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20.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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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3. 00:30

“-설명하세요! 이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엉망진창이 된 방을 보고 새하얗게 질린 얼굴의 이토가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을 힘겹게 바라보던 치즈루는 언젠가 히지카타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운이 나쁜 녀석이군. 이라는 말을.

 

확실히 히지카타의 말 대로 유키무라 치즈루는 운이 없는 편에 속하는 아이였다. 물론 지독하게 운이 없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정말 운이 찢어질 정도로 없었다면 치즈루는 지금쯤 살아있는 목숨이 아니었을 테니까. 치즈루에게 없는 이란, 보통 사람들이라면 왠만해서 마주치지 않을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확률을 뜻했다. 처음 신선조를 만났을 때라던가, 니죠성에서 오니들과 마주쳤을 때라던가, 산난이 오치미즈를 마실 때라던가, 불과 몇 분 전, 자신의 방에서 살해당할 뻔한 지금이라던가.

오늘도 평소와 그리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 순찰에서 카오루를 만나고, 오키타에게 따끔한 이야기를 들은 것을 제외하면.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지적을 당하니 우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 치즈루가 한 일은 자칫하다간 위험한 일이었고, 치즈루 자신도 자신의 행동이 어리석다는 것은 확실히 자각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내일부터는 좀 더 행동에 조심을 해야겠다. 그런 자신을 반성 한 후, 이불속으로 들어가 잠들면 그 날도 평소처럼 끝났을 것이다.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 한 대사가 갑자기 방으로 들어오기 전 까지는 말이다.

 

갑자기 치즈루 방에 아무 말 없이 들어온 대사는 평소에 교류가 없던 대사였는지 치즈루는 그의 얼굴을 봐도 누구? 라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얼른 여기서 빠져나가야 한다며 머릿속의 경종이 강하게 들려왔지만, 동시에 섣불리 움직이면 끝장이라고 머릿속 어디선가에서 주장해왔다.

어떻게든 틈을 봐서 빠져나간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것이 지금의 최선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치즈루가 계속 대답 없는 대사를 향해 말을 걸며 어떻게 할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고민하고 있을 때, 남자가 갑자기 무어라 홀린 듯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치즈루를 향해 칼을 뽑고 덤벼들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공중에 붉은 무언가가 흩날린 것은. 그리고 치즈루가 그것이 자신의 피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아팠다. 팔뚝이 불타는 듯이 아파왔다. 그와 동시에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순간 아픔과 뜨거움 외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자 치즈루는 한 순간 혼란에 빠졌다. 팔이 한 순간 날아갔다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과 달리 그녀의 팔은 멀쩡하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제대로 붙어있었고, 격통 속에서 치즈루는 팔이 잘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하지만 안도하기에는 이르다는 듯이 치즈루의 귓가에 남자의 미친 듯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은 베였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아파하고 통탄할 때가 아니라고 경고하는 것만 같은 그 목소리에 치즈루는 고개를 젓고선 아랫입술을 꽉 악물었다. 정신차려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 잘려나가는 것은 자신의 목이나 가슴팍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내이며 치즈루는 반쯤 베인 팔을 부여잡고 필사적으로 어디론가 기어갔다. 어디로 기어가는 지조차 모르는데다가, 꼴사나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치즈루는 그저 살아남아야한다는 생각으로 남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 때, 보고 말았다. 자신을 베어버린 남자의 머리가 어느 샌가 새하얗게 변해있다는 것을. 남자의 눈동자가 새빨갛게 변해 있다는 것을.

 

, 히히. 피다. 피다……!”

 

그리고 치즈루가 흘린 피가 묻어있는 다다미에 달려들어 게걸스럽게 핥기 시작하는 모습을 본 치즈루는 남자가 무엇인지 확신했다.

 

-나찰이다.

 

그렇게 인식한 순간 치즈루는 그냥 움직여서는 안 된다, 얼른 이 방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문이 있는 곳으로 기어가려했지만, 나찰이 괴상한 동선으로 피를 핥으며 진로를 방해하는 바람에 치즈루는 구석으로 몰리고 말았다. 의도한 것인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인지 치즈루는 알 수 없었지만, 단 하나 그녀에게도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지금이 정말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문에서 떨어져 있고, 눈앞에는 나찰이 있다. 치즈루가 자력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죄다 막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지. 고통으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치즈루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그녀가 첫 번째로 나찰과 조우했을 때엔 그것들이 탈주한 것을 눈치 챈 사이토와 오키타, 히지카타가 도와주었고, 산난에게 죽을 뻔 할 때에는 오키타가 도와주었었다. 자력으로 나찰에게서 벗어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치즈루는 어떻게 하지, 라며 중얼거렸지만, 산난 때의 일을 떠올리자 연쇄적으로 예전에 오키타가 자신에게 해준 말이 그녀의 뇌리에 떠올랐다.

 

[만약에 무서운 것을 본다면, 큰 소리를 내서 도움을 청하도록 해.]

 

그 때도 그 말 덕분에 치즈루는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그 때 그 방법으로 목숨을 건졌다 해도 이번에도 그 방법을 써도 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 때도 지금도 목숨이 위험하다는 전제는 같았지만, 그 때는 대사들의 방에서 꽤 떨어져있고 밤중에는 잘 다니지 않는 히로마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지금은 어느 정도 다른 대사들과 가까이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만약, 자신의 도움요청에 사정을 모르는 대사가 오면 어떻게 하지?

 

그나마 사정을 모르는 대사가 온다고 해도 소마나 노무라 같은 치즈루에게 호의적이거나, 신선조 간부들에게 호의적이거나 동경하는 대사라면 괜찮다. 하지만, 이토파의 대사가 온다면? 최근의 신선조는 파벌이 나뉘어지는 바람에 그다지 온건하다고 볼 수 없었다. 만약에 이 광경을, 나찰을 이토 파 사람에게 보인다면-. 거기까지 생각한 치즈루는 두려움에 목소리를 높일 수 없었다.

 

“----.”

 

다다미와 칼에 묻은 피를 다 핥아먹었는지 나찰이 바틀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치즈루에게는 확실히 들렸다. ‘부족해라고. 그리고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치즈루는 싫어도 알 수 있었다. 더 많은 피를 얻기 위해서 자신을 다시 한 번 베어버린다는 의미겠지. 정말 그렇게 선언하듯이 나찰은 다다미에 묻은 피를 햛을때도 계속 쥐고 있던 검을 고쳐잡았다.

아아, 이번엔 정말, 죽는다.

머릿속에서 위험을 알리는 경종이 울렸지만 치즈루에게는 현재 혼자서 이 사태를 바꿀만한 능력이 없었다. 적어도 팔이 멀쩡하고, 검이 있었다면 크게 다치는 일이 있더라도 목숨을 부지한 채 도망쳐나와 히지카타나 다른 간부들에게 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죄다 가정하의 일 일 뿐이지 확실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 지금 치즈루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있었다.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치즈루가 할 수 있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나찰에게 죽거나, 혹은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던가.

 

[이상한 사양은 하지 마.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도와달라고 하면 되니까]

 

, 누가-, 누가 도와주세요!!!!”

 

나찰이 느릿느릿하게 검을 들어 올리는 순간, 치즈루의 머릿속에서 낮에 오키타가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말에 의지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눈을 꽉 감고 목소리를 높여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는 어디에도 닿지 못한다는 듯이 나찰이 낄낄 웃으며 치즈루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그것이 치즈루의 눈을 감기 전 마지막 광경이었다.

-푸욱.

눈을 꽉 감고 있는 치즈루의 귀에 익숙하지만 전혀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칼이 살갗을, 내장을 꿰뚫는 소리다. 하지만 치즈루에게는 아무런 고통도 없었다. 그 대신이었을까, 나찰이 갑자기 고통스러운 듯 울부짖기 시작해 치즈루는 조심조심 눈을 떴다.

 

유키무라! 살아있냐!”

 

그것과 동시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면, 방문 앞에서 히지카타가 무언가를 던진 자세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히지카타 씨?”

좋아, 살아있는 거지! 너 그대로 움직이지 말고 있어!!”

 

필사적으로 달려왔는지 숨을 헐떡이면서도 히지카타는 긴박한 얼굴로 치즈루와 나찰 사이로 파고들었다.

언뜻 보았을 때 치즈루와 나찰의 위치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이 그 사이를 파고 들어가는 것이 가장 그녀를 지키기 쉬울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움직인 히지카타는 재빨리 방금 전 자신이 던져 나찰의 팔을 꿰뚫은 와키자시를 거칠게 뽑아 회수한 뒤 나찰을 발로 차버렸다. 히지카타가 검을 최대한 아프게 뽑아가자 아픔에 비명을 지르던 나찰은 속절없이 히지카타의 발차기에 나가 떨어졌다. 물건을 부수는 요란스러운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나자, 치즈루는 거기에 두려움을 느꼈는지 두 눈을 꽉 감았다.

 

히지카타 씨! 치즈루는???”

 

그리고 치즈루가 다시 눈을 뜬 것은 익숙한 목소리가 또 다시 들려온 후였다. 히지카타와 똑같이 필사적으로 여기까지 달려왔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는 세 사람에게 무언가 말 하고 싶은지 입을 열려는 히지카타였지만, 자신에게 나가 떨어져버린 나찰의 팔이 움찔하는 것을 보고 급히 자세를 잡았다.

 

“-어이, 방심하지 마! 아직 숨통은 못 끊었어!”

, 으악! 이게 뭐야! 피투성이잖아?? , 히지카타 씨! 치즈루는? 이거 그 아이 피 아니지?”

반쯤은 그 녀석 꺼다! 그보다 헤이스케! 하라다! 신파치! 다른 녀석들은? 상황은 지금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 그게. 확실히 소란은 일어났고 이토 파에서도 소란을 눈치 챈 녀석이 몇 명 있어! 하지만 그건 사이토와 소지가 어떻게든 막아주고 있어! 그보다,”

그보다 그 아이는? 무사한 거 맞지???”

 

방안이 생각보다 피투성이인데다가 히지카타가 반쯤은 그 녀석 꺼다라고 한 것이 그들이 불안을 부추겨서 였을까, 하라다가 대강 설명을 하고선 나가쿠라가 다급하게 치즈루의 무사를 확인했다. 계속해서 자신을 신경 써 주는 세 사람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느껴져서 였을까, 치즈루는 베이지 않은 쪽의 팔을 흔들며 자신의 생존을 알렸다.

 

, 괜찮아요! 살아있어요!”

“-치즈루!”

괜찮……!”

 

치즈루가 손을 흔들자 세 사람은 처음에는 치즈루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곧 치즈루가 흔든 손에 묻은 대량의 피를 보고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급히 치즈루가 어디를 다쳤는지를 확인하고선 숨을 들이켰다. 왼쪽 어깻죽지부분의 옷이 대부분 피로 물들었다는 것은 피가 대량으로 나올 정도의 큰 상처를 입었다고 봐도 무방했으니까.

살아있지만, 무사하지 않다.

그 사실은 방금 전 까지 치즈루가 살아있다는 것에 안도했던 세 사람의 얼굴을 일그러트리기에는 충분했다.

 

“--젠장! 너 치즈루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이번에 탈주한 녀석이 상당히 미쳤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 까지라면 살려 둘 수는 없겠는데

그래. 얼른 해치우고, 정리하고, 치즈루 짱이 얼른 치료받게 하자고.”

 

분노를 한껏 표출하는 헤이스케와 달리 하라다와 나가쿠라는 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치즈루는 그런 두 사람에게서 헤이스케 못지않은 분노를 느꼈다. 두 사람의 기백에 잠시 밀려 치즈루가 입을 꽈악 닫는 것과 동시에, 헤이스케가 자세를 잡았다.

 

한방에 끝낼 수 있지? 신팟 짱? 사노 씨?”

지금 누구에게 말하는 거야. 헤이스케.”

신파치도 말했잖아. 얼른 끝내고 치즈루를 치료받게 해야 한다고. -간다!”

 

창의 칼집을 집어 던지는 것과 동시에 하라다가 기괴하게 몸을 비틀고 있는 나찰에게 돌진했다. 하지만 나찰은 그런 하라다의 살기도 행동도 관심 없다는 듯이 그저 피를 흘리고 있는 치즈루를 향해 돌진했다.

 

“-유키무라. 눈 감아!”

 

하지만 그걸 방관할 히지카타가 아니었다. 나찰의 칼을 쳐 궤도를 바꾼 그는 망설임 없이 나찰의 가슴팍에 검을 찔러 넣었고, 그와 동시에 하라다의 창이 나찰의 목을 꿰뚫었다. 그러자 나찰이 기분 나쁜 단말마를 질렀지만 두 사람의 공격으로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헤이스케와 나가쿠라도 뒤이어 급소에 자신의 검을 찔러넣었다가, 동시에 검을 빼버렸다. 이번엔 정말 숨통을 끊어버린 것일까. 입안에서 기분 나쁜 소리를 내던 나찰은 그대로 철푸덕, 하고 피웅덩이 속으로 몸을 무너트렸다.

 

……끝난 거야?’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피 웅덩이 속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나찰은 정말 죽은 모양이었다. 더 이상 치즈루를 습격하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끝났다는 실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분명히 전부 끝났는데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치즈루는 멍한 표정으로 점점 자신의 방의 다다미를 자신의 피로 물들이고 있는 나찰을 바라보았다.

 

……아냐. 이걸로 정말 끝난 거야.’

 

무서운 것도. 아픈 것도. 악몽 같던 밤은 이걸로 끝이다.

 

…….”

 

그렇게 생각하자 긴장이 풀린 것일까. 방금 전 까지 아무런 감각도 없던 상처에서 격심한 고통을 느꼈다.

정신이 없으면 잠시 고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고 예전에서 책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그걸 이런 식으로 몸으로 알게 될 줄은 몰랐다. 아니, 이런 식으로는 정말 알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치즈루는 아프다며 비명을 지르는 상처부위를 잡고서 입술을 깨물며 작게 신음 소리를 흘렸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옆에 서 있던 히지카타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는지 히지카타는 순간 당황한 얼굴로 치즈루를 바라보았다.

 

유키무-”

당신들! 대체 이 야심한 시간에 뭘 하시는 건가요. 밤중에 소란을 피우면 민폐라는 거 모르나요?”

 

그런 그녀를 걱정한 것인지 히지카타가 무어라 말하려는 찰나, 이 곳에 있어선 안 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청 피곤한 얼굴로 그 사람이 치즈루의 방 앞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머릿속이 새 하얗게 변한 것은 치즈루 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하라다와 나가쿠라, 헤이스케는 물론, ‘히지카타 마저 그의 등장에 놀랐는지 한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등장에 당황한 것은 나찰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아니었다. 치즈루의 방 안의 참상에 놀란 것은 나찰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그-. 이토 카시타로도 마찬가지였다.

이토가 이 곳에 온 이유는 그냥 밤중에 시끄럽게 하지 말고 얼른 잠이나 자라고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콘도파의 대사들은 소란을 자주 일으킨다. 술잔치를 벌인다던가, 누구와 말싸움을 해서라던가, 간부끼리 간단히 대련을 해서 일을 키워서 소란스러운 일을 만든다던가, 그런 식으로 시끄러운 일을 자주 일으킨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런 류의 일이라고 멋대로 판단했다.

하지만 평소라면 이토는 동생인 미키라던가, 밑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을 보내서 조용히 시키라고 하고 자신은 그냥 신경을 쓰지 않는 방침으로 갔을 텐데, 오늘의 이토는 정말로 피곤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많았기에 반쯤 졸면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무언가 일이 터졌다는 듯이 소란스러우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화가 나서 쫒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일 것이다. 자기가 가서 조용히 시키겠다는 부하들에게 자신이 가서 한마디 해주고 오겠다며 이토는 소란의 근원지로 향했다. 중간에 소란의 목적지가 치즈루의 방이라는 점이라던가, 어째서인지 쎄한 느낌을 받았지만 당시의 이토는 분노로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 머릿속에서 울리는 경종을 무시하며 치즈루의 방에 모습을 보였고, 이 참상을 보고 말았다.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하지만 예상 밖의 일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녀의 방 안을 보자마자 방금 전까지 반드시 해주고 말겠다는 불평불만의 말들은 전부 사라져버리고, 대신 피가 식은 감각만이 그의 전신을 지배해버리고 말았다.

 

, 뭐죠. 이 상황은……!”

 

이토가 이렇게 당황하는 것도 당연한 반응이었다. 불평불만을 말하러왔는데 살인현장이 펼쳐져 있는 셈이었으니까. 당황한 나머지 둔소 전체에 다 들릴 정도로 소리를 지르지 않은 것 만해도 다행이었다.

 

설명할 시간을 드리죠. 이게 대체 뭡니까? 제 눈에는 간부들이 합세해서 대사를 죽인 걸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만! 제 견해가 틀리다면 얼른 반박해보시죠!”

 

물론, 지금 이 상황도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물론 반박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토는 정확히 상황을 읽었다. 그랬기에 간부들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토는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걸론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는지 이토는 더 말하라는 듯이 히지카타를 째려보았다가 다시 한 번 시체로 눈을 돌렸다.

 

…………거기 있는 대사, 본 적이 있어요. 분명 규칙위반으로 할복 했던 대사였을 터. 그리고 이 피상처, 당신들이 한 건가요. 할복 시킨 대사를 빼돌리고, 지금 죽이다니. 무슨 짓인가요. 이건!”

, 저기. 아냐. 이토 씨. 이건 말야.”

뭐가 틀리다는 건가요! 지금 제 말이 틀렸다는 건가요?? 그럼 뭔가요. 어서 설명해보시죠!”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헤이스케가 변명을 시도해보려 했지만, 이토는 그 변명을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잘라 내버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간부전원이 대사 하나를 합세해서 죽이다니! 자아, 설명하세요! 어설픈 변명으론 이 이토를 납득시킬 수는 없을 겁니다! 유키무라 군은 왜 다쳐 있는 건가요! 이 대사에게 당한 건가요? 아니면 당신들이 한 건가요!”

, 아니에……!”

“-우리가 치즈, 아니, 유키무라를 이렇게 할 리가 없잖아!!!”

 

이대로라면 간부들이 치즈루를 베었다는 의심을 받는다. 그들은 자신을 구해준 것뿐인데. 아픔으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였지만 어떻게든 그것에 대해 변명을 하려 입을 열려고 어떻게든 입을 열어보려했지만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치즈루는 물론 다른 간부들도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어떻게든 입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에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입을 열려는 찰나-,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 그걸 설명을-”

“-여러분, 죄송합니다. 전부 제 감독 불찰입니다.”

 

이토가 기백 있게 소리 친 순간, 또 다시 치즈루의 방에 와선 곤란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목까지 닿는 갈색의 머리카락, 특징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동그란 안경. 그리고 초록색의 기모노. 산난 케이스케였다.

이 사태에 책임감을 느낀다는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는 그의 모습에 치즈루를 포함한 모두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의 등장에 가장 놀란 것은 물론 이토였다.

 

, 산난 씨? 어째서 당신이 여기에...???”

 

산난 케이스케는 니시혼간지로 둔소 이전을 해야겠다며 콘도와 히지카타에게 자신의 의견을 묵살 당하자 에도에 돌아가겠다는 쪽지를 남긴 채 대를 탈주하였지만 오미 국 에서 오키타 소지에게 붙잡혀 끌려와 할복했다. -라는 것이 나찰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는 산난 케이스케의 말로였다. 그리고 이토도 산난이 그렇게 죽었다고 굳게 믿고 구까지 읊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갑자기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났다. 한 순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은 짓던 이토는 곧 귀신을 본 것 같은 듯한 표정으로 산난을 손가락질 하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사람을 손가락질하는 행위는 무례한 행위라고 계속 미키에게 잔소리를 하던 그였는데,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것을 보아하니 엄청나게 놀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신, 그 때 탈주해서 죽었던 것이……!”

……………….”

 

그런 이토처럼 처음에 히지카타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곧 왜 나왔냐고 비난하는 듯 한 표정으로 산난을 째려보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토는 산난을 인식해버렸으니까. 다들 그가 지금 나온 것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품으며 산난에게 시선을 돌리거나, 혹은 체념한 얼굴로 땅바닥을 내려 보거나, 복잡한 표정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별로, 산난씨의 탓도 아니잖아.”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애매한 것인지, 나가쿠라도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헤이스케도 산난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었던 것일까, 허둥지둥 대며 산난을 변호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입을 열었다.

 

, 약의 부작용 같은 거잖아. 어쩔 수 없었다니까. 안 그래?”

“-?”

 

그것이 상황을 더욱 더 악화시키기 좋은 말이었지만 말이다. 헤이스케의 말에 이토가 반응하자, 헤이스케는 순간 자신이 실언을 했다는 것을 인식했는지 아, 하고 새파래진 얼굴로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그 태도가 상황을 점점 더 악화시킨다는 자각을 하지 못하는 것에 속이 답답했기 때문일까, 하라다가 피가 묻지 않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고, 히지카타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한 작은 소리로 체념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태도를 보아 무언가가 있을 것이 판단했기 때문일까, 이토는 대답을 꼭 듣겠다는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들,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요. ? 부작용? 대체 무슨 일을 한건가요!”

, 잠시, 무슨 이야기죠? ? 부작용? 뭔가 실험을 하고 있는 듯한 말투인데, 아니겠지요?”

“...이 건에 대해서는 말 하기 어렵습니다.”

 

산난이 이토에게 한 순간 시선을 주었다 다시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발버둥 쳐보겠다는 산난의 의지에 그 자리에 있는 간부들은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고 산난만을 바라보았다.

막부의 명령으로 나찰이라는 인간이 아닌 것을 몰래 만들고 있었다. 그 사실을 적이나 마찬가지인 이토에게 순순히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밝힐 수 없다라는 말 그렇게 어물쩍 넘어갈 수 있을 만큼 이토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토도 그 한마디로 냉정을 되찾았는지 방금 전 보다 침착해진 얼굴을 하고선 산난을 노려보았다.

 

나는 산난 씨가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요. 왜 산난 씨가 버젓이 살아있는 건가요. 여기 있는 여러분이 한통속이 되어 저를 속이고 있었던 건가요? 이 이토는 이 신선조의 참모라고요? 그런 저를 속이고 이런 잔인한 짓을... 납득해 주실 때까지 설명해주셔야겠...!!”

중얼중얼 시끄러워! 잠깐 입 다물고 있어!!”

, ……?”

 

히지카타의 호통에 이토가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콘도파의 간부들은 자신에게 위험한 상황을 들킨 것이고, 지금 칼자루는 자신이 쥐고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아직도 상황을 파악 못한 사람처럼 호통을 치는 히지카타에 어처구니가 없는지 이토는 무어라 반박하려 입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자자, 이토 씨. 진정하죠. 토시도 진정하고.”

 

그 반박도 갑자기 이 곳에 합류한 콘도에 의해 한마디도 못하고 목구멍 속으로 삼켜지고 말았다. 방금 전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상황을 전부 다 파악했는지 콘도는 자연스럽게 이토와 히지카타의 사이로 들어가 두 사람의 사이를 중재하기 시작했다.

 

토시도 나쁜 뜻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상황이 상황이라. 이 일은 제가 확실하게 이야기 해드리겠습니다. -, 잠깐 시간을 주시죠. 이 상황에서 제대로 된 이야기가 되지 못할뿐더러……. 무엇보다 유키무라가 크게 다쳤습니다. 딱 봐도 상처가 심한데, 먼저 치료를 받게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어머.”

 

그제서야 이토도 치즈루가 다쳤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해냈는지 숨을 들이켰다.

한 때 이토는 치즈루의 의료지식을 높게 사 그녀를 자기편으로 끌여들이려고 했었다. 그렇기에 이토는 어느 정도 치즈루에게 호의를 갖고 있었고, 이대로 죽게 놔둘 생각은 없었는지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 그렇죠. 유키무라 군. 얼른 치료를 받으러 가세요. 아아, 정말 야만적인 사람들! 사람이 다쳤으면 얼른 치료를 받게 해야지 왜 이렇게 방치해두고 있나요! 딱 봐도 심한 상처잖아요!”

아니, 일단 치료를 받게 하려고는 했다고?”

 

그 때 당신이 들어와서 바로 보내지 못한 것뿐이지. 마지막 말을 말하면 상황이 더 꼬일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일까, 하라다는 나가쿠라가 마지막까지 말하기 전에 그의 입을 막아버렸다. 여기서 더 이상 일을 지체하면 치즈루만 위험해진다. 이토에게 들리지 않도록 하라다가 나가쿠라에게 속삭였고, 나가쿠라도 그것을 받아들였는지 고개를 끄떡이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일단 여기서는 물러서드리겠습니다. 환자가 급선무니까요! 하지만 이대로 끝날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특히 산난씨! 당신의 입으로 사정을 전부 설명해 주셔야겠어요!”

………………….”

듣고 있나요! 산난씨!”

, 크아아아아아……!”

 

다들 이토만을 주시하고 있어서일까. 아무도 산난의 상태가 점점 이상해지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들이 산난의 상태를 알아차린 것은, 갑자기 산난이 자신의 가슴팍을 부여잡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 산난씨?”

“-!!! 유키무라! 물러나!!!”

?”

 

히지카타의 다급한 목소리에 치즈루가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그와 동시에 산난은 빠르게 치즈루의 앞으로 이동하더니, 그대로 치즈루의 다친 팔목을 잡았다.

 

……!”

치즈루!”

? ????? 무슨, 뭔가요! 이건!”

