 듯이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 아이는 순수하다. 그리고 멋진 것에 반응한다. 그야말로 꼬맹이다. 그예전에는 키가 작아서 치비 짱이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자신의 사촌동생과 비슷한 수준이었기에 계속 치비 짱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게 치비 짱……….’


코트 안에서는 짐승. 코트밖에서는 꼬맹이. 프라이베이트와 그렇지 않을 때의 갭이 너무 커서 눈이 빙글빙글 돌아갈 정도다. 그렇기 때문일까. 오이카와는 가끔 히나타를 직시하기 힘들 때도 많았다. 물론, 본인은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오오, 정말 대단한데 오이카와!! 어떻게 한 거야? 그거!”


하지만 어린애는 히나타 뿐만이 아니라는 듯이 방금 전 서브를 넣었던 누군가가 눈을 빛내며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박력은 히나타보다 더 셌기 때문일까. 그가 한발자국 다가설 때마다 오이카와는 무심코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노란머리의 투 블록에 잔뜩 피어싱을 한 학생이었다. 나는 불량입니다, 라고 선언하듯이 셔츠도, 넥타이도, 바지도 단전하지 않았다. 불량이다. 뒤에서 히나타가 중얼거리는 것과 그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를 지켜줘야겠다, 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런 자신이 박정한 걸까.


아니, 아마도 그럴 필요가 없는 거겠지.’


오이카와는 이 남자를 알고 있다. 물론 저 쪽에서 안면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 세계에 와서 알게 된 인물이다. 여기는 어쩐일이세요. 그렇게 물으려는 순간, 갑자기 히나타가 생각났다는 듯이 그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아아-!! 카리아게 씨!!!”


!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상한 별명 붙이지 마!!!!!!!!!!!!!! ………? , 나 알고 있냐?”


남자의 지적에 히나타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오이카와의 표정이 새파래졌다. 히나타의 반응으로 보아하니, 그는 히나타가 저 쪽에서 알던 사람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지금이 첫 대면이나 마찬가지다. 배구를 하는 것 같으니 시합하는 걸 봤어요.’ 라고 처음에는 얼버무리려고 했지만, ‘어떤 시합을 봤는데?’라고 되물으면 할말이 없고, 더 일만 꼬이게 된다. 이 사단을 만든 것은 히나타이고,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방관자의 자세를 취하려고 했지만 히나타가 제대로 수습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으면, 납득했다는 얼굴로 그가 입을 열었다.


아아. 니들이었냐! 점심시간에 미사키 선배 찾아간 녀석들!”

“???”

미사키 선배에게 우리 이야기 들은거 라면 납득이 가지. . 먼저 그걸 말하지 그랬어!!”

, 아파!! 아파!!!”


자신의 등을 때리는 그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노려보는 오이카와였지만 속으로는 내심 안도하고 있었다. 미사키가 이미 이야기를 해준 것인지, 그때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히나타가 큰 소리를 내는 장면을 우연히 본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느 쪽이던 다행이었다. 뭐어, 그렇죠. 라고 대강 얼버무리는 두 사람의 모습이 재밌었는지 상대방이 킬킬하고 웃었다.

-무튼! 너희들. 미사키 선배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돌아가지 않을 거니까.”

테루시마 유우지. 그는 오이카와와 같은 방을 쓰고 있는 룸메이트였다. 쾌활한 성격으로, 오이카와를 처음 보았을 때도 이것저것 챙겨주곤 했지만 배구의 이야기가 나온 이후는 어째서인지 선을 긋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이유가 이거였나.’


배구 부를 싫어하고 있는 테루시마에게 있어서 배구부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는 오이카와는 고깝게 보였을 것이 틀림없다. 배구부는 그다지 좋지 않아, 라고 조언을 해줬는데도 배구부로 가고 싶다고 했으니 말이다. 어제의 테루시마의 상태를 그제서야 납득하고 있으면, 테루시마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입을 열었다.


