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카와 토오루는 천재가 아니다.
이 잔혹한 세상의 법칙을 오이카와가 깨달은 것은 그가 중학교에 들어가서였다. 어렸을 적 대부분의 아이가 그렇듯이, 오이카와도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아이었다. 자신보다 뛰어난 세터는 없다고 생각했고, 중학교에 가면 더 넓은 세계를 보고, 더 멋진 플레이를 할 수 있을거라 의심치 않았다. 분명히 전부 잘 될것이라고, 고등학교 때는 분명히 도쿄로 가서 그 오렌지코트를 밟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부풀어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근거없는 자신감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데 에는 그리 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든 것을 찍어 누르는 강함.
그 앞에서는 어떤 기술도, 어떤 벽도 소용없었다. 그 강함을 처음 본 순간, 오이카와는 절망이라는 독에 당해버렸다. 모든 열정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그 독은 예외 없이 오이카와의 열정을, 즐거움을, 환희를 모두 앗아가 버렸다. 이상했다. 분명히 눈 앞에는 승리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을 텐데. 보이는 것은 커다란 절망과 높고 높은 벽이었다.
-배구가, 싫다.
달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발이 무거웠다. 마치 덩굴에 휘감긴 것처럼 제대로 뛸 수가 없다. 공과 손가락 사이에 고무가 끼어있는 것처럼 공을 만져도 아무런 감각이, 감흥이 없었다. 자신을 지배하는 패배의 감정보다 배구를 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자신에 오이카와는 크게 절망했다.
-배구가 싫어진 것은 내가 잘 못해서다. 그러니까 더 잘하게 되지 않으면.
강해져야했다. 좀 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그때의 자신을 되찾을 수 없다. 그 당시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배구에 몰두했다. 강해져야한다. 우시지마를 꺾고 배구를 좋아하는 마음을 되찾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오이카와 토오루'는 죽게 될 것만 같았다.
만면에는 미소를, 입에서는 누군가에게 장난으로 질타 받을 수준의 가벼운 말을 내뱉는다. 그렇게 어두운 면은 없고 까불거리는 자신을 연기한다. 그런 자신의 상태를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해왔던 소꿉친구는 눈치 채고 그만하라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오이카와는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오이카와 토오루’가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도, 3학년이 되어도 여전히 우시지마에게 손이 닿지 않는다. 저 강함은 어떻게 해야 쓰러트릴 수 있을까. 몇 번이건 생각하고 생각하며 오이카와는 서서히 절망의 늪에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대로 가라앉는 것은 싫었는지 오이카와는 필사적으로 발버둥쳤다. 어떻게든 기어 올라가기 위해 피를 토하고 온몸을 깎으며 바둥거렸다.
하지만 신은 그런 오이카와에게 쓸모없는 노력이다. 라고 말해주듯이 그에게 절망의 파도를 보냈다.
갑자기 나타난 자신과 똑같은 포지션의 후배. 심지어 그는 오이카와와 다르게 ‘천재’였다. 이쯤 되면 자신은 신에게 미움 받는 것이 아닐까라고 진지하게 생각할 정도로 자신의 운과 주위의 환경을 저주했다.
왜 나는 천재가 아닐까.
왜 내 주위에는 천재만 나타나는 걸까.
왜 신은 욕망만을 주고 재능은 주지 않았는가.
절망하고 절망하고 절망했지만 곧 뒤에서 자신을 잡아먹기 위해 달려드는 후배에게 따라잡히지 않도록 오이카와는 몇 배나 더 필사적으로 투쟁했다. 예전에는 점점 멀어져만 가는 등만을 쫒으며 달렸지만 이제는 뒤에서 쫒아오는 무언가를 경계하면서 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 가운데에 낀 자는 가장 불리하다. 앞에 보이는 사람을 따라잡을 수도 없고, 뒤에서 쫒아오는 무언가 에게 따라잡힐 가능성이 컸으니까.
싫다. 싫다. 싫다. 싫다. 싫다.
이쪽이 아무리 노력하고 땅을 기고 피를 토하며 엉망진창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오이카와를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나아가는 우시지마도,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라는 얼굴을 한 채 숨통을 조여 오는 후배도 너무 싫었다.
죽을 것만 같은 나날이었다. 신경이 날카로웠고, 배구가 잘 되지 않으면 더 잘해야 한다, 이러면 안 된다. 라고 자신을 몰아세워갔다.
잘 하지 않으면.
더 노력하지 않으면.
매일매일 그 생각만을 하며 치열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인간은 그럴수록 실패를 하는 법. 계속되는 미스에 상태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결국 시합에 교체되어버리는 불상사까지 일어나버렸다.
