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9. 01:11

 

4.

 

히나타의 집은 조센지에서 버스로 약 40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매일매일 아침 연습을 시작할 때 즈음 아슬아슬하게 도착하는 걸 보아하니 좀 더 먼 곳에 있는 줄 알았다. 무심코 그렇게 중얼거리자 돌아온 대답은 매일매일 자전거 타고 통학하니까요였다. 그 대답을 들었을 때 오이카와는 한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분명히 그는 예전에 집에서 가까운 학교를 골랐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멀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치비 짱의 집은 시골에 있어요?”


무심코 놀리듯이 그렇게 말했을 때 돌아온 부정의 사자후는 아직도 트라우마다. 대체 뭘 먹었기에 저렇게 목청이 좋은 걸까. 그의 집에 비결이 있을 것 같았지만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근처엔 초등학교와 중학교만 있고……. 고등학교가 하나 있긴 하지만 거기에는 배구부가 없어서 제외. 그나마 가까운 곳 중에서 배구부가 있는 곳으로 온 것뿐이에요!”

정말 불모지에서 자랐구나. 치비 짱.”


배구부가 없는 학교가 주위에 있다니. 동정하는 눈빛으로 히나타를 바라보자 히나타는 얼굴을 한껏 부풀리고선 팔짱을 꼈다. 나는 지금 화가 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상태로 놔두면 나중에 반드시 성가셔진다. 귀찮다고 생각하며 그를 버스 안에서 달래고 있는 사이에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리고 3분정도 걷자, 여기저기 주택이 세워져 있는 골목길이 나왔다. 거기서 왼쪽으로 꺾어서 좀 더 걷자 히나타가 도착했어요! 라며 주택 한 곳의 대문을 열었다.

히나타의 집은 평범 그 자체였다. 바깥 구조도 평범, 집안 인테리어도 평범했다. 상냥한 부모님과 귀여운 여동생과 살고 있는 집. 부모님과도, 여동생과도 사이가 좋아서 그럴까. 히나타 가의 분위기는 따뜻하고, 안도감을 느꼈다. 물론 오이카와의 집도 따뜻했지만 그 곳에서는 안도감을 느낄 수 없었다.


원인은. 알고 있지. . 잘 알고 있어.’


그래. 알고 있다. 원인은 오이카와의 방의 창문 중 하나로 볼 수 있는 옆집의 소꿉친구의 방 창문 때문이었다. 그 창문은 마치 오이카와를 거부하는 것처럼 굳게 닫혀있고, 안을 볼 수 없게 두꺼운 커튼이 닫혀있었다. 그것이 왠지 그가 지금의 오이카와 토오루를 거부하는 것 같아서, 오이카와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대왕님! 대왕님 침대에서 주무실래요? 아님 밑에서?”

일단 내가 손님이니까 아래에서 자야지. ……, 그리고 치비 짱. 우리 존댓말 어떻게든 하자. 진짜.”


방금 전 가족들에게 이상한 눈빛을 받았다는 것을 떠올린 오이카와는 절박한 얼굴로 두 손으로 히나타의 어깨를 잡았다. 집에서 오고부터 계속 오이카와에게 존댓말을 쓰는 히나타를 가족들이 의아하게 여긴 것이다. 그 때는 벌칙게임이에요, 라고 다행히 얼버무릴 수 있었지만 앞으로 이 상태는 너무나도 곤란하다.


그동안 선배들이 지적하지 않고 넘어가서 잊고 있었어…….”

저도, 아니, 나도.”


왜 다들 지적을 안 한 걸까. 선배들은 재미있다고 그냥 넘어갔다고 쳐도, 아나바라는 성격상 분명히 지적을 하고 남았을 텐데 왜 아무말도 하지 않은 걸까. 계속해서 의문점이 솟아나는 어지러운 머리를 정리하고 있으면, 옆에 앉아있던 히나타가 필사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 아니! 미안! 잊고 있었어!!”

아니아니. 나도 지적 안했으니까 나에게도 뭐라 할 자격은 없지만. 아무튼 앞으로 이것저것 서로 신경 쓰자. 그 수 밖에 없어.”


너무 편했던 탓일까. ‘지금에 안주해버렸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고, 하물며 얼버무릴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지금까지 아무 일 없었던 것은 단순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

………….”