 

다친 팔목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지금 산난이 치즈루를 쥐는 손아귀의 힘이 너무 강한 탓에 치즈루는 그 팔을 뿌리치는 것은 거녕, 주먹을 쥐는 것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을 맛보고 있었다. 아프다. 뼈가 뿌러질것만 같다. 하지만 아무리 아프다고 사정을 해보아도 산난은 놓아주지 않았다. 그저 치즈루의 귀에만 겨우 들릴 정도로 피, 피를, 이라고 미쳐버린 나찰처럼 읆조리고 있을 뿐. 그 모습에 치즈루는 그 날밤, 자신의 목을 조르던 산난의 모습을 떠올렸다.

 

-죽는다.

 

그렇게 느낀 치즈루는 어떻게든 산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산난의 악력은 그걸 허락해주지 않았다.

 

, 놔주세요! 산난 씨!”

……피를, 주세요. 당신의, 피를.”

 

이건 안 된다. 전혀 자신의 말이 닿지 않는다. 공포로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가던 그 와중, 그 상황을 그냥 두고 보지 않겠다는 듯이 이토와 콘도를 제외한 모든 대사들은 무기를 들고 산난을 째려보았다.

 

산난 씨! 그만해! 어이!”

젠장, 그러고 보니 여기 피 냄새가 충만했었지! 이럴 거라고 얼른 생각해 냈어야했는데!”

 

치즈루도 베여서 피를 많이 흘린 데다, 방금 전 죽어버린 나찰도 피를 한바가지 흘리며 죽었다. 그러면 치즈루의 방이 피 냄새로 가득 차는 것은 필연적인일이고, 산난이 그 냄새의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토를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에 잠시 잊고 있었다. 실책이다, 라고 중얼거리는 히지카타였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뭘 생각하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바뀔 수 없다.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후회해도 이미 늦은 상황이 되어버렸으니까.

 

어떻게든 제압해! 다소 상처 입혀도 상관은 없어! 하지만 유키무라의 구출이 먼저다!”

“-, 어쩔 수 없지.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줘. 산난 씨.”

치즈루를 죽게 할 수는 없으니까 말야!!”

, 이봐요!! 잠시 만요!”

 

히지카타의 지시에 다들 당장이라도 산난에게 달려들 수 있도록 자세를 잡자, 멍한 얼굴로 이 사태를 지켜보던 이토가 당혹한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당신들설마 산난 씨를? 그런 행동! 이 이토가 용서하지 않겠어요!!”

 

그런 대사들의 행동에 가장 당황한 것은 이토였다. 상황을 전혀 읽을 수 없었으니까. 산난이 어째서 살아있는지 파악조차 되지 못했는데, 갑자기 산난이 저러는 지도 모르니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게다가 지금 모두 산난을 죽이려는 듯이 검을 빼들고 있으니, 이토의 입장에서 본다면 증거인멸을 위해 산난을 죽이려고 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간부들은 그런 이토의 행동은 치즈루를 더 위험하게 만드는 거였기에 한껏 불쾌한 얼굴로 이토를 째려보았고, 이토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자자, 무엇을 염려하는지 알겠지만 이토 씨가 염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다행히 이대로 가다간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콘도가 평소와 달리 근엄한 얼굴을 하고선 이토의 팔을 잡았다.

 

그러니 여기는 토시들에게 맡깁시다. 사정은 제가 제대로 설명 해드릴테니.”

, 잠시 만요! 콘도 씨. 그 말을 제가 믿을 거라고! 이익, 이 야만적인 사람! 힘은 왜 이리 세담!! 이거 놓으세요!!”

 

그리고 이 사태를 빨리 해결시키기 위해 그대로 이토를 잡고 이 공간을 빠져나갔다. 이토는 계속 놓으라고 날뛰었지만, 중간에 콘도가 입을 막은 덕분인지 으브브브, 라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대로 사라져갔다. 저래도 괜찮은 걸까, 하고 잠시 상황을 잊은 생각을 하고 있는 치즈루와 달리, 다른 대사들은 쓸데없는 방해물이 없어졌다는 듯이 후련한 얼굴을 하고선 다시 산난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사이, 산난은 방금 전 나찰처럼 새하얀 머리와 진홍색 눈으로 변해있었다.

상황은 최악인 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산난은 제정신이 아니고, 여전히 치즈루는 잡혀있다. 언제 산난이 치즈루를 습격할지 모른다. 하지만 섣불리 달려들었다가 상황이 악화되면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것은 치즈루다. 그것만큼은 히지카타도 피하고 싶었는지 평소처럼 선수를 치지 못하고 계속 노려보는 상황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

 

그리고 그 상황에서 먼저 움직인 것은 산난이었다.

이성이 없었기 때문일까. 지금 산난의 눈에는 자신을 경계하는 히지카타들의 모습은 비춰지고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비춰지고 있는 것은 오로지 치즈루의 팔을 타고 흐르는 피 뿐. 마치 세계에 그것만 있는 것처럼 산난은 그것만을 보고 있다가, 인간이 아닌 듯 한 미소를 짓더니 치즈루의 피를 입에 머금었다.

 

“-어이! 산난 씨!”

 

팔에 닿는 산난의 혀는 차가웠다. 마치 인간의 것이 아닌 것의 혀가 자신의 피부를 기는 감각에 치즈루는 자기도 모르게 작게 비명을 질렀다. 마치 인간의 것이 아닌 것 같았지만 현재 출혈로 자신의 체온이 엉망이 되어서 그렇게 느끼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라고 치즈루는 문득 생각했다. 지금 자신의 감각은 엉망진창이 되어있으며, 산나도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치즈루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은 벌벌 떨면서 산난이 얼른 자신의 팔에서 입을 떼는 것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헤이스케는 그 광경을 잠시 머릿속에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표정을 짓다가, 곧 분노에 가득찬 표정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 용서 못해

 

그 한마디를 씹어 내뱉듯이 내뱉은 헤이스케는 자신의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지금이라도 산난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얼굴을 하고선 옆에 서 있는 하라다와 나가쿠라를 바라보았다.

 

가자! 신팟짱! 사노씨!”

좋아!”

실수하지마라! 헤이스케! 신파치!”

 

하지만 무작정 뛰어들었다가는 치즈루만 위험해질 가능성이 컸다. 그렇기에 헤이스케는 최대한 냉정해지기 위해 두 사람의 이름을 외쳤고, 두 사람도 당장 뛰쳐나가서 산난을 어떻게든 하고 싶다는 분노에 휩싸인채 대답했다.

 

“-잠깐 기다려!”

 

산난에게 커다란 상처를 입히는 한이 있어도 어떻게든 치즈루를 빼오려고 돌진하려는 순간, 히지카타의 제지에 세사람 모두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이익...히지카타 씨! 무슨짓이야!”

히지카타 씨. 당신. 지금 이 상황에서 산난 씨의 편을 들 생각이야?”

 

그렇다면 당신도 가만 안두겠다는 얼굴로 하라다가 히지카타를 째려보았다. 하지만 히지카타는 그 눈빛에 하라다에게 시선을 주는 것은 물론 눈썹하다 깜빡하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불평이나 불만이 있으면 나중에 다 들어줄 테니 일단 지금은 기다려!”

그치만 히지카타 씨! 그럼 치즈루가-”

……산난씨의 상태가 이상해.”

 

치즈루가 위험해지지 않느냐. 그 한마디를 입에 담으려는 순간 헤이스케는 히지카타의 말에 급히 산난을 바라보았다. 보통 나찰들은 피를 섭취해도 아직 부족하다며 상대방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피를 착취하건 했는데, 산난은 어째서인지 가슴팍을 붙잡고 꺽꺽대고만 있었다. 피를 빼앗긴 치즈루도 이게 무슨 일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이건 기회였다. 치즈루에게 얼른 산난을 뿌리치고 이쪽으로 오라고 외치려는 찰나-, 산난의 머리색이 돌아왔다.

여태껏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던지라 다들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산난을 경계하고 있으면, 쿨럭, 하고 크게 기침을 내뱉은 산난은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은 산난은 평소와 같은 갈색 머리카락과 초록색 눈동자를 한 채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 여러분. 저는, 대체?”

산난, ……?”

 

산난의 손아귀에 여전히 잡혀있는 치즈루가 조심조심 산난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방금 전만큼 세게 팔목을 잡고 있지 않았기에 치즈루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치즈루의 부름에 산난은 살짝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던 산난은 자신이 치즈루의 손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는 놀란 얼굴로 급히 그녀의 손목을 놓았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저기. 산난 씨?

산난 씨. 괜찮은 거야?”

 

치즈루가 산난의 상태를 확인하려는 차, 검을 든 하라다가 치즈루의 다치지 않는 팔을 잡고 자신의 쪽으로 이동시켰다. 난폭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최대한 빨리 치즈루와 산난을 떨어트리고 싶었기에 하라다는 강경수단을 써버렸다. 그리고 그 틈을 타서 헤이스케가 산난에게 다가가서 묻자, 산난은 그제서야 제대로 정신을 차렸는지 놀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을 잃고 여러분에게 폐를 끼쳐버린 모양이군요.”

그건 괜찮아. 산난씨. 그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여태껏 제정신으로 돌아온 나찰은 없었다. 다들 전조가 없이 발작을 하고, 피에 미쳐서 그대로 피만을 찾아다니며 사람을 죽여 버리는 괴물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산난도 그들처럼 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다행이 그는 돌아왔다. 제정신으로 이 곳에 두 발로 서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산난과 그들이 어떤 차이가 있어 산난만이 돌아오고 그들은 미쳐버린 채 간부들의 검에 쓰러져갔는지, 현재로서는 알 방도가 없다. 다들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그저 침묵만을 하고 있을 때, 히지카타가 크게 한숨을 쉬고선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유키무라. 상처는 괜찮나?”

. ! 출혈이 좀 심한 것 같았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지금은 괜찮다는 또 뭐야. 이렇게 피를 쏟았으면 꿰매야 할 정도잖아.”

, 정말 괜찮아요! 일단 지혈하고 따로 제가 치료할게요!”

…….”

부탁드려요!!”

 

필사적으로 부탁해오는 치즈루의 얼굴색이 좋지 않은 것은 분명 피를 많이 흘려서만이 아닐 것이다. 필사적으로 자신이 치료하겠다는 치즈루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낀 히지카타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하라다는 다른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아-, 하고 말을 떼기 어렵다는 듯이 말꼬리를 늘렸다.

 

히지카타 씨. 오늘은 일단 치즈루가 혼자서 치료하게 하고 내일 마츠모토 선생님이 있는 곳으로 가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사노! 제정신이야? 물론 치즈루 짱이 우리들 사이에서 가장 지식이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혼자서 치료하게 하는 것은..”

바보야. 남자들에게 보여주기 힘든 부위도 다쳤을 수도 있잖아. 물론 그 부위까지 마츠모토 선생님에게 보여드릴 수는 없겠지만 치료의 조언정도는 받을 수 있을 테고, 거기가 여기보다 더 설비가 좋으니까 거기서 제대로 치료할 수도 있을 거 아냐.”

, 아아!!”

 

하라다의 말에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나가쿠라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당황하기 시작했다. 물론 치즈루가 치료를 거부하는 이유는 그런 이유가 아니었지만, 미안한 마음을 안고 지금은 그 오해를 감사히 이용하기로 한 치즈루는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든 얼굴에 떠오르는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그 모습에 히지카타도 하라다가 말한 이유로 납득했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마음 같아선 그녀의 팔을 잡고 직접 상처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이렇게까지 꽁꽁 싸매는 것을 보아하니 무언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어렵지만 납득해주었다.

하지만 화는 눌러 참기 어려웠던 것일까, 히지카타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은 채 뒤에서 치즈루와 산난을 걱정하고 있는 세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듯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 녀석들! 뭘 꾸물거리고 있어!”

히익

일단 생각하는 건 다음으로 미룬다! 밤은 짧다. 지금 먼저 해야 할 것은 뒤처리와 청소다. 최대한 은밀하고 빠르게 행동해야하는 거, 네 녀석들 알고 있겠지!”

, 그랬지. 시체도 처리해야하고 방도 정리해야하고.”

 

정말 귀찮다는 표정으로 나가쿠라가 검을 납도 하고선 치즈루의 방에 있는 걸레를 찾기 위해 그녀에게 허락을 받고 도구를 두는 곳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헤이스케와 하라다도 자신의 무기를 집어넣고서는 피가 뭍은 범위를 확인하며 다다미와 장지문을 뜯어냈다.

 

산난 씨. 당신은 일단 방으로 돌아가는 편이 좋겠어.”

……그러는 편이 좋겠군요.”

 

치즈루의 방은 아직도 피투성이인 상태다. 이렇게 피 냄새가 충만해 있으면 산난이 다시 피 냄새에 폭주해버릴 가능성이 있었기에 히지카타는 일단 산난을 내보내기로 했다.

 

가서 콘도 씨와 함께 이토 씨와 이야기해도 상관없어. -, 사이토와 동행해주길 바래. 이유는 알고 있지?”

. 알고 있습니다. 전부.”

 

모든 것을 납득했다는 듯이 산난이 고개를 끄떡였다. 지금은 제정신을 찾았다 해도 언제 또 제정신을 잃게 될지 모른다. 그렇기에 히지카타는 감시 역으로 사이토를 붙인것이었다. 정신을 잃고 미쳐버리면 이번에야말로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도 담겨있었다. 그리고 산난은 이정도 하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뉘앙스의 말을 남기고 헤이스케와 함께 치즈루의 방을 나섰다.

 

산난 씨만 하지메군에게 데려다주고 다시 바로 올께!”

 

산난을 혼자 보낼 수 없었던 헤이스케는 그 한마디만을 남기고 방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히지카타는 치즈루를 바라보더니, 평소보다 더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그리고 유키무라, 너는-”

, . 저도 청소를-”

 

피를 많이 흘린 탓인지 제대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평소라면 먼저 청소를 했을 텐데 그냥 멍하게 앉아 있어버렸다. 다른 사람도 하고 있는데, 자신이 이럴 때가 아니라는 듯이 치즈루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갑자기 시야가 크게 흔들렸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바닥에 쓰러진다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다리가 바닥에서 뜨는 감각을 받았다.

 

, 꺄앗!! , 히지카타 씨?”

멍청아! 가만히 있어!”

 

자신이 공주님안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 챈 치즈루는 내려달라는 듯이 바동거렸지만 곧 가만히 있으라는 히지카타의 호통에 치즈루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이 바보가! 어지러울 정도로 피를 흘린 놈 주제에 무슨 청소는 청소야!”

그치만…….”

그치만?”

 

반론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한 얼굴로 히지카타가 치즈루의 말을 따라하자, 치즈루는 잔뜩 겁을 먹은 채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보고 있던 나가쿠라와 하라다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크게 한숨을 쉬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치즈루 짱. 오늘은 쉬어. 방은 우리들이 정리하고 있을 테니까.”

그래. 곧 헤이스케도 올 테고 다른 녀석들도 도와 줄테니 걱정하지 말고. 게다가 이건 우리들의 감시부족으로 일어난 일이야. 비난받아야 마땅할 차에 치즈루, 네가 죄악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너는 피해자야. 그러니까 오늘은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고 푹 쉬도록 해. 알았지?”

…….”

 

하라다의 설득 덕분이었을까. 치즈루는 제대로 납득한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떡였다. 다친 자신이 여기서 고집을 부렸다가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따 헤이스케가 오면 통에 물 좀 담아서 내 방으로 오라고 해라.”

? 히지카타 씨의 방?”

오늘 이 녀석은 내 방에서 잔다.”

, 네에에??”

-. 그런 이유인가. 알았어. 최대한 빨리라고 전할게.”

 

확실히 오늘 밤 자신의 방에서 자는 것은 무리라고 알고 있었다. 그래도 히지카타의 방에서 자게 될 것이라고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치즈루는 눈에 띄게 동요하고 말았다.

 

이토 파 녀석들이 있는 곳과 히지카타 씨의 방은 꽤 머니까. 게다가 거기라면 안전하게 쉴 수 있을 테고 말야. 간이 큰 녀석이 아닌 한 누가 오니부장의 방에 숨어들겠어?”

그리고 난 너를 데려다주고 콘도 씨에게 가볼 예정이니 너는 안심하고 치료하고 자도록 해라. 잔다고 해도 콘도 씨의 방에서 잘거니까. 그렇게 알아라. 반론은 받지 않는다. 알았냐?”

네에…….”

 

거절은 거절이라고 하는 듯 한 눈으로 치즈루를 바라보는 히지카타의 시선에 그녀는 그저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공주님 안기만이라도 어떻게 해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그것도 이루어지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치즈루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선 공주님안기를 당한채로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방을 나섰다.

 

*

 

바깥은 시끄러웠다.

분명 방금 전의 소동으로 인해 소란스러워진 것이라 깨달은 치즈루는 입을 다물었다.

 

역시 그 때 누군가를 부르지 말았어야 했을까.’

 

그 때 도움을 요청한 덕분에 자신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덕분에 일이 커져버렸다. 그 때 자신의 행동은 과연 올바른 것이었을까, 하고 치즈루가 생각하고 있으면, 그런 그녀의 생각을 읽었는지 히지카타가 한숨을 쉬고선 툭 하고 내뱉었다.

 

너는 잘못 한 거 없어.”

히지카타 씨.”

빠르건 늦었건 나찰에 대해서는 언젠간 이토씨에게 들킬 일이었어. 거기서 네가 입 다물고 살해당했다면 일이 더 커졌을 가능성이 있었고. 그러니 네가 살아남는 길을 택한 것은 옳은 일이다. 하라다가 말했듯이 너는 피해자고, 우리들의 사정에 의해 감금되어 있는 계집애다. 그런 네가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걸며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네 안전을 먼저 생각해.”

……. 죄송해요.”

물론 네가 나찰에 대한 것이라던가, 신선조의 비밀을 이것저것 떠벌린다면 이야기는 별개다만.”, 그런 짓은 안 해요!!!”

그렇다면!”

 

치즈루는 신선조의 사람들이 좋았다. 좋았기에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부정을 하자, 히지카타의 호통의 다시 한 번 들려왔다.

 

그렇다면 먼저 너의 목숨을 걱정해라! 너는 신선조의 정식대사가 아냐. 그렇기에 임무와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걸라고는 하지 않아. 뭣보다 너에게는 콘도 씨를 찾는 걸 도와줘야 하는 의무도 있어. 그러니까-, 죽지마라. 유키무라.”

 

마지막 한마디에 히지카타의 진심이 담겨있다는 것은 둔한 치즈루도 눈치 챌 수 있었다. 목소리에, 얼굴에 자신을 걱정하는 감정이 묻어나왔기 때문이다.

 

……, 죽지 않아요. 아버지를 찾기 전까지는, 죽을 생각은 없어요. 감사합니다. 히지카타 씨.”

 

그 말에 치즈루는 잠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얼굴을 하다가, 곧 결심에 찬 얼굴로 감사를 전했다. 남의 호의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에는 감사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야마자키의 조언을 따른 것이었다. 그러자 히지카타의 표정이 살짝 부드러워졌다.

 

곧 헤이스케가 상처를 씻을 물을 가져다 줄 거다. 원래라면 우물로 데려가는 것이 낫겠지만, 사람의 눈이 있으니까. 일단 오늘은 그걸로 참아라.”

.”

그리고 피 묻은 옷은 물에 담가둬라. 복도에 내놓지 말고 그냥 후스마 앞에다가 둬. 나중에 시간 있으면 누군가가 가지러 갈 테니까.”

알겠어요.”

내가 쓰던 이불이라 미안하지만 일단 오늘은 그걸로 참아라. 푹 쉬고.”

, 아뇨. 오히려 방을 빼앗아서 죄송할 따름인걸요…….”

 

히지카타는 자신의 방안에 치즈루를 안고 들어갈 때까지 그녀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고, 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되는 것을 구구절절 알려주었다. 오키타가 들으면 히지카타 씨, 시끄러워요라고 한마디 할 정도로의 잔소리였지만, 치즈루는 진지하게 들으며 , 알겠어요라고 대답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자신의 방 안에 내려놓은 히지카타는 자신의 방에 있는 임시 치료도구와 잠옷을 꺼내주고선 푹 쉬라는 인사를 남기고 가버렸다.

그 뒷모습에 치즈루는 급히 감사의 인사를 남겼지만 그 인사가 제대로 전해졌는지 치즈루는 모른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치즈루는 처음에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이대로라면 아무것도 안되니 일단 헤이스케가 물을 떠오는 것을 기다리기로 하며 일단 상처를 확인했다.

 

……멎었어.’

 

치즈루의 감각에 따르면, 그 나찰이 치즈루에게 내리친 그 일격은 뼈까지 닿았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출혈로 죽거나, 예전의 산난처럼 팔을 아예 평생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었다.

 

 

[ 당신은 상처의 회복이 이상할 정도로 빠르지 않습니까?]

[ 여자오니는 귀중하다. 함께 와라.]

 

 

……역시, 나는 오니인걸까.’

 

여태껏 치즈루는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렇게 크게 상처를 입어본 적이 없어서 그냥 상처가 다른 사람들 보다 빠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자신은 분명 인간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던 걸까.

 

안 돼. 안 돼. 어두운 생각만 하면.’

 

크게 다쳤기 때문이었을까, 나쁜 생각이 계속해서 스멀스멀 올라오자 치즈루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팔은 한동안 못 쓰는 척 하면 될 테고. 마츠모토 선생님은 사정을 말하면 협력해 주실 거야. 어쩌면 아버지에 대해서도 알고 계실지도 모르고.’

 

지친데다 피도 많이 흘렸기 때문이었을까,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일단 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치즈루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지금 이 상태에서 이것저것 생각해보아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헤이스케를 기다리고 있으면, 후스마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였다.

 

치즈루.”

헤이스케 군.”

 

후스마 너머에서 기다리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자 치즈루가 대답했다. 그러자 헤이스케가 잠깐 실례하겠다며 한 손에는 물이 가득 들어있는 통을, 한 손에는 깨끗한 천을 가진 채 방으로 들어왔다.

 

상처는 어때? 피는 멎었어?”

아직.이지만, 그래도 곧 멎을 것 같아.”

무리하지 마. 너무 힘들다면 내가 업고 마츠모토 선생님 댁으로 달려갈 테니까. 아니면 지금 당장 갈까?”

고마워. 하지만 괜찮아. ”

 

살짝 힘이 없는 대답과 웃음을 돌려주자 헤이스케는 계속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치즈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곳에 없는 한 사람을 떠올리고서는 푹, 하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야마자키 군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

 

그나마 이 둔소에서 치료를 잘 한다고 한다면 다들 치즈루 혹은 야마자키의 이름을 거론할 것이다. 상처를 입었다면 유키무라 혹은 야마자키에게, 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치즈루가 다쳤고, 야마자키는 자리를 비웠다.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은 배워두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고 헤이스케는 살짝 후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후회해도 지금 짠, 하고 의료지식이 나오는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치즈루는 내심 안심하고 있었다.

그에게 치료받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이 상처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다 나아버린 상처를 보았을 때 그가 어떤 반응을 할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괜찮다고 말해 줄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치즈루는 최악의 가정만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야마자키에게 괴물이다, 라고 비난받고, 신선조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그런 미래만이.

물론 그러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치즈루에게 엄격했지만, 상냥하기도 했었다. 그렇기에 치즈루가 어떤 체질이라도 그들은 이해하고 받아줄 가능성이 컸다.

 

 

[ 저리가, 이 괴물! ]

 

 

하지만 어렸을 적의 나쁜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다. 그 아이도 자신에게 상냥했었으니까. 예전 일을 떠올렸기 때문일까, 치즈루의 안색이 방금 전 보다 더 나빠진 걸 알아차린 헤이스케는 잠시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미안! 오래있어서! 내가 있으면 치료 못하지!!!”

, 으응. 미안해. 헤이스케 군. 신경 쓰게 만들어서.”

 

아마 예전의 일을 떠오르는 자신의 얼굴을 다른 식으로 멋대로 해석해버린 것이라고 치즈루는 알아차렸지만,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확실히 상처는 아파왔다. 피가 멎어도 통증은 계속 지속되는 법이다. 하지만 그것과 다른 이유로 치즈루는 헤이스케가 이 자리를 피해주기를 바랬다. 그의 앞에서 상처를 치료할 수는 없었으니까.

 

아냐! 내가 미안하지! 눈치도 없게 계속 여기에 있어서! 나는, 그냥…….”

 

계속 무언가를 말하고 싶다는 얼굴로 헤이스케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말을 하고 싶지만, 목에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듯 한 얼굴이었다. 무언가 고민을 하는 것 같았고, 괴로워하는 것 같았다.

 

헤이스케 군. 무슨 일있어?”

……아니야. 좀 더, 제대로 생각하고 말할게. 미안해. 치즈루. 신경 쓰게 해서.”

 

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헤이스케는 억지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웃음이 더더욱 걱정이 된 치즈루는 헤이스케의 옷자락을 잡고 그를 불러 세우려 했지만, 자신의 손이 피투성이라는 것을 깨닫고 손을 내렸다.

 

헤이스케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없어?”

미안. 치즈루는 치즈루의 일만 생각하면 되는데, 내가 신경 쓰게 만들어버려서. 그러니까, 일단은 고민할게. 그 후에 이야기 할게.”

 

그러니까 오늘은 쉬어. 그렇게 말하며 헤이스케는 다시 한 번 웃었다. 이번에는 언제나의 헤이스케의 웃음이었기에, 치즈루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지금은 나중에 말해주겠다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잘 자. 치즈루. 내일보자.”

. 잘 자. 헤이스케 군. 내일 보자.”

…….”

 

치즈루의 인사에 헤이스케는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후스마를 닫았다. 그 미소의 의미를 아직 알 수 없는 치즈루는 그저 신경을 쓰게 만들었구나, 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내일 아침 다시 한 번 미안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인사하러 가자며 치즈루는 피를 씻어내고, 응급처치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때까지 치즈루는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은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내일은 분명 오늘과 비슷한 평범한 하루가 계속 될 것이라고.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은 채 치즈루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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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멜리스
2019. 8. 1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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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8. 12. 23:46

유키무라 선배, 어떻습니까! 저희들의 차는!”


