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하세요! 이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엉망진창이 된 방을 보고 새하얗게 질린 얼굴의 이토가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을 힘겹게 바라보던 치즈루는 언젠가 히지카타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운이 나쁜 녀석이군. 이라는 말을.
확실히 히지카타의 말 대로 유키무라 치즈루는 ‘운이 없는 편’에 속하는 아이였다. 물론 지독하게 운이 없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정말 운이 찢어질 정도로 없었다면 치즈루는 지금쯤 살아있는 목숨이 아니었을 테니까. 치즈루에게 없는 ‘운’이란, 보통 사람들이라면 왠만해서 마주치지 않을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확률을 뜻했다. 처음 신선조를 만났을 때라던가, 니죠성에서 ‘오니’들과 마주쳤을 때라던가, 산난이 오치미즈를 마실 때라던가, 불과 몇 분 전, 자신의 방에서 살해당할 뻔한 ‘지금’이라던가.
오늘도 평소와 그리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 순찰에서 카오루를 만나고, 오키타에게 따끔한 이야기를 들은 것을 제외하면.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지적을 당하니 우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 치즈루가 한 일은 자칫하다간 위험한 일이었고, 치즈루 자신도 자신의 행동이 어리석다는 것은 확실히 자각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내일부터는 좀 더 행동에 조심을 해야겠다. 그런 자신을 반성 한 후, 이불속으로 들어가 잠들면 그 날도 평소처럼 끝났을 것이다.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 한 대사가 갑자기 방으로 들어오기 전 까지는 말이다.
갑자기 치즈루 방에 아무 말 없이 들어온 대사는 평소에 교류가 없던 대사였는지 치즈루는 그의 얼굴을 봐도 누구? 라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얼른 여기서 빠져나가야 한다며 머릿속의 경종이 강하게 들려왔지만, 동시에 섣불리 움직이면 끝장이라고 머릿속 어디선가에서 주장해왔다.
어떻게든 틈을 봐서 빠져나간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것이 지금의 최선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치즈루가 계속 대답 없는 대사를 향해 말을 걸며 어떻게 할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고민하고 있을 때, 남자가 갑자기 무어라 홀린 듯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치즈루를 향해 칼을 뽑고 덤벼들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공중에 붉은 무언가가 흩날린 것은. 그리고 치즈루가 그것이 자신의 피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아팠다. 팔뚝이 불타는 듯이 아파왔다. 그와 동시에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순간 아픔과 뜨거움 외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자 치즈루는 한 순간 혼란에 빠졌다. 팔이 한 순간 날아갔다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과 달리 그녀의 팔은 멀쩡하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제대로 붙어있었고, 격통 속에서 치즈루는 팔이 잘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하지만 안도하기에는 이르다는 듯이 치즈루의 귓가에 남자의 미친 듯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은 베였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아파하고 통탄할 때가 아니라고 경고하는 것만 같은 그 목소리에 치즈루는 고개를 젓고선 아랫입술을 꽉 악물었다. 정신차려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 잘려나가는 것은 자신의 목이나 가슴팍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내이며 치즈루는 반쯤 베인 팔을 부여잡고 필사적으로 어디론가 기어갔다. 어디로 기어가는 지조차 모르는데다가, 꼴사나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치즈루는 그저 살아남아야한다는 생각으로 남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 때, 보고 말았다. 자신을 베어버린 남자의 머리가 어느 샌가 새하얗게 변해있다는 것을. 남자의 눈동자가 새빨갛게 변해 있다는 것을.
“히, 히히. 피다. 피다……!”
그리고 치즈루가 흘린 피가 묻어있는 다다미에 달려들어 게걸스럽게 핥기 시작하는 모습을 본 치즈루는 남자가 무엇인지 확신했다.
-나찰이다.
그렇게 인식한 순간 치즈루는 그냥 움직여서는 안 된다, 얼른 이 방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문이 있는 곳으로 기어가려했지만, 나찰이 괴상한 동선으로 피를 핥으며 진로를 방해하는 바람에 치즈루는 구석으로 몰리고 말았다. 의도한 것인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인지 치즈루는 알 수 없었지만, 단 하나 그녀에게도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지금이 정말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문에서 떨어져 있고, 눈앞에는 나찰이 있다. 치즈루가 자력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죄다 막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지. 고통으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치즈루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그녀가 첫 번째로 나찰과 조우했을 때엔 그것들이 탈주한 것을 눈치 챈 사이토와 오키타, 히지카타가 도와주었고, 산난에게 죽을 뻔 할 때에는 오키타가 도와주었었다. 자력으로 나찰에게서 벗어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치즈루는 어떻게 하지, 라며 중얼거렸지만, 산난 때의 일을 떠올리자 연쇄적으로 예전에 오키타가 자신에게 해준 말이 그녀의 뇌리에 떠올랐다.
[만약에 무서운 것을 본다면, 큰 소리를 내서 도움을 청하도록 해.]
그 때도 그 말 덕분에 치즈루는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그 때 그 방법으로 목숨을 건졌다 해도 이번에도 그 방법을 써도 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 때도 지금도 목숨이 위험하다는 전제는 같았지만, 그 때는 대사들의 방에서 꽤 떨어져있고 밤중에는 잘 다니지 않는 히로마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지금은 어느 정도 다른 대사들과 가까이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만약, 자신의 도움요청에 사정을 모르는 대사가 오면 어떻게 하지?
그나마 사정을 모르는 대사가 온다고 해도 소마나 노무라 같은 치즈루에게 호의적이거나, 신선조 간부들에게 호의적이거나 동경하는 대사라면 괜찮다. 하지만, 이토파의 대사가 온다면? 최근의 신선조는 파벌이 나뉘어지는 바람에 그다지 온건하다고 볼 수 없었다. 만약에 이 광경을, 나찰을 이토 파 사람에게 보인다면-. 거기까지 생각한 치즈루는 두려움에 목소리를 높일 수 없었다.
“----해.”
“읏”
다다미와 칼에 묻은 피를 다 핥아먹었는지 나찰이 바틀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치즈루에게는 확실히 들렸다. ‘부족해’라고. 그리고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치즈루는 싫어도 알 수 있었다. 더 많은 피를 얻기 위해서 자신을 다시 한 번 베어버린다는 의미겠지. 정말 그렇게 선언하듯이 나찰은 다다미에 묻은 피를 햛을때도 계속 쥐고 있던 검을 고쳐잡았다.
아아, 이번엔 정말, 죽는다.