-. 두 사람 다 나를 안다면 자기소개는 필요 없지? 잘 부탁한다는 말도 필요 없고 말야. 오이카와는 어쩔 수 없다 치고, 꼬맹이는 더 이상 나를 볼일도 없을 테고 말야.”


테루시마는 두 사람이 앞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있다. 그걸 알면서도 만날 일이 별로 없다라고 선언한 것은, ‘나는 배구부에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다라는 의사를 처음부터 못박아둔 거나 다름없었다.


“-이유를 물어도?”


하지만 저쪽은 이쪽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온 것이다, 라고 오이카와는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도 너희들이 하는 짓은 쓸데없는 짓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겠지. 하지만 히나타는 물론이고 오이카와도 물러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선배에게 못 들었어? 설명 3학년들이 이미 졸업했다고 해도 그 감독 밑에서 배구하는 건 이제 싫거든. 생각만 해도 불쾌하고, 진절머리 나고, 불쾌해.” 


잔뜩 불쾌한 얼굴의 테루시마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야기를 듣는것만해도 기분나쁜데, 그 기분나쁜 일을 직접 당한 사람은 어떨까. 그 분노를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다. 싫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눈앞의 선배를 설득해야하는 의무를 갖고 있었다.


그 문제라면 괜찮아요.”

?”

감독님, 바뀌었대요.”

……………………?”


처음 듣는다는 듯이 테루시마가 얼빠진 표정과 대답을 내비쳤다. 미사키의 반응과 테루시마의 반응이 똑같다. 그렇다는 것은 다른 선배들도 작년 배구 부 선생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모른다고 보면 좋겠지. 아예 배구부에 관한 소식을, 선생님에 대한 소식을 차단하며 지내온 것일까, 아니면 정보가 전혀 전달되지 않은 것일까. 거기까지 생각한 오이카와는 곧 어느 쪽이던 상관없다, 라며 생각을 중단했다.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새 선생님은 아나바라 선생-”

--!!! 됐어! 그래도 안 돌아가! 안돌아간다고!”

? 어째서요? 3학년들도 없고, 감독님도 바뀌었는데?”


오이카와를 대변하듯이 히나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사키를 바라보았던 그 눈이 이번에는 테루시마를 향하고 있다. 히나타 특유의 꿰뚫어볼 것 같은 시선에 예외없이 테루시마도 살짝 어깨를 움찔했지만, 곧 평소의 페이스로 돌아와 히나타의 시선을 받아치며 입을 열었다.


“-나는, 질실강건이 싫으니까.”


그 말과 함께 테루시마는 배구공을 던졌다 받았다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꾸밈없이 착실하고, 심신이 건강한 플레이. 재미없잖아. 재미보다는 착실함을 추구하는 배구. 그건 나의, 우리들의 취향에 맞지 않아. 그러니까.”

당연히 그건 카리아게 씨에겐 맞지 않죠!!!!”


테루시마의 말이 끝나기 전에 히나타가 불쑥 끼어들자 오이카와와 테루시마가 동시에 어깨를 움찔했다. 이 타이밍에 끼어들 것이라고 두 명 다 예상하지 못한 것이겠지. 하지만 히나타의 말이 짜증났기 때문일까. 테루시마는 자기도 모르기 빼액하고 히나타에게 반론했다.


, 누가 카리아게야! 이건 투 블럭이라 하는 거라고! 그만 그렇게 불러!!! 제대로 자기소개도 했잖아! 제대로 이름을 부르라고!!”


필사적으로 테루시마가 태클를 걸어보았지만 히나타는 전혀 들을 생각도 없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그치만 카리아게 씨는 자유로운 사람이잖아요. 물론 시합도, 연습도 나아지려면 착실히 해야 하지만, 그 착실함은 어디까지나 더 재미있고, 그 누구보다 즐겁게, 오랫동안 놀이터에서 놀 수 있도록만드는 초반이라고 생각해요. 질실강건 따위, 카리아게 씨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다고요.”