내가! 내가 더 잘 끓였죠? 그쵸??” 


-아아. 나는 여기서 죽는 건가.

-아버지. 찾지 못하고 먼저 가서 죄송해요.


한순간 정신이 아늑해지는 것을 느끼며 치즈루는 죽음이라는 것이 이런 걸까. 라고 한 순간 생각해버렸다.

신선조가 니시혼간지로 이사를 온지 5개월 이상이 지났다.

여러 가지의 변화가 있었지만,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을 뽑자면, 코우도랑 지인이자 치즈루가 쿄에서 만나려고 했던 난방의, 마츠모토 쥰이 신선조에 자주 와주며 치료를 해주게 되었다. 그도 오치미즈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코우도의 행방을 찾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 이였기에 그는 기꺼히 치즈루의 조력자가 되어 주었다. 둔소를 자유롭게 나가지 못하는 치즈루를 도와 자신 나름대로 코우도에 대한 정보를 모아주건 했지만, 결정적인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다며 치즈루에게 미안하다 사과를 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치즈루는 마츠모토가 사과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코우도 찾기에 적극적이지 못한 자신이 사과해야했으니 말이다.

두 번째로는 둔소가 깨끗해졌다. 마츠모토가 왜이리 더럽냐, 라는 일갈 때문인지 다들 이주일에 한번정도는 제대로 된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주로 치즈루가 청소를 했는데, 이 변화로 치즈루의 일감이 조금은 줄었다.

세 번째, 대사가 많이 늘었다. 애초에 니시혼간지로 이사 온 이유 중 하나가 대사들이 많아졌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케다야, 금문의 변 등 명성을 높인 덕분에 신선조에 들어오겠다는 사람도 많이 늘었고, 헤이스케의 지인인 이토 카시타로를 간부로 맞은 효과로 그를 따르던 사람도 자연스럽게 신선조의 대사가 되었고, 그 결과로 신선조의 인원이 불어난 것이다. 갑자기 늘어난 대사의 수에 치즈루도 처음엔 허둥지둥 댔지만 지금은 익숙해져서 대량의 빨래도, 음식도 무리없이 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치즈루에게 후배가 생겼다.


소우마 카즈에. 노무라 리사부로.


나이는 둘 다 치즈루보다 연상이었지만 그들은 자신보다 시동 일을 오랫동안 한 치즈루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선배라고 불러주며 존경해주고 있었다.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치즈루를 높이 사고 있어 주위에서도 잘 따르는구나라면서 흐뭇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노무라와는 그가 신선조에 입대했을 때 처음 만났지만, 소마랑은 신선조가 이케다야의 사건을 겪기 전에 처음으로 만났었다. 물론, 소마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첫 만남이었겠지만.

테라다라는 여관에 코우도가 있다. 그 소시을 들은 치즈루는 사이토와 함께 그곳으로 가려했지만 히지카타는 후시미에 있을 확률이 더 높다며 하라다와 나가쿠라, 헤이스케의 순찰에 동행하라고 했고, 치즈루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물론 테라다야에서 코우도를 보았다는 목격정보도 신경 쓰였다. 하지만 여관에 있다면 사이토가 반드시 데려올 것이라고 믿고선 3사람의 순찰에 동행했고, 그곳에서 소마를 처음 만났다.

싸움이 일어난 낭사들을 신선조가 체포하려는 도중, 그는 도망가는 낭사를 막으려다가 오히려 한 대 맞고 떨어져나갔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인 자신들을 도와줘서 고맙다고 헤이스케가 감사의 인사를 했지만 오히려 그는 공에만 눈에 먼 피에 미친 미부로 따위에게 인사 받아도 기쁘지않다라는 식으로 폭언을 내뱉었다. 그 한마디가 하라다의 공분을 샀고, 다툼이 벌여지려는 찰나 그는 한 장의 그림을 떨어트렸고, 그것 때문에 소마는 신선조의 둔소로 연행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그림은 나찰을 그린 그림이었다.


다행히 그 나찰그림은 한 장 뿐이었고, 그린 이도 간부들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었는지 그것만 확인하고 소마를 돌려 보내주었다.

화가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다, 라는 것은 거짓말이 된다. 하지만 그 당시 치즈루에게 있어서 안다라는 것은 그녀의 입장을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었기에 치즈루는 물으려 하지 않았고, 물었다 해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을 것 이다. 그 당시 치즈루가 알 수 있었던 것은 딱 두 가지. 화가가 잘 살고 있다는 것을 간부들 대부분이 기뻐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은 그 얼굴도 모르는 화가를 부럽다라고 생각한 것 뿐이었다.

그렇게 소마와의 첫 만남은 그리 나쁘지 않게 끝났다. 그렇게 다른 번 사람인 그를 만날 일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치즈루의 예상을 깨고 소마와는 금문이 변 이후로 다시 한 번 더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는 알지 못했다. 설마 그가 탈번을 하고 신선조에 들어오고, 그것도 자신의 후배가 된다는 것을. 지금 생각하면 정말 인생은 예상치 못하는 일의 연속이라고 치즈루는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자신을 이렇게 따를 줄은 정말 몰랐다는 점이었다.

치즈루에게는 평범한 일을 그들은 치즈루가 하는 일 하나하나를 굉장하다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대단하다며 존경한다고 몇 번이나 말하고, 표현해주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자신을 존경해주고 따라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부담스럽다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우리는 무엇을 하면 될까요?” 라는 말을 들으면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건 아직까지도 고쳐지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려 보거나 시켜본 적이 없었던 치즈루에게 있어선 그 일이 가장 어려웠다. 왜냐하면 자신은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쪽이었지 누군가에게 지시를 해 본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상대는 편하게 대해달라고는 하지만 연상의 남자다. 아무리 저쪽은 자신의 사정을 모르고 있다고 해도 그렇다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연상의 남자에게 깍듯하고 정중히 대해지는 것은 처음인 치즈루는 몇 번이건 도망치고 싶다는 감각을 맛보아야만 했다.

간부들에게 상의해보아도 익숙해져라라던가 잘 따르니까 좋지 않으냐라던가 너는 너무 자신의 위치를 낮게 잡는 경향이 있으니 이 기회에 상사의 감각을 익혀봐라라고 하는 등등 치즈루의 도망칠 길을 전부 막아버렸다. 처음에는 다들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심 우울해 있는 치즈루에게 사정을 아는 하라다가 좀 더 자존감을 높이라는 뜻이다라고 알려주었다.

그걸 들은 치즈루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것저것 걱정 끼치는 것 같아 죄송하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걱정 끼치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잘 해내가는 모습을 보여보자고 생각하며 치즈루는 두 사람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선배가 되자고 남몰래 결의했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지만 말이다.

이야기를 되돌려서, 치즈루는 지금 정말 죽을지도라는 감각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이 후배들이 만사에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청소도 빨래도 차도 제대로 끓여본 적이 없는 그들이 어떻게든 일을 익히려고 치즈루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익히려고 하고, 나가쿠라에게 엉망이 되면서까지 훈련을 받으며 좀 더 나은 자신이 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노력을 치즈루는 건방진 생각이지만 이 둔소의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이런 자신을 믿고 따라주는 후배들이다. 그러니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해주자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죽음까지 경험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오키타의 방을 몰래 청소하는 겸 둔소의 방 하나하나를 전부 청소하고 있으면, 그걸 본 훈련을 끝낸 두 사람이 도와주겠다며 활짝 웃으며 달려왔다. 그렇게 두 사람에게는 히로마의 청소와 마루를 맡기고 원래 목적이었던 오키타의 방도 청소하고 왔다. 원래라면 한 이틀은 걸릴 작업이었는데 소마와 노무라가 도와준 덕분에 되도록 빨리 끝낼 수 있었다.


덕분에 일찍 끝났어! 오늘도 고마워.”


언제나 자신이 곤란할 때 도와주는 후배들에게 오늘도 감사인사를 하며 차를 내오겠다고 하자, 두 사람은 이번엔 자신들이 내오겠다며 치즈루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바로 주방으로 달려가버렸다. 그리고 나온 차가 바로 이것이었다. 치즈루가 아는 일반적인 차와 달리 색도 탁하고 냄새도 이상한 것 같은 이것을 차라고 불러도 되는 것일까 한순간 고민했지만 두 사람은 얼른 마셔주세요, 라는 눈빛을 치즈루에게 보내고 있었다. 왜 이게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두 사람이 열심히 끓인거고, 보기에는 이렇지만 의외로 맛은 괜찮을지 모른다. 이것을 마신다는 것에 용기가 필요했지만 차에 대한 수상함 보다 두 사람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렇게 안일한 마음으로 차를 마시고-, 지금 이 사태에 이르렀다.

안일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한 순간 죽음을 볼 정도로 맛이 없을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차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건지 묻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저 잘했죠? 맛있게 잘 우려냈죠? 라고 눈으로 묻듯이 눈을 빛내고 있는 후배들에게 차마 그 한마디를 하지 못한 채 제정신을 잡으려 어떻게든 고군분투하고 있으면, 그런 치즈루를 구원의 손길을 내미려는 듯이 누군가가 다가왔다.


얼레. 치즈루 짱. 왜 그렇게 죽어가는 얼굴을 하고 있는거야? 후배들이 하극상이라도 치룬거야?”

, 오키타 씨.....”


아니, 구원의 손길이 아니라 혼돈의 시작을 열 사람이 와버렸다. 지금 순찰에서 돌아온 듯 물색 하오리를 걸치고, 다른 한 손에는 이마보호대를 들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오키타를 보고 치즈루는 조심조심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오키타에게는 실례되는 생각이라는 것은 알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의 존재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만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걸 느끼며 오키타를 바라보고 있으면, 방금 오키타의 말을 듣고 흘릴 수 없다는 듯이 노무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항의하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에요, 오키타 씨! 우리가 왜 유키무라 선배에게 하극상을 하겠어요!”

그렇습니다. 오키타 씨. 방금 발언은 정정해주세요. 저희는 진심으로 유키무라 선배를 선배로서 존경하고 있어요!”

헤에, 정말? 치즈루 짱은 여자 같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치즈루 짱이라는 호칭이 정착되어있고, 약하고, 검술에 재능이 없잖아? 그런데도 선배라고 생각하고 존경할 수 있어? 신선조 내부에서도 너희가 불쌍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던데-?”


오키타의 가시 돋친 말에 치즈루는 입을 닫았다. 두 사람은 자신을 잘 따라주지만 다른 대사들-, 특히 이토 파 사람들 사이에서는 소마와 노무라를 동정하는 목소리가 꽤 있었다. 물론 치즈루도 잘 알고 있다. 몇 번 치즈루에게 들으라는 듯이 크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두 사람에게 미안해서 더더욱 힘내야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뭐어, 그렇-”

그렇지 않습니다. 유키무라 선배에게는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있어요. 다른 간부들만큼 존경하고 있는 분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요!”

맞아요! 유키무라 선배는 대단한 분이라고요! 그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 못해!”


뭐어 그렇죠라고 힘없이 웃으려는 순간, 마치 치즈루에게 그 말을 내뱉게 하지 못하려는 듯이 두 사람이 필사적으로 반박해왔다. 이렇게 힘 있게 부정의 날아올 줄은 몰랐기 때문일까, 치즈루도 오키타도 놀란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반박이 기뻤기 때문일까. 감동받은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치즈루와 달리, 오키타는 그들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입 꼬리를 올리고선 두 사람에게 방긋 웃어보았다. 하지만 그 표정이 일명 히지카타에게 장난을 치료는표정이라는 것을 읽은 치즈루는 당장 두 사람에게 도망가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너희들의 치즈루 짱 사랑은 잘 들었어. 그런데 말야, 너희들은 보통 그 존경하는 선배에게 이런 걸 먹이는구나-. 헤에-. 말과 행동이 틀리지 않아? 너희들?”


그 짧은 시간에 치즈루의 표정과 낯빛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사람 같이 되어있는지 그 시간 안에 파악한 오키타가 치즈루의 앞에 놓여져 있는 노무라와 소마가 탄 차를 바라보았다. 내가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차이올시다, 라고 주장하는 듯한 모습의 찻를 바라보며 오키타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허탈하게 웃었고, 그 다음에 그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할지 예상했는지 치즈루는 할 수 있는 한 필사적으로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이 헛수고라는 듯이 오키타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치즈루 짱. 왜 이런걸 마셔. 이거 먹고 편해지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둔소 생활이 힘들었어?”

……, 그런 거, 아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오키타 씨! 마치 저희들의 차에 문제가 있는 것 같잖아요!”

………………나는 가끔 노무라 군의 뻔뻔함이 대단하다고 생각해.”


지금 대화의 흐름으로 자신들이 타온 차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이 새파래져버린 소마와 달리, 노무라는 자신의 타온 차가 뭐가 문제냐고 오히려 당당하게 묻고 있는 걸 보자 오키타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양심이 없는 건지, 아니면 무엇이 문제인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느쪽이던 악질 그 자체다. 이 녀석은 제정신인 걸까, 라는 해괴하는 것을 보는 눈으로 오키타가 노무라를 바라보는 것을 눈치챈 치즈루는 어떻게든 말려야한다며 선배로서의 책무를 다하려는 순간, 오키타가 왔던 곳의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다. 혹시 이토파 사람인 걸까. 하고 살짝 긴장하며 그쪽을 바라보면, 모퉁이에서 아는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야마자키 씨.”

, 유키무라 군. 찾고 있었어. 지금 시간 괜찮아?”

? . . 괜찮아요. 무슨 일이신가요?”


살짝 표정이 굳은 것을 보아하니 무언가 심각한 일이 있다. 그렇게 읽은 치즈루는 덩달아 살짝 딱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였다. 무슨 일일까.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소마와 노무라도 치즈루와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야마자키를 바라보았지만 야마자키는 그들의 시선에는 전혀 신경쓰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유키무라 군이 주방담당이 아닌 건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차를 내올 때 자주 쓰잖아? 그래서 묻는 건데.”

.”

오늘 혹시 차 탄 적이 있어?”

, 아뇨. 아직은 없는데요. 무슨 일이신가요?”


주방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예전에 둔소에 고양이가 들어왔던 사건을 떠올리며 치즈루가 되물었다. 혹시 지금 주방이 심각한 상황이 되어있는 걸까. 그 때 보았던 주방의 광경을 떠올리며 치즈루가 묻자, 야마자키는 멋쩍어하며 입을 열었다.


주방에서 정체불명의 냄새가 나서 말야. 정리는 잘 되어있는데 냄새가 뭐랄까, 적의 코를 마비시키려는 그런 류의 냄새 같단 말이지. 혹시 오늘 주방에 갔다면 혹시 아는 게 있나 싶어서 묻-”

그 냄새, 혹시 이걸 말하는 거야? 야마자키군?”


야마자키의 말에서 모든 것을 알아챘는지 오키타가 방실방실 웃으며 소마와 노무라의 차를 야마자키의 눈 앞에서 흔들어 보았다. 그제서야 그 찻잔에서 나는 냄새가 주방에서 나던 냄새와 같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야마자키의 얼굴이 험악하게 물들어갔고, 오키타는 재미있는 일이 시작 될 것이라고 예감하는 아이처럼 그저 싱글 싱글 웃고 있었다.


---!!! 또 당신입니까! 이젠 하다하다 못해 먹을 것에 장난치시나요! 심지어 또 어디다가 쓰시려고 이런 병기 같은 차를 만드신건가요! 부장님에게 먹이려든다면 그땐 정말 부장 독살 혐의로 넘겨 버릴 겁니다!! 그리고 이런 차를 만들고 유키무라 군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드시지 않는건가요!”


야마자키의 사정없는 독설에 소마와 노무라는 심장, 혹은 마음에 깊은 타격을 입었는지 쿨럭 기침을 하고선 가슴팍을 움켜잡았고, 치즈루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두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허둥지둥 대고 있었다. 그런 세 사람을 곁눈질로 바라본 오키타는 푸풋, 하고 공기 빠지는 듯 한 소리를 내더니, 곧 배를 움켜잡고 숨죽여 웃기 시작했다. 3자가 보면 웃다가 죽을 것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며 웃는 오키타를 보며 야마자키는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래. 야마자키의 입장에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오키타의 입장에서는 웃겨 죽을 것 같았다. 범인은 저 두 사람 인지도 모르고 언제나 오키타에게 하던 대로 막 내뱉다니, 유쾌한 상황이었다. 착각하는 야마자키도 우스웠고, 충격을 받고 있는 소마와 노무라도 재미있었고, 가장 재미있는 것은 허둥지둥대는 치즈루의 모습이었다.


오키타 씨. 무슨 말을 좀.”

……, 야마자키 씨.”

그러니까 소마 군이었던가. 잠시 이야기는 나중에 하면 안될까.”

, 그게. 그 차 말입니다만……. 저희들이 유키무라 선배에게 대접하기 위해서 우린 차,입니다.”


소마의 발언이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기 때문일까, 야마자키가 마치 고장 난 고양이처럼 굳어버렸다. 분명히 오키타가 했다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건만 다른 사람이, 그것도 착실해 보이는 소마가 이걸 만들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혼돈이다. 치즈루의 예상대로 이 공간에는 혼돈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여전히 고장 난 고양이인 마냥 놀란 얼굴로 굳어있는 야마자키를 비웃는 오키타라던가, 나는 유키무라 선배를 독살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맛있게 드셔주셨으면 하는 바램 뿐 이었다라며 치즈루에게 사죄를 하며 변명을 하는 소마라던가, 그렇지 않다며 우리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 차가 문제라고 옆에서 위로해주는 노무라라던가. 이 혼돈의 공간속에서, 치즈루는 혼자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며 먼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곧 아니다, 이건 자신이 어떻게든 해야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 잡고 입을 열려는 차, 야마자키가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사람 보는 눈을 좀 더 기르지 않으면.”

, 무슨 뜻 인가요 그건!”

야마자키 군, 야마자키 군. 이건 하극상이 아닐까? 아니, 이걸 마시게 했으니 암살미수? 히지카타 씨에게 그렇게 보고해야하지 않을까?”

우와 너무해! 두분의 악평이 너무해!!! 암살도 아니고 하극상도 아니라고요! 저희들은 그저 존경하는 선배를 위해 차를 타온 귀여운 후배 1,2일 뿐이라고요!”

노무라 군. 혹시 양심이라는 단어 혹시 알고 있어?”


평소의 오키타 답지 않게 나 정말 당황했는데?’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오키타가 진지하게 묻자 소마는 눈에 보일 정도로 더 의기소침해졌고, 그와 반대로 노무라는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결백을 외쳤다.


아 진짜 너무하시네! 유키무라 선배도 한마디 해주세요!”

…………………….”

, 유키무라선배에에에

, 죽진 않았어요. , 살아있으니까요. 멀쩡해요. . .”

………….”

노무라 군. 이게 양심이라는 거야.”

으어어어어어어억


치즈루도 마음 같아서는 제대로 변호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차들을 한 모금씩 마시고 나서 정말 이대로 죽는 것이 아닐까, 라고 진심으로 생각할 정도로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치즈루는 제대로 부정의 말을 해줄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미안해, 라는 사죄뿐이었다.


,미안해.”

그 사과가 더 마음이 아픕니다.”

……미안.”

적어도 저희들의 눈을 바라봐주세요…….”

미안………….”


소마가 반쯤 절망한 목소리로 애원해보았지만 치즈루는 그들과 제대로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지금 그들의 얼굴을 보면 그 차가 어떻게 끔찍했는지에 대해서 세세하게 기억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상태로 그들과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계속 미안이라며 사과의 말만 입에 담고 있으면, 그 상황이 즐거운지 오키타가 큭큭큭, 하고 웃기 시작했다.


, 정말 오키타 씨! 웃을 일이 아니라구요!”

그렇지만 웃기잖아. 이 상황. 크큭. 역시 치즈루 짱이야. 너무 재밌어!”

전혀 우습지 않습니다만.”


너무 웃는 오키타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내며 야마자키가 반박해보았지만 오키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계속 웃고 있었다.


야마자키 군이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 게 아니고?” 물론 이런 도발도 빼놓지 않았다. 그런 오키타에게 뭐라 한마디 하고 싶다는 얼굴로 바라보던 야마자키는 곧 지쳤다는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너희들은 뭘 어떻게 하면 이런 걸 만들 수 있는 거지.”

아니, 그보다 치즈루 짱. 이거 마셨다고 했지? 다시 한 번 묻는거지만 목숨을 포기 하고 싶을 정도로 둔소 생활이 힘들었어?”

…….”


더 이상 오키타를 상대하다가는 자신의 체력이 먼저 바닥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지 야마자키는 더 이상 오키타에게 신경쓰지 않기로 생각했는지 일절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두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야마자키의 질문에 오키타는 아까 전 치즈루의 말에 그녀가 이 물체를 마셨다는 걸 떠올리고선 제정신이야? 라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날 먹으면 죽어!’라고 주장하고 있는 찻물은 야마자키가 보아도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오키타와 같은 의견이라는 것이 좀 거부감이 들었지만 이걸 차라고 주장하는 것은 양심이 정말 있는지 의심될 정도였다. 하지만 노무라는 정말 억울한 지 온몸으로 나는 정말 억울하오, 라고 주장하듯이 입을 열었다.


저희는 그저 유키무라 선배가 알려 준대로 끓였을 뿐이라고요!”

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항의를 하는 노무라와 달리 소마는 체념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말 두 사람은 언제나 고생하는 치즈루에게 맛있는 차를 타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걸까. 지금까지의 경위를 떠올리며 소마는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작게 중얼거렸다.


기합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기합으로 만들어지면 안 될 것을 만든 게 참 신기한데.”


오키타의 사정없는 공격에 소마는 가슴팍을 부여잡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히는 것이 괴롭다. 점점 우울해져가는 소마가 안쓰러워보였기 때문일까, 치즈루는 어떻게든 그를 격려하기 위해 애써 웃어보았다.


, 괜찮아! 소마 군!!!! 노무라 군! 정말로 괜찮아!”

저는,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요. 유키무라 선배.”

정말 괜찮아, 소마 군! 첫술에 배부를 리가 없잖아. 나도 처음엔 엄청 고생했고……. 해보지 않은 일은 언제나 처음이 힘든 거야! 그렇게 나아져 가면 되는 거고! , 그래! 검술! 검술이랑 같은 거야! 검술도 처음엔 잘 안되다가 숙련되면 잘 할 수 있는거 잖아! 그러니까 그렇게 우울해하지 않아도 돼!”

유키무라 선배.”


치즈루의 힘있는 설득에 소마와 노무라가 감동받은 얼굴로 치즈루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내심 안도하며 이걸로 이 자리가 어떻게든 마무리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그런 치즈루의 예상을 뒤엎어버리겠다는 듯이 오키타가 싱글벙글한 웃음을 띄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이게 처음이 아니잖아? 몇 번 연습하지 않았어? 차 타는 연습.”

아픈 곳을

정말! 오키타 씨!”

 

 어떻게든 두 사람을(주로 소마)를 위로하겨고 애쓰던 시도가 오키타의 몇 마디에 무산이 되자 치즈루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높혔다. 하지만 오키타는 그저 하하 웃으며 나는 틀린 말 안했어~”라는 태도를 취하며 그저 웃고 있을 뿐, 전혀 반성의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언제나의 일이지만 막상 이 태도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콘도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상대의 이야기는 잘 들으려 하지 않는 오키타의 태도에 야마자키와 치즈루는 한숨만을 내쉴 뿐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최근의 오키타는 치즈루가 이렇게 반박을 하면 정말 즐거운 듯 웃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착각이겠지?’


 오키타에게 대놓고 묻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치즈루는 방금 전의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리곤 저는 정말 괜찮은가요, 라고 자신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소마와 오키타의 독설에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노무라를 어떻게든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주먹을 꽈악 쥐었다. 자신은 선배니까. 후배들을 격려하고 도와주는 것이 일

이다. 그렇게 자신은 선배다, 라고 몇 번이고 되내이며 입을 열었다.


, 지금은 무리지만! 저녁 식사후에 내가 제대로 봐 줄테니까! 소마 군과 노무라 군이 맛있는 차를 탈 때까지 몇 번이건 함께 해줄 테니까!!”

정말입니까! 유키무라 선배!”

, !”

이런 저라도, 누군가를 죽이지 않는 차를 끓일 수 있을까요! 유키무라 선배!”

소마 군도 노무라 군도 아무도 안 죽였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유키무라 선배!”


치즈루의 필사적인 말에 감동받았기 때문일까, 어둠속에서 한줄기 빛을 본 사람 마냥 소마가 환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 표정을 보고 꼭 노무라와 소마에게 맛있는 차를 끓이게 해주겠다고 다짐하는 치즈루였다. 그렇게 마음속으로부터 맹세하고 있는 치즈루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야마자키는 열의에 불타고 있는 치즈루를 잠깐 흘깃 보더니 후, 하고 작게 웃더니, 곧 그 표정을 지우고선 오키타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오키타 씨. 순찰 보고는 끝나셨습니까?”

하하하. 했을 거라 생각해?”

당장 보고 하고 오세요.”


뻔뻔스러울 정도로의 당당함에 야마자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 표정이 오키타가 원하던 표정이라는 것을 급히 깨닫고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그것이 재미없었기 때문일까. 오키타는 일부러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싫은데?”

오키타 씨.”