무거운 침묵이 히나타의 방을 지배했다. 그 침묵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오이카와가 히나타를 힐끗 보면, 히나타는 반성의 기색을 내보이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 지금까지의 자신을 되돌아보는 걸까. 가끔 얼굴이 새파래지거나 침울해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지금 상황을 잊은 채 그 모습을 재미있게 바라보던 오이카와는 곧 제정신을 차리고는 헛기침을 시도했다.


, 크흐흐흠. 잘까. 내일도 첫 차 타야하고.”

, ! 가 아니라 응!!”


어색한 대답과 함께 두 사람은 주섬주섬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오이카와가 제대로 이불을 덮었다는 걸 확인한 히나타는 리모콘으로 전등을 껐고, 한 순간에 방은 암흑으로 뒤덮였다.

내일부터는 새벽부터 밤까지 하드한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얼른 자지 않으면 곤란한 것은 오이카와인데 머릿속도 눈도 말똥말똥한 상태다. 남의 집에 와서 그런 걸까. 원인은 어찌되었던 얼른 자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채 자려는 노력을 해보았지만 성과는 그닥 좋지 않았다.


………대왕님. 자요?”


이미 잠들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일까. 침대 위에 죽은 듯이 누워있던 히나타에게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오이카와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 탓일까. 쿵쾅쿵쾅 뛰는 자신의 심장께를 오른손으로 꾸욱 누르며 오이카와는 애써 괜찮은 척 싱긋 웃었다.


으응? 왜 그래, 치비 짱?”

혹시 깨웠어요?”

치비 짱. 말투.”

, , 내가 깨웠어?” 

아니! 오히려 내가 깨운 거 아냐? , ……. 계속 뒤척였고?”


옆에서 자는 사람을 신경 쓰이게 만들 만큼 자신이 뒤척이고 있었던 건 자각하고 있다. 미안, 이라고 짧게 사과하면 히나타가 당황한 듯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 보였다. 어느 정도 어둠에 눈이 익숙해진 탓일까, 지금 히나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대강 느낄 수 있었다. 표정이 보고 싶지만 지금은 당황하는 모습만으로 만족하자고 생각하며 그 모습을 관찰하고 있으면, 히나타의 표정이 순간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치비 짱?” 


순간 불안해졌기 때문일까. 오이카와가 조심조심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래도 대답이 없어 내심 불안해하고 있으면, 히나타가 고개를 들었다.


대왕님.”

, ?” 


오랫동안 다물고 있던 입에서 나온 것은 의외로 진지한 목소리였기 때문일까, 오이카와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에 힘을 주었다. 지금이 밤이고, 불빛이 하나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빛이 있었다면 긴장했다는 얼굴이 히나타에게 전부 드러났을 테니 말이다. 아직도 히나타를 후배라고 생각해서 인지, 다른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오이카와는 그의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싶었다.


저기, 물어봐도 되요? 왜 집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지.”


이번엔 오이카와가 입을 닫을 차례였다. 답지 않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나 했더니, ‘터부를 건드려도 되는지 고민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방금 전의 침묵도 이해가 간다. 예전에 오이카와가 히나타의 터부를 건드렸을 때의 일을 떠올리고, 혹시 자신도 똑같은 짓을 하지 않을 까 고민하고 있는 거겠지.

이 문제는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걸 두 사람을 알고 있다. 그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고 있다. 그렇기에 오이카와는 지금 히나타가 내뱉은 질문이 가볍게 내뱉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언제나처럼 장난스럽게 비밀~.’이라고 어영부영 넘어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말을 내뱉기까지 고민하고 고민했을 테니까.


………왜 묻는 건데?” 


그래서 장난스럽게 넘기지 않고 제대로 마주하기로 했다. 한가 지 오산이 있었다면, 자신도 모르게 낮은 소리가 나갔다는 것이었다. 그 목소리에 히나타는 물론이고, 오이카와의 표정에도 당혹감이 서렸다.


, . 치비짱-? 오이카와 씨는 화난 게 아니에요! 그냥 단순히 호기심에 물어본 걸까?”

………….”

. 망했다.’


뒤늦게 밝은 목소리로 변명을 해보았지만 여전히 무거운 침묵은 계속되고 있었다.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이런 문제가 되면 난 맨날 치비 짱에게 실수만 하고 있다 말이지.’