………….”

카리아게 씨. 배구, 좋아해요?”

………………별로.”


하지만 히나타도 오이카와도 그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까 전 부터 던졌다 받았다하는 배구공이 그 증거다. 배구를 오래 쉰 것 치고는 그 포즈가 너무 깔끔하다. 배구 부를 쉬었어도 배구연습은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가 말한 한마디. 그는 배구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이 학교의 배구 부를 싫어하는 것이다. 방금 전 우연히 자신의 손에 떨어진 배구공을 보고 눈을 빛내는 그의 모습을 보면 백에 백은 전부 이 사람은 배구를 좋아하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굳이 히나타도, 테루시마도 그 점은 입에 담지 않았다.


배구. 재밌어요.”

…………알아.”

그러니까, 같이 놀아요! 카리아게 선배!”


-그때처럼

히나타가 삼긴 뒷말이 오이카와의 귀에는 확실히 들렸다. 개인적으로 오이카와는 지금 히나타가 하고 있는 짓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세계는 자신들이 있던 세계가 아니고, 눈앞에 있는 남자도 히나타가 원래 알고 있었던 테루시마 유우지도 아니다. 그러니 지금 히나타가 하고 있는 행동은 어디까지나 눈앞의 테루시마 유우지에게 자기가 알고 있던 테루시마 유우지의 상을 떠넘기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눈 앞의 선배는 어쩌면 히나타가 말하는 저 말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자신의 등을 떠밀어줬으면 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이와이즈미에 의해 깨닫게 된 것처럼, 누군가가 자신에게 납득할 수 있는 말을 해주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배구는 즐겁다라는 감각을 되찾아줬으면 하는 것을 바라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오이카와는 히나타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선배.”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자신이 나설 차례다. 그렇게 판단한 오이카와는 테루시마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는 세터에요.”

……………….”

저는 6명이서 강한 팀을 만들고 싶어요. 강한 팀이 되도록 연주하는 것이, 강한 팀을 이끌며 승리의 음색을 연주하는 것. 그게 제가 목표로 하는 세터에요.”


카게야마는 세터를 코트의 지배자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오이카와는 코트의 6명이 힘을 합쳐 좋은 연주를 하게 만드는 것이 세터의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카게야마와는 더욱 더 맞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절대로 지지 않는 토스를 올리겠다고 단언은 할 수 없어요.” 


아직 자신이 없다. 기술도 체력도 그때보다 엄청 떨어지고, 만족할 만큼의 플레이를 할 수 없다. 머리에 몸이 따라갈 수 없는 감각. 몇 번이나 절망을 맛봤다는 것도 있었지만, 원래부터 토스 실력은 카게야마보다 딸린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에 자신만만하게 나의 토스는 최고, 라는 인식을 갖지 못한다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승패를 떠나, 절대 지루하게 만들지 않을 토스를 올리겠다고 약속드릴께요.”


그것 하나만은 자신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같이 놀아요! 카리아게 씨!”


벙쩌있는 테루시마를 향해 히나타가 마지막 승부를 걸어왔다. 이쪽의 생각과 각오는 다 전했다남은 것은 그의 반응 뿐이다.


물론 싫다고 해도 달라붙을 거지만.’


오이카와는 은근히 끈질긴 편이다. 한번 거절당했다 해도 아 그렇군요. 라고 물러서는 헛 똑똑이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건 히나타도 마찬가지겠지. 안타깝지만 당신의 후배들 중 말을 잘 듣는 헛똑똑이는 없어요. 선배.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오이카와가 깊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테루시마를 바라보면, 테루시마는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곧 발 아래로 떨어트린 채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그가 항복하겠다는 듯이 두 손을 들고 항복 제스처를 취했다.


……생각할 시간 정돈 줄 수 있겠지?”