머릿속에서 위험을 알리는 경종이 울렸지만 치즈루에게는 현재 혼자서 이 사태를 바꿀만한 능력이 없었다. 적어도 팔이 멀쩡하고, 검이 있었다면 크게 다치는 일이 있더라도 목숨을 부지한 채 도망쳐나와 히지카타나 다른 간부들에게 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죄다 가정하의 일 일 뿐이지 확실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 지금 치즈루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있었다.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치즈루가 할 수 있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나찰에게 죽거나, 혹은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던가.
[이상한 사양은 하지 마.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도와달라고 하면 되니까]
“누, 누가-, 누가 도와주세요!!!!”
나찰이 느릿느릿하게 검을 들어 올리는 순간, 치즈루의 머릿속에서 낮에 오키타가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말에 의지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눈을 꽉 감고 목소리를 높여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는 어디에도 닿지 못한다는 듯이 나찰이 낄낄 웃으며 치즈루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그것이 치즈루의 눈을 감기 전 마지막 광경이었다.
-푸욱.
눈을 꽉 감고 있는 치즈루의 귀에 익숙하지만 전혀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칼이 살갗을, 내장을 꿰뚫는 소리다. 하지만 치즈루에게는 아무런 고통도 없었다. 그 대신이었을까, 나찰이 갑자기 고통스러운 듯 울부짖기 시작해 치즈루는 조심조심 눈을 떴다.
“유키무라! 살아있냐!”
그것과 동시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면, 방문 앞에서 히지카타가 무언가를 던진 자세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히지카타 씨?”
“좋아, 살아있는 거지! 너 그대로 움직이지 말고 있어!!”
필사적으로 달려왔는지 숨을 헐떡이면서도 히지카타는 긴박한 얼굴로 치즈루와 나찰 사이로 파고들었다.
언뜻 보았을 때 치즈루와 나찰의 위치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이 그 사이를 파고 들어가는 것이 가장 그녀를 지키기 쉬울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움직인 히지카타는 재빨리 방금 전 자신이 던져 나찰의 팔을 꿰뚫은 와키자시를 거칠게 뽑아 회수한 뒤 나찰을 발로 차버렸다. 히지카타가 검을 최대한 아프게 뽑아가자 아픔에 비명을 지르던 나찰은 속절없이 히지카타의 발차기에 나가 떨어졌다. 물건을 부수는 요란스러운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나자, 치즈루는 거기에 두려움을 느꼈는지 두 눈을 꽉 감았다.
“히지카타 씨! 치즈루는???”
그리고 치즈루가 다시 눈을 뜬 것은 익숙한 목소리가 또 다시 들려온 후였다. 히지카타와 똑같이 필사적으로 여기까지 달려왔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는 세 사람에게 무언가 말 하고 싶은지 입을 열려는 히지카타였지만, 자신에게 나가 떨어져버린 나찰의 팔이 움찔하는 것을 보고 급히 자세를 잡았다.
“-어이, 방심하지 마! 아직 숨통은 못 끊었어!”
“으, 으악! 이게 뭐야! 피투성이잖아?? 히, 히지카타 씨! 치즈루는? 이거 그 아이 피 아니지?”
“반쯤은 그 녀석 꺼다! 그보다 헤이스케! 하라다! 신파치! 다른 녀석들은? 상황은 지금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그, 그게. 확실히 소란은 일어났고 이토 파에서도 소란을 눈치 챈 녀석이 몇 명 있어! 하지만 그건 사이토와 소지가 어떻게든 막아주고 있어! 그보다,”
“그보다 그 아이는? 무사한 거 맞지???”
방안이 생각보다 피투성이인데다가 히지카타가 ‘반쯤은 그 녀석 꺼다’라고 한 것이 그들이 불안을 부추겨서 였을까, 하라다가 대강 설명을 하고선 나가쿠라가 다급하게 치즈루의 무사를 확인했다. 계속해서 자신을 신경 써 주는 세 사람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느껴져서 였을까, 치즈루는 베이지 않은 쪽의 팔을 흔들며 자신의 생존을 알렸다.
“괘, 괜찮아요! 살아있어요!”
“-치즈루!”
“괜찮……!”
“읏”
치즈루가 손을 흔들자 세 사람은 처음에는 치즈루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곧 치즈루가 흔든 손에 묻은 대량의 피를 보고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급히 치즈루가 어디를 다쳤는지를 확인하고선 숨을 들이켰다. 왼쪽 어깻죽지부분의 옷이 대부분 피로 물들었다는 것은 피가 대량으로 나올 정도의 큰 상처를 입었다고 봐도 무방했으니까.
살아있지만, 무사하지 않다.
그 사실은 방금 전 까지 치즈루가 살아있다는 것에 안도했던 세 사람의 얼굴을 일그러트리기에는 충분했다.
“--젠장! 너 치즈루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이번에 탈주한 녀석이 상당히 미쳤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 까지라면 살려 둘 수는 없겠는데”
“그래. 얼른 해치우고, 정리하고, 치즈루 짱이 얼른 치료받게 하자고.”
분노를 한껏 표출하는 헤이스케와 달리 하라다와 나가쿠라는 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치즈루는 그런 두 사람에게서 헤이스케 못지않은 분노를 느꼈다. 두 사람의 기백에 잠시 밀려 치즈루가 입을 꽈악 닫는 것과 동시에, 헤이스케가 자세를 잡았다.
“한방에 끝낼 수 있지? 신팟 짱? 사노 씨?”
“지금 누구에게 말하는 거야. 헤이스케.”
“신파치도 말했잖아. 얼른 끝내고 치즈루를 치료받게 해야 한다고. -간다!”
창의 칼집을 집어 던지는 것과 동시에 하라다가 기괴하게 몸을 비틀고 있는 나찰에게 돌진했다. 하지만 나찰은 그런 하라다의 살기도 행동도 관심 없다는 듯이 그저 피를 흘리고 있는 치즈루를 향해 돌진했다.
“-유키무라. 눈 감아!”
하지만 그걸 방관할 히지카타가 아니었다. 나찰의 칼을 쳐 궤도를 바꾼 그는 망설임 없이 나찰의 가슴팍에 검을 찔러 넣었고, 그와 동시에 하라다의 창이 나찰의 목을 꿰뚫었다. 그러자 나찰이 기분 나쁜 단말마를 질렀지만 두 사람의 공격으로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헤이스케와 나가쿠라도 뒤이어 급소에 자신의 검을 찔러넣었다가, 동시에 검을 빼버렸다. 이번엔 정말 숨통을 끊어버린 것일까. 입안에서 기분 나쁜 소리를 내던 나찰은 그대로 철푸덕, 하고 피웅덩이 속으로 몸을 무너트렸다.