반성은 하고 있고, 이후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이것저것 어떻게 할지 생각은 하고 있지만 결과는 계속 이 모양 이 꼴이다. 왜 평소처럼 받아칠 수 없는 걸까. 자신의 한심함이 짜증났는지 크게 한숨을 내쉰 오이카와는 각오를 다지듯이 주먹을 꽉 쥐었다.


“-이와 짱이 무서워서야.”


그의 대답에 베게에 얼굴을 박고 있던 히나타가 고개를 들었다. 히나타가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을 확인한 오이카와는 천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여기에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이와 짱이랑 한 번 만난 적이 있어. ‘오이카와 토오루가 배구를 관둔 탓인지 두 사람의 사이는 서먹한 상태였지만.”

 

[ 이와짱. 나 배구 다시 시작했어!! ]

 

그 골을 메우고 싶은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만나 그렇게 외쳤다. 오이카와에게 있어서 이와이즈미 하지메라는 존재는 소꿉친구라는 것으로 설명하기 부족한 존재였다. 어렸을 적부터 함께 배구를 하고, 같은 팀에서 에이스와 세터로써 고등학교 마지막 시합 때까지 함께 울고 웃고 떠들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을 그 절망의 바다에서 끌어올려준 구원자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일까.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놓고 싶지 않았다. 여태까지 함께 싸워왔던 전우를, 자신을 구원해준 존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눈앞에 있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이와이즈미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와이즈미 하지메라는 존재와 서먹한 관계로 있고 싶지 않다는 것이 본심이었다.

두 사람이 서먹해진 이유는 틀림없이 배구겠지. 그러니 배구를 시작하면 오이카와는 서로가 잘 알고 있는 관계로 되돌아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주제에 말이다.

 

[-어차피 지금뿐이잖아. 기억을 되찾으면 또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텐데.]

[-뭐가 아니야. 아닐 거란 보장이 어디 있어. 나는 이미 너에게 실망했는데.]

[-돌아가. 내 비위 맞추려고 배구 할 생각도 하지 말고. ]


그러니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도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이카와는 이 세계와 제대로 마주하려 들지 않았다. 머리로는 다른 세계다. 라고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마음속 어디서 엔가에는 자신이 원래 있던 세계에 대입했고, 언젠가는 다들 오이카와가 알던 언제나처럼 대해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오이카와의 오만에 대한 질타였다.

너의 장소는 여기에 없다.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밀어내는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는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창피했다. 그제서야 현실을 깨달아버렸다. 그리고 증오했다. ‘오이카와 토오루. 자신의 구원자를 실망시키게 만든 그가 , 있을 곳을 제 손으로 무너트린 그가 너무나도 미웠다. 그와 동시에 오이카와는 이제 두 번 다시 이와이즈미를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만나는 것이 무서워졌다. 또 다시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는 것이 두려웠다. 배구를 사랑하는 오이카와 토오루를 그의 입으로 부정당하는 것을 듣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래서 가고 싶지 않아. 가면 이와 짱을 만날 테니까.”


물론 오이카와는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았다. 간단히 그 곳에서 이와이즈미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만을 간단히 이야기 한 오이카와는 이걸로 끝! 이라며 이야기를 완결시켰다. 뭐라고 하면 좋을지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내가 왜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을까. 강한 후회의 감정을 막고 싶었는지 오이카와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히나타는 이해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해는 바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가라앉은 기분을 외면하고 있으면,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할 만큼 계속 따라 붙는 강한 후회를 떨쳐내기 위해 이를 악 물고 있었다.


대왕님!!!”

우와아아악???”


하지만 그럴 겨를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갑자기 뒤집어쓰고 있던 이불이 끌어내려지더니, 방금 전 까지 새카맣게 물들어 있던 시야가 조금 밝아졌다. 그리고 보인 것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히나타의 얼굴. 예상하지도 못했던 상황에 어리둥절해 있는 오이카와를 바라보며 히나타는 입을 열었다.


만나러가요! 이와이즈미 씨!”

…………?”


목적어는 있지만 누가’ ‘어째서’ ‘라는 문장이 빠져있었기 때문일까. 오이카와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몇 초정도가 지나야 그것이 이와이즈미를 만나러가자라는 뜻이라는 것을 이해한 오이카와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이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은 것일까. 분노가 뱃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각을 확하고 올라왔지만, 참아야한다고 생각하며 억지로 그 감각을 억눌렀다. 여기서 큰소리를 치며 화를 낼 수는 없다. 그렇게 자신에게 몇 번이나 되뇌이며 오이카와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치비 짱. 치비 짱. 내 이야기 제대로 들었어? 이와 짱은 말야.”