그것은 현재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반격이자, 방어였다.

 


* * *


요즘 후배가 쫒아 다녀서 괴로워.”

닥쳐, 나는 같은 방이야. 툭하면 선배, 선배, 라고 말을 걸어서 너무 괴롭단 말야.”

말로만 들으면 그냥 인기 좋은 선배네. 잘 됐잖아?”

이왕 스토킹 당할 거면 내 취향의 여자아이가 좋았어…….”

지금 스토킹 하는 애들 이쁜 편이잖아? 한명은 미소년에, 한명은 목소리도 얼굴도 귀여운 편이고. 복 받았다고 생각하자고. 그냥.”

아니, 나는 뭘 당하던 여자애가 좋다니까.”

나도.”

이하동감.”


식당의 한 구석에서 하아, 하고 7인분의 무거운 한숨이 내뱉어졌다.

그들의 고민은 현재 단 하나. 최근에 자신들을 스토킹하는 2명의 후배들 때문이었다. 3일전 갑자기 배구부에 돌아와주세요, 하고 나타난 그들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자고 자신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히나타는 배구를 하자며 배구공을 들고 돌진해오고, 오이카와는 이 기술 어때요, 쩔지 않아요? 라며 아이패드로 0튜브의 배구영상을 보여주며 설득을 하고 있었다.

특히 오이카와와 같은 방인 테루시마는 죽을 맛이었다. 테이블에 머리를 박은 채 실신하고 있는 것 같은 친우에게 츠치유가 동정의 눈길을 보내고 있으면, 후타마타가 자괴감이 든다는 듯이 팔을 세워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깍지를 낀 손에 이마를 가져다댄 채로 낮은 목소리로 고해했다.


, 너무 쫄랑쫄랑 다가와서 나도 모르게 그 치비짱에게 토스 올려 줘버렸어…….”

나는 짜증나서 실수로 던져버렸는데, ……그 녀석, 너무 안정적으로 착지 해버린 거 있지? 그 후로 재미 붙어서 틈만 나면 무심코 던지고 있다.”

위험하잖아! 그거!”


보바타의 츳코미에 후타마타와 이이자카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로부터 3일정도가 지났다. 후배들이 배구 부를 부활시키자고 했을 때 그들은 싫다, 라고 하거나 생각만 해보겠다며 거절 의사를 표현했으나, 두 후배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달라붙어왔다. 그 모습을 떠올린 이이자카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 정신차려보면 휩쓸려 있었어.”

나도.”

실은 나도…….”


테루시마를 제외한 여섯 명이 다시 한 번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계속해서 한숨을 내쉬고 있었기 때문일까. 주위의 공기가 무겁다. 하지만 그걸 환기 시킬 마음도 들지 않는지 테루시마는 포크를 입에 문 채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빠진 표정이네.”


목소리가 들린곳을 바라보면, 그곳에는 오무라이스가 올려져있는 식판을 든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미사키가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선배의 모습에 다들 자리에 일어나 인사를 하려 했지만 미사키는 됐다며 고개를 저었다.


니들은 이미 배구 부를 탈퇴했으니까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

그래도 미사키 선배는 특별하니까요.”


그녀는 악몽 같은 배구 부 시절 때 유일하게 그들을 신경써주고 챙겨줬던 사람이다. 어느 의미로는 은인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미사키를 잘 따랐고, 배구 부를 탈퇴한 지금도 미사키에게 만큼은 예의를 갖춰 대하고 있었다. 한칸씩 옆으로 가 자신의 자리를 만드는 후배들을 보고 미사카는 조금 부담스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들의 호의를 받아 그들이 만들어준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왜 고민하고 있어? 뭐가 문제야?”