‘……끝난 거야?’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피 웅덩이 속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나찰은 정말 죽은 모양이었다. 더 이상 치즈루를 습격하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끝났다는 실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분명히 전부 끝났는데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치즈루는 멍한 표정으로 점점 자신의 방의 다다미를 자신의 피로 물들이고 있는 나찰을 바라보았다.
‘……아냐. 이걸로 정말 끝난 거야.’
무서운 것도. 아픈 것도. 악몽 같던 밤은 이걸로 끝이다.
“……윽.”
그렇게 생각하자 긴장이 풀린 것일까. 방금 전 까지 아무런 감각도 없던 상처에서 격심한 고통을 느꼈다.
정신이 없으면 잠시 고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고 예전에서 책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그걸 이런 식으로 몸으로 알게 될 줄은 몰랐다. 아니, 이런 식으로는 정말 알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치즈루는 아프다며 비명을 지르는 상처부위를 잡고서 입술을 깨물며 작게 신음 소리를 흘렸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옆에 서 있던 히지카타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는지 히지카타는 순간 당황한 얼굴로 치즈루를 바라보았다.
“유키무-”
“당신들! 대체 이 야심한 시간에 뭘 하시는 건가요. 밤중에 소란을 피우면 민폐라는 거 모르나요?”
그런 그녀를 걱정한 것인지 히지카타가 무어라 말하려는 찰나, 이 곳에 있어선 안 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청 피곤한 얼굴로 ‘그 사람’이 치즈루의 방 앞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머릿속이 새 하얗게 변한 것은 치즈루 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하라다와 나가쿠라, 헤이스케는 물론, ‘그’ 히지카타 마저 그의 등장에 놀랐는지 한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등장에 당황한 것은 ‘나찰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아니었다. 치즈루의 방 안의 참상에 놀란 것은 나찰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그-. 이토 카시타로도 마찬가지였다.
이토가 이 곳에 온 이유는 그냥 ‘밤중에 시끄럽게 하지 말고 얼른 잠이나 자’라고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콘도파의 대사들은 소란을 자주 일으킨다. 술잔치를 벌인다던가, 누구와 말싸움을 해서라던가, 간부끼리 간단히 대련을 해서 일을 키워서 소란스러운 일을 만든다던가, 그런 식으로 시끄러운 일을 자주 일으킨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런 류의 일이라고 멋대로 판단했다.
하지만 평소라면 이토는 동생인 미키라던가, 밑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을 보내서 조용히 시키라고 하고 자신은 그냥 신경을 쓰지 않는 방침으로 갔을 텐데, 오늘의 이토는 정말로 피곤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많았기에 반쯤 졸면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무언가 일이 터졌다는 듯이 소란스러우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화가 나서 쫒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일 것이다. 자기가 가서 조용히 시키겠다는 부하들에게 자신이 가서 한마디 해주고 오겠다며 이토는 소란의 근원지로 향했다. 중간에 소란의 목적지가 치즈루의 방이라는 점이라던가, 어째서인지 쎄한 느낌을 받았지만 당시의 이토는 분노로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 머릿속에서 울리는 경종을 무시하며 치즈루의 방에 모습을 보였고, 이 참상을 보고 말았다.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하지만 예상 밖의 일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녀의 방 안을 보자마자 방금 전까지 반드시 해주고 말겠다는 불평불만의 말들은 전부 사라져버리고, 대신 피가 식은 감각만이 그의 전신을 지배해버리고 말았다.
“뭐, 뭐죠. 이 상황은……!”
이토가 이렇게 당황하는 것도 당연한 반응이었다. 불평불만을 말하러왔는데 살인현장이 펼쳐져 있는 셈이었으니까. 당황한 나머지 둔소 전체에 다 들릴 정도로 소리를 지르지 않은 것 만해도 다행이었다.
“설명할 시간을 드리죠. 이게 대체 뭡니까? 제 눈에는 간부들이 합세해서 대사를 죽인 걸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만! 제 견해가 틀리다면 얼른 반박해보시죠!”
물론, 지금 이 상황도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물론 반박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토는 정확히 상황을 읽었다. 그랬기에 간부들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토는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걸론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는지 이토는 더 말하라는 듯이 히지카타를 째려보았다가 다시 한 번 시체로 눈을 돌렸다.
“…………거기 있는 대사, 본 적이 있어요. 분명 규칙위반으로 할복 했던 대사였을 터. 그리고 이 피… 상처, 당신들이 한 건가요. 할복 시킨 대사를 빼돌리고, 지금 죽이다니. 무슨 짓인가요. 이건!”
“아, 저기. 아냐. 이토 씨. 이건 말야.”
“뭐가 틀리다는 건가요! 지금 제 말이 틀렸다는 건가요?? 그럼 뭔가요. 어서 설명해보시죠!”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헤이스케가 변명을 시도해보려 했지만, 이토는 그 변명을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잘라 내버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간부전원이 대사 하나를 합세해서 죽이다니! 자아, 설명하세요! 어설픈 변명으론 이 이토를 납득시킬 수는 없을 겁니다! 유키무라 군은 왜 다쳐 있는 건가요! 이 대사에게 당한 건가요? 아니면 당신들이 한 건가요!”
“아, 아니에……!”
“-우리가 치즈, 아니, 유키무라를 이렇게 할 리가 없잖아!!!”
이대로라면 간부들이 치즈루를 베었다는 의심을 받는다. 그들은 자신을 구해준 것뿐인데. 아픔으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였지만 어떻게든 그것에 대해 변명을 하려 입을 열려고 어떻게든 입을 열어보려했지만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치즈루는 물론 다른 간부들도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어떻게든 입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에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입을 열려는 찰나-,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 그걸 설명을-”
“-여러분, 죄송합니다. 전부 제 감독 불찰입니다.”
이토가 기백 있게 소리 친 순간, 또 다시 치즈루의 방에 와선 곤란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목까지 닿는 갈색의 머리카락, 특징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동그란 안경. 그리고 초록색의 기모노. 산난 케이스케였다.
이 사태에 책임감을 느낀다는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는 그의 모습에 치즈루를 포함한 모두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의 등장에 가장 놀란 것은 물론 이토였다.
“사, 산난 씨? 어째서 당신이 여기에...???”