하지만 그 때 제대로 이야기 해본 건 아니잖아요? 저는 그렇게 들렸는데.”

………….”


히나타의 지적에 오이카와는 무심코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그때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말에 반박하지 못한채 도망쳐버렸다.

 

-뭐가 아니야. 아닐 거란 보장이 어디 있어. 나는 이미 너에게 실망했는데.

-돌아가. 내 비위 맞추려고 배구 할 생각도 하지 말고.

 

그 말을 들은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에게 맞설 기력을 전부 잃어버렸다. 그는 오이카와가 배구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기에, 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면서 배구를 계속 해봤자 나는 너에게 실망한 채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먼저 벽을 만들었다. 그리고 오이카와는 그 벽을 본 순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말았다. 자신이 오이카와 토오루가 아닌 이상, 이와이즈미와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아니, 처음부터 오이카와가 알던 원래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그래서 도망쳐버렸다. 그리고 지금도 그와 마주하는 것이 무서워서 계속 도망치고 있었다.


…………만나서 뭘 어쩌라고.”

만나서 제대로 이야기를 해야죠.”


계속해서 아픈 곳을 찔려오는 히나타를 원망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오이카와가 중얼거렸다. 누워있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히나타의 눈동자가 어둠속에서 빛나는 것 같다. 저 시선이 무섭다고 생각하면서도, 시선을 피할 수 없다. 마치 뱀 앞에 있는 개구리가 된 것 같은 심정이다. 무심코 침을 꿀꺽 삼킨 오이카와는 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어떻게든 말을 쥐어짜냈다.


무슨 이야기를? 실은 난 네가 알고 있는 오이카와 토오루가 아니야, 라는 이야기라도 하라고?”


지금 옳은 것은 히나타고, 틀린 것은 자신이다. 그런 것 정도는 구별할 수 있는 이성은 갖고 있었지만, 그걸 인정하면 히나타에게 지는 것 같아 오이카와는 억지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치비 짱. 그들은 나를 오이카와 토오루라고 알고 있지만, 실상 나는 그 녀석이 아냐. 나는 이 세계에 있어서 이방인이고, 표류자인데. 있을 곳이 없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뭘 더 어떻게 하겠어??”

그렇다고 지금 이대로 있을거에요?”


히나타의 말에 오이카와는 다시 한 번 입을 닫았다. 평소에는 나는 생각이 없다, 머리가 비어있다는 듯이 행동하는 주제에 중요할 때엔 본질을 찔러온다. 언젠가 보았던 시선이, 눈동자가 자신을 보고 있다.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게 확신 할 수 있었다.


이대로 있을거에요? 그래도 괜찮아요? 대왕님?”

……괜찮을 리가 없잖아!”


그렇다. 괜찮을 리가 없다. 괜찮지 않다. 이대로 이와이즈미와 평생 타인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하지만, 전부 끝나버렸다고? 치비 짱? 전부 늦어버렸어.”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 토오루에게 실망했고, 오이카와는 그런 이와이즈미에게서 도망쳐버렸다. 그걸로 전부 끝난 것이다. 그것이 마지막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오이카와는 멍청하게 그 기회를 날려버렸다.

싫다. 그런 건 싫다. 이와이즈미와 그렇게 될 바에는 차라리 평생 우시지마에게 이기지 못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오이카와에게 있어선 이와이즈미 하지메라는 존재는 없어서 안 될 존재였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나아가 보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아는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 세계에서 어떻게든 혼자서 나아가보려고 했다. 아무도 없는 심해 속에 표류되었다는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출발이라고 생각하며 어떻게든 버티고, 아픔을 묻고, 모르는 척하면서 평소의 오이카와 하지메를 연기했다. 또 다시 물로 인해 숨통이 막히는 것 같은 나날이 계속되었지만, 이건 어리석은 자신에게 주어진 대가라며 오이카와는 힘겹게 심해 속에서 버텼다.


그런 거, 누가 정했어요?”

……?”


히나타의 말에 오이카와가 덜미를 잡힌 사람처럼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오이카와를 바라보며 히나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이건 시합이 아니잖아요. 시합 끝, 게임오버라는 개념은 없어요. 대왕님.” 