두 사람이 무언의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하자 이야기를 끝낸 소마와 노무라와 치즈루의 얼굴에 긴장이 맴돌았다. 상사가 갑자기 살기를 풍기며 신경전을 시작하면 긴장하지 않는 부하는 별로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이 세 사람은 오키타 처럼 능청스럽게 넘어갈 수 없는 신경을 갖고 있었기에 더욱 더 긴장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분명히 치즈루가 차를 끓이는 방법을 전수해준다고 한 시점에서 훈훈하게 끝났어야하는데 왜 이렇게 되버린걸까.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세 사람을 옆 눈으로 바라본 오키타는 무언가 생각났는지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나는 단지 조금만 더 치즈루 짱이랑 소마 군이랑 노무라 군으로 더 놀고 싶은 것뿐이라고?”

, 저기. 지금 내가 뭔가 잘못 들은 건가? 지금 오키타 씨가 우리들놀고 싶다고 한 것 같은데.”

…….”

……………….”


오키타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까, 노무라가 현실도피 발언을 입에 담으며 치즈루와 소마를 바라보았다. 지금 내가 뭔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정정해 주지 않을래? 라는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지만 치즈루도 소마도 야마자키도 아무런 정정도 할 수 없었다. 소마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 사람 같은 표정을 지었고, 야마자키는 먼 눈을 하고 있었고, 치즈루는 그저 어설프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것이 우리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 네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다라는 의미를 알아차린 노무라의 얼굴이 충격에 휩싸이자, 오키타는 재미있는 것을 관람하는 사람처럼 하하하, 하고 웃었다.


노무라 군. 노무라 군은 좀 더 자신에게 자신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해. 네가 생각하는 그게 맞으니까.”

알고 싶지 않았어……!”


머리를 쥐어짠 채 절규하는 노무라가 즐거웠기 때문일까, 오키타는 손에 턱을 괸 채 소리를 죽인 채 쿡쿡 웃고 있었다. 이쯤이면 노무라가 불쌍할 정도였다. 그런 노무라가 안타까웠기 때문일까, 야마자키는 크게 한숨을 쉬고선 단호한 목소리로 오키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오키타 씨. 이쯤 놀렸으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얼른 가세요. 당장

야마자키 군도 참 사람이 너무하다니까. 이렇게 재밌는 상황을 두고 재미도 없는 히지카타 씨에게 가라고 하다니 말야.”

보고는 제대로 해야 하지 않습니까.”

내가 안 오는 게 보고가 되지 않을까?”

당신이란 사람은 대체.”


머리가 아파온다는 듯이 이마에 손을 대며 야마자키가 무겁게 한숨을 쉬었다. 야마자키는 이해를 할 수 없지만 오키타는 히지카타를 정말 싫어했다. 그래서 그를 곤란하게 하는 행동을 자주 취했고, 히지카타는 그 행동으로 인해 자주 골머리를 썩었었다. 오늘처럼 콘도가 없는 날에는 제때 순찰 보고를 하러 오지 않는다거나, 히지카타의 하이쿠집을 훔쳐 어딘가에 숨겨놓는 등 사사롭지만 당하면 빡치는 행동 위주로 히지카타를 괴롭히고 있었다. 물론 무슨 일이 생길때는 콘도에게 민폐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제깍제깍 보고를 하고 있기에, 히지카타의 머릿속에 오키타가 보고하러 오지 않으면 이번 순찰은 문제가 없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오키타는 1번대 조장이라는 위치에 이다. 그러니 다른 대사들의 본보기가 되어야하니 제깍제깍 보고하러오라고 히지카타가 계속 잔소리를 하고 있긴 하지만 오키타는 개선할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콘도가 둔소가 있을 때라던가 콘도가 나가기 전 오키타에게 당부를 하면 순찰이 끝나자마자 보고하러 가는 모양이었다. 왠만해선 외출할 때 당부해주건 하는데 오늘은 정말 바빴는지 콘도는 그냥 나가버린 모양이었다. 이 사람은 왜 계속 어린애같은 짓만 할까. 그저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오키타의 행동에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으면, 계속 상황을 지켜보던 치즈루가 조심조심 입을 열었다.


, 그래도 오키타 씨. 슬슬 가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뭐야. 치즈루 짱. 치즈루 짱도 야마자키군 편이야? 둘이 합심해서 나를 쫒아내려고 짰어?”


치즈루가 야마자키 쪽으로 붙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일까, 방금 전 까지의 웃음 기를 싹 지운 채 오키타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치즈루를 바라보았고, 그 시선을 받은 치즈루는 한 순간 뱀 앞에 서 있는 개구리의 심정을 맛보았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누구에게라도 좋지 않다. 이대로 보고를 미루면 나중에 곤란해지는 것은 오키타고, 야마자키도 이대로 오키타와 함께 있으면 말싸움이 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뒤에서 눈빛으로 응원을 보내는 후배들을 생각하며, 치즈루는 용기를 짜내어 입을 열었다.


, 그게 아니고요! 이대로라면 오키타 씨가 또 혼날 테니까!”

……….”

, 그리고 히지카타 씨도 오키타 씨를 기다리고 계실 테니까...!”

……하아


오키타가 한숨을 내뱉기까지 잠시 짧은 침묵이 흘렀다. 분명히 짧은 침묵이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치즈루는 그 침묵을 내심 길다고 느꼈다. 귓가에 쿵쾅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는 오키타의 한숨소리로 어느 정도 지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심장소리가 귓가에 들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별로 그 사람이 나를 기다린다고 해도 상관없는데 말이지.”

“-부장님은 그리 한가하신 분이 아냐. 곤란하게 해드리는 건 정도 것 해라. 소지.”

“!!!!”


오키타가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크게 한숨을 쉬며 불평을 입에 담자, 이 자리에 없을 제 3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치즈루는 물론이고, 그녀와 가까이 있던 노무라와 소마도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거나 어깨를 움찔했다. 하지만 오키타와 야마자키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지 세 사람처럼 놀라지는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야마자키는 눈에 띄게 안도했고, 오키타는 체념했다는 표정을 지었다는 것이다.


……하지메 군도 사람이 정말 나쁘네. 계속 숨어서 엿보고 있고 말야.”

말에 어폐가 있군. 소지. 나는 숨지 않았어. 그저 말을 걸 적기를 찾고 있었던 것 뿐이야.”

아 네네. 그러셔요. 그래서 왜 왔어? 하지메 군? 하지메 군도 바쁠텐데 말야.”


사이토가 자신을 데리러 왔다는 것을 눈치 챘음에도 불구하고 오키타는 최대한 시치미를 뗐다. 그 와중에 나는 정말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했지만 그게 사이토에게 통할 리 없다. 오키타의 의향을 싹 무시한 채 사이토는 여전히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용건만을 입에 담았다.


부장님이 찾으신다. 같이 가줘야겠어.”

- 싫다. 히지카타 씨 하지메 군 쓰는거 비겁해-”

전부 자업자득이지 않습니까.”


여기서 야마자키에게 하던 대로 가지 않겠다고 뻐팅길수도 있지만 그 방법을 취하면 나중에 귀찮아지는 것은 오키타 쪽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끝나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오키타는 어기적 어기적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대로 순순히 끌려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일까,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곧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눈을 빛냈다.


소마 군. 노무라 군. 그 차.”

필살!! 찻잔 뒤집기!!!!!”


오키타의 속셈을 눈치 챘는지 그가 말을 끝내기 전 야마자키가 마룻바닥을 쾅, 하고 쳤다. 예전에 시마바라에서 다다미를 날려서 공격하던 그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야마자키가 바닥을 내리친 반동으로 가만히 있던 찻잔은 중심을 잃더니 그대로 내용물을 흘리며 넘어지고 말았다.

지금 뭘 한 거지. 갑작스럽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야마자키의 행동에 치즈루와 소마와 노무라는 물론이고 사이토까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와중에,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오키타뿐이었다.


“-야마자키 군. 나는 야마자키 군 같이 눈치 빠른 녀석이 싫어.”

칭찬 감사합니다. 오키타 씨. 가져가게 내버려 둘 것 같았습니까.”

아아- 야마자키 군은 왜 내가 하려는 일에 초를 치는 걸까.”


승리자의 미소를 짓고 있는 야마자키가 짜증이 났는지 오키타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비꼬았지만 야마자키는 전혀 타격이 없다는 표정으로 오키타에게 반박했다.


오히려 감사받아야하지 않나요. 저 차를 부장님에게 마시게 한다면 오키타 씨에게 신선조 부장 암살 의혹이 씌일텐데요?”

아아이젠 놀랍지도 않아. 마음은 아프지만.”


끝날만하면 계속되는 자신들의 차에 대한 악평에 슬슬 마음이 꺾였는지 노무라가 우는 소리를 냈다.


, 아니야. 포기하면 안돼. 노무라! 우리 유키무라 선배에게 제대로 배우기로 했잖아! 그 누구도 죽게 만들지 않는 차를!”

그래도, 그래도 이쯤되면 누군가가 독살당하면 우리들이 문답무용으로 범인으로 몰릴 것 같잖아! 우리들은 진짜 평범하게 끓인 건데!”

괜찮을 거야, 노무라! 유키무라 선배가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줄테니까! 유키무라 선배를 믿자!”

소마!!!! 유키무라 선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 상황이 사이토를 놀리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이토가 당혹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상황을 아무것도 모르는 3자가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혼란의 장이라는 것을 깨달은 치즈루는 간결하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했고, 사이토는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그만 웃고 얼른 움직여라. 소지.”


그리고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는 생각을 포기했는지 배를 감싸 쥐고 웃고 있는 오키타를 재촉했다. 무언으로 계속 웃고 있는 자신을 계속 내려다보고 있는 사이토의 시선이 슬슬 거북스러운지 오키타는 크게 한숨을 쉬고 알았어 알았어라며 항복 의사를 표명했다.


그럼 나는 이만. 치즈루 짱. 나중에 보자. 소마 군과 노무라 군은 나중에 그 차 좀 끓여주고.”

……안 끓일 겁니다.”

그래요 그래요! 우리들은 유키무라 선배의 가르침으로 새로 태어날거니까!”

………….”


후배들의 과도한 기대 때문일까, 치즈루의 얼굴이 점점 새빨갛게 익어갔다. 신뢰해주는 것은 고맙긴 하지만 이렇게 까지 강렬하게 신뢰되니 몸둘 바를 모르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사이토에게 반쯤 끌려가는 듯이 히지카타의 방으로 가는 오키타를 보며 조금씩 진정하고 있으면, 오키타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지친다는 표정으로 노무라가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말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나 오키타 씨 좀 불편해.”

해선 안 되는 말이라고 알면서 왜 굳이 입에 담는데.”

그러는 소마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데. 솔직히 말해봐.”

일단 너랑 같은 의견이긴 해.”

거봐.”


죄악감을 가득 담은 채 소마가 대답하자 노무라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역시 입대한지 일주일도 안 되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아니. 들어온 시기와는 관계없을 거라 본다만.”

“!!”


야마자키가 대화에 끼어들 거라 생각도 못했기 때문일까. 소마와 노무라가 놀란 얼굴로 급히 야마자키를 돌아보았다. 일단 상사의 뒷담을 하는 거라고 자각하고 있었기에 옆에 있던 치즈루에게도 잘 안 들리게 할 정도로 최대한 작게 작게 이야기했는데 이게 그의 귀에 들어갈지 몰랐다. 식은땀을 흘리며 죄인이 된 심정을 한 채 두 사람이 야마자키의 말을 기다리고 있으면, 야마자키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 정도는 뒷담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다음부터는 주의해줬음 해.”

, !!”


다행히 생각했던 것처럼 불호령이라던가 처벌이 내려지지 않자 두 사람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실은 두 사람 다 신선조에 들어올 때 엄청나게 빡빡한 규율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한 것처럼 그리 빡빡한 규율이 아니어서 내심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간부들에게 들킬 때 마다 비웃음을 당하거나 어처구니 없다는 시선을 받건 했다. 물론 지금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선조를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라는 듯 한 시선을 받으며 잠시 어설프게 웃던 소마는 다시 자세를 바로 잡고선 야마자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 야마자키 씨. 유키무라 선배. 오키타 씨는 어떻게 대해야할까요. 이대로라면 오키타씨에게 실례되는 행동도 할 것 같아서.”


착실한 소마답게 이 이후에 오키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혼자서 고민해봤자 답은 나오지 않는다 생각했는지 두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다. 분명히 자신보다 그와 함께 한 세월이 긴 두 사람이라면 분명히 답을 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서 한 부탁이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어렵다는 표정뿐이었다.


으으으음. 요령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 평소에 뭘 생각하시는 지 알 수 없는 분이니까. 하지만 어렵게 생각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무리한 요구는 죄송합니다, 저한테는 무리에요. 라고 하면 될 것 같고. , 한 소리는 듣겠지만.”


어째서일까. 야마자키의 대답에 치즈루의 머릿속의 오키타가 갑자기 그 말은 맞지만 야마자키 군에게 들으니 짜증이 나네라는 말이 연상되었다. 그가 여기에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야마자키가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말을 이어갔다.


저 사람에 대해서 너무 깊이 생각해선 안 돼. 그냥 흘려버려라기엔 무리가 있지만 너희들을 놀린 땐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 그러면 조금은 머리가 안 아플거야.”

아프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는 거군요. 감사합니다. 공부가 되요.”

어라, 이거 공부였어?”


또 다시 이게 뭐냐는 듯 한 얼굴로 노무라가 옆에서 무어라 딴지를 걸어 보았지만 소마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더 오키타 씨에게 당할 것 같은데 말이죠.”

이 이상 이야기에 따라가기 지쳤는지 노무라는 치즈루가 있는 쪽으로 와서 한숨을 쉬었다. 치즈루도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채 그저 웃을 뿐이ᄋᅠᆻ다.

유키무라 선배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

. 어떻게 해야 오키타 씨와 잘 해나갈 수 있을까요.”


야마자키의 의견만 들었다 생각했는지 소마가 치즈루를 돌아보며 물었다. 자신에게 질문이 돌아올 것이라 생각지도 못해서 일까. 치즈루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생각에 잠겼다.

어려운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소마처럼 이렇게 대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였을까. 치즈루는 얼굴의 표정이 이상할 정도로 생각하다가, 역시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미안. 나는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아.”

, 아뇨.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해야하는데.”

, 그게 아니라. 타인과 어떻게 해 나갈지는 그 사람마다 틀리다고, 생각해.”

?”

소마 군은 소마 군 나름대로 오키타 씨와 해내가면 된다고 생각해. 물론 남의 의견을 참고하는 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답은 아닐 테니까.”


애초에 소마와 치즈루는 입장이 너무 틀렸다. 치즈루는 나찰의 존재를 알고 있고, 코우도를 찾기 위해 신선조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지 소마처럼 정식의 대사가 아니다. 그런 자신의 입장을 참고해봤자 소마에게 좋을 것이 없을 것이다. 그 생각으로 조언을 하자, 소마는 무언가 크게 깨달은 사람 같은 표정으로 치즈루의 말을 반복했다.


나는, 나 나름대로.”

확실히 유키무라 군의 말대로야. 이런 것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소마 군은 내가 하는 방식으로 저 사람을 대할 순 없잖아?”

.”


소마의 성격으로는 오키타가 무리난제를 밀어붙여도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그에게 야마자키가 하는 식으로 오키타를 대하라니,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할 것이다.


, 그 사람을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니 말야.”


야마자키의 말에 치즈루는 마음속으로 긍정했다.

오키타 소지라는 사람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적어도 치즈루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고, 조금은 이해했다고 생각한 순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점이 생겨난다.

예를 들어, 산난이 오치미즈를 마신 그 날처럼. 그 사람은 치즈루에게 계속 선을 그었다. 입으로도 계속 말하듯이 이 선을 넘으면 베어버릴 거야. 라고 무언으로 말하건 했다. 하지만 그 날, 치즈루가 알던 오키타라면 치즈루에게 이 앞은 넘어오지 말라고 위협했을 것이다. 혹은 자신이 산난에게 죽어가도 도와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무서운 일이 생기면 소리를 질러서 도움을 청해라라고 했다. 그 말이 없었다면 치즈루는 아마 산난에게 목이 졸려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왜 그때 자신에게 그 말을 해준 걸까.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두려워서 묻지 못했다. 여전히 치즈루에게 있어서 오키타는 종잡을 수 없는 존재였지만 그를 전부 이해하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가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원하지 않는데다 치즈루는 타인을 완전히 이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야마자키 씨. 유키무라 선배. 답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공부가 되었어요.”

도움이 되었다면 오히려 다행이야. 솔직히 도움 안되는 말만 한 것 같고.”

아니요, 오히려 이야기를 들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맞아요. 게다가 야마자키 씨와 오래 대화를 했다는 게 가장 수확인 것 같고요!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나랑?”


의미를 알 수 없다는 듯이 야마자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간부들이라면 모를까, 자신과 이야기해야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인사는 이미 끝냈고 안면도 익혔다. 그리고 그들에게 특별한 용건은 없었다. 잠시 입을 닫고 생각해보았지만 역시 그들이 자신과 이야기 할 이유는 없다. 그런 야마자키에게 대답을 주듯이 소마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유키무라 선배가 자주 이야기해주셔서요. 게다가 다른 대사들에게 듣기로는 두 분은 의학 쪽으로는 사제 같다고 하셨기에. 어떤 분이신지 궁금했습니다.”


그 한마디에 치즈루와 야마자키의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확실히 치즈루도 자신이 야마자키를 언급하는 일은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대사들도 그만큼 많이 이야기해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두 사람이 관심을 가질 정도로 많이 이야기를 한 걸까. 그렇게 자각하니 치즈루의 얼굴에 열리 급속도로 올랐다. 그 열을 식히기 위해 양손을 볼로 가져가댔지만 손에도 열이 오르는 것 같아 역효과가 났다고 생각했다.


근데 막상 말을 걸기 힘들어서. 용건도 없이 말 거는 것도 그랬고.”

게다가 내가 감찰반이었기에 말을 걸기 힘들었던 것도 있었겠지?”

아 맞다. 보통 감찰반은 다들 피하지.”


야마자키가 쓴 웃음을 지으며 덧붙이자 두 사람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한 내용이 나왔다는 듯이 눈을 껌뻑거리며 야마자키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야마자키에게 당황을 줬기 때문일까. 야마자키의 얼굴이 살짝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뭐 우리는 꺼림 직한 짓은 안했으니까요! 괜찮아!”

감찰반 보다는 분위기가 나에게 다가오지 말라여서. 그래서 섣불리 말을 걸지 못했습니다. 일도 방해할 것 같았고.”

…….”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야마자키가 입을 다물었다. 지금 저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에 치즈루는 후후후, 하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확실히 야마자키의 첫 인상은 무섭다. 무표정인데다가 감정의 기복도 잘 보이지 않는다. 감찰반으로서는 좋은 자세지만, 야마자키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저 사람은 다가가기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치즈루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케다야 사건이 일어난 그 날 밤, 그 때 야마자키를 만나고, 그에 대해서 알게 되고 그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았다면 치즈루는 그와 빨리 친해지는 것은 힘들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막상 대화해보니 어땠어?”

유키무라 군.”


쓸데없는 것을 묻지 말아달라는 의미를 담아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야마자키였지만, 치즈루딴에선 야마자키가 이대로 오해받는 것이 싫어 물은 것이었다. 지금 후배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의 인식이 바뀐 것도 말이다. 그렇게 확신하고 있는 치즈루의 질문에 두 사람은 네, 하고 망설임없이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역시 좀 그랬지만. 그래도 오늘 대화를 나누어보고 존경할만한 분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역시 유키무라 선배의 선배세요!”

아니, 나는 유키무라 군의 선배가 아니라

나는 처음에 사이토 씨처럼 그 무엇에도 동요하지 않는 분이라 생각했긴 한데 지금이 오히려 더 좋달까! 다가가기도 좋고! , 물론 야마자키 씨가 멋지지 않다는 거 아니고요! 고고한 느낌에서 좀 친근감이 생겼다고 해야할까!”

………….”


정말 어떻게 반응해야하는 걸까.

그런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는 야마자키였지만, 두사람은 이미 야마자키를 존경하는 선배의 선배로 인식해버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야마자키는 그걸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ᄋᅠᆻ다.

애초에 전제부터가 잘못되어있다. 야마자키의 본직은 어디까지나 감찰반이고, 치즈루는 그냥 시동이다. 직함으로 봐선 야마자키가 치즈루의 선배가 될 수는 없는데, 왜 이 두사람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까지 야마자키와 치즈루를 그렇게 엮어버리는 걸까. 단순히 같이 의학을 연구해서라는 이유라고 그렇게 불리기에는 야마자키는 납득할 수 없었다.

일단 집안이 동양학이었기에 다른 대사들을 치료하는 일이 많았고, 치즈루가 난방학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어서 업무의 일환으로 그냥 토론을 몇 번 한 것 뿐인데, 왜 사제 이야기가 나오고 선배 이야기가 나오는 걸까. 이대로는 안된다. 정정해야한다는 일념으로 야마자키가 고개를 든 순간, 다음에 날아온 질문에 야마자키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쵸, 유키무라 선배? 야마자키 씨 정말 멋지죠!”

……뭘 묻는 거야 노무라 군.”

, 으응.”

“??????”


이상한 이야기를 묻지 말라며 야마자키가 급히 제지에 들어갔지만, 치즈루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긍정했다.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긍정한 탓일까. 야마자키는 당황한 얼굴로 치즈루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치즈루는 자신의 말에 무슨 이상한 점이 있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야마자키 씨?”

아무것도 아냐.”


뒤이어 소마와 노무라도 알 수 없다는 듯이 야마자키를 바라보자 야마자키는 생각을 관두었다. 여기서 이 화제에 계속 이야기를 하면 제 무덤을 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뭣보다 치즈루에게 별 생각이 없다면 이 이야기는 여기서 관두는 것이 옳다. 하지만 복잡미묘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지 야마자키는 계속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야마자키 씨. 주방 문제로 여기 오셨다고 하지 않으셨던가요……?”

…….”


치즈루의 말에 야마자키는 그제서야 자신이 이곳으로 온 목적을 깨달았는지 야마자키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오키타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한 순간 자신이 왜 치즈루를 찾은 것인지, 부엌의 원인을 알았다면 바로 이노우에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린 자신이 한심했는지 야마자키는 자괴감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전부 오키타 탓이다. 그 사람이 가장 문제다. -라고, 모든 문제를 오키타의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걸 치즈루는 둘째 치고 신입인 노무라와 소마 앞에서 상사를 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목구멍까지 올라온 오키타에 대한 불만과 욕을 어떻게든 다시 목구멍 속으로 넘겼다. 정말 힘들어 보이는 야마자키가 안쓰러웠기 때문일까, 치즈루는 괜찮다는 듯이 두 주먹을 꽉 쥐고서는 필사적인 얼굴로 야마자키를 향해 입을 열었다.


, 괜찮아요! 야마자키 씨! 잊어버릴 수도 있는거에요! 정신없었던 것은 사실이고!”

, 맞습니다! 그 누구라도 정신없는 상황에서는 잠깐 잊을 수 있는겁니다! 게다가 얼른 생각해 내셨으니 문제없습니다!”

맞아요! 게다가 오키타씨 상대로는 누구나 그럴거에요! 그쵸! 유키무라 선배!”

....”


오키타의 험담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일까. 치즈루는 애매하게 웃으며 흘러넘기고 말았다. 확실히 오키타와 대화를 하면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이리저리 휘둘리고 만다. 그 히지카타마저 오키타에게 휘둘리는 경우도 많으니 말은 다한 샘이다. 그저 어설프게 웃고있는 치즈루를 보고, 괜찮다며 필사적으로 자신을 옹호해주는 소마와 노무라를 바라본 야마자키는 씁쓸하게 웃더니 후, 하고 한숨을 쉬고선 입을 열었다.


고마워. 다들.”

별말씀을요!”

맞아요. 정말 야마자키 씨는 잘못 없유키무라 선배?”


씁쓸하게 웃으며 야마자키가 일어서자, 치즈루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그녀도 야마자키를 따라 급히 일어났다. 야마자키는 둘째 치고 치즈루까지 찻잔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기 때문일까. 소마와 노무라가 의문을 띄우며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방금 전 떠오른 가설에 표정을 굳히며 조심조심 야마자키에게 질문을 던졌다.


……, , 야마자키 씨. 지금 막 생각 난건데, 그렇다면, 이노우에 씨는 지금.”


-혹시 주방의 그 냄새를 혼자서 수습하시고 계신 건가요.


치즈루가 굳이 거기까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뒷말을 예상했는지, 소마와 노무라의 표정도 함께 창백해졌다.


, 이노우에 씨.. 지금 주방에 계시죠? 지금 가도 늦지 않았겠죠???” 


그 부엌을 난장판으로 만든 것은 소마와 노무라다. 그런데 그 뒤처리를 상사가, 그것도 이노우에가 하고 있다는 소식은 두 사람의 머릿속에 경종을 울리게 만들었다. 그런 두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치즈루도 얼른 도우러 가야 한다는 생각에 다급한 목소리를 내었다.


우리가 그 난장판을 발견 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아직 괜찮다고 생각해. 게다가 내가 유키무라군을 찾은 건 도와달라고 하려던 이유도 있었고.. 청소를 시작한다고 해도 얼마 안됐을 거야.”


주방의 참상을 생각해 낸 야마자키는 한숨을 쉬었다. 분명히 주방은 깔끔했는데 왜 그런 냄새가 나는 걸까. 이노우에가 안되겠다며 다시 청소를 해보자고 다급하게 말하는 얼굴을 떠올리며 야마자키는 또 다시 허망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눈을 보고 지금부터 향할 전장이 생각보다 험난한 것이라 예측한 치즈루는 각오를 다진 얼굴로 고개를 끄떡였다.


알겠습니다. 가죠, 야마자키 씨! 제가 얼마나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주방의 냄새를-”

, 아뇨! 유키무라 선배! 야마자키 씨! 두 분은 여기 계셔주세요!”