산난 케이스케는 니시혼간지로 둔소 이전을 해야겠다며 콘도와 히지카타에게 자신의 의견을 묵살 당하자 에도에 돌아가겠다는 쪽지를 남긴 채 대를 탈주하였지만 오미 국 에서 오키타 소지에게 붙잡혀 끌려와 할복했다. -라는 것이 나찰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는 산난 케이스케의 말로였다. 그리고 이토도 산난이 그렇게 죽었다고 굳게 믿고 구까지 읊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갑자기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났다. 한 순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은 짓던 이토는 곧 귀신을 본 것 같은 듯한 표정으로 산난을 손가락질 하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사람을 손가락질하는 행위는 무례한 행위라고 계속 미키에게 잔소리를 하던 그였는데,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것을 보아하니 엄청나게 놀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신, 그 때 탈주해서 죽었던 것이……!”
“……………….”
그런 이토처럼 처음에 히지카타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곧 왜 나왔냐고 비난하는 듯 한 표정으로 산난을 째려보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토는 산난을 인식해버렸으니까. 다들 그가 지금 나온 것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품으며 산난에게 시선을 돌리거나, 혹은 체념한 얼굴로 땅바닥을 내려 보거나, 복잡한 표정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별로, 산난씨의 탓도 아니잖아.”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애매한 것인지, 나가쿠라도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헤이스케도 산난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었던 것일까, 허둥지둥 대며 산난을 변호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입을 열었다.
“야, 약의 부작용 같은 거잖아. 어쩔 수 없었다니까. 안 그래?”
“-약?”
그것이 상황을 더욱 더 악화시키기 좋은 말이었지만 말이다. 헤이스케의 말에 이토가 반응하자, 헤이스케는 순간 자신이 실언을 했다는 것을 인식했는지 아, 하고 새파래진 얼굴로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그 태도가 상황을 점점 더 악화시킨다는 자각을 하지 못하는 것에 속이 답답했기 때문일까, 하라다가 피가 묻지 않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고, 히지카타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한 작은 소리로 체념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태도를 보아 무언가가 있을 것이 판단했기 때문일까, 이토는 대답을 꼭 듣겠다는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들,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요. 약? 부작용? 대체 무슨 일을 한건가요!”
“자, 잠시, 무슨 이야기죠? 약? 부작용? 뭔가 실험을 하고 있는 듯한 말투인데, 아니겠지요?”
“...이 건에 대해서는 말 하기 어렵습니다.”
산난이 이토에게 한 순간 시선을 주었다 다시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발버둥 쳐보겠다는 산난의 의지에 그 자리에 있는 간부들은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고 산난만을 바라보았다.
막부의 명령으로 나찰이라는 인간이 아닌 것을 몰래 만들고 있었다. 그 사실을 적이나 마찬가지인 이토에게 순순히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밝힐 수 없다’라는 말 그렇게 어물쩍 넘어갈 수 있을 만큼 이토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토도 그 한마디로 냉정을 되찾았는지 방금 전 보다 침착해진 얼굴을 하고선 산난을 노려보았다.
“나는 산난 씨가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요. 왜 산난 씨가 버젓이 살아있는 건가요. 여기 있는 여러분이 한통속이 되어 저를 속이고 있었던 건가요? 이 이토는 이 신선조의 참모라고요? 그런 저를 속이고 이런 잔인한 짓을... 납득해 주실 때까지 설명해주셔야겠...!!”
“중얼중얼 시끄러워! 잠깐 입 다물고 있어!!”
“뭐, 뭣……?”
히지카타의 호통에 이토가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콘도파의 간부들은 자신에게 위험한 상황을 들킨 것이고, 지금 칼자루는 자신이 쥐고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아직도 상황을 파악 못한 사람처럼 호통을 치는 히지카타에 어처구니가 없는지 이토는 무어라 반박하려 입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자자, 이토 씨. 진정하죠. 토시도 진정하고.”
그 반박도 갑자기 이 곳에 합류한 콘도에 의해 한마디도 못하고 목구멍 속으로 삼켜지고 말았다. 방금 전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상황을 전부 다 파악했는지 콘도는 자연스럽게 이토와 히지카타의 사이로 들어가 두 사람의 사이를 중재하기 시작했다.
“토시도 나쁜 뜻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상황이 상황이라. 이 일은 제가 확실하게 이야기 해드리겠습니다. -단, 잠깐 시간을 주시죠. 이 상황에서 제대로 된 이야기가 되지 못할뿐더러……. 무엇보다 유키무라가 크게 다쳤습니다. 딱 봐도 상처가 심한데, 먼저 치료를 받게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어머.”
그제서야 이토도 치즈루가 다쳤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해냈는지 숨을 들이켰다.
한 때 이토는 치즈루의 의료지식을 높게 사 그녀를 자기편으로 끌여들이려고 했었다. 그렇기에 이토는 어느 정도 치즈루에게 호의를 갖고 있었고, 이대로 죽게 놔둘 생각은 없었는지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그렇죠. 유키무라 군. 얼른 치료를 받으러 가세요. 아아, 정말 야만적인 사람들! 사람이 다쳤으면 얼른 치료를 받게 해야지 왜 이렇게 방치해두고 있나요! 딱 봐도 심한 상처잖아요!”
“아니, 일단 치료를 받게 하려고는 했다고?”
그 때 당신이 들어와서 바로 보내지 못한 것뿐이지. 마지막 말을 말하면 상황이 더 꼬일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일까, 하라다는 나가쿠라가 마지막까지 말하기 전에 그의 입을 막아버렸다. 여기서 더 이상 일을 지체하면 치즈루만 위험해진다. 이토에게 들리지 않도록 하라다가 나가쿠라에게 속삭였고, 나가쿠라도 그것을 받아들였는지 고개를 끄떡이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일단 여기서는 물러서드리겠습니다. 환자가 급선무니까요! 하지만 이대로 끝날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특히 산난씨! 당신의 입으로 사정을 전부 설명해 주셔야겠어요!”
“…………………큭.”
“듣고 있나요! 산난씨!”
“크, 크아아아아아……!”
다들 이토만을 주시하고 있어서일까. 아무도 산난의 상태가 점점 이상해지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들이 산난의 상태를 알아차린 것은, 갑자기 산난이 자신의 가슴팍을 부여잡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사, 산난씨?”
“-!!! 유키무라! 물러나!!!”
“네?”
히지카타의 다급한 목소리에 치즈루가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그와 동시에 산난은 빠르게 치즈루의 앞으로 이동하더니, 그대로 치즈루의 다친 팔목을 잡았다.
“읏……!”
“치즈루!”
“에? 에????? 무슨, 뭔가요! 이건!”