다짜고짜 본론에 들어가자 후배들은 단도직입적이네요, 라고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가, 곧 그녀의 시선을 피하듯히 입을 닫고 시선을 피했다. 그녀에게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마지막 추한 발악은 해보겠다는 의지다. 오무라이스의 반을 다 먹을 때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자, 미사키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맞춰볼까? 이제 와서 배구부에 복귀하는 게 무서운 거지?”


아무도 반론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에 틀린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녀의 말대로 그들은 복귀하는 게 무서웠다. 그래서 계속 도망치고 있었다. 그것도 확실히 자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말없이 눈앞에 놓여있는 점심만을 바라보고 있으면, 미사키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저 애들은 분명히 빠른 시일 내에 놀이터의 토대를 만들 거야.”


그녀가 말하는 놀이터의 토대가 무엇인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것이 배구 부를 뜻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 자리의 누구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학년들에게 전부 맡기는 것은 엄청 꼴사납다고 생각하지 않아?”

………….”

너희들. 다시 배구부에 가고 싶잖아. 가서 인터하이에 나가서 우승차지하고 싶잖아.”

그건, 예전에 생각한.”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정말?” 


보바타의 반론에 미사키가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딱 잘라버리고선 묵직한 한방을 날렸다. 그 말에 무언가 반론하고 싶은 자도 있는가 하면, 그저 입을 다문 채 시선만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자도 있었다.

그녀의 지적대로다. 배구부에 다시 가고 싶다. 인터하이에 나가고 싶다. 거기서 우승도 하고 싶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코트에서 뛰어놀고 싶었다. 하지만 배구부에는 그 감독이 있는 한 무리다. 그렇게 생각하며 포기해왔는데, 갑자기 그 감독은 이미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음 같아선 바로 배구부로 돌아오고 싶었지만, 돌아가면 안 될 것 같은 죄악감이 들었다.


-너는, 도망쳤잖아.


그렇다. 그 감정은 죄악감이다. 자신들은 도망쳤다. 부조리에서, 증오심에서, 고통에서 도망쳤다. 그 결과가 배구부의 폐부다. 그러니 이제 와서 그 곳으로 돌아가기에는 죄악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계속 고집만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대로 가면 정말 1학년들이 세운 토대에 숟가락만 올리는 꼴사나운 선배가 될 거야. 너희들.”

미사키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말하지 않았는데도 추측으로만 맞추는 선배가 두렵다고 생각하며 테루시마는 조심조심 미사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미사키는 더 이상 그들과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다는 듯이 어느새 다 먹은 접시와 쟁반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기까지. 상담을 원하면 해주겠지만 내가 먼저 조언을 해주는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해. 나머지는 너희들이 잘 생각해보도록 해.”


그 한마디만을 남기고 그녀는 자리를 나섰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거대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말해보았자 결심이 서지 않는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것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런 부류다. 약한 사람이다. 다시 한 번 테루시마가 거대한 한숨을 내쉬고 있으면, 이이자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나가자고.”


자리에 앉아서 한숨만을 푹푹 내쉬면서 고민해봤자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 그 말에 다들 동의했는지 식판과 쟁반을 들고 미적미적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판을 정리하고 식당 밖으로 나가 음료수를 사먹을 때까지도, 그들은 여전히 한숨만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 왜 여기로 왔어.”


어느샌가 시야에 들어온 체육관을 보며 테루시마가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팀 메이트들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교실로 돌아가기에는 기분도 꿀꿀하고, 무언으로 산책을 하자고 결정한 그들은 한동안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으면, 어느 샌가 체육관으로 와버렸다.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테루시마가 항의를 하면, 다른 사람들은 나는 모릅니다, 라는 태도를 취하며 툴툴거렸다.


몰라. 나는 유우지군을 따라간 것뿐인걸-”

나도나도

이것들이 나한테 책임전가 하네.”