단 한번. 단 한번이지만 오이카와는 심해 깊은 곳에 잠겨버린 기분이었다. 빛도 없다. 공기도 없다. 손발을 어떻게 움직이는 것인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계속해서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아가는 감각이 너무나도 소름끼쳤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외줄타기를 하는 나날이었다. 더 잘하지 않으면, 이대로라면 뒤에서 쫒아오는 후배에게 포식당한다. 그 후배는 자신을 양분으로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위해 달려오고 있는지 조차 잊게되는 날이 올지 모른다.
누군가의 양분이 되는 것은 싫다. 강자가 되고 싶다. 눈 앞에서 멀어지는 저 등을 잡아당겨 자신의 뒤로 밀어넣고, ‘내가 너보다 더 강하다’ 라고 외쳐주고선 그보다 앞서 나가고 싶었다.
그럼으로서 그동안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있던 자존감은 물론, 그토록 살리고 싶어했던 ‘오이카와 토오루’도 되살릴 수 있다. 하지만 현실로 눈을 돌리면 여전히 등은 멀고, 자신은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
이 상황을 2개월이나 지속해왔다. 그러면 당연히 몸은 물론이고 정신도 피폐해진다. 실제로 오이카와는 지쳐있었고, 그 날의 교체사건으로 한계까지 몰아붙여져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오이카와 씨. 서브 좀 가르쳐 주세요.”
그 상태의 오이카와를 더욱 더 괴롭히겠다는 듯이 후배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폭탄을 떨어트렸다.
처음에 느낀 것은 당혹이었다. 하지만 그 감정은 얼마가지도 않아 ‘분노’로 모습을 바꾸었다.
‘뭐야. 이건.’
‘너 때문에 나는 이렇게나 힘들고 괴로운데. 왜 너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태도를 하고 있는거야.’
카게야마가 들어오고 나서 오이카와의 분위기가 날카롭게 바뀌었다는 것은 다른 1학년들도 알고 있는 사항이었다. 그래서 부 내에서 되도록 오이카와의 앞에서 카게야마의 이야기는 하지 말자는 암묵의 룰까지 생겼다. 그리고 오이카와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카게야마가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을거라고 마음속 어디선가에서 안도하고 있었다. ‘보통’후배라면 자신에게 날을 세우고 있는 선배에게 다가가지도, 말도 걸지 않을테니까.
하지만 이 빌어먹을 후배는 오이카와가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 것도 몰라요’라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저 눈이 증오스러웠다. 사람을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아넣은 주제에 그걸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증오스러웠다.
어느 정도 눈치가 있다면 오이카와가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는 건 알 것이다. 거기까지는 모르더라도 꺼려한다는 것은 알테고, 보통 말을 걸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선 그런 것 따위 배구를 위해서는 ‘사사로운 일’에 불과했다. 자신이 배구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 누가 자신에게 질투하고, 자기를 미워해도, 자기 때문에 괴로워해도 상관이 없다. 그저 그 사람이 배구를 잘하는가, 잘 하지 못하는가. 그 두 가지가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있어서의 사람을 분류하는 기준이라고, 오이카와 토오루는 이해했다. 배구를 잘 하면 그 사람에게서 기술을 훔치거나 배우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없는 것처럼 대한다. 얼마나 오만한 자인가.
‘...오지마.’
이쪽으로 오지마.
공을 들고 한발자국, 또 한발자국 다가오는 카게야마의 모습에 오이카와는 분노와 공포를 느꼈다. 아니, 공포보다 분노가 더 컸을 것이다. 그래서 무심코 눈앞의 열 받는 생물을 떨쳐내기 위해 손을 휘두른 것일테니까.
오이카와가 노린 곳은 정확히 카게야마의 머리였다. 노린 것인지, 아니면 자기도 모르게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때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떨쳐낼 수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진정해! 이 멍청아!!!!!!!!”
그러니 만약 그때 소꿉친구가 자신을 말려주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후배에게 상해를 입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행히 오이카와도 자신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제대로 자각한 덕분에 더 이상 일이 커지지 않을 수 있었다.
“....미안.”
물론 그 사과는 후배가 아닌 소꿉친구에게 향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소꿉친구는 크게 한숨을 내뱉더니, 후배를 어거지로 돌려보낸 뒤 오이카와를 진정시키기 위해 ‘오늘의 교체는 머리를 식히라는 것이다.’‘시간을 갖고 진정해라’라며 정론을 늘어놓았지만, 지금의 오이카와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시간? 머리를 식혀? 그럴 시간이 어딨어!! 지금 난 시라토리자와도, 우시와카도 이기지 못 하는데!! 나는 이기고 이겨서 전국으로 가고 싶단 말야! 그러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 나는-!!”
노력하고, 또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쉴 시간은 없다. 머리를 식힐 시간도 아깝다.
-나는, 살기 위해서 더욱 더 필사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까, 나는.
“난, 난 거리는 거 짜증난다고, 망할카와!!!!”
“끄악!!!”