다친 팔목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지금 산난이 치즈루를 쥐는 손아귀의 힘이 너무 강한 탓에 치즈루는 그 팔을 뿌리치는 것은 거녕, 주먹을 쥐는 것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을 맛보고 있었다. 아프다. 뼈가 뿌러질것만 같다. 하지만 아무리 아프다고 사정을 해보아도 산난은 놓아주지 않았다. 그저 치즈루의 귀에만 겨우 들릴 정도로 피, 피를, 이라고 미쳐버린 나찰처럼 읆조리고 있을 뿐. 그 모습에 치즈루는 그 날밤, 자신의 목을 조르던 산난의 모습을 떠올렸다.
-죽는다.
그렇게 느낀 치즈루는 어떻게든 산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산난의 악력은 그걸 허락해주지 않았다.
“놔, 놔주세요! 산난 씨!”
“……피를, 주세요. 당신의, 피를.”
이건 안 된다. 전혀 자신의 말이 닿지 않는다. 공포로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가던 그 와중, 그 상황을 그냥 두고 보지 않겠다는 듯이 이토와 콘도를 제외한 모든 대사들은 무기를 들고 산난을 째려보았다.
“산난 씨! 그만해! 어이!”
“젠장, 그러고 보니 여기 피 냄새가 충만했었지! 이럴 거라고 얼른 생각해 냈어야했는데!”
치즈루도 베여서 피를 많이 흘린 데다, 방금 전 죽어버린 나찰도 피를 한바가지 흘리며 죽었다. 그러면 치즈루의 방이 피 냄새로 가득 차는 것은 필연적인일이고, 산난이 그 냄새의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토를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에 잠시 잊고 있었다. 실책이다, 라고 중얼거리는 히지카타였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뭘 생각하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바뀔 수 없다.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후회해도 이미 늦은 상황이 되어버렸으니까.
“어떻게든 제압해! 다소 상처 입혀도 상관은 없어! 하지만 유키무라의 구출이 먼저다!”
“-칫, 어쩔 수 없지.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줘. 산난 씨.”
“치즈루를 죽게 할 수는 없으니까 말야!!”
“이, 이봐요!! 잠시 만요!”
히지카타의 지시에 다들 당장이라도 산난에게 달려들 수 있도록 자세를 잡자, 멍한 얼굴로 이 사태를 지켜보던 이토가 당혹한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당신들… 설마 산난 씨를…? 그런 행동! 이 이토가 용서하지 않겠어요!!”
그런 대사들의 행동에 가장 당황한 것은 이토였다. 상황을 전혀 읽을 수 없었으니까. 산난이 어째서 살아있는지 파악조차 되지 못했는데, 갑자기 산난이 저러는 지도 모르니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게다가 지금 모두 산난을 죽이려는 듯이 검을 빼들고 있으니, 이토의 입장에서 본다면 증거인멸을 위해 산난을 죽이려고 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간부들은 그런 이토의 행동은 치즈루를 더 위험하게 만드는 거였기에 한껏 불쾌한 얼굴로 이토를 째려보았고, 이토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자자, 무엇을 염려하는지 알겠지만 이토 씨가 염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다행히 이대로 가다간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콘도가 평소와 달리 근엄한 얼굴을 하고선 이토의 팔을 잡았다.
“그러니 여기는 토시들에게 맡깁시다. 사정은 제가 제대로 설명 해드릴테니.”
“자, 잠시 만요! 콘도 씨. 그 말을 제가 믿을 거라고…! 이익, 이 야만적인 사람! 힘은 왜 이리 세담!! 이거 놓으세요!!”
그리고 이 사태를 빨리 해결시키기 위해 그대로 이토를 잡고 이 공간을 빠져나갔다. 이토는 계속 놓으라고 날뛰었지만, 중간에 콘도가 입을 막은 덕분인지 으브브브, 라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대로 사라져갔다. 저래도 괜찮은 걸까, 하고 잠시 상황을 잊은 생각을 하고 있는 치즈루와 달리, 다른 대사들은 쓸데없는 방해물이 없어졌다는 듯이 후련한 얼굴을 하고선 다시 산난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사이, 산난은 방금 전 나찰처럼 새하얀 머리와 진홍색 눈으로 변해있었다.
상황은 최악인 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산난은 제정신이 아니고, 여전히 치즈루는 잡혀있다. 언제 산난이 치즈루를 습격할지 모른다. 하지만 섣불리 달려들었다가 상황이 악화되면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것은 치즈루다. 그것만큼은 히지카타도 피하고 싶었는지 평소처럼 선수를 치지 못하고 계속 노려보는 상황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힉”
그리고 그 상황에서 먼저 움직인 것은 산난이었다.
이성이 없었기 때문일까. 지금 산난의 눈에는 자신을 경계하는 히지카타들의 모습은 비춰지고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비춰지고 있는 것은 오로지 치즈루의 팔을 타고 흐르는 피 뿐. 마치 세계에 그것만 있는 것처럼 산난은 그것만을 보고 있다가, 인간이 아닌 듯 한 미소를 짓더니 치즈루의 피를 입에 머금었다.
“-어이! 산난 씨!”
팔에 닿는 산난의 혀는 차가웠다. 마치 인간의 것이 아닌 것의 혀가 자신의 피부를 기는 감각에 치즈루는 자기도 모르게 작게 비명을 질렀다. 마치 인간의 것이 아닌 것 같았지만 현재 출혈로 자신의 체온이 엉망이 되어서 그렇게 느끼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라고 치즈루는 문득 생각했다. 지금 자신의 감각은 엉망진창이 되어있으며, 산나도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치즈루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은 벌벌 떨면서 산난이 얼른 자신의 팔에서 입을 떼는 것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헤이스케는 그 광경을 잠시 머릿속에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표정을 짓다가, 곧 분노에 가득찬 표정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 용서 못해”
그 한마디를 씹어 내뱉듯이 내뱉은 헤이스케는 자신의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지금이라도 산난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얼굴을 하고선 옆에 서 있는 하라다와 나가쿠라를 바라보았다.
“가자! 신팟짱! 사노씨!”
“좋아!”
“실수하지마라! 헤이스케! 신파치!”
하지만 무작정 뛰어들었다가는 치즈루만 위험해질 가능성이 컸다. 그렇기에 헤이스케는 최대한 냉정해지기 위해 두 사람의 이름을 외쳤고, 두 사람도 당장 뛰쳐나가서 산난을 어떻게든 하고 싶다는 분노에 휩싸인채 대답했다.
“-잠깐 기다려!”
산난에게 커다란 상처를 입히는 한이 있어도 어떻게든 치즈루를 빼오려고 돌진하려는 순간, 히지카타의 제지에 세사람 모두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이익...히지카타 씨! 무슨짓이야!”
“히지카타 씨. 당신…. 지금 이 상황에서 산난 씨의 편을 들 생각이야?”