소마 군?”


얼마 되지 않았다면 지금 가도 늦지 않는다
. 결의를 다지고 전장이라 쓰고 주방이라고 읽는 곳으로 향하려는 찰나, 소마가 진지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막아섰다.


저희만 가겠습니다. 선배. 유키무라 선배는 야마자키 씨와 마저 자신의 할 일을 해주세요!”

, 애초에 우리가 뿌린 씨앗이고 말이죠! 싫지만 자기가 싼 똥은 제대로 치우고 이노우에씨에게 제대로 혼날테니 이쪽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요!”

, 그치만.”

너희 둘이, 청소 인가.”

우와, 너무해 야마자키 씨! 불신의 눈으로 우릴 보고 있어!”

너희들이 저지른 짓이 좀 커서 말이지.”

역시 그렇죠....”


이번 사태의 원인이었기 때문일까, 야마자키가 불신의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처음에 그런 야마자키의 눈빛에 잠시 주춤한 소마와 노무라였지만, 곧 고개를 젓고선 야마자키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더더욱 저희들에게 실패를 만회할 기회를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필사적으로 외치며 소마가 야마자키에게 고개를 숙였다. 매사에 착실하고 진지하게 임하는 그에게 있어서 방금 전 자신들이 저지른 신선조 둔소 주방 초토화 사건은 용납 할 수 없는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니 지금 무슨 일이 있어도 주방을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겠다는 각오를 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소마를 말 없이 바라보던 야마자키는 그 눈에 못당한다고 생각했는지 후, 하고 웃고선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 그 정도 각오가 되어있다면 믿고 맡겨보지. 부탁한다. 두 사람 모두.”

! !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께요! ……근데 우리들에게 만회할 기회를 줘서 정말 감사하긴 한데.. .. 엄청 중요한 임무에 가는 분위기가 된 거죠. 이거.”

아하하하. 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방금 전 자신도 이 분위기에 휩쓸려 자각하지 못했지만, 이야기에 끼어들지 못하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촌극인건가, 하고 의문을 가질만한 광경이었다. 오키타가 보면 너희들 대체 뭐하는 거야? 나를 웃겨주려고? 라고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대놓고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없는 치즈루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어설프게 웃는 것뿐이었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일단 맡겨달라고 해서 나는 가지 않겠지만. 그래도 일단 이 근방을 걸레질 하고 있을 테니 필요하면 불러줘. 바로 갈게.”

!! 역시 유키무라 선배! 의지가 되요!”

그래도 저희 선에서 끝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자기가 한 일은 자신이 책임져야하는 법이니까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다녀올께요~”

.”


일을 저지른 자신들 대신 이노우에게 고생하고 있을 거라 생각해서였을까, 소마와 노무라는 야마자키와 치즈루에게 꾸벅 인사하고서는 급히 주방을 향해 뛰어갔다. 그 기세가 너무 강했기 때문일까, 치즈루는 다급한 목소리로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두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


, 천천히 가!! 급하게 가다간 다쳐!”


복도에서 뛰는 것은 위험하다. 원래라면 두 사람 다 잘 알고 있는 사항이었지만 사항이 사항이라 저렇게 뛰는 것이겠지. 두 사람의 마음은 이해 할 수는 있다. 자신이 저지른 짓을 상사가 대신 뒤처리를 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웬만한 양심 없는 사람이 아니면 피가 말리는 감각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얼른 자신이 수습하러 가야한다는 생각에 서두르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렇다고 해서 저렇게 위험하게 복도를 달려도 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천천히 가! 두 사람!! 다치니까!”

괜찮습니다! 주의하고 있어요!”


이미 모퉁이 너머로 사라진 두 사람에게 치즈루가 최대한 힘껏 큰소리로 외쳐보면, 아직은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는 반경에 있었는지 소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마의 대답에 그게 주의한다고 되는 게 아냐, 라고 야마자키가 중얼거렸지만 그 목소리가 그들에게 닿을리 만무했다. 하지만 치즈루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 말에 동의하며 다시 한 번 뛰지 말라고 하려는 순간, 뒤이어 들려오는 노무라의 말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 그래도 다치면 바로 유키무라 선배에게 갈께요! 일본 최고의 의사!”

“-나는 소동이라니까! 노무라 군!!!”


필사적으로 노무라의 반쯤 농담인 말에 반박하는 치즈루였지만, 이미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ᄁᆞ지 가버린 것인지, 아니면 그들도 말했는데 치즈루들에게 닿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왜 그렇게 되어 버린걸까. 분명히 자신은 소동이라고 했고, 히지카타와 콘도도 치즈루를 소동직의 선배라고 소개해 주었을 터. 그런데 왜 자신의 직업이 의술사로 바뀌어 있는 걸까. 치즈루의 의문이 얼굴로 나왔기 때문일까, 그 의문을 알아챈 야마자키는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는지 머슥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내 탓도 있는 것 같은데.”

?”

저번에 갖고 온 그 의학서를 기억해? 그걸 같이 연구하고 있는 걸 본 대사들이 꽤 있는 모양이라 말야. 덕분에 우리 둘다 의술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해. 나도 내가 감찰반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러고 보니 저도 이토 씨에게 들은 적이 있었어요. 히지카타 씨의 소동인거냐, 아니면 신선조에 소속되어 있는 의사인거냐고.”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솔직하게 저는 히지카타 씨의 소동인데, 아버지에게 배운 지식으로 조금이나마 치료에 보탬을 하고 있다고 했어요.”

그래. 좋은 대처라고 생각해. 거짓말은 안했으니까.” 


현재 신선조는 눈에 보이지 않는 파벌싸움에 들어가 있었다. 콘도파와 이토 파. 대놓고 공적으로 싸우지는 않았지만 물 밑에서는 인재 빼돌리기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실제로 이토는 하라다와 나가쿠라를 빼돌리려고 한 전적이 있었다. 이토의 연회에 초대된 두 사람은 확실히 거절하고 왔다고 히지카타에게 보고했고, 거기에 치즈루는 안도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야마자키도 자신이 감찰반이라는 것을 굳이 신인대사들에게 말하지 않고 있었고, 최근엔 둔소에 들어오지 않고, 온다고 해도 대사들의 눈에 띄지 않게 물 밑에서 정보만을 모집하고 있다고 했다. 그 때문에선지 치즈루도 야마자키를 자주 볼 수 없었다.


그나저나 예상 외 인걸. 이토 씨가 유키무라 군을 후보에 넣을 줄은 몰랐어.”

, 그럴 리 없어요. 그냥 분에 맞지 않은 짓을 해서 신경 쓰인게 아닐까요...”

아냐. 유키무라 군은 재능이 있어. 제대로 공부만 한다면 한 사람 몫은 할 걸. 마츠모토 선생님이 그러셨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 너무 평가해주시는 거 에요.”


살짝 빨개진 얼굴로 치즈루가 우물쭈물하자 야마자키는 살짝 웃었다. 그 미소에 치즈루의 얼굴은 점점 더 빨개져갔다. 그는 거짓말로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더 창피하다고 생각했다.


너를 이런 일에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말야. 나도, 국장님과 부장님도.”

…….”

그리고. 너에게 사과하고 싶은 것이 있어. 유키무라 군.” 

?”


사과라니, 무엇을. 의문을 입에 담기 전에 먼저 야마자키가 치즈루에게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그 행동에 당황하기도 전에 야마자키는 먼저 자신의 행동의 이유를 입에 담았다.


내가 할 일을 유키무라 군에게 떠넘겼어. 아무리 내가 임무로 바빴다고 해도. 그렇게 떠넘기는 식으로 내 일을 맡겨서는 안 되었어. 미안해.” 


무엇을, 이라고 치즈루는 되묻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치즈루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으니까.


-이것은 자신이 오키타의 방을 청소하는 일을 치즈루에게 말없이 떠넘기게 만든 것에 대한 사죄다.


마츠모토가 처음 신선조의 둔소에 왔을 때, 마츠모토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 그를 데려가 그에게 그의 병은 결핵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결핵. 폐병

그것은 절대 나을 수 없는 불치병이라고 불리는 최악의 병이었다. 그 이야기를 우연히 들은 치즈루는 놀란 나머지 오키타에게 들킬 뻔했지만, 다행히 사이토와 야마자키덕분에 오키타에게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는 사람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은 치즈루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치즈루에게 있어서 오키타는 살짝 불편한 사람이다. 아니, ‘였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이 둔소에 처음 왔을 때는 물론, 지금도 툭하면 베어버린다라는 둥 심술궂은 말을 치즈루 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건 했다. 처음엔 계속 자신에게 그런말을 하는 그가 너무나도 무서웠다. 하지만 이 곳에서 오랫동안 지내다보니 그 말이 반쯤은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성가셔하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기에, 치즈루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그는 절대 자신을 도와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에게 있어서 자신은 신선조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성가신 존재니까. 그러니 위험에 처해도 굳이 구해주지 않고 알아서 사라줘서 고마워- 라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줄 인상이있었다.

그 날, 오키타에게 도움을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산난을 위해서 간부들이 말하던 을 조사하려던 그 날 밤. 치즈루는 신선조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오치미즈.


그걸 마신 평범한 인간에게 강력한 힘을 주고, 치명상인 상처조차 낫게 하는 비약. 하지만 강한 힘에는 대가가 따르듯 이 약에도 커다란 부작용이 있었다. 햇빛을 괴롭다고 느끼게 되고, 피를 마시고 싶다는 갈증과 충동에 휩싸이게 된다. 언 듯 들으면 매력적인 약이지만, 이걸 마신 시점에서 미쳐버리게 된다는 미래를 피할 수 없었다. 이 약의 성능을 들었을 때, 치즈루는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치즈루를 절망시킨 것은 그 약의 연구에 자신이 그렇게 찾던 아버지인 유키무라 코우도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기억 속에서 그렇게 상냥했던 그가,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의학에 힘썼던 그가 신선조를 실험장으로 삼아 이 약을 연구하고 있었다는 진실에 치즈루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려준 산난은 그녀가 충격에 잠겨있을 시간조차 주지 않은 채 그녀의 눈 앞에서 그 약을 마셔버렸고, 제정신을 잃고 치즈루를 공격했다.

 

[ 만약 무서운걸 본다면 사양하지 말고 소리를 질러서 도움을 청하는 거야? ]

 

만약 오키타의 그 한마디가 없었다면 치즈루는 그대로 미쳐버린 산난에게 목 졸려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희미해져가는 의식속에서 그 한마디를 떠올린 치즈루가 그 말대로 목소리를 높혀 도움을 청하면, 오키타가 달려와 치즈루를 구해주었다. 살기위한 길을 제시해주고, 목숨을 구해주었다. 자신이 그동안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결과에 치즈루는 한동안 혼란스러워했지만, 머지않아 깨달았다. 이제 것 자신은 오키타의 한쪽면만 보고 그의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있었다는 것을. 여태껏 오키타에게 실례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 치즈루의 안에선 오키타는 알 수 없는 사람으로 인상이 바뀌었다. 좋은 사람이라고는 알고있지만, 여전히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던 데다 오키타도 치즈루가 자신에 대해 알려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 오키타에 대한 인상은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남아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지 그저 몇 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설마 오키타가 결핵에 걸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솔직히 지금도 믿어지지 않았다. 마츠모토가 오키타에게 병명을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치즈루는 충격과 동시에 참담하고 비참한 심정을 맛보았다. 왜 저 사람이 저런 병에 걸리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냐고 생각했다. 사이토에게 오키타는 자신들에게 맡기라는 말을 들었어도 치즈루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키타가 힘들어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아무리 불치병이라고 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터. 그 몰래 그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터. 그리고 야마자키와의 대화에 청결은 병의 천적이라는 것을 깨닫고선 예전보다 둔소를 깨끗이 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물론, 오키타의 방도 말이다.

오키타의 방을 청소한 계기는 단순했다. 오키타의 방을 몰래 청소하려고 하는 야마자키를 발견하고 같이 청소하게 된 것이다. 오키타의 병은 다른 대사들은 물론, 히지카타와 콘도도 모르는 극비였기에 이렇게 몰래 청소하고 있다고 했다. 그 때 치즈루도 돕겠다고 나서준 덕분에 시간이 있는 사람이 틈틈이 오키타가 없는 틈을 타서 오키타의 방을 청소하자는 결론을 내렸지만, 며칠 후 이토 파의 조사로 인해 나가있는 야마자키 대신 치즈루가 오키타의 방 청소를 하게 된 것이다. 지금 그가 한 말은 그것에 대한 사죄라는 것을 깨달은 치즈루는 정말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 아뇨! 오히려 청소는 저에게 맡겨주셨음 해요! 저는 야마자키 씨처럼 대단한 일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기뻐요! 이쪽은 걱정 마시고 야마자키 씨는 일과 휴식에 힘써주세요!”

……언제나 그 말에 의지해서 미안해.”


죄악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야마자키가 사과하자 치즈루가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치즈루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다. 오히려 자신도 야마자키처럼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역량을 알기에 그저 자신이 잘 하는 이 분야를 더 열심히 하자고 생각한 것 뿐이다. 당황하며 그렇게 야마자키에게 전하면 야마자키는 잠시 벙찐 표정을 짓더니, 곧 치즈루를 향해 몇 번이나 지어주었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언제나 고마워. 의지하고 있어.”

별말씀을요. 더 힘 낼께요!”

, 아니. 너무 힘내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해. 유키무라군은 무리를 잘하니까.”

무리 같은 건.”


본인은 무리한다는 자각이 없다. 하지만 야마자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은 모양이었는지 다시 한 번 무리는 금물이야라는 말을 듣자 치즈루는 점점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 야마자키는 무언가 더 하고 싶다는 말이 있는 듯했지만 그 말을 집어삼켰다.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다, 그녀의 최근 생활패턴을 보지 못했기에 본인이 괜찮다고 하면 더 이상 말하는 것도 그렇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떡였다. 물론, 납득하지 못한다는 표정이었지만 말이다.


.”

……………….”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야마자키도 치즈루도 무엇을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서로를 흘깃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다무는 일을 연속으로 그 와중 치즈루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야마자키 씨. 다 잘 되겠죠?”


무엇을? 이라고 야마자키는 되묻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것도 주어가 들어가면 여러모로 곤란한 질문이었다. 그녀가 묻는 것은 이토파와의 대립과, 오키타의 병세를 말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야마자키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라는 것이 정답이겠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버린 치즈루는 살짝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조용히 자신의 소원을 입에 담았다.


, 잘됐으면 좋겠어요.”


이토파의 일도, 오키타의 병세도, 다 잘됐으면 좋겠어요. 라고.

하지만 그 소원은 며칠 가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날것이라고, 지금의 치즈루와 야마자키는 내심 예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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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멜리스
2018. 4. 20. 01:31

야마자키랑치즈루인가. 그 짐은 뭐지?”


식사를 마친 후에 기다리는 것은 눈을 돌리고 싶은 현실이었다. 이 딱 봐도 무거워 보이고 양만 많은 쓸데없는 것이 많은 종이더미를 둔소로 가져가는 일에서 눈을 돌리고 싶어 하는 기색이 상당한 야마자키와 함께 치즈루는 종이를 나눠들어 가게를 나섰다. 멀리서 봐도 눈에 띄는지 창피하다는 마음을 꾹꾹 눌러 참은 채 야마자키와 함께 둔소로 돌아가고 있으면, 마침 순찰을 거의 끝낸 3번대와 사이토와 마주쳤다. 그쪽도 당연히 야마자키와 치즈루가 분담해서 들고 있는 짐이 신경 쓰였는지 다들 시선을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종이 뭉치로 향했다.


야마자키. 책을 가지러간다고 하지 않았나?”


순찰을 하러가기 직전, 사이토는 야마자키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기 위해 그를 찾아갔다. 사이토가 부탁한 것을 들은 야마자키는 맡겨놓은 의학서적을 받고서 해도 되겠습니까라는 대답을 했고, 사이토는 정말 급한 용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사이토는 조금이지만 야마자키의 일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순찰을 하다가 만나면 책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치즈루가 함께 하고 있는데다 두 사람의 손에는 먹 투성이의 종이뭉치가 가득 들려있었다. 평소에 감정의 동요가 없는 사이토라도 이 광경엔 한 순간은 동요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게 의학서입니다.” 

이게????”


자기가 말했지만 어처구니없고 양심에 찔렸기 때문일까. 보기 드물게 야마자키가 사이토의 시선을 피하며 어렵게 입을 열자, 경악의 목소리를 낸 것은 사이토가 이끌고 있는 3번대의 대사들이었다. 물론 사이토도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두 사람이 들고 있는 종이 뭉치를 번갈아 바라보고선, 곧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요즘 의학서는 그렇게 나오는군. 알았다. 기억해두지.”

일단 의학의 길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말하는데,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이게 이상한 거 에요.”


납득하는 사이토에게 아니라는 듯이 정색하며 야마자키가 딱 잘라 말했다. 그 기백에 눌린 탓일까, 사이토는 답지 않게 눈을 돌리며 ………미안하군.’이라며 사죄를 입에 담았다. 대강 사정을 설명하고 나면, 3 번대의 조원들은 뭐야. 그거. 라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물론, 거기에 대해서 야마자키와 치즈루는 묵비권을 행사할 수 밖에 없었다. 두 사람도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그나저나 들고 다니기에는 눈에 좀 띄는 것 같군. 의학서는.”

. 그래서 둔소에 두고 다시 나갈 생각이었습니다. 애초에 평범한 두께의 책이라 생각해서 들고 다닐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확실히. 이런 걸 예상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사이토의 말에 동의하듯이 치즈루도, 3번대 대사들도 비슷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였다. 보통 저런 것을 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니 야마자키에게는 잘못이 없다. 야마자키 본인도 그걸 알고 있지만 이 종이뭉치를 보게 되면 머리가 아파오게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 그거, 저희들이 가져다 드릴까요?”


그렇게 제안한 것은 야마자키와 치즈루와 안면이 있는 대사였다. 훈련을 할 때 자주 다치는 바람에 치즈루나 야마자키에게 치료를 많이 받았기 때문일까, 이럴때만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심정으로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내뱉어버렸다.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자 그 대사는 한순간 움츠렸지만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다른 대사들도 자기가 들고 가겠다며 한 명 두 명씩 자원하기 시작했다.


맞아요, 그렇다면 저희가 갖고 가죠! 어차피 순찰도 곧 끝나고!”

언제나 유키무라에게는 언제나 신세 지고 있으니까요. , 물론 야마자키 씨한테도 말이죠. 곤란해보이니까 제가 갖고 갈께요!”


이들이 자기가 들고 가겠다고 자원하는 이유는 어느 의미로 치즈루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최근에 갑자기 우울해 보이는데다가 도와주려고 해도 제가 할 수 있어요라면서 모든 잡무를 혼자서 하기 시작하는 치즈루를 그들 나름대로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어느 의미로 기회였다. 여기서 자신들이 짐을 옮겨준다면 그녀의 도움이 되는 일이며, 잘하면 그녀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라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는 대사들도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착각이며, 바램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바램을 산산조각낸 것은 묵묵히 입을 닫고있던 사이토였다.


너희들. 순찰은 돌아갈 때 까지가 일이라는 것을 잊은 건가.”

만약 이걸 들고 가다가 전투를 하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 그거야. 어느 한쪽에다가 두고.”

그럴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러다가 한 장이라도 잃어버리게 된다면? 이 종이뭉치는 보기에는 쓰레기같지만

저기요.”


사이토의 막말에 야마자키는 한마디 하고 싶다는 얼굴로 그 한마디를 내뱉었지만 야마자키가 한마디를 한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사이토는 말을 이어갔다.


내용물은 두 사람에게 중요한 의학서다. 제대로 묶여있지 않는 이걸 한 장이라도 잃어버린다면 곤란해지는 것은 이 야마자키와 유키무라다. 그럴 경우에는 어떻게 책임을 질 거지? 두 발로 뛰어서 잃어버린 종이를 찾아올 건가?”


사이토의 냉정한 말에 대사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이 맞다. 게다가 잃어버리는 걸로 끝나면 다행이다. 흙이나 피가 묻어서 못쓰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큰 참사다. 겉보기에는 정말 하찮아 보이는 것이더라도 내용물은 외국의 의학서이니 그 가치는 자신들이 생각하기에는 엄청난 것이겠지. 최악의 가정을 생각하며 긴장하고 있는 대사들을 둘러본 치즈루는 어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 괜찮아요! 저희들이 갖고 가면 되고…….”

“-아뇨. 그래도 혹시 괜찮으시다면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

 

살짝 침울한 공기를 깨부순 것은 의외로 야마자키였다. 웬만해서 자신의 일을 남에게 맡기지 않으려는 그가 자신의 일을 남에게 부탁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파장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잠시 야마자키가 일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했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3번대 대사들은 멍한 표정을 짓더니, 소리 없이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다들 왜 그런 표정인지 전혀 이해가 가질 않는데.”


사이토는 물론이고 치즈루도 놀라고 있는 것을 본 야마자키는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취급을 받을 이유를 알 수 없다. 자신의 그동안의 행동을 돌이켜보았지만 전혀 찔리는 것이 없었다. 그런 야마자키를 치즈루도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가장 먼저 진정한 사이토가 입을 열었다.


정말 괜찮나? 한 사람에게 몰아주면 어려운 일은 아니긴 하지만, 종이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는데?”

원래부터 이 앞 가게에서 끈을 사다 묶을 생각이었습니다. 칭칭 감으면 종이 몇장만을 잃어버리는 것은 걱정 없겠죠.”

그런가. 그럼 그 짐은 우리 3번대가 책임지고 맡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사이토가 살짝 웃으며 답하자 야마자키도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끈도 우리가 사서 묶고 갈테니 너희들은 볼일을 보러 가도록.”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나도 너에게 부탁한 몸이니까 말야. 네가 부탁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할 테니 필요하면 불러줘. 물론, 유키무라도.”

. 저요?”


갑자기 이야기의 화살이 자신에게 올 줄 몰랐기 때문일까. 치즈루가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어떻게 보면 바보 같은 행동 같았지만 그 누구도 그걸 신경 쓰지 않은 채 사이토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 그래. 유키무라도 최근에 무리하는 것 같으니까. 경내 청소라던가 그런거 가끔 우리에게 떠넘겨도 좋고?”

또 미키 씨 언저리에게 무슨 말 들으면 말하고!”

멍청아. 너에게 말해서 뭐 어쩌라고. 오히려 시비 걸리고 있을 때 부장님이 부르신다고 하고 빼오는 게 안전하지!”

그건 그래!”


유쾌한 웃음소리가 3번대 내에서 울려 퍼졌다. 그 때문일까, 처음에는 어색한 웃음만을 짓고 있던 치즈루도 그들의 감정에 동화되었기 때문일까, 후후후,하고 작게 웃었다.


그럼 저희는 마저 용무를 마치고 오겠습니다. ,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우리 3번대가 책임지고 맡을 테니 안심해도 된다. 그리고 야마자키. ‘그 건. 잘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자. 유키무라.”

, ! 여러분. 잘 부탁드립니다!”


야마자키의 재촉에 치즈루가 급히 사이토와 3번대의 대사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야마자키는 그녀가 인사를 하는 기다렸다가 함께 인파속으로 걸어갔다. 그 둘의 모습을 뒷모습을 바라보던 사이토는 지금 막 노끈을 사왔다는 대사의 말을 듣고 슬슬 움직이자며 노끈을 묶도록 시켰다.


역시 산책해서인가. 유키무라 녀석. 얼굴색 조금 좋아진 것 같지 않아?”

. 다행인일이지.”

그런데 사이토 조장. ‘그 건이라는 건 대체 뭔가요?”

………….”


그동안 그들 나름대로 치즈루를 걱정했었는지 종이 뭉치를 꽉 묶으며 대사들이 안심했다는 듯이 한마디씩 하는 모습을 아무말없이 바라보던 사이토에게 대사 한 명이 물었다. 하지만 사이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대답하기 꺼려졌는지. 사이토는 그것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은 채, 준비가 다 되었다는 걸 확인하고선 순찰을 재개하자는 말만 할 뿐이었었다.

 


* * *

 


단순히 저녁에 쓸 재료를 사와 달라는 이야기였다만?”

……?” 


야마자키와 사이토의 대화에 의문을 가진 것은 3번 대의 대원 뿐 만이 아니었다. 치즈루도 그 건에 대해서 신경 쓰였다. 하지만 야마자키와 사이토가 굳이 그 건이라고 말 한데다가 자신이 주제넘게 묻기도 무서웠다. 하지만 신경쓰인다는 태도는 무의식적에 드러났는지 야마자키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던 치즈루도 야마자키의 끈질긴 물음에 결국 실토하고 말았다. 치즈루의 물음에 처음에 잠시 어안이 벙벙한 듯 눈을 껌뻑이던 야마자키였지만 그녀의 물음에 있는 그대로 대답해주었다.


오늘 저녁 담당이 사이토씨라는 건 알고 있나?”

.” 

원래는 미소시루를 중심으로 이것저것 만들 생각이었는데 점심 담당이었던 대원이 재료를 다 쓴 모양이었는지 새로 주문을 넣어달라고 하셨어. 되도록 두부를 많이 부탁한다. 라면서.”

, 그렇군요. 저는 그 건이라고 하길래 아무에게 말하기 어려운 일인줄 알고.”

일하는 도중 대사들 앞에서 저녁 재료를, 특히 두부를 많이 사다달라는 말은 꺼내기가 그렇지.”


야마자키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사이토를 변호하자 치즈루는 그렇군요, 라며 고개를 끄떡였다.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는 것만으로 착각을 한 것이 부끄러워서였을까. 치즈루는 살짝 빨개진 얼굴을 감싸며 그렇군요. 라고 고개를 끄떡였다. 그런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바라본 야마자키는 뭐, 상관없나.라고 결론지었는지 묵묵히 시장을 향해 걸었다.