하지만 소꿉친구는 오이카와의 고민이 짜증난다는 듯이 그에게 박치기를 날렸다. 물론, 코피가 터진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이었지만 그는 사과는 거녕 오이카와의 멱살을 잡았다.
“혼자 싸우려고 하는 것 같은 그 말투는 뭐야, 이 멍청아! 그걸 농담이라고 하는거냐?? 팀의 승리가 네 승리야! 자만하지마! 확 쳐버린다!!!”
“이미 쳤잖아!!!”
억울하다. 마치 한 대도 치지 않은 사람처럼 말하는 소꿉친구를 향해 한 손으로 뚝뚝 떨어지는 코피를 막으며 항의해보았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을 입에 담았다.
“누구도 우시와카에게 1대 1로 못 이겨!! 그렇지만 배구는 코트 위에 6명이 버젓이 있잖아! 상대가 천재 1학년이던 우시와카든! 6명으로 강한 게 더 강한 거잖아 이 멍청아!!”
찬물을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뒤집어 쓴 기분이었다. 그동안 우시지마를 이길 수 없는 것은 자신이 약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강해져야한다고 자신을 한계 끝까지 몰아붙였다. 그런데-
“...6명이, 강해야. 더 강한 거라고.”
“....”
“풋.”
“??”
“푸하하하하하하하...
“야, 야?”
그 동안의 자신이 정말 바보같이 느껴지는 한 마디었다. 왜 그렇게 살았는지, 라는 자괴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절망의 바다에서 겨우 얼굴만 빠져나왔지만, 그래도 겨우 숨을 쉴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아아, 왜 눈치재지 못했을까.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그의 말대로다. 코트에 있는 것은 6명. 그 6명이 함께 강해지면 거대한 한명을 쓰러트릴 수 있다는 것을!!!
“미, 미안하다! 박치기가 너무 셌냐? 괜찮냐?? 병원 갈래??”
“하아- 왜인지 잘 모르겠지만. 천하무적이 된 기분이야.”
아직 절망의 바다에서 얼굴밖에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얼굴만 겨우 둥둥 떠다니고, 그 밑으로는 아직 바다 속에 잠겨있다. 여전히 우시지마의 등은 멀고, 카게야마도 바싹 쫒아오고 있다.
“근데 이와짱. ‘멍청이’가 이와짱이 아는 유일한 욕이야?”
“확 반대편 콧구멍에서도 코피 나오게 해줄까.”
그래도 숨을 쉴 수 있다. 적어도 자신의 소꿉친구에게 장난으로 말을 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걸 확인한 오이카와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순간 눈앞에 자신이 계속 원하던 오이카와 토오루가 보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방침을 바꾼 이후로 오이카와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 보였고, 부의 내에서도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는 평판이 자자했다. 물론 카게야마는 적대시하고 있었지만, 초등학생수준의 놀림이었기에 아무도 크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몇 달 뒤, 오이카와의 학교는 마지막대회에서 시라토리자와를 상대했고, 처음으로 한 세트를 이겼다. 결과적으로 시라토리자와에 이은 준우승이었고, 오이카와는 베스트 세터상을 수여받았다.
행복했다. 그동안의 노력이 이 작은 판 하나로 전부는 아니지만 보답 받는 감각을 받았다. 너는 이렇게까지 힘을 냈어, 장하다. 그 판은 오이카와의 ‘지금까지’를 긍정해주는 중요한 판이었다.
[ 6명이 강한 쪽이 이긴다 ]
그 후로 그 한마디에 의지하며 살아왔다. 그 말은 오이카와에게 있어서 구원이며, 방침이며, 이정표가 되어있었다.
-지휘자가 되자.
다른 팀원들의 힘을 120%까지 끌어낼 수 있는 그런 지휘자가.
비록 고등학교에서 우시지마를 쓰러트리지는 못했지만. 카게야마에게 한번 져버렸지만, 아직 두 사람을 꺾을 기회는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다음’이 있다면 반드시 이기자. 다음에는 이길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지.’
욱신욱신 아파오는 머리를 누르려 오이카와는 눈 앞에 있는 휴대폰을 노려보았다. 평소대로라면 ‘아 꿈이구나. 더 자자.’라며 현실도피를 하겠지만 머리의 피부가 크게 찢어져 욱신거리는 머리가 이것은 꿈이 아니라고 고하고 있었다.
‘분명히, 오늘은 2017년 1월 2일이었을텐데.’
오늘의 날짜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왜 새해 다음날에 도서관에 쳐박혀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냐고, 방금 전까지 소꿉친구에게 찡찡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2014년 12월 23일이라는 건, 대체, 뭔데!”
지금 자신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생각은 하고 싶지만 찢어진 머리가 사고를 방해하고 있다. 결국 의문을 격통이 이긴 탓인지, 오이카와는 그대로 고통으로 인해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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