그렇다면 당신도 가만 안두겠다는 얼굴로 하라다가 히지카타를 째려보았다. 하지만 히지카타는 그 눈빛에 하라다에게 시선을 주는 것은 물론 눈썹하다 깜빡하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불평이나 불만이 있으면 나중에 다 들어줄 테니 일단 지금은 기다려!”
“그치만 히지카타 씨! 그럼 치즈루가-”
“……산난씨의 상태가 이상해.”
치즈루가 위험해지지 않느냐. 그 한마디를 입에 담으려는 순간 헤이스케는 히지카타의 말에 급히 산난을 바라보았다. 보통 나찰들은 피를 섭취해도 아직 부족하다며 상대방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피를 착취하건 했는데, 산난은 어째서인지 가슴팍을 붙잡고 꺽꺽대고만 있었다. 피를 빼앗긴 치즈루도 이게 무슨 일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이건 기회였다. 치즈루에게 얼른 산난을 뿌리치고 이쪽으로 오라고 외치려는 찰나-, 산난의 머리색이 돌아왔다.
여태껏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던지라 다들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산난을 경계하고 있으면, 쿨럭, 하고 크게 기침을 내뱉은 산난은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은 산난은 평소와 같은 갈색 머리카락과 초록색 눈동자를 한 채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여러분. 저는, 대체…?”
“산난, 씨……?”
산난의 손아귀에 여전히 잡혀있는 치즈루가 조심조심 산난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방금 전만큼 세게 팔목을 잡고 있지 않았기에 치즈루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치즈루의 부름에 산난은 살짝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던 산난은 자신이 치즈루의 손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는 놀란 얼굴로 급히 그녀의 손목을 놓았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저기. 산난 씨…?
“산난 씨. 괜찮은 거야?”
치즈루가 산난의 상태를 확인하려는 차, 검을 든 하라다가 치즈루의 다치지 않는 팔을 잡고 자신의 쪽으로 이동시켰다. 난폭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최대한 빨리 치즈루와 산난을 떨어트리고 싶었기에 하라다는 강경수단을 써버렸다. 그리고 그 틈을 타서 헤이스케가 산난에게 다가가서 묻자, 산난은 그제서야 제대로 정신을 차렸는지 놀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을 잃고 여러분에게 폐를 끼쳐버린 모양이군요.”
“그건 괜찮아. 산난씨. 그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여태껏 제정신으로 돌아온 나찰은 없었다. 다들 전조가 없이 발작을 하고, 피에 미쳐서 그대로 피만을 찾아다니며 사람을 죽여 버리는 괴물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산난도 그들처럼 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다행이 그는 돌아왔다. 제정신으로 이 곳에 두 발로 서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산난과 그들이 어떤 차이가 있어 산난만이 돌아오고 그들은 미쳐버린 채 간부들의 검에 쓰러져갔는지, 현재로서는 알 방도가 없다. 다들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그저 침묵만을 하고 있을 때, 히지카타가 크게 한숨을 쉬고선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유키무라. 상처는 괜찮나?”
“아. 네… 네! 출혈이 좀 심한 것 같았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지금은 괜찮다는 또 뭐야. 이렇게 피를 쏟았으면 꿰매야 할 정도잖아.”
“저, 정말 괜찮아요! 일단 지혈하고 따로 제가 치료할게요!”
“……쯧.”
“부탁드려요!!”
필사적으로 부탁해오는 치즈루의 얼굴색이 좋지 않은 것은 분명 피를 많이 흘려서만이 아닐 것이다. 필사적으로 자신이 치료하겠다는 치즈루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낀 히지카타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하라다는 다른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아-, 하고 말을 떼기 어렵다는 듯이 말꼬리를 늘렸다.
“히지카타 씨. 오늘은 일단 치즈루가 혼자서 치료하게 하고 내일 마츠모토 선생님이 있는 곳으로 가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사노! 제정신이야? 물론 치즈루 짱이 우리들 사이에서 가장 지식이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혼자서 치료하게 하는 것은..”
“바보야. 남자들에게 보여주기 힘든 부위도 다쳤을 수도 있잖아. 물론 그 부위까지 마츠모토 선생님에게 보여드릴 수는 없겠지만 치료의 조언정도는 받을 수 있을 테고, 거기가 여기보다 더 설비가 좋으니까 거기서 제대로 치료할 수도 있을 거 아냐.”
“아, 아아!!”
하라다의 말에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나가쿠라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당황하기 시작했다. 물론 치즈루가 치료를 거부하는 이유는 그런 이유가 아니었지만, 미안한 마음을 안고 지금은 그 오해를 감사히 이용하기로 한 치즈루는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든 얼굴에 떠오르는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그 모습에 히지카타도 하라다가 말한 이유로 납득했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마음 같아선 그녀의 팔을 잡고 직접 상처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이렇게까지 꽁꽁 싸매는 것을 보아하니 무언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어렵지만 납득해주었다.
하지만 화는 눌러 참기 어려웠던 것일까, 히지카타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은 채 뒤에서 치즈루와 산난을 걱정하고 있는 세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듯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 녀석들! 뭘 꾸물거리고 있어!”
“히익”
“일단 생각하는 건 다음으로 미룬다! 밤은 짧다. 지금 먼저 해야 할 것은 뒤처리와 청소다. 최대한 은밀하고 빠르게 행동해야하는 거, 네 녀석들 알고 있겠지!”
“아, 그랬지. 시체도 처리해야하고 방도 정리해야하고.”
정말 귀찮다는 표정으로 나가쿠라가 검을 납도 하고선 치즈루의 방에 있는 걸레를 찾기 위해 그녀에게 허락을 받고 도구를 두는 곳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헤이스케와 하라다도 자신의 무기를 집어넣고서는 피가 뭍은 범위를 확인하며 다다미와 장지문을 뜯어냈다.
“산난 씨. 당신은 일단 방으로 돌아가는 편이 좋겠어.”
“……그러는 편이 좋겠군요.”
치즈루의 방은 아직도 피투성이인 상태다. 이렇게 피 냄새가 충만해 있으면 산난이 다시 피 냄새에 폭주해버릴 가능성이 있었기에 히지카타는 일단 산난을 내보내기로 했다.
“가서 콘도 씨와 함께 이토 씨와 이야기해도 상관없어. -단, 사이토와 동행해주길 바래. 이유는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전부.”
모든 것을 납득했다는 듯이 산난이 고개를 끄떡였다. 지금은 제정신을 찾았다 해도 언제 또 제정신을 잃게 될지 모른다. 그렇기에 히지카타는 감시 역으로 사이토를 붙인것이었다. 정신을 잃고 미쳐버리면 이번에야말로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도 담겨있었다. 그리고 산난은 ‘이정도 하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뉘앙스의 말을 남기고 헤이스케와 함께 치즈루의 방을 나섰다.