일단 사올 목록은 감자와 쌀, 두부랑 무 정도야.”

그래도 신선조분들 전체가 먹을 양이니 꽤 될 것 같은데. 저희 두 사람이 다 사갈 수 있을까요?” 

물론 두 사람이 신선조 전체가 먹을 양을 사가는 것은 무리지. 그러니까 우리가 할 일은 두 가지. 재료를 선별하고, 배달시킨다. 그거면 돼.”


치즈루의 옆에서 야마자키가 손가락을 꼽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시장골목이라 많이 붐빌 텐데 굳이 자신의 보폭에 맞추어 걸어주는 야마자키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치즈루였지만 지금은 고마웠다. 그러니 적어도 빨리빨리 움직이자고 생각하며 치즈루는 최대한 빠르게 걷자, 야마자키는 그럴 필요 없다는 듯이 치즈루의 보폭을 유지한 채로 걸었다.


유키무라 군. 서두르를 필요는 없으니 천천히 가자.”

그치만.”

확실히 이 후에는 예정이 있어. 하지만 서두르지 않아도 충분히 전부 끝낼 수 있어. 그러니까 굳이 빨리빨리 가지 않아도 괜찮아.”

………알겠어요.”


확실히 이 속도를 유지하면 빨리 지쳐버릴 것이다
. 그 편이 야마자키에게 더 민폐가 되겠지. 자신의 머릿속에서 그렇게 납득한 치즈루는 순순히 자신의 속도를 유지했다. 다시 한 번 그녀의 속도에 맞추며 야마자키는 이 후의 일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유키무라 군의 의견을 참고하고 싶은 곳이 있어. 같이 가 줬으면 해.”

제 의견이요? 어디인가요?”

대놓고 말하긴 뭐하니 일단 같이 와주었으면 해. , 물론 이상한 곳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아줬으면 해.”……. 야마자키 씨가 저를 이상한 곳으로 데려 갈거라 생각하지 않는데요.”


자기도 모르게 그 말이 입에서 나왔다는 것을 자각하자 치즈루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 당혹함이 옮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치즈루의 말 때문일까. 야마자키는 자신의 얼굴, 특히 귀에 열이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거기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치즈루는 자신의 말에 당혹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입에서 막 나오는 대로 변명을 시작했다.


, , 다른 뜻은 전혀 없고요! 야마자키씨는 예전에 이케다 야 사건 때도 그렇고, 지금도 사전에 이야기를 해 주셨잖아요? 그러니까 걱정 없다는 거 였어요! 물론 이번에도 처음엔 당황했지만 저를 위해서 데리고 나와 주신 거고.”


치즈루는 자신의 일에 대해서 많이 둔감하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의학서를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가 자신을 데리고 나온 것은 자신을 걱정해서라고 치즈루는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자의식 과잉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니 불안하지 않아요. 제가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두 손을 꽉 쥐며 치즈루는 웃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되는 것은 기뻤다. 누군가가 자신을 필요로 해주는 것도 기뻤다. 그래서일까. 치즈루는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야마자키는 어떻게든 자신이 빨개진 얼굴을 숨기며 쑥스러운 듯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생각해줄 줄은 몰랐어. 고마워. 유키무라군. 나를 신용해줘서.”

, 아뇨! 오히려 주제넘은 말을 해서 죄송해요!”


이번엔 야마자키의 열이 치즈루에게 옮겨간 것일까. 새빨개진 얼굴로 치즈루가 손사례를 치며 외쳤다.


………아니, 그렇지 않아.”


그 모습에 야마자키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소리가 작은 탓일까. 그 한마디는 주위의 소음에 섞여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야마자키는 그걸로 상관없다고 생각했는지 굳이 두 번 말하지 않았다.


. 저긴가요? 자주 이용하는 가게가."

벌써 거의 다왔나. 그럼 유키무라 군. 고르는 쪽은 부탁할게. 배달 시킬거니 걱정하지 말고 최대한 많이 부탁한다. 다른 대사들을 위해서도 유키무라 군의 안목을 충분히 발휘해주길 바래.”

! 맡겨주세요!”


어느 음식이던 밑재료가 좋아야 맛이 좋은 법이다. 어릴 적부터 기회가 되면 이웃집 어머님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것들을 떠올리며 치즈루는 가판대로 향했다. 가장 먼저 감자를 고르기 시작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야마자키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곤란하군.”


방금 전 자신의 행동에 쓰게 웃은 야마자키는 곧 고개를 저었다. 곤란하다고는 하지만 일단 허용의 범주가 아닐까 라고 잠시 생각하던 야마자키는 치즈루에게 다가갔다. 아직은 괜찮다. 아직은 괜찮은 범주다. 그렇게 생각하며 야마자키는 치즈루에게 이것이 좋은 채소다라는 강의를 듣고선 신선조까지 배달을 부탁하며 선금을 지불했다.


 

* * *



…………???”


무사히 저녁재료를 주문하고 난 뒤,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야마자키는 치즈루의 의견을 듣고 싶다며 어떤 장소로 안내했다. 어떤 곳일까. 역시 약재 같은 걸까. 그쪽은 자신 없는데. 등등 의학 쪽 방향으로만 생각하던 치즈루는 막상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반짝반짝반짝.

화려한 장신구와 아름다운 무늬가 수 놓여 있는 예쁜 기모노들. 조개껍데기나 예쁜 통에 담겨있는 화장품들. 치즈루의 연령대의 소녀라면 대부분 흥미를 가질만한 예쁜 물품들의 향연에 치즈루는 그 자리에 서서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잘못온 게 아닐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이 야마자키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 유키무라 군의 취향에 맞는 물건들을 되도록 많이 골라줬으면 해. 주로 장신구나 화장품 위주로. 기모노는 적어도 2벌 이상 부탁해.”

, ??? , 야마자키 씨. 그게 무슨. 아니, 어디다 쓰시려고.”

물론 임무에 쓸 거야.”

임무


그것 외에 다른 용도가 있느냐는 듯이 야마자키가 갸웃거렸다. 하지만 치즈루는 이걸 어떤 임무에 쓰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한 두 개라면 선물용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되도록 많이 골라달라니,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런 것에 제대로 된 흥미를 갖지 않았던 나보다는 네가 더 그럴 듯 한 걸 고르겠지. 실제 여성들이 어떤 걸 선호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러니 유키무라 군은 이게 예쁘다. 라는 걸로 골라주면 돼. 그거라면 써도 괜찮겠지.”

써도 괜찮!”


써도 되겠지라는 말을 듣자 치즈루의 머릿속에서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혹시 여장이 아닐까.


꽤나 핀트가 나가버린 답이었지만 현재 치즈루가 도출 할 수 있는 답은 그것 뿐 이었다. 확실히 야마자키는 미형이다. 잘만 꾸미면 거리에 스며들어도 위화감이 없는 여성은 물론, 누구든지 돌아볼만한 여성이 되는 것도 문제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야마자키의 직업은 감찰반. 정보를 얻는 것. 그러니 여장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결론이 치즈루의 머릿속에 내려졌다.


좋았어. 야마자키 씨에게 어울릴만한 물건을 찾는 거야!’


혹시 주위에 야마자키 이외의 누군가가 있고, 지금 이 생각을 입 밖으로 꺼냈다면 그게 아닐걸?? 아마도 그게 아닐거야! 라며 태클을 걸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치즈루의 생각을 멈춰줄 사람은 없었다. 그런 치즈루의 생각도 모른 채, 야마자키는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되도록 여러 종류로 부탁해도 될까.” 

맡겨주세요! 야마자키 씨에게 어울리는 걸 책임지고 찾아올 테니까요!”

?”


한 순간 치즈루의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은 모양일까. 야마자키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얼빠진 목소리를 내었다. 야마자키 씨의 도움이 되어야겠다며 기합이 들어가 있는 치즈루는 그런 야마자키의 상태를 눈치 채지 못한 채 먼저 장신구부터 골라 봐도 될까요? 라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 잠시. 잠깐만 기다려줘 유키무라 군. 방금 뭐라고 했어?”

? 책임지고 찾아올게요라고?”

그 전에.”

야마자키 씨에게 어울릴만한 걸?”

그거야! 유키무라 군! 그게 이상해! 어째서 나한테 어울리는 걸 찾아오겠다고 하는 거야??”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평소의 모습과 달리, 눈에 띄게 당황하는 야마자키의 모습에 치즈루는 그저 고개만을 갸웃거리고 있었다. 이야기가 맞지 않는다. 자신의 어깨를 잡고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야마자키의 모습에 치즈루도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는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야마자키를 바라보았다. 그래. 유키무라군은 크게 착각하고 있어. 그 표정을 보고 겨우 눈치채주었다고 생각했는지 야마자키는 힘 빠진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 죄송해요!”

아냐. 괜찮아. 오해가 있었던 것 뿐이-”

여장을 하는 건 비밀이셨군요.. 저는 그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죄송해요!” 

…………….”


고개를 푹 숙이며 반성의 기색을 보이는 치즈루를 보며 야마자키는 환장하고 싶은 심정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야마자키는 감찰반이다. , 정보를 위해서라면 여러 가지의 변장도 한다. 그리고 그 중에는 여장도 있을지도 모른다-. , 치즈루의 생각이었다. 정말 죄송해요. 얼른 잊어 버릴께요. 라고 허둥지둥 사과하는 치즈루를 바라보던 야마자키는 순간 정신이 멍해지는 감각을 받았다가, 얼른 현실로 돌아오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해야. 오해다! 유키무라 군!”


정말 오해다. 야마자키는 여장을 할 생각도 전혀 없었고, 그럴 의도로 여성용 물품을 사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치즈루에게는 악의가 전혀 없다는 것도 야마자키의 환장 포인트였다. 오키타 같이 악의가 빤히 보이는 사람이라면 대처하기가 쉽다. 그의 비아냥과 놀림에 익숙해졌기에 더욱 더 쉬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오키타와 반대로 치즈루처럼 순수한 의도로 자신을 도우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악의를 가진 사람처럼 강하게 나갈 수 없는 이유는.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야마자키는 크게 한숨을 쉬고선 치즈루를 바라보았다.


, 저는 별 생각 없어요! 편견 같은 건 없고오히려 열심히 하는 야마자키 씨를 존경하는 걸요!”

칭찬은 고마워! 하지만 정말 네가 생각하는 것은 아니니 내 이야기를 들어줘!”


주위의 시선이 모여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임무를 하는 중이라면 모를까. 현재 야마자키의 머릿속에서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치즈루의 오해를 푸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금의 이성은 남아있었기 때문일까, 야마자키는 어떻게든 흥분을 가라앉히고 치즈루만 들릴정도의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방물장수로 분장하기 위해서 골라달라고 하는 것 뿐이야.”

“‘쓴다라는 표현에서 오해가 있었던 모양인데, 방울장수로써 쓴다는 의미였지 내가 여장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야.”

, 죄송해요!”


야마자키의 반론에 치즈루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착각했던 자신이 부끄럽다. 신나했던 자신이 부끄럽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채 치즈루는 모기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사과했다. 야마자키 쪽도 답지 않게 흥분을 한 것이 창피했는지 살짝 빨개진 얼굴로 괜찮아. 라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 아무튼 부탁해도 될까? 유키무라 군. 나는 어떤 것이 좋은 물건인지 알 수 없어서 말야. 비싼 거라고 전부 다 좋은 것도 아닌 것 같고.”


가까운 곳에 있던 가판대의 비녀를 보며 야마자키가 쓰게 웃었다.


장사치라면 모름지기 고객의 마음에 들어야하는 상품을 내놔야하는데, 이 분야는 잘 몰라서 말야.”

저에게 맡겨도 괜찮으신 건가요?”


조심조심 치즈루가 물어왔다. 치즈루도 장신구에 흥미는 많지만 많은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자신이 그런 중대한 일을 맡아도 되는 걸까. 그렇게 쭈볏쭈볏하고 있으면 야마자키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나는 네 또래 여자아이의 취향을 알고 싶은 것 뿐이야. 간단한 일이니까. 그냥 유키무라군은 이거 예쁘다, 이 장식이 마음에 든다. 이 색깔이 좋다. 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알려주면 되는 거니까. 물론 전부 다 사는 것도 아냐. 그러니까 마음 편히 골라줬으면 좋겠어.”

!”


너무 진지해질 필요가 없다고 덧붙이며 야마자키가 살짝 웃자, 치즈루도 살짝 긴장이 풀린 얼굴로 맡겨주세요, 라며 물건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게 괜찮아 보인다. 이 무늬는 조금 화려한 것 같다. 등등 치즈루는 자신이 물건을 고르거나, 야마자키가 이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는 물건들에 대한 감상을 말했다. 하지만 야마자키의 도움이 조금이라도 더 되고 싶었는지 치즈루는 치즈루 나름대로 이 물품은 이래서 괜찮아 보인다를 설명해주었고, 그녀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며 야마자키는 장신구 몇 개를 샀다. 그 와중에 일에 쓸 도구다. 라고 치즈루에게 몇 번이나 쐐기를 박는걸 보아하니 방금 전 여장에 쓸 것이냐는 말에 살짝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죄송해요. 잘 알고 있어요. 용도를 제대로 이해했다며 앞으로는 조심하겠다는 치즈루에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며 살짝 실랑이를 벌이던 두 사람은 주인의 자신들을 노려보는 것을 깨닫고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났다.


 

* * *


 

오늘은 정말 감사했어요. 야마자키 씨.”


어느새 저녁이 되었는지 하늘에는 방금 전 까지 머리 위에 있었던 태양이 뉘엿뉘엿 져가며 주위를 붉게 물들어갔다. 그 광경을 잠시 멍하게 보던 치즈루는 무언가 생각났는지 야마자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야마자키는 반쯤 포기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걸. 감사받아야할 사람은 나인데 말야.”

확실히 야마자키씨는 자신의 볼일을 위해 절 데려온 걸테지만..그래도 저는 큰 도움이 됐어요. 그리고 이건 제 생각일 뿐이겠지만.. 제가 걱정되어서 데리고 나와 주셨죠?”


정신없이 끌려나온 탓에 처음에는 눈치 채지 못했다. 야마자키는 치즈루에게 책의 번역을 도와달라고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책을 가지러 함께 나올 필요는 없었을 터. 모르는 것이 있다면 자신의 방으로 책을 갖고 오면 되는 일이었다. 장신구도 마찬가지다. 방물장수로 위장하기 위해서 상품을 함께 골라달라고 했지만 원래라면 그럴 필요 없이 주인장에게 추천을 받으면 되는 일이었다. , 자신을 데리고 나온 것은 최근에 상태가 이상한 자신이 걱정되어서였겠지. 모든 것은 자기를 위해-, 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왠지 부끄럽고 건방지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것 외에는 정당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치즈루는 감사인사를 했다. 알아버린 이상, 자신은 거기에 대한 감사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주변사람들이 자신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챈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더 감추려고 했는데, 이 사람에게는 그 마음마저도 간파당한 모양이었다. 야마자키에게 미안하고, 이런 자신이 한심하고, 자괴감이 들었다. 고개를 숙인 채 밀려오는 감정을 어떻게든 소화시키려 노력하고 있으면, 머리 위에서 야마자키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전부 나를 위해서였어. 유키무라 군. 그러니까 유키무라 군이 신경 쓸 일은 아무것도 없어.”


예상대로의 답에 치즈루는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몇 번이건 선을 넘을 뻔했다는 자각도 있었고, 결심도 흔들렸다.

오늘은 정말 즐거웠다.

설령 야마자키의 의도는 아니었을지라도 치즈루는 오늘 하루 계속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그걸 입밖으로 꺼내기 무서워 그저 발 밑만을 바라보고 있는 치즈루를 바라본 야마자키는 말을 고르듯이 잠시 입을 다물더니, 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는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유키무라 군. 오늘은 즐거웠나?” 


얼른 네.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치즈루는 한순간 말을 망설였다. 즐거웠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것은 무서웠고, 동시에 이 말은 야마자키에게 실례가 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야마자키는 감찰반의, 신선조의 일을 위해서 외출한 것인데 자신이 즐거웠다고 말해도 좋은 것일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 즐거웠어요.”


하지만 정직하게 대답하지 않는 것이 더 실례라고 생각한 치즈루는 있는 그대로 말했다. 솔직히 무서웠다. 이렇게 말을 꺼내는 것으로 선을 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잔뜩 긴장한 채로 그 말을 입에 담으면, 치즈루와 상반되듯이 야마자키가 살짝 안도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런가.”


딱 한마디였지만 그 말투에서 정말 안도했다는 듯한 감정이 묻어왔다. 그 표정을, 그 목소리를 들자 치즈루는 죄악감을 느꼈다.


. 미리 말해두는데 일단 내 볼일에 너를 억지로 동행시킨 거니까 말야. 그런 점에서 걱정이 되어서-”

야마자키 씨.”

“-들어주셨으면 하는 게 있어요.”


정신을 차려보면 그렇게 말하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지만 치즈루는 그 발언을 철회하지 않았다. 이 사람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치즈루는 두 손을 모은 손에 힘을 주었다.



* * *



“-들어주셨으면 하는 게 있어요.”


치즈루가 결심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말하자. 이 고민을. 그렇게 결심했는데도 치즈루는 마음 속 어디선가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정말 말해도 될까. 전부 말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려니 무서움이라는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 이 괴물아! ]

 


어릴 적의 기억이 한순간 스쳐지나갔다. 뇌리 속에 박혀있는 그 공포는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사라지지 않는다. 분명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겠지. 하지만 공포는 사라지지 않지만 조금은 누그러들 수 있다. 그렇기에 치즈루도 지금 이렇게 말을 꺼내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심을 해도 바로 실행으로 옮길 수 없었는지 치즈루가 선뜻 말을 꺼내고 있지 못하고 있으면, 계속 입을 다물고 있던 야마자키가 입을 열었다.


그건. 요 사이 유키무라 군이 이상했던 일과 관련이 있는 건가?”

………역시 야마자키 씨네요. 아니, 제가 읽기 쉽다는 점도 있는 거겠죠.”


예전에 오키타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치즈루는 씁쓸하게 웃었다. 너는 읽기 쉬우니 숨기려 들지 말라고. 치즈루도 그것을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개선할 수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중요한 것은 간파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보자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계속 쉽게 간파당하니 자신의 노력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의기소침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큰 고민이지 않았나? 그걸 왜 나에게 말하는 거지?”

역시 민폐인가요.”

그건 아냐.”


생각할 필요도 없듯이 야마자키가 딱 잘라 말했다.


말했지. 듣는 거라면 얼마든지 해주겠다고. 그런데, 나에게 말한다는 건 히지카타 부장님의 귀에도 들어갈 확률이 높아. 그래도 괜찮다면 듣겠지만.”


방금 전 이야기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덧붙이며 야마자키는 다시 한 번 치즈루의 판단을 기다렸다. 이건 야마자키가 듣기 싫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치즈루는 알 수 있었다. 야마자키는 감찰반. 신선조의 눈이며, 귀다. 그러니 야마자키는 만약 치즈루의 고민이 신선조에 관련된 일이라면 그는 치즈루의 고민을 히지카타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다. 오히려 미리 이야기를 해준다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상냥함이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텐데.’


낙담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안일하다고는 생각했다. 막연히 이 사람에게는 말해야한다- 라는 심정이었으니까. 역시 입 다물고 있는 편이 나았을까, 일단 이 고민이 신선조와 관련이 없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판단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계속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면, 야마자키 쪽에서 질문을 던졌다.


유키무라 군. 이건 개인적인 질문이다만. 그 고민은 부장님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부류인가?”

……….”


야마자키의 질문에 치즈루는 입을 다물었다. 히지카타는 무섭지만 의지가 되는 상사다. 하지만 이 고민은 개인적인 것이라는 점도 그렇고, 그에게 상담을 한다면 자신이 무슨 체질인지 다 말해버릴 것 같은 위험성이 컸기에 히지카타에게는 상담하기가 꺼려졌다. 그 눈 앞에서는 뭐든지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으니까. 처음 만났을 때의 히지카타를 떠올리며 치즈루는 계속 침묵을 지켰다.

그녀의 침묵을 긍정이라고 받아들인 것일까. 야마자키는 살짝 난처하다는 얼굴로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어째서 나에게 이야기하려고 생각한 건지 물어봐도 될까. 다른 분들도 있잖아. 미리 해명하는데, 이건 순수한 의문이야. 둔소에는 나보다 더 고민을 잘 들어주거나 해결책을 제시해 주실 분들이 많이 계시잖아. 이노우에 씨라던가. 하라다 씨라던가. 그런데 어째서 나에게? 내가 그저 듣기만 하겠다라고 해서?”


다른 대사들과 야마자키의 차이는 그것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치즈루의 이야기를 듣고 상냥한 말을 해주거나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해줄지 모른다. 그 오키타조차도 입으로는 치즈루에게 비아냥거리면서 조언을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야마자키는 그 어느 것도 해줄 자신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듣는 것 뿐. 게다가 비밀보장도 해줄 수 없다. 그 점에서 고민하고 있는 치즈루를 바라보며 야마자키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네가 나에게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기쁘다고 생각해. 하지만 내가 걸리는 것은……. 내가 과연 유키무라 군의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어서 말야.”

저는, 도움을 바라고 야마자키 씨에게 말하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저. 야마자키 씨는 오늘 절위해서 이것저것 많이 해주셨으니까...”

그건. 내가 너를 위해서 오늘 하루 움직였으니 보답으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말하자고 생각한 건가?”

……….”


오늘 하루 야마자키는 치즈루를 위해서 많은 걸 해주었다. 하지만 치즈루는 그것에 대한 보답을 할 수 없었다. 물론 야마자키는 그걸 위해서 치즈루를 데리고 나온 것은 아니었을 테지만, 치즈루는 그래야한다고 머릿속으로 강박감 비슷한 것을 받고 있었다. 이런 자신을 위해서 여러 가지를 해줬는데, 자신은 그동안의 행동을 말하는 것 조차 할 수 없는 것이냐고.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걸 당당하게 말하기 어려웠다. 이 생각이 마치 잘못된 생각인 것처럼 죄악감을 느끼며 고개를 끄떡이자, 야마자키는 다시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유키무라 군. 그런 배려는 필요 없어.”

……죄송해요.”


어디까지나 이 대가는 치즈루 혼자서 생각한 사항이었다. 야마자키가 그렇게 해 달라 요구한 것도 아니고, 그저 치즈루가 이걸 알려주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생각한 것뿐이다. 이것저것 생각하며 입을 다물고 있으면, 야마자키도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낌새를 보이며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유키무라 군. 나는 단지 거래방식으로 유키무라 군의 사정을 듣는 것이 싫을 뿐이야. 확실히 유키무라 군의 최근 행실을 보면 가장 먼저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야. 개인적으로는 이유도 알고 싶지만. 이렇게 억지로 듣는 것은 나나 유키무라 군에게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 억지로 이유를 듣는다고 좋은 해결책을 낸다는 보장도 없고 말야. 뭣보다 이렇게 듣게 되면 너에게 호의를 보였으니 당연히 보답을 드려야지라는 고정관념을 주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저는, 그럴 생각은


거기까지 말하던 치즈루는 입을 닫았다. 물론 야마자키에게 말하고 싶어서 들어달라고 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왜 자신은 말해야겠다고 생각한 걸까.


 

-야마자키가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그가 이유을 알아야하는 건 당연한 것이 아닐까?

 


결론을 찾아내자 치즈루는 방금 전의 죄악감의 이유도, 떳떳하지 못했던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자신의 발언을 돌아보면 그의 말 대로였다. 자기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준 그가 알아야만 한다고,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 죄송해요! 야마자키 씨에게 실례되는 행동이었어요! 정말 죄송해요!”


거기까지 자각한 치즈루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한걸까.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급히 사과하는 치즈루의 반응을 예상했는지 야마자키는 당황하지 않고 괜찮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치즈루에게 있어 이 몇 가지 문답은 그동안의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어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문답이었다. 그동안의 자신의 생각이 부끄럽다. 왜 깨닫지 못한 걸까.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혼란스럽다 못해 제대로 정리도 하지 못한 채 식은 땀만을 흘리고 있으면, 그제서야 치즈루가 생각보다 크게 충격 받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야마자키가 허둥지둥대며 말을 덧붙였다.


, 괜찮아. 유키무라 군. 사과하지 않아도. 네가 무엇에 대한 이야기를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건 너에게 있어서 정말 심각하고 남에게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라는 것만은 알겠어. 유키무라 군이 무언가의 대가로서 내놓을 정도로 가치있는 정보다. 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군요.”


야마자키의 말에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치즈루가 입을 열었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치즈루에게 있어 자신의 이야기는 그저 숨겨야할 것이고, 남이 알아봤자 서로에게 좋은 일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라며 치즈루는 작은 목소리로 야마자키의 말을 계속 곱씹었다. 다른 사람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시점이 달라지는 걸까. 아니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어느 쪽이던 치즈루에겐 충격적인 말이었다.


……야마자키 씨. 역시 들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 물론 민폐가 아니라면..”

괜찮겠나? 제대로 된 답을 줄거란 보장은 없어. 그리고. 내용에 따라서 히지카타 부장님에게도 보고할지도 몰라.”

무섭지만, 괜찮아요. , 물론 전부는 못 말하지만... 그래도, 괜찮, 을 것 같아요. 야마자키 씨라면.”


아까 전과 다른 의미로 야마자키가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의무감이 아니라, 여기서 그에게 말하지 않으면 자신은 계속 이대로일거라는 예감이 들었으니까.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었다. 아주 잠시만이지만 보지 못했던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치즈루는 손에 힘을 꼬옥 주었다.