친구가 아니라 웬수들이다. 얼굴을 찌푸린 채 나쁜 놈들. 맨날 이렇지. 등등 그들의 양심을 자극할 것만 같은 말을 전부 내뱉어 보았지만 그 누구도 듣고있는 시늉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이 피도 눈물도 없는 것들. 나중에 두고보자. 이를 부득부득갈며 그들을 노려보았지만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들리지도 않습니다. 라는 태도를 취할뿐이었다.


“....돌아가자.”


열만 내봤자 피곤해지는 것은 자신이다. 게다가 앞으로 15분 정도만 있으면 점심시간도 끝나는데다 체육관에는 볼일따위 없다. 테루시마의 말에 이견이 없다는 듯 다들 고개를 끄떡이며 테루시마를 따라 발길을 돌렸다.


“-대왕님!”


그런 두 사람의 발목을 잡은 것은 익숙한 목소리와, 공이 어딘가에 부딪쳐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공이 무엇에 부딪쳐 튀어오르는 것인지, 그 자리의 2학년들은 한순간 이해해버렸다. 여태까지 그들이 눈을 돌리고 있던 것이었으니까.


………….”


먼저 그쪽으로 발걸음을 돌린 것은 후타마타쪽이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살짝 비틀거리고는 있지만, 한 순간 그의 표정을 보았던 히가시야마는 그가 정신을 놓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스쳐지나가는 후타마타의 얼굴은 살짝 긴장하고 있었으니까. 마치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마주하려는 사람의 표정 같았다고, 히가시야마는 생각했다.

인간은 할까 말까 고민하는 순간, 누군가가 먼저 행동을 일으키면 자신도 그것에 따라 행동을 하는 케이스가 있는데, 아마도 지금 자신들은 그런 상황이 아닐까 하고 츠치유는 생각했다. 그 증거로 후타마타가 움직이자 다른 사람들도 따라 그와 같이 소리의 근원지를 확인하러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면 우리는 이걸 기다리고 있었던 걸지도.’


아마도 지금부터 볼 것은 자신의 등 뒤를 떠밀어줄 계기가 될 것이다. 라고, 츠치야는 그런 근거 없는 확신을 하고 있었다. 체육관 뒤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치비 짱!!!”


그리고 그들의 바람대로, 그들의 계기가 될 만한 광경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 곳에는 네트도, 기본 설비도 아무것도 없었다. 네트 대신 쓸 생각이었는지 바닥에는 두꺼운 선이 두 개 그어져 있었을 뿐. 그리고 그 다음에 눈에 들어온 것은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히나타의 모습이었다. 땅을 박차고 점프하는 것뿐이었지만, 키에 비해서 높게 뛰어올랐기 때문일까. 그들의 눈에는 히나타가 날아오르는 것으로 보였다.

오이카와의 손에서 떨어진 공이 히나타에게 향했다. 그 공을 똑바로 보던 히나타는 망설임 없이 선 바깥쪽으로 내리찍었다.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지 알 수 없을 정도의 한 순간의 일이었다. 공이 내리찍어지면서 생긴 자국과, 저 멀리 굴러가는 배구공을 보던 두 사람은 잠시 멍 때리더니, 곧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유는 아마도 방금 전 한 속공인 것이라 그들은 추측하고 있었다. 그동안 하지 못한걸 드디어 해낸 사람처럼 서로 얼싸안고 방방 뛰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2학년들은 사전에 이야기라고 한 듯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떡이더니,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도망가려는 것은 아니었다. 도망간다, 라는 선택지 따위는 이미 그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저런 재미있는 걸 하는 녀석들을 두고 도망갈 리가 있겠냐!’


지금 저 녀석들과 배구를 하지 않으면 오래오래 후회할 것이다.

그렇게 판단한 그들은 주머니 속에 아무렇게나 구기고선 방치했던 입부 신청서라고 프린터 되어 있는 종이쪼가리를 들고 교무실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한숨을 푹 쉬던 분위기는 거짓말 같이 사라지고, 그들의 눈동자 안에는 살짝 빛이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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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바꿨습니다. 

Posted by 카멜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