“산난 씨만 하지메군에게 데려다주고 다시 바로 올께!”
산난을 혼자 보낼 수 없었던 헤이스케는 그 한마디만을 남기고 방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히지카타는 치즈루를 바라보더니, 평소보다 더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그리고 유키무라, 너는-”
“아, 네. 저도 청소를-”
피를 많이 흘린 탓인지 제대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평소라면 먼저 청소를 했을 텐데 그냥 멍하게 앉아 있어버렸다. 다른 사람도 하고 있는데, 자신이 이럴 때가 아니라는 듯이 치즈루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갑자기 시야가 크게 흔들렸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바닥에 쓰러진다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다리가 바닥에서 뜨는 감각을 받았다.
“꺄, 꺄앗!! 히, 히지카타 씨?”
“멍청아! 가만히 있어!”
자신이 공주님안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 챈 치즈루는 내려달라는 듯이 바동거렸지만 곧 가만히 있으라는 히지카타의 호통에 치즈루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이 바보가! 어지러울 정도로 피를 흘린 놈 주제에 무슨 청소는 청소야!”
“그치만…….”
“그치만?”
반론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한 얼굴로 히지카타가 치즈루의 말을 따라하자, 치즈루는 잔뜩 겁을 먹은 채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보고 있던 나가쿠라와 하라다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크게 한숨을 쉬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치즈루 짱. 오늘은 쉬어. 방은 우리들이 정리하고 있을 테니까.”
“그래. 곧 헤이스케도 올 테고 다른 녀석들도 도와 줄테니 걱정하지 말고. 게다가 이건 우리들의 감시부족으로 일어난 일이야. 비난받아야 마땅할 차에 치즈루, 네가 죄악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너는 피해자야. 그러니까 오늘은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고 푹 쉬도록 해. 알았지?”
“네…….”
하라다의 설득 덕분이었을까. 치즈루는 제대로 납득한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떡였다. 다친 자신이 여기서 고집을 부렸다가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따 헤이스케가 오면 통에 물 좀 담아서 내 방으로 오라고 해라.”
“응? 히지카타 씨의 방?”
“오늘 이 녀석은 내 방에서 잔다.”
“네, 네에에??”
“아-. 그런 이유인가. 알았어. 최대한 빨리라고 전할게.”
확실히 오늘 밤 자신의 방에서 자는 것은 무리라고 알고 있었다. 그래도 히지카타의 방에서 자게 될 것이라고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치즈루는 눈에 띄게 동요하고 말았다.
“이토 파 녀석들이 있는 곳과 히지카타 씨의 방은 꽤 머니까. 게다가 거기라면 안전하게 쉴 수 있을 테고 말야. 간이 큰 녀석이 아닌 한 누가 오니부장의 방에 숨어들겠어?”
“그리고 난 너를 데려다주고 콘도 씨에게 가볼 예정이니 너는 안심하고 치료하고 자도록 해라. 잔다고 해도 콘도 씨의 방에서 잘거니까. 그렇게 알아라. 반론은 받지 않는다. 알았냐?”
“네에…….”
거절은 거절이라고 하는 듯 한 눈으로 치즈루를 바라보는 히지카타의 시선에 그녀는 그저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공주님 안기만이라도 어떻게 해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그것도 이루어지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치즈루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선 공주님안기를 당한채로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방을 나섰다.
*
바깥은 시끄러웠다.
분명 방금 전의 소동으로 인해 소란스러워진 것이라 깨달은 치즈루는 입을 다물었다.
‘역시 그 때 누군가를 부르지 말았어야 했을까.’
그 때 도움을 요청한 덕분에 자신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덕분에 일이 커져버렸다. 그 때 자신의 행동은 과연 올바른 것이었을까, 하고 치즈루가 생각하고 있으면, 그런 그녀의 생각을 읽었는지 히지카타가 한숨을 쉬고선 툭 하고 내뱉었다.
“너는 잘못 한 거 없어.”
“히지카타 씨.”
“빠르건 늦었건 나찰에 대해서는 언젠간 이토씨에게 들킬 일이었어. 거기서 네가 입 다물고 살해당했다면 일이 더 커졌을 가능성이 있었고. 그러니 네가 살아남는 길을 택한 것은 옳은 일이다. 하라다가 말했듯이 너는 피해자고, 우리들의 사정에 의해 감금되어 있는 계집애다. 그런 네가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걸며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네 안전을 먼저 생각해.”
“네……. 죄송해요.”
“물론 네가 나찰에 대한 것이라던가, 신선조의 비밀을 이것저것 떠벌린다면 이야기는 별개다만.” “그, 그런 짓은 안 해요!!!”
“그렇다면!”
치즈루는 신선조의 사람들이 좋았다. 좋았기에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부정을 하자, 히지카타의 호통의 다시 한 번 들려왔다.
“그렇다면 먼저 너의 목숨을 걱정해라! 너는 신선조의 정식대사가 아냐. 그렇기에 임무와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걸라고는 하지 않아. 뭣보다 너에게는 콘도 씨를 찾는 걸 도와줘야 하는 의무도 있어. 그러니까-, 죽지마라. 유키무라.”
마지막 한마디에 히지카타의 진심이 담겨있다는 것은 둔한 치즈루도 눈치 챌 수 있었다. 목소리에, 얼굴에 자신을 걱정하는 감정이 묻어나왔기 때문이다.
“……네, 죽지 않아요. 아버지를 찾기 전까지는, 죽을 생각은 없어요. 감사합니다. 히지카타 씨.”
그 말에 치즈루는 잠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얼굴을 하다가, 곧 결심에 찬 얼굴로 감사를 전했다. 남의 호의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에는 감사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야마자키의 조언을 따른 것이었다. 그러자 히지카타의 표정이 살짝 부드러워졌다.
“곧 헤이스케가 상처를 씻을 물을 가져다 줄 거다. 원래라면 우물로 데려가는 것이 낫겠지만, 사람의 눈이 있으니까. 일단 오늘은 그걸로 참아라.”
“네.”
“그리고 피 묻은 옷은 물에 담가둬라. 복도에 내놓지 말고 그냥 후스마 앞에다가 둬. 나중에 시간 있으면 누군가가 가지러 갈 테니까.”
“알겠어요.”
“내가 쓰던 이불이라 미안하지만 일단 오늘은 그걸로 참아라. 푹 쉬고.”