……일단 자리를 옮길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야마자키도 야마자키 나름대로 어떻게 하는게 두 사람에게 좋을지 잠시 생각하더니, 평소와 같은 무표정으로 알겠다는 말을 그 말로 대신하며 사람이 한적한 곳으로 치즈루를 안내했다.

 


* * *

 


“-저는, 특이한 체질이에요.”


사람이 별로 없는 길목에 도착하자, 몇 번 심호흡을 한 치즈루는 그렇게 운을 띄웠다. 어떤 체질인지는 말하지 않았고, 다행히 야마자키는 그것에 대해서 추궁하지 않았다. 그걸 다행으로 여기며 치즈루는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남과 선을 그으며 사는 방법을 터득했어요. 알려지면 저도 그렇고 아버님도 이상한 눈으로 바라봐지게 될 거고... 그리고 다르다라는 것은 상대방에게 커다란 공포를 주거나 괴롭힐 이유를 주게 되니까.. 그럴바에는 차라리 평생을 숨기면서, 고독하게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물론 고독도 무섭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이 체질을 들키는 거에요. 그런데.”

……니죠성에서 만난 그들이 네 체질을 알고 있었던 건가.”


야마자키의 질문에 치즈루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역시 야마자키 씨 상대로는 숨길 수 없네요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감찰반인 야마자키는 여러 가지를 보고, 여러 가지를 추론해서 움직이는 직업이다. 그러니 몇 가지 정보만 준다면 어느 정도 추론이 가능한 것이겠지. 역시 야마자키 씨는 대단해요. 라고 힘없이 웃어 보이면, 야마자키는 씁쓸해하며 입을 열었다.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어디까지나 내가 생각한 추론을 말한 것뿐이야. 일단 네가 이상해진 것은 니죠성에서 그 오니라는 녀석들을 만난 후고 말야. 그리고 지금 네가 자신의 체질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낸 걸 생각하면. 결론은 나오지. 히지카타 부장이나 사이토 씨나 산난 씨도 거기까지 들으면 나와 똑같은 결론을 내렸을 거라고 생각해. 아니, 오키타 씨도 눈치 챌 수 있겠군. 그 사람 쓸데없이 눈치만 빠르니까.”


살짝 뭐 씹은 표정으로 오키타의 이야기를 하던 야마자키는 곧 자신이 이야기를 탈선시켰다는 자각을 하고선 헛기침을 몇 번 했다. 그리고 미안, 이라고 사과한 뒤 치즈루에게 계속 이야기를 해달라는 행동을 취했고, 그 모습에 치즈루도 네. 라고 당황하며 대답한 뒤 이야기를 이어갔다.


예전부터 이 체질 때문에 사람과 그다지 많이 접촉하지 않았어요. 아버님도 그러는 편이 좋다고 하셨고요. 그래서 을 만들어 놓았어요. 제가 넘어가지 않으면 상대방도 그 선을 넘어오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그리고 상대방이 넘어오려고 해도 제가 열심히 그 앞을 지키면 상대방도 절대로 그 선을 넘어오지 않았고……. 그렇게 평생 살아가겠다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쓸쓸하고 외로웠지만... 그래도 이 체질이 알려지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래서 아버지의 실종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버지인 코우도가 치즈루의 앞에서 사라진다면 치즈루는 완벽한, 영원한 고독에 빠지고 만다. 코우도도 걱정된다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코우도를 찾으러간다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였다.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며 치즈루는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니죠 성에서 깨달아버렸어요. 저도 모르게 선을 넘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들에게서 거리를 두려고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건가.”


치즈루가 고개를 끄떡였다.


………정말, 즐거웠어요.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대로 발을 붙이고 있다는 감각이 너무나도 좋아서, 여러분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너무 즐거워서, 선을 넘었다는 것 조차. 아니, 선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어요…….”


신선조에 오게 된 계기는 최악이었다

신선조의 사람들을 좋아하게 된 지금도 치즈루는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무섭고, 나찰에 대한 공포도, 진심으로 살해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공포도 아직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 두려움을 잊기 위해 노력했던 행동들이 계기가 되어, 치즈루는 난생처음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즐겁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편안함이, 그 기쁨 때문에 자신이 선을 그어야한다는 사실을 바보처럼 잊고 있었다.

이런 자신이 한심하면서도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반발감이 계속 치즈루의 안에서 존재하고 있다. 이런 모순덩어리인 자신이 싫다고 생각하며 치즈루는 말을 이어갔다.


제 체질은 정말 특이해서 다른 사람들이 보면 기분 나쁘니까.. 여러분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는 것이 본심이에요. 그래서……. 예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사실은 평소처럼 지내고 싶었다. 평소처럼 이야기를 하고, 웃고 떠들고, 차를 내오고, 평화롭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둔소에서 그들과 지내던 시간들이 좋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괴물이라고 불리던 이 체질을 그들이 알기를 원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자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 , 죄송해요. 금방, 멈출 테니까.”


이야기를 들어주는 야마자키를 당혹시킬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울면 안 된다고 자신에게 계속 되내이며 치즈루는 급히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둑이 터진 듯 눈물은 계속 흘러나오자 치즈 루는 죄송해요, 죄송해요라고 사죄를 반복하며 눈가를 벅벅 문지르고 있으면, 그러지 말라는 듯이 야마자키가 치즈루의 팔을 잡았다.


, 진정해. 유키무라 군. 너는 나에게 사과 할 이유가 없어.”

, 그치만.”

정말 괜찮으니까.”


눈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울면 당혹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야마자키는 몇 번이나 괜찮다고 하며 갖고 있던 천을 그녀에게 건네주었고, 치즈루는 죄송합니다. 라고 다시 한 번 사과하며 그 천으로 눈가를 눌렀다.


그러고 보니 이 손수건. 그때 내밀어 주신 것과 똑같은 거네.’


그때도 그랬다. 갑자기 울어버리는 치즈루에게 야마자키는 같은 손수건을 주었다. 그래서일까. 평소라면 거절했을 텐데 자신은 이 손수건을 사용했다. 계속 갖고 다녀서인지 야마자키의 냄새가 살짝 베여있는 그 손수건이 어째서인지 안심이 되어서, 치즈루는 조금씩 진정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야마자키가 유키무라 군, 이라며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유키무라 군. 듣기만 한다고 했지만. 주제넘지만 내 의견을 말해도 될까.”

……….”


야마자키가 말한다고 하자 치즈루는 손수건을 눈가에서 떼었다. 야마자키가 울음을 그칠 때 까지 기다려준 덕일까. 더 이상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 사실에 야마자키도 치즈루도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인데, 굳이 선을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치만.”

네가 자신의 체질문제로 고민하는 건 확실히 알았어.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은 확실히 괴로운 일이지. 하지만 네가 그 상태로 계속 선을 긋고 있으면 오히려 체질을 들키게 되지 않을까.”

………….”


야마자키의 말도 일리가 있다. 확실히 지금의 치즈루는 모두가 이상하게 여기고 있다. 지금은 치즈루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서로 이야기를 끝냈는지 딱 봐도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고 있는 치즈루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하는 것은 그저, 무언가를 같이 먹자고 권한다던가, 오늘은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라고 즐거운 이야기를 하는 횟수가 늘은 정도일까. 하지만 치즈루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고, 치즈루는 최근의 분위기로 봐서 눈치 채고 있었다.


……확실히. 이 상황이 계속 된다는 보장도 없어.’


치즈루를 걱정해서 행동에 나선 대사가 치즈루의 체질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최악이다. 그 사태만큼은 막고 싶다. 야마자키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자, 야마자키는 일단 진정하라며 다시 혼란스러워하는 치즈루를 진정시키고선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다만... 그 상태로 모두에게 선을 긋고 있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해. 그 사람들이 엉망진창이라는 건 너도 알잖아. 그 사람 중 누군가는 네가 굳건히 그 선을 지키려고 해도 강제로 넘어 올거야.”

………….”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람들이 네가 곤란해 하고 괴로워하고 있는데 그냥 지나칠 리가 없어. 어떻게는 그 선을 넘어서 너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겠지. 이제 와서 선을 긋는 걸 용납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잖아?”

………. 맞아요.”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치즈루가 대답했다.

처음에 신선조의 사람들은 치즈루를 귀찮은 것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리고 치즈루 본인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최대한 없는 것처럼 지내려고 했었다. 하지만 여러 전장을 함께 거쳐 온 덕택일까. 지금은 간부도 물론, 간부 외의 대사들에게도 조금은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치즈루가 곤란할 때, 누군가는 반드시 손을 내밀어 주었다. 지금 이 상태를 고수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분명 야마자키가 멋대로 그어놓은 경계선을 깨부수고 손을 내밀어주겠지.


정말정말 괜찮을까요. 선을 그어 놓지 않아도

괜찮아. 네 체질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걸로 너를 저버릴 사람들이 아니야.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할 수 있는 한 네 변호를 해줄게.”


야마자키의 선언에 치즈루의 눈이 커졌다. 야마자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언제나 신선조를 먼저 생각하는 그가 자신의 변호를 해준다고 했다. 한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하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지만 야마자키의 표정을 봐서는 자신이 잘못들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아뇨. 야마자키 씨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고...”

민폐가 아니야.”


당황하며 그렇게 말해보았지만 야마자키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유키무라 군의 체질이랑 신선조의 사정과는 관계없잖아. 그렇지?”

, 그렇긴 하지만…….”

그럼 문제없다고 본다만.”

………….”


확실히 문제는 없다. 자신의 체질은 사람들이 꺼려하고 무서워하는 그런 부류다. 상처가 낫는다는 점에서 나찰과 흡사하지만 자신에게는 흡혈충동도, 나찰에 대한 특성도 없다. 게다가 나찰은 만들어지는 것. 태생부터가 이런 자신과는 상관없지 않을까, 라고 판단했다. 조금은 꺼림 직한 기분은 들었지만 치즈루는 그 점을 머릿속 한 구석으로 밀어두었다.


게다가 우리는 우리들의 사정으로 너를 그곳에 가두어두고 있고 말야. 게다가 히지카타 부장님도 그런 걸로 널 저버릴 사람이 아니야. 일단 너는 우리들의 감시 대상이자, 보호대상이기도 하니까. 예외는. 그래. 유키무라 군이 우리들의 비밀을 발설할 때려나.”

, 그런 짓은 안 해요!”

알아.”

.”


야마자키가 또 다시 단언하자 치즈루는 한 순간 얼빠진 목소리를 내었다. 단언해도 괜찮은걸까. 놀란 표정으로 야마자키를 바라보고 있으면, 야마자키는 치즈루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아챘는지 물론, 감찰반으로서는 완전히 신용하고 있지 않지만이라고 덧붙였다.


, 그 말씀은. 야마자키 씨 개인으로서는 신용 해주신다는 건가요?”


정신을 차려보면 그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치즈루의 질문이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기 때문일까. 야마자키가 놀란 얼굴로 치즈루를 내려다보자 치즈루는 그제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자각하고 무심코 자신의 입을 두 손의 끝부분으로 막았다.

정말 무의식 적이었다. 확실히 신용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저 한마디를 생각한 적은 없었다.

정말 바보같은 질문이었다. 애초에 신용에 공과 사가 공존할 수 있을 리 없지 않는가. 개인적으로 신용한다고 해도 공적으로 의심한다면 그것은 신용하는 것이 아니다.


, 죄송해요. 바보 같은 질문이었어요. , 저도 이 말이 왜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어요. , .”


혼란스러운 탓일까.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조차 제대로 알 수 없다. 뭘 말해도 변명밖에 들리지 않는 말을 계속해서 횡설수설하고 있는 치즈루와 달리, 야마자키는 방금 전 치즈루의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듯이 무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혼란스러운 와중 진정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도 진정되는 법칙이 적용한 덕분일까. 야마자키의 그 옆모습을 바라보며 횡설수설 거리던 치즈루는 점점 복작복작하던 머리가 정리되는 기분을 받았다.


……야마자키씨?”

이부키 군이 들으면 웃겠네. 이거.”


곤란한 듯 야마자키가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치즈루가 야마자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깜짝 놀란 듯 야마자키의 어깨가 움찔했고, 한 순간 상황을 이해못한 듯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곧 치즈루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했는지 아무것도 아니야, 라며 곤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미안. 유키무라군. 잠시 다른 생각을 했어.”

, 아뇨! 저야말로 이상한 말을 했는걸요. 잊어주세요. 오늘따라 이상한 이야기만 하네요.”

아니, 이상하지 않아. . 뭐랄까. 옛날일이 떠올라서 말야. 옛날에 나한테 모두를 그런 눈으로 보는 것이 괴롭지 않냐, 라고 묻던 녀석이 있었거든. 어째서인지 갑자기 그 일이 떠올라서 말야.”

지금 신선조에 계신 분인가요?”

……아니. 지금은 없어.”


그렇게 말하며 야마자키가 씁쓸하게 웃었다. 지금은 없다는 것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인 것일까. 야마자키의 표정을 보며 치즈루는 그 사람이 야마자키에게 있어서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튼 사과는 내가 해야지. 이야기 도중 다른 생각을 해버렸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야마자키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 이야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는지 자연스럽게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더 이상 묻지 않는 것이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야마자키를 바라보고 있으면, 야마자키는 방금 전 이야기 말인데, 라며 입을 열었다.

동시에 치즈루의 얼굴에 긴장이 돌았다.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건 야마자키도 알고 있을텐데. 무슨 말을 할까 살짝 긴장하며 야마자키의 말을 기다렸다.


확실히 감찰반으로서 유키무라군을 신용하지 않으면서 개인적으로 신용한다고 말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신용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말할게. ‘나는 유키무라 군을 신용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것은 야마자키에게 있어서 최대한의 신뢰의 말이라는 것을 치즈루는 알 수 있었다. 예전의 야마자키는 치즈루를 믿지 않는다고 했다.

 


[ 나는 감찰반이라는 입장 상 당신을 신용하지 않아. 그것이 나에게 내려진 임무니까. 하지만, 나 스스로 당신의 적이 될 생각은 없어. ]

[ 나는 감찰반이라는 입장에서 유키무라 군을 의심하지 않으면 안 돼. 그래도 네 처우가 좋아지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

 


그때나 지금이나 야마자키는 감찰반으로서는 신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점점 갈수록 치즈루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주겠다고 했고, 지금은 신용하고 싶다고 했다. 신선조에 해가 되지 않을 선이라면 치즈루의 편을 들어주겠다고 해 주었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기뻤다.


, 안 돼. 계속 이 사람의 앞에서 울 수 없어.’


이 사람의 앞에서 더 이상 울고 싶지 않다. 하지만 긴장을 놓으면 울어버리게 될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지금의 야마자키의 말은 너무나도 기뻤다. 눈에 힘을 주며 이를 악물고 있는 치즈루의 상태를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야마자키는 말을 이어갔다.


……라고,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방심은 하지 않아. 앞으로 나는 계속 유키무라 군을 의심하면서 신용하고 싶다고 생각하겠지. 모순된 감정으로 널 대하겠지. 지금의 유키무라 군이 신선조에 해가 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진심은 상황에 따라 변하고, 사정이라는 것은 언제 생길지 아무도 모르니까.”

그래도 저는,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기뻐요. 정말.”


그에게 신용받는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기뻤다. 기뻐서 울고 싶다는 충동을 꾹꾹 눌러 참은 채 치즈루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미소를 지으며 고맙습니다, 하고 하면, 야마자키는 그저 그녀에게 아무 말 없이 살짝 웃어주었다.


내 말이 도움이 되었다니 나도 기뻐.”

…….”

혹시 괜찮다면 하나만 더 부탁해도 될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야마자키의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사실 하나만을 생각하며 치즈루는 바로 대답했다. 그가 어떤 부탁을 할지 고민하거나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치즈루를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은 야마자키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결심했는지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유키무라 군에게도 사정은 있고, 들키고 싶지 않은 일도 한두가지 정도는 있겠지. 이번 일도 그것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 하지만. 우리에게 너무 떨어지려 하지 말아줘. 그 사람들도 그렇지만, 나도 쓸쓸하거든. 유키무라 군이 나한테 거리를 두는 것이.”


그 말이 결정타였을까. 치즈루는 더 이상 눈물을 억누를 수 없었는지 야마자키의 손수건에 얼굴을 묻었다. 아직 자신의 체질을 밝히는 것은 두렵다. 실은 이 말을 하기까지도 치즈루는 여러 생각을 했고, 두려운 생각만 했다.

괴물이라고 불리며 돌을 맞았던 유년 시대의 나쁜 기억은 아직도 치즈루의 뇌리에 뿌리내려 있었다. 야마자키의 몇 마디 말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 기억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자그마한 기대감을 안으며, 치즈루는 야마자키의 손수건을 꽈악 쥐었다.

그런 치즈루를 다독이며, 야마자키는 말없이 그녀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곁에 있어주었다.

 


***

 


오늘은 정말 야마자키 씨에게 너무 민폐를 끼쳤어.”


오늘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이불속으로 들어간 치즈루는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는 야마자키에게 당장 달려가서 사죄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기분 전환을 도와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지막에는 울어버린 자신을 위로해주었다. 덕분에 치즈루의 눈가의 붓기가 빠질 때 까지 두 사람을 둔소에 들어갈 수 없었다. 어떻게든 저녁식사시간까지는 들어갈 수 있었지만 야마자키의 일정을 방해한 것이 아닐까, 라는 죄악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괜찮으시다 고는했지만.”


치즈루가 계속 죄악감을 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야마자키는 치즈루의 붓기가 빠질 때까지 방금 전 받았던 의학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거나 의견을 물으며 그런 생각을 하지 않도록 유도했었던 것 같다. 왜 이걸 지금 깨달은 걸까.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가 왜 그랬지?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이야기를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고민은 아직 남아있다. 하지만 야마자키에게 말하고, 그에게 조언을 들은 것만으로도 조금은 후련해졌다. 그 변화를 눈치챘기 때문일까. 저녁식사 때 다들 웃으며 치즈루에게 말을 걸거나 반찬을 주거나 했지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지는 않았다. 그들의 상냥함에 마음속으로 몇 번이건 감사하며 치즈루는 다시 한 번 울어버릴 것 같은 감정을 꾹꾹 눌러 참으며 그들이 준 반찬을 전부 다 먹어버려 한동안 소화가 안되서 미련하게 소화불량으로 고생하고 말았다.


……그래도 다행이다. 다시 그렇게 지낼 수 있어서.’


여전히 거리를 좁히는 것은 무섭다. 이 체질이 밝혀지는 것도 두렵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이라면 야마자키의 말대로 이런 자신이라도 긍정해주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디까지나 희망적인 관측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은 야마자키 덕분이다. 내일, 다시 한 번 그에게 감사인사를 하러가자. 그렇게 생각하며 치즈루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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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멜리스
2017. 11. 23. 20:55

“-이상으로, 보고를 마칩니다.”


시마다와 함께 모아온 정보를 전부 보고하며 야마자키가 고개를 숙였다. 사카모토 료마를 비롯한, 쵸수파의 낭사들의 움직임 같은 것을 시마다와 함께 나름대로 조사하고 분석한 내용이었다. 그 정보를 들은 히지카타가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보면 야마자키를 책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저 야마자키가 내놓은 보고를 듣고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걸 알기에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고했다. 야마자키. 시마다. ”


이 이상 그에게 무언가를 시킬 생각이 없는 것인지, 히지카타는 그 한마디만을 내뱉었다. 그러자 야마자키와 시마다는 짧게 대답을 하고 구석에 있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감찰반이라고 해도 간부들보다 지위가 낮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본 히지카타는 다른 간부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변경사항은 없다. 일이 생기면 그때그때 보고하도록. 알겠나?”

-”

그럼 주 회의는 여기까지로 하고. 다른 질문사항이나 건의사항 같은 것이 있으면 지금-” 

-- 저 있어요- 건의사항-.”


히지카타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오키타가 그의 말을 잘라버리고 방실거리며 손을 들었다. 그 미소가 불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히지카타와 야마자키의 표정이 급속도로 썩어 들어갔고, 다른 간부들은 저게 또 무슨 일을 저지르려고라는 듯이 질린 듯 한 표정만을 지어보았다.


오오. 소지. 무슨 일이냐. 말해봐라.”


하지만 그 곳에서 유일하게 콘도만이 사람 좋은 미소를 띄웠다. 그동안 회의를 해도 지루해하기만 하던 오키타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하는 것이 기쁜 모양이었다. 그걸 알아차린 헤이스케가 콘도씨, 그거 아냐. 라고 옆에서 외치고 싶었지만 오키타가 무서워서 그저 소리 없는 아우성만을 외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헤이스케에게 시끄러워. 라고 입모양으로 말해준 오키타는 여전히 싱글벙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최근에 치즈루 짱이 너무 재미없는데 그냥 베어버리면 안될까요-?”


그 한마디에 그 자리가 얼어붙었다. 이 자식이 대체 지금 뭐라고 하는 걸까. 히지카타와 야마자키 뿐만이 아니라 다른 간부들도 얼굴에 그렇게 쓴 채로 오키타를 바라보았다. 왜 저런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베어버리겠다고 이 자리에서 건의하고 있는 걸까. 장난하지마. 라고 히지카타가 미간을 찌푸리며 호통을 치려는 것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콘도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소지. 네가 유키무라 군을 걱정하는 마음은 잘 알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걱정된다면 걱정된다고 솔직히 말하렴.”

- 콘도 씨-”

아냐, 콘도 씨! 그거 아냐! 그거 아닐거야!! 그리고 이 녀석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생각 안하고 있을 거라고!!!!!”

헤이스케. 시끄러워.”


-베어버린다?


어째서일까. 말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들려오는 이유는. 헤이스케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었는지 콘도와 오키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오키타를 바라보았다.


뭐어. 소유자가 이상한 말을 했긴 하지만 치즈루에 관해서라면 나도 할 말은 있어. 그 녀석 최근에 기운 없어 보이더라.”

아아. 우리들 앞에서는 억지로 웃고는 있지만. 혼자 있으면 바로 우울해지더라.”

신팟 짱이 눈치 챌 정도다 이거?”

게다가 타케다 씨도 걱정하더라. 치즈루를.”

그거 걱정이었어????”

비아냥 아니었어???”


치즈루의 화제가 나오자 방금 전 까지 조용했던 회의장이 소란스러워졌다. 방금 전과 전혀 다른 분위기에 히지카타가 시끄럽다고 호통을 치려했지만, 거기에 콘도와 이노우에까지 합세해 버리는 바람에 히지카타는 호통도 치지 못하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화를 어떻게든 삼키며 가슴팍을 팍팍 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야마자키는 봐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오키타가 즐거워하는 것을. 역시 이 사람은 히지카타를 놀리기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 점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 그것을 발언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부글부글 속에서 무언가가 끓고 있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히지카타와 즐거워하는 오키타를 번갈아보며 야마자키는 내심 한숨을 쉬었다.


뭐시기냐. 역시 치즈루 짱이 그러는 것은 그 오니라는 녀석들 때문이라는 거지?”

……아마도. 그들 외에는 생각하기 어려워.” 


신파치의 말에 사이토가 조용히 동의했다. 신파치가 말하는 오니라는 것은 며칠 전 니죠 성에서 나타난 세 명의 남자들을 뜻하는 것이었다.


사츠마 번의 카자마 치카게.

똑같은 사츠마 번의 아마기리 큐조.

쵸수번의 시라누이 쿄.


처음에 그들의 목적은 무조건 쇼군이라고 생각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목적은 치즈루였다. 예상외의 목적에 놀랐고,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야마자키는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치즈루의 아버지인 유키무라 코우도는 이 나라에서 가장 오치미즈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신선조처럼 코우도를 노리고 치즈루를 납치하자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말하는 오니는 어쩌면 암호일지도 모르지.’


오니라는 것은 허구의 존재다. 나찰이 존재하는 마당에 오니가 없을 리가 없냐는 반박이 들어왔지만, 나찰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그들에게 붙인 이름이며, 그들은 약 때문에 상태가 이상해져버린 인간일 뿐이니 오니가 있을 리 없다. 라고 반박했었다. 그정도로 야마자키의 머리에서 오니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인식되고 있었다.


오니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 그러니 아마도 유키무라 군은 그의 암호를 알아듣고 저렇게 된 거라고 생각했지만....’


신선조에 해가 되는 일일지도 모르는 이상, 그 이야기를 상세하게 들어야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러기엔 치즈루의 상태가 너무나도 이상했다. 물론 자신의 가설은 치즈루에게 전했다. 하지만 치즈루는 전혀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자신의 가설이 틀렸다거나, 아니면 암호를 말했지만 치즈루가 몰랐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그런 무서운 녀석에게 끌려갈 뻔했으니 기운이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어라, 신파치 씨. 잊었어? 우리도 그녀에게 똑같은 짓 했는데?”


오키타의 발언에 그 자리가 다시 얼어붙었다. 확실히 신선조도 자신들의 사정 때문에 치즈루를 이 곳에 감금 및 감시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치즈루는 둔소에서 도망친 나찰이 흡혈을 하는 장면을 똑똑히 목격했다. 덕분에 신선조는 처음에 그녀를 죽여야 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었지만, 결국 목숨은 살려주는 대신 그녀를 감금 및 감시상태로 만들었다. 지금은 그 당시보다 많이 자유로워진 편이지만, 그녀가 이 둔소에 왔을 때를 생각하면 그녀가 어떻게 이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었다. 이 둔소에서 나갈 수 없다. 언제 나갈지도 기약이 없는데다 살아서 나갈 수 있는 보장도 없다. 게다가 이 둔소의 모든 사람의 감시를 받아야하며,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색을 보이면 베인다. 그리고 그 말을 그녀는 틈만 나면 여러 사람들에게 듣고 있었다.