전혀 생각도 해보지 못한 발상에 순간 오이카와의 눈동자가 작아졌다. 하지만 쓸데없는 오기가 생겨서일까. 그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이유를 만들고 싶어서였을까. 오이카와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반론을 시작했다.


“이, 이와 짱은 나보고 돌아가라고 했어. 그건 더 이상 네 얼굴도 보기 싫다는 거잖아.”

하지만 두 번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지마, 라는 말은 안했잖아요.”

그게……! 그거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힐 뻔했지만, 다행히 오이카와의 입에서 큰 소리가 나오는 일은 없었다. 순간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목소리 용량에 안심한 오이카와는 작은 목소리로 반론을 시도했다.

히나타의 말은 억지로 들리지만, 실은 정론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에게 두 번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거나, 그 얼굴 보이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인정해버리면, 이와이즈미에게는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자신이 먼저 거리를 둔 것 같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오이카와는 필사적으로 자신이 이와이즈미를 만나선 안 될 이유를 대기 시작했다.


, 이와 짱은 나와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아 하는데, 제대로 이야기가 될 리가…….”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든 이와이즈미씨를 잡아 놓을게요!”


이야기를 들어줄 때까지 절대 그 자리에서 못 움직이게 할 테니 안심하세요. 맡겨만 달라는 듯이 히나타가 두 주먹을 꽉 쥐는 제스쳐를 취했다. 어째서일까.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이와이즈미에게 매달리는 히나타가 떠올랐다. 분명히 시선을 확 끌겠지. 맡겨도 되는 걸까. 라고 생각하며 오이카와는 또 다시 반론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만나서, 어쩌라고. 뭘 말하는 거야?” 

대왕님의 본심이요.” 


히나타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오이카와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오이카와 토오루 건, 대왕님이건, 일단 지금은 그 문제는 넘어가고, 현재 대왕님이 무얼 생각하는지, 뭘 하고 싶은 지 말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들어주지 않는다면?” 


아직도 자신을 거부하며 발걸음을 돌리는 이와이즈미의 모습이 뇌리에 남아있다. 오이카와를 거부하겠다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그에게 이야기를 한 들 그는 들어줄까. 자신의 본심은 닿을 수 있을까. 불안한 듯 오이카와는 자신의 왼쪽 가슴팍을 꽉 잡았다.


그럼 선언을 하죠!”

……선언?”

언젠가, 제가 카게야마 녀석에게 했던 것처럼-.”


히나타의 표정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를 듣고 알 수 있었다. 그 때의 일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아직 그도 전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그 자리에서 외치고 도망치죠 뭐. 제가 잡고 있을 테니 싫어도 들을 것 아니에요.”


오이카와의 머릿속이 한 순간 정지했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바보 같은 일이다, 쓸데없다, 라는 말이 떠다니고 있었지만 정작 오이카와의 입에서 나온 것은 허탈한 웃음소리뿐이었다.


………………하하. 뭐야 그건. 엉망진창이잖아.”

그래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 안 해요?” 


어둠속에서 히나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웃음소리에, 그가 내놓은 해답에 오이카와는 한동안 벙찐 얼굴로 히카타를 바라보더니, 곧 히나타의 웃음이 전염되기라도 했는지 그를 따라 작게 웃기 시작했다. 어처구니없었다. 하지만 왜일까. 그 방법도 괜찮다고 생각해버렸다.


그러게. 확실히 좋은 방법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이와이즈미의 말은 일방적이었다. 그러니 이쪽도 일방적으로 공격해줘도 상관없겠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과거의 자신이 바보같아졌지만, 그래도 지금 안 것이 어디냐고 생각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이와짱이 도망가지 못하게 막아준다는 건……. 치비짱 도 같이 와주겠다는 거?”

그럼요!”


두 주먹을 꽉 주며 결의에 찬 얼굴의 히나타를 본 순간 그를 놀리고 싶어졌기 때문일까. 저 자신만만한 얼굴을 당황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이라고 생각하며 오이카와는 미소를 띄웠다. 히나타가 보면 히익, 마왕의 미소다. 라고 할 정도로 불온한 미소였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위가 어두운 탓에 히나타가 그 미소를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럼 나랑 같이 이와 짱에게 혼나줄 거지?”

“-.”