“아, 아뇨. 오히려 방을 빼앗아서 죄송할 따름인걸요…….”
히지카타는 자신의 방안에 치즈루를 안고 들어갈 때까지 그녀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고, 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되는 것을 구구절절 알려주었다. 오키타가 들으면 ‘히지카타 씨, 시끄러워요’라고 한마디 할 정도로의 잔소리였지만, 치즈루는 진지하게 들으며 ‘네, 알겠어요’라고 대답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자신의 방 안에 내려놓은 히지카타는 자신의 방에 있는 임시 치료도구와 잠옷을 꺼내주고선 푹 쉬라는 인사를 남기고 가버렸다.
그 뒷모습에 치즈루는 급히 감사의 인사를 남겼지만 그 인사가 제대로 전해졌는지 치즈루는 모른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치즈루는 처음에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이대로라면 아무것도 안되니 일단 헤이스케가 물을 떠오는 것을 기다리기로 하며 일단 상처를 확인했다.
‘……멎었어.’
치즈루의 감각에 따르면, 그 나찰이 치즈루에게 내리친 그 일격은 뼈까지 닿았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출혈로 죽거나, 예전의 산난처럼 팔을 아예 평생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었다.
[ 당신은 상처의 회복이 이상할 정도로 빠르지 않습니까?]
[ 여자오니는 귀중하다. 함께 와라.]
‘……역시, 나는 ‘오니’ 인걸까.’
여태껏 치즈루는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렇게 크게 상처를 입어본 적이 없어서 그냥 상처가 다른 사람들 보다 빠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자신은 분명 인간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던 걸까.
‘안 돼. 안 돼. 어두운 생각만 하면.’
크게 다쳤기 때문이었을까, 나쁜 생각이 계속해서 스멀스멀 올라오자 치즈루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팔은 한동안 못 쓰는 척 하면 될 테고…. 마츠모토 선생님은 사정을 말하면 협력해 주실 거야. 어쩌면 아버지에 대해서도 알고 계실지도 모르고….’
지친데다 피도 많이 흘렸기 때문이었을까,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일단 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치즈루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지금 이 상태에서 이것저것 생각해보아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헤이스케를 기다리고 있으면, 후스마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였다.
“치즈루.”
“헤이스케 군.”
후스마 너머에서 기다리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자 치즈루가 대답했다. 그러자 헤이스케가 잠깐 실례하겠다며 한 손에는 물이 가득 들어있는 통을, 한 손에는 깨끗한 천을 가진 채 방으로 들어왔다.
“상처는 어때? 피는 멎었어?”
“아직….이지만, 그래도 곧 멎을 것 같아.”
“무리하지 마. 너무 힘들다면 내가 업고 마츠모토 선생님 댁으로 달려갈 테니까. 아니면 지금 당장 갈까?”
“고마워…. 하지만 괜찮아. ”
살짝 힘이 없는 대답과 웃음을 돌려주자 헤이스케는 계속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치즈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곳에 없는 한 사람을 떠올리고서는 푹, 하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야마자키 군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
그나마 이 둔소에서 치료를 잘 한다고 한다면 다들 치즈루 혹은 야마자키의 이름을 거론할 것이다. 상처를 입었다면 유키무라 혹은 야마자키에게, 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치즈루가 다쳤고, 야마자키는 자리를 비웠다.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은 배워두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고 헤이스케는 살짝 후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후회해도 지금 짠, 하고 의료지식이 나오는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치즈루는 내심 안심하고 있었다.
그에게 치료받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이 상처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다 나아버린 상처를 보았을 때 그가 어떤 반응을 할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괜찮다고 말해 줄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치즈루는 최악의 가정만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야마자키에게 괴물이다, 라고 비난받고, 신선조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그런 미래만이.
물론 그러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치즈루에게 엄격했지만, 상냥하기도 했었다. 그렇기에 치즈루가 어떤 체질이라도 그들은 이해하고 받아줄 가능성이 컸다.
[ 저리가, 이 괴물! ]
하지만 어렸을 적의 나쁜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다. 그 아이도 자신에게 상냥했었으니까. 예전 일을 떠올렸기 때문일까, 치즈루의 안색이 방금 전 보다 더 나빠진 걸 알아차린 헤이스케는 잠시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 미안! 오래있어서! 내가 있으면 치료 못하지!!!”
“으, 으응…. 미안해. 헤이스케 군. 신경 쓰게 만들어서.”
아마 예전의 일을 떠오르는 자신의 얼굴을 다른 식으로 멋대로 해석해버린 것이라고 치즈루는 알아차렸지만,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확실히 상처는 아파왔다. 피가 멎어도 통증은 계속 지속되는 법이다. 하지만 그것과 다른 이유로 치즈루는 헤이스케가 이 자리를 피해주기를 바랬다. 그의 앞에서 상처를 치료할 수는 없었으니까.
“아냐! 내가 미안하지! 눈치도 없게 계속 여기에 있어서! 나는, 그냥…….”
계속 무언가를 말하고 싶다는 얼굴로 헤이스케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말을 하고 싶지만, 목에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듯 한 얼굴이었다. 무언가 고민을 하는 것 같았고, 괴로워하는 것 같았다.
“헤이스케 군. 무슨 일… 있어?”
“……아니야. 좀 더, 제대로 생각하고 말할게. 미안해. 치즈루. 신경 쓰게 해서.”
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헤이스케는 억지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웃음이 더더욱 걱정이 된 치즈루는 헤이스케의 옷자락을 잡고 그를 불러 세우려 했지만, 자신의 손이 피투성이라는 것을 깨닫고 손을 내렸다.
“헤이스케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미안. 치즈루는 치즈루의 일만 생각하면 되는데, 내가 신경 쓰게 만들어버려서. 그러니까, 일단은 고민할게. 그 후에 이야기 할게.”
그러니까 오늘은 쉬어. 그렇게 말하며 헤이스케는 다시 한 번 웃었다. 이번에는 언제나의 헤이스케의 웃음이었기에, 치즈루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지금은 나중에 말해주겠다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잘 자. 치즈루. 내일보자.”
“응. 잘 자. 헤이스케 군. 내일 보자.”
“…….”
치즈루의 인사에 헤이스케는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후스마를 닫았다. 그 미소의 의미를 아직 알 수 없는 치즈루는 그저 신경을 쓰게 만들었구나, 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내일 아침 다시 한 번 미안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인사하러 가자며 치즈루는 피를 씻어내고, 응급처치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때까지 치즈루는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은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내일은 분명 오늘과 비슷한 평범한 하루가 계속 될 것이라고.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은 채 치즈루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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