전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일까. 히나타의 움직임이 한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예상대로의 모습에 오이카와는 재미있어졌는지 일명 마왕미소를 짙게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뭐야, 치비 짱. 나한테는 이와 짱을 만나러가라, 라면서 등을 떠밀어 준 주제에 이젠 나몰라라 하는 거야? 이젠 나를 내버려 두는 거?” 

, 같이 혼나드릴읍읍!”


오이카와의 풀죽은 연기가 통했기 때문일까. 히나타가 각오했다는 듯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그 목소리가 컸기 때문일까. 오이카가 이런 미친, 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히나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급히 그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히나타도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렸는지 오이카와의 행동에 큰 저항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초 정도 있었을까. 다행히 옆방에서 자고 있는 나츠가 깨어난 것 같지는 않았다. 그걸 다행으로 여긴 두 사람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치비 짱? 조용히 할 거지?”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아는 주제에 모든 잘못은 히나타에게 있다는 듯이 물으면, 히나타는 그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오이카와가 손을 떼는 와중에도 히나타의 입에서 대왕님이 잘못한 거잖아요. 라는 질타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바보인건지, 아니면 도량이 넓은건지. 순간 생각한 의문에 그냥 이건 바보다. 라고 결론을 내리며 오이카와는 입을 열었다.


그럼 휴일날 가는 걸로?”


골든 위크 중 3일은 훈련, 4일은 각자 집에 돌아가서 쉬라고 들었다. 아마도 히나타는 이 때 즘 이와이즈미를 만나러가자고 주장한 것이겠지. 오이카와의 추측이 맞다는 듯이 히나타가 고개를 끄떡이자, 오이카와는 크게 한숨을 쉬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알았어. 그 날 돼서 도망치기는 없기야.”


-도망치고 싶은 건 너면서.

입 밖으로 내뱉은 자신의 말에 오이카와는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비난의 말을 내뱉었다. 제대로 그와 마주하자고 결심한 지금도 실은 도망치고 싶다. 그 마음을 숨기기 위해 히나타에게 짖굳은 말을 하고 있는 자신에게 혐오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걱정 마세요! 절대 도망 안갈테니까요!”


자신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두드리는 히나타를 보며 오이카와는 쓴 웃음을 지었다. 알고 있다. 오히려 히나타는 가기 싫어하는 오이카와를 끌고 갈 아이지, 절대 당일에 도망칠 아이가 아니었다. 알면서도 묻는 건 어디까지나 심술이고, 자신에 대한 혐오감 때문이다. 하지만 히나타는 오이카와의 마음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기쁘다는 감정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럼 잘까. 치비 짱. 시간도 늦었어.” 


히나타의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미묘한 기분을 껴안은 채 오이카와는 안녕히 주무세요, 라고 말하는 히나타에게 가벼운 대답을 해주고선 다시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갔다.

 

* * *

 

그 날, 꿈을 꾸었다.

여전히 오이카와는 심해 속에 가라앉아있었고, 숨을 쉬는 것도 힘들었는지 팔다리를 필사적으로 휘젓고 있었다. 오이카와 본인도 그 모습이 꼴사납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살고 싶었기에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움직였다. 하지만 이윽코 힘이 다 빠졌는지 그의 팔다리가 축하고 늘어졌다.

-아아, 이젠 지쳤어.

-……포기할까.

-숨이 막히는 건 익숙하잖아. 괜찮아. 또 다시 익숙해질 수 있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을 끌어올려주었던 구세주는 이젠 없다. 그러니 여기서부턴 자신 혼자서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버텨보았지만 이젠 한계였다.

힘낼 수가 없다. 수면 밖으로 올라갈 수 없다. 그러니 포기하고 숨이 막힌 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누군가가 오이카와의 뒷덜미를 잡았다. 그게 누구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오이카와의 몸이 서서히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무슨 꿈을 꿨더라.”


꿈은 거기서 끝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꿈의 내용은 일어나자마자 전부 잊어버렸다. 꿈을 꿨다는 자각은 있지만, 그것이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 왠지 껄끄러웠다.


뭐 어때. 그냥 꿈이고.’


만약에 악몽을 꿨다면 기분이 찝찝했을 텐데, 그런 기분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상쾌해졌다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서, 오이카와는 더 이상 생각을 관둔 채 이불에서 나왔다.

Posted by 카멜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