만약 야마자키가 그 기약 없는 상황에 계속 놓이게 된다면 일단 버틸 자신은 있었지만, 그녀처럼 웃으며 버틸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강한 사람이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야마자키는 내심 그녀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이케다 야 사건 때당시 야마자키는 그 생각을 다시 재확인했었다. 검과 인연이 별로 없었을 텐데, 그 공포를 이겨내고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해냈다.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딱딱하게 굳은 예전 일을 잠시 회상하고 있으면, 한 쪽에서 조용히 앉아있었던 사이토가 입을 열었다.


그쯤 해둬라. 소지. 이미 지난 일이니.”

어라어라, 하지메 군. 그런 매정한 말 할 줄 몰랐는데? 이미 지나간 일이니 상관없다는 거야?”


무언가 건수가 걸렸다는 듯이 오키타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런 오키타를 곁눈질로 바라본 사이토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한 점 동요 없이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그녀에게 심한 짓을 한 것은 사실이지 않나. 그리고 조금은 나아졌다 해도 현재도 진행되고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입장을 바꿀 수도 없지 않나. 나찰의 건도 있고, 오니의 건도 있다. 그녀를 내보내기엔 위험하다. 그건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나.”

흐응.”


사이토의 반박에 오키타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전혀 흥미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보통이라면 네가 이야기를 꺼낸 주제에 이제 와서 무슨 태도냐고 화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그 누구도 오키타의 태도에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았다. 지적을 해도 지금처럼 한 귀로 흘려들을 뿐이다. 그것이 오키타 소지라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다들 어처구니없는 표정만을 지을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 으음. 지금은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일단 그녀의 기운을 북돋아주는 것을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 다들.”

네에- 콘도 씨.”


콘도의 말에 언제 풍파를 일으켰냐는 듯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 모습을 가증스럽다고 생각하며 야마자키가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사이에, 어느 샌가 회의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치즈루를 기운 차리게 할 수 있을까라던가 뭘 해야 치즈루가 좋아할까로 바뀌어있었다.


역시 시마바라지! 시마바라에서 파악하고 놀고! 맛있게 먹고 마시면 대부분의 걱정은 사라지니까!”

모두가 신팟 짱처럼 단순하지 않다고?? 그래도, 거기서 맛있는 걸 먹자는 건 찬성이지만. 요리도 맛있고.”

좋았어. 그럼 돈은 헤이스케가 내는 걸로 하고. 다 함께 시마바라로 가자!”

왜 내가 내는 건데????”


신파치의 말에 바로 헤이스케가 반박하며 일어섰다. 방금 전까지 엄숙했던 분위기와는 정 반대의 분위기가 되자, 히지카타가 무언가를 말하고 싶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포기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니들 멋대로 해라.”

이얏후! 헤이스케의 돈으로 시마바라다!!”

잠깐, 신팟 짱, 그거 결정된 거 아니니까!!”

아무튼 시마바라는 확정인거지? 좋아. 내가 치즈루 데리고 나올 테니까 오늘밤에라도 가자. 헤이스케의 돈으로.”

그러니까 왜 내 돈이냐고-!”


성을 내는 헤이스케와 그것을 재밌다는 듯이 낄낄 웃으면서 그를 놀리는 신파치와 하라다를 보며 야마자키는 내심 안도했다. 어차피 자신이 나서봤자 이 일은 해결되지 못한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낫다. 이것이 야마자키의 솔직한 의견이었다. 저 세 명은 자신보다 치즈루와 친하니 저들에게 맡기면 문제 없을 것이다.


그녀를 미소 짓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더 잘하니까.’


그러니 이걸로 됐다. 자신은 나서지 않는 게 좋다. 어차피 히지카타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은 이상 자신이 나설 이유도, 필요성도 없다.


[ “………….” ]


그렇게 생각하며 야마자키는 애써 뇌리에 떠오르는 영상을 지웠다.


흐응. 그게 과연 쉽게 되려나?”


시마바라의 돈을 누가 내느냐로 이것저것 소리를 지르고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며 오키타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오키타의 옆에 있던 야마자키만이 겨우 들을 수 있을 만큼의 목소리였기 때문일까. 다른 사람들은 그 목소리를 제대로 주워듣지 못한 채 세 사람에게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겨우 그 소리를 주워들은 야마자키가 그것의 진의를 물으려 했지만, 곧 히지카타의 호통이 빗발치는 바람에 야마자키는 그 말을 묻지 못한 채 그저 입을 다물 뿐이었다.

 


* * *


 

어째서야.”

그러게다.”


그리고 이틀 째 되는 날, 야마자키가 본 것은 초췌한 얼굴을 하고 있는 신파치와 헤이스케였다. 이 사람들은 자신이 할 일도 있을 텐데 왜 이렇게 널부러져 있는 것일까. 일 안하십니까. 라는 눈으로 쓰레기처럼 어딘가에 기대거나 누워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으면 옆에서 무기를 손질하고 있던 하라다가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니들, 방해야. 여기 있지 말고 손을 움직여! 같이 검 손질하자고 하지 않았냐?”

그치만 사노-.”

그치만이건 뭐건, 이건 치즈루의 문제잖아. 우리가 기운 풀어! 라고 해도 그렇게 훅 풀리겠냐고.”

사노 씨도 시마바라에 가면 치즈루가 기운 차릴 거라고 했으면서.”

그렇다고 한 적 없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좀 기운을 차리지 않을까. 라고 했을 뿐이지.”

하지만 치즈루 짱. 아직도 저 상태란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신파치가 턱을 괸 채 어느 한 곳을 바라보자, 야마자키도 따라서 신파치의 시선의 끝을 눈으로 쫒았다. 그리고 역시나, 그 시선의 끝에는 치즈루가 있었다. 뒤를 돌아보고 있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뒷모습에서 기운이 없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묵묵히 청소를 하던 그녀는 저 멀리서 소마와 노무라가 오자마자 만면의 미소를 띄웠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그렇게 몇 마디를 나누고, 두 사람은 할 일이 생각났는지 급히 치즈루의 곁을 떠났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치즈루는 정신을 차리려는 듯이 고개를 젓더니, 다시 청소를 재개했다. 방금 전 같은 쓸쓸함이 느껴지지 않는 뒷모습을 보며 하라다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자기를 신경 쓰는 걸 눈치 채고 평소에도 괜찮은 척 하기 시작한 것 같아. 저렇게 혼자가 되도 계속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계속 긴장하고 있고 말야.”

저러다 쓰러질 것 같아서 걱정이라니까.”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해도 아무런 해결책도 안 될 것 같군요.”

“-그러게 말야. 정말 바보 같고 건방진 아이라니까.”


여기에 존재하지 않은 5명 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네 사람은 깜짝 놀란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우스웠기 때문일까. 키득키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지붕위에서 무언가가가 떨어져 내려왔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신파치와 헤이스케와 하라다가 기겁을 하자, 그 모습이 즐거웠는지 원흉은 하하하, 라고 세 사람을 비웃었다.


너무 놀란거 아냐. 신파치 씨. 헤이스케. 사노 씨. 그 얼굴 걸작이었어.”

소지! 니가 야마자키도 아니고 왜 지붕에서 툭하고 나타나! 놀랐잖아!”

……….”


왜일까. 왜 자신이 신파치에게 악담을 들은 것 같을까.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신파치를 바라보자, 신파치가 말을 잘못했다, 라는 듯 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고, 헤이스케와 하라다가 그런 신파치를 시선으로 비난했다. 그 광경이 우스웠던 탓일까. 오키타가 키득키득 웃으며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 눈치 못 챘어? 정말? 나 네 사람이 여기 오기 전부터 있었는데?”

지붕위에 올라가 있으면 누가 알아채!”

그냥 수행이 부족한 게 아니고? 야마자키 군에게 닌자 수행이라도 받아보면?” 

거기까지 하죠. 여러분.”


이러다가 쓸데없는 분쟁이 일어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 야마자키는 서둘러 헤이스케와 오키타의 사이를 중재했다. 이렇게 소란스러우면 치즈루에게 자신들이 보고 있었다는 것을 들키고 만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이 천아귀같은 남자는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내심 오키타를 경계하며 야마자키가 그 자리를 중재시키고 있으면, 살짝 뚱한 표정으로 하라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너는 대체 또 뭐가 불만인데?”

제가요? 제가 무슨 불만이 있다고 하세요? 이상하시네.” 


딱 봐도 나는 지금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라고 주장하는 듯한 오오라를 풍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키타는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거에요, 라며 뻔뻔하게 미소를 띄웠다.


전 그냥 콘도 씨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계속 저 상태인 저 아이가 마음에 안들뿐인데.”

그게 불만이 있다는 겁니다. 오키타 씨. 그래서, 뭐가 문제입니까?”

야마자키군. 혹시 너는 배려가 없다라는 소리 자주 안들어?”

오키타 씨 한정입니다.”


1초도 생각하지 않고 반박하는 야마자키를 정말 싫다는 듯이 노려보는 오키타였지만, 그런 시선 따위 따갑지도 가렵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야마자키가 오키타 씨, 라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얼른 말하라는 의미였다.


아아-. 짜증나. 그냥 확 말하지 말까.”

소지. 너 말야.”

알았어요. 알았어.”


야마자키는 둘째쳐도 하라다까지 잔소리를 시작하면 귀찮아질 거라 판단했기 때문일까. 오키타가 귀찮다는 티를 팍팍 내며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순찰 끝나고 방으로 돌아가다가 회의 때의 이야기가 신경 쓰였는지 콘도 씨가 일부러 비싼 가게의 양갱을 사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었는데(이 부분을 유난히 강조했지만 그 누구도 태클을 걸지 않았다) 계속 저 상태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때 말야, 치즈루 짱에게 그럴 거면 그 양갱, 반만 나눠달라고 했거든?”그걸 또 빼앗았냐!!!!!!”

왜 그렇게 되는 건데요???”

???”

소우지, 나도 그런 짓은 안해!!! 그녀에게서 먹을 걸 빼앗다니!”


하지만 더 이상은 태클을 걸지 않을 수 없었는지 결국 헤이스케와 야마자키, 하라다, 신파치의 순으로 소리를 질러버렸다. 콘도가 그걸 그녀를 위해서 사온걸 알고 있음에도 그걸 굳이 빼앗아 먹다니. 해도 해도 너무한 수준 아닌가. 하지만 오키타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듯 한 얼굴로, 아니,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는 듯한 억울한 표정으로 반박을 시도했다.


아니, 그 아이가 더 웃기지 않아? 콘도 씨가 준 걸 그대로 나에게 다 줘버렸다고? 콘도 씨가 기껏 자기를 위해서 사왔는데 그걸 나에게 홀랑 넘겼다고?” 

그러니까 그거 분명히 당신 탓일 겁니다. 오키타 씨. 내놓으라고 무언의 압박이라도 줬겠죠.”


목구멍 끝까지 올라오는 화를 꾸욱 억누르며 야마자키가 반론했다. 오키타가 콘도를 정말 존경하고 좋아한다는 것은 신선조대사라면 누구나 아는 사항이었다. 그런 그가 헤에, 콘도 씨가 너를 위해 사온 과자라고? 내놔라고 무언의 압박을 준다면 백이면 백 다들 헌상할 것이다. 거기서 주지 않는다면 나중에 어떤 보복이 날아올지 모르니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데 치즈루라고 두렵지 않을 리가 없지 않는가.

이야기를 들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오키타의 잘못뿐인데, 왜 치즈루가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하는 것일까. 네 사람이 한 마음이 되어 오키타를 바라보고 있으면, 오키타는 여전히 네 사람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왜 그런 표정이야? ‘전 괜찮으니 오키타씨에게 주세요라고 한 치즈루 짱이 더 나쁘잖아?”

내가 예상하는데, 너만 없었음 치즈루가 그거 다 먹었을 거다.”


하라다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떡였다. 오키타가 삥만 뜯지 않았어도 치즈루는 콘도의 호의를 받아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이 나쁜놈. 애한테 그러고 싶냐. 그 마음을 담아 다들 오키타를 노려보고 있으면, 오키타는 여전히 반성의 기색은 거녕 적반하장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는데, 치즈루 짱이 먼저 나에게 줬다고? 아까 전에도 말했잖아. ‘그럴 거면 그 양갱, 반만 나눠달라.”


그제서야 네 사람은 오키타가 처음에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그랬었던 것 같다. 대놓고 빼앗은 게 아니라, ‘안 먹을 거면 나줘라는 뉘앙스로 오키타가 말 했다는 것을.


아무튼 결국 뺏은 거잖아, 치즈루 껄!”


그렇다고 해서 오키타의 결백이 증명된 것은 아니다. 어투가 그렇다고 해도 내놔. 그거 내놔라는 오오라를 뿜으며 그렇게 말했다면 백이면 백 다 바쳤을 게 틀림 없을 테니까. 심지어 신파치도 그런 식으로 몰리면 내놓는 일이 몇 번은 있었다. 그런 수준인데 치즈루라고 바치지 않았겠는가. 어떻게든 오키타가 나쁜 쪽으로 몰고 가고 싶었는지 헤이스케가 버럭하며 소리를 지르자, 하라다는 지쳤다는 듯이 어거지로 헤이스케를 앉혔다.


그만하자. 계속 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간 끝이 없겠다. 여기서 끝내자고. 이 이야기는.”


거기에 동의하지? 그렇게 말하는 하라다의 말에 동의하듯이 야마자키가 고개를 끄떡였다. 의외로 신파치도 거기에 동의한다는 듯이 입을 다 물었다. 계속 이 이야기를 하면 끝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탐지한 것이겠지. 두 사람이 동의하자 헤이스케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삼켰다. 여전히 얼굴에는 아직도 납득하지 못했는지 불만이라고 씌여 있었지만, 야마자키도 하라다도 신파치도 그것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은 채 오키타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오키타 씨가 말하고 싶은 바는 무엇입니까.”


여전히 무표정인 채로 야마자키가 물었다. 오키타 소우지라는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에는 언제나 평정을 가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이야기를 할 때 하고 싶은 말을 먼저 하지 않고 배배꼬아서 대화하는 사람들을 짜증나게 만드는 단점이 있다. 물론, 콘도 이사미라는 한 사람을 제외하면 말이다.

인내다. 인내다. 야마자키 스스무. 여기서 화를 내면 오키타만 더 재미있어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야마자키는 인내 있게 오키타의 말을 기다렸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콘도 씨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쥐어준 것도 다 그런 식으로 거절한다는 거. 어제 이노우에 씨가 억지로 쥐어주는 걸 봤는데 꽤 탐탁지 않아하더라-?”


의외로 오키타가 순순히 말하는 것을 보고 잠시 하라다와 헤이스케와 야마자키가 신파치가 움찔했지만, 곧 짐작 가는 바가 있는지 다들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라다의 경우에는 과일이었다. 그다지 신선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잘 익은 과일이었기에 사서 치즈루에게 선물해주었지만, 그녀는 배가 부르다며 거절했다.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하라다는 다음에는 더 좋은 것을 가져오겠다며 물러났다. 하지만 그 후에도 계속 먹을 것을 주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거나, 그 자리에서 같이 먹게 되는 일이 많았다.


먹는다고 해도유키무라군은 제대로 먹지 않고 사온 사람이 거의 다 먹었었지.”


예전에 야마자키가 신파치가 치즈루가 무언가를 같이 먹는 것을 우연히 목격했을 때, 치즈루는 대부분의 간식을 신파치에게 양보했었다. 신파치는 괜찮아 괜찮아, 너를 위해 사온 거다라고 계속해서 말했지만, 치즈루는 그저 식욕이 없다라며 기어코 거절했었다. 하라다도 헤이스케도 비슷한 일을 당했는지 으음, 하면서 복잡 미묘한 표정을 띄우고 있었다.


그리고 다들 들어본 적 없어? ‘더 이상 저에게 이렇게 잘 대해주지 않으셔도 되요라고.”

…….” 


짐작 가는 것이 있다는 듯이 네 사람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한번 씩은 들어본 이야기였으니까. 그럴 때마다 그런 이야기 하지 마라던가 너무 신경 쓰지 마.’라는 둥 치즈루에게 말하고 있지만, 그녀는 그저 웃어보일 뿐, 알겠어요. 라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아아. 예전에는 재미있었는데 지금의 치즈루 짱은 너무 재미없어.”

그녀는 당신의 장난감이 아니…….”

“-게다가 점점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단 말이지. 저거.” 


오키타의 말에 살짝 울컥한 야마자키가 반론을 하려던 차, 오키타의 입에서 그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고, 어렴풋이 알아채고 있었던 사람도 있었기에 이 침묵이 생겨난 것이다.


……과대해석 아닙니까?”


그리고 야마자키는, 어렴풋이 그렇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면서도 그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치즈루는 잠시 방황하고 있는 상태다. ‘오니들의 납치 미수에, 자신들이 모르는 이야기들이 의문만 남기고 사라져서 혼란스러운 상태다. 혼자 시간을 갖고 고민하고 싶어도 아직 그녀는 야마자키를 포함한 다른 대사들에게 감시당하는 상태였기에 혼자만의 시간도 갖지 못한다. 다른 대사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런 그녀에게 미안함을 갖고 있기에 더더욱 잘 해주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그걸 알고 사양하는 것 뿐이다- 라고,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는데.


[ 자기 존재를 지우려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단 말이지. 저거 ]


그 말에 자신은 그저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버렸다. 제대로 자각하고 있는 사실에서 눈을 돌리다니, 감찰반 실격인 행동이다. 하지만, 믿을 수 없었다. 그녀가, 치즈루가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는 것을.

이케다야 사건 때는 어디까지나 다시 체감한 것과 다름없다. 야마자키가 처음으로 그녀를 처음으로 그렇게 인식한 것은 그녀가 이 둔소에 채제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였다. 그때 그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아무리 주위에서 여러 말을 들어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주위에게 조금씩 인정을 받고 지금의 위치에 발을 딛고 설 수 있었던 것이다. 존재를 지운다는 회피를 하려면 그때 했어야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 와서 그런 행동을 보이는 걸까. 무엇이 그녀를 방황하게 만든 것일까.


……….’


어떻게 하면 치즈루를 기운 차리게 해줄 수 있을까, 라는 주제로 하라다와 헤이스케와 신파치가 토론하고 있을 때, 야마자키는 계속 마음에 걸렸던 장면을 다시 뇌리에 떠올렸다.

불안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치즈루의 모습이었다. 그건 니죠 성에서 그녀를 오니에게서부터 피신시키고 다시 돌아가려고 했었을 때였다. 치즈루는 무언가 말하고 싶어 했지만, 자신은 바쁘다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히지카타가 있는 곳으로 가버렸다.


그게 원인은, 아니겠지.’


자신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저렇게 되다니. 그건 자의식 과장이다. 한 순간 떠오른 생각을 창피하다고 생각하며 부정했다. 치즈루는 강한 아이다. 단순히 불안할 때 곁에 있어주지 않았다고 이렇게 도망치려는 행동을 취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 정도로 몰려 있다면?’


그녀가 오니와 연관되어있다.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은 이 신선조에 없었다. 콘도도 히지카타도 치즈루의 결백을 믿고 있고, 야마자키도 자신 나름대로 조사해서 그녀의 결백이라는 결과를 찾아냈다.

그럼 어째서? 다시 한 번 몇 번이나 생각했던 의문을 떠올렸다.


지금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부장님과 다른 조장들이 그녀를 구하러 오기 전에 그들에게 무언가 들었다는 것. 정도인가.’


그렇다면 지금의 행동도 납득이 된다. 하지만 추측만 할 수는 없는 일. 진실을 얻고 싶다면 자신이 움직이는 수 밖에 없다.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그것이 야마자키가 감찰반을 하며 얻은 교훈이자, 방식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렇게 움직일 뿐. 그렇게 생각하며 야마자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부장님이 오라는 시간이 되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오늘 하루 야마자키는 비번이다. 물론 히지카타의 호출따윈 없었다. 하지만 지금 바로 히지카타에게 간다고 하면 다들 이유를 물을 테고, 야마자키는 그것에 답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야마자키는 그 이유를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으아. 야마자키군 언제 쉬는거야, 대체.” 

나중에 쉬는 날 한번 한잔하러가자고.”

물론 야마자키가 내는거지만 말야.”

신파치, 너 진짜.”


어떻게든 자신이 내지 않기 위해서 추하게 발버둥치는 신파치의 태도에 하라다가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친구가 이런 사람이라고는 알고 있지만 도가 지나칠 때마다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하라다에게 왜, . 라고 뻔뻔하게 말하는 신파치를 한번 슥 바라본 야마자키는 고개를 끄떡이며 입을 열었다.


시간이 되면, 말이죠. 일단 다녀오겠습니다.”

“-, 열심히 해보면?”


오늘도 일이라고 하는 야마자키에게 동정하는 두 사람과 달리 오키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우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알아채고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여전히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것인지, 야마자키에게는 알 방도가 없었지만 굳이 그것에 대한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오키타가 저러는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니 그냥 넘기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야마자키는 네 사람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후 부장실로 향했다


***


* *

 

………….”


눈에 보이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광경. 들려오는 것은 사람들이 입과 행동에서 내는 소리가 섞여 만들어진 소움. 평소라면 인연이 없을 왁자지껄한 시장의 광경을 보며 치즈루는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왜 자신이 여기 있는거지. 라고 생각하면서.

진정하고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방금 전 까지 자신은 청소를 하고 있었을 텐데, 갑자기 야마자키가 오더니 잠깐 자신을 도와달라며 치즈루에게 빠져나갈 틈도 주지 않은 채 이 곳, 시장으로 데러와 버렸다.

유키무라군. 시간 있나? 있는 거겠지? 그럼 나랑 잠시 어디 좀 가 줬으면 해.’

대답도 듣지 않았다. 평소와 달리 강압적이었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치즈루는 불안감을 느꼈다. 야마자키가 자신에게 해를 끼칠 리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혹시 이번 일로 치즈루에게 의혹이 씌워졌다 해도 성실한 그는 먼저 자신에게 이야기를 하고, 간부에게 알려서 회의를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해나갈 것이다. 그러니 먼저 자신에게 해를 끼칠리 없다. 그렇게 믿고는 있지만, 아무 말 없이 치즈루와 나란히 서서 걷고 있자니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유키무라 군.” 

그런 치즈루의 감정을 읽었기 때문일까, 옆에서 걷고 있던 야마자키가 입을 열었다.

강압적으로 데려와서 미안해. ……실은 의학에 대해서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말야. 네 지식을 빌리고 싶어서 데려왔어.”

. 난방쪽의 지식이라면 처음 말했듯이 저도 많이는 모르는데

알고 있어. 처음에 말했듯이 아는 범위에서만 알려주는 것 만으로도 충분해.”

알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지식을 알려달라고 해도 구체적으로 뭘 하면 좋을지 현재로써는 알 수 없다. 야마자키가 치즈루에게 이런 방면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이번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에 치즈루는 당황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바깥으로 데리고 나온 것은 처음이다. 내심 긴장을 하며 야마자키의 말을 기다리고 있으면, 야마자키는 어려운 것은 아니야, 라고 운을 띄우며 말을 이어갔다.

아는 사람에게 책을 받으려고 했지만 그가 바쁘다고 해서 어느 가게의 점주에게 맡겨놨다고 하더군. 일단 그 곳에서 책을 받은 후 내용을 확인해 줬으면 해.”

책이라면, 어떤?” 

오란드의 책을 번역한 의학서다. 물론 우리들도 읽을 수 있도록 일본어로 써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외국어가 섞여 있다고 해서 말야. 그걸 한번 봐줬으면 해.”


치즈루의 부친인 유키무라 코우도는 난방의다. 난방의란 정확히 서양-, 정확히는 오란드(네덜란드)와 교류가 있고, 그들의 의학을 배워온 사람을 뜻한다. , 코우도는 네덜란드어의 서적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었고, 그의 일을 도왔던 치즈루도 아주 조금은 네덜란드 어가 가능했다. 본인은 아주 간단한 것 밖에 모른다고는 하지만, 까만건 외국어요, 하얀 건 종이니라라는 것 밖에 알 수 없었던 야마자키에게 있어서 그녀는 정말 대단한 사람으로 보였다. 회화는 아예 못하지만, 코우도가 어떤 물건을 가져오라고 부탁할 때가 많았기 때문에 치즈루는 어떤 물건이 어떤 명칭으로 불리고 읽히는 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편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간부들의 표정이 살짝 존경의 색이 물들었었다는 사실은 치즈루밖에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전부 해석할 수 있을 자신이없어요.”


그동안 야마자키가 질문했던 것들도 완벽히 해석한 적이 없다. 야마자키는 언제나 치즈루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해주고 있지만, 치즈루는 자신이 정말 도움이 되는 것인지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 불안이 얼굴에 드러난 것도 모른 채 치즈루가 땅바닥으로 시선을 떨어트리면, 걱정 말라는 듯이 야마자키가 후, 하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건 알고 있어. 하지만 유키무라 군은 코우도 씨처럼 오란드 어를 제대로 배운 것도 아니야. 겉핥기로 이정도 할 수 있으면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 그런 유키무라 군을 존경하고, 언제나 감사하고 있어.”

야마자키 씨.”

자신에게 자신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유키무라 군이 있어줘서 다행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으니까.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유키무라 군은 도움이 되고 있어. 그것 하나 만큼은 알아줬으면 좋겠어.”


상냥한 목소리에 치즈루는 무의식적으로 야마자키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시야에 목소리랑 똑같이 상냥한 눈을 한 야마자키의 모습이 들어와서-, 치즈루는 살짝 울고 싶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다시 떨구었다.

 

* *

 

. 그러니까 아마도 이 단어는………. 그러니까 붕? 붕대에요!”

붕대에 관련된 건가. 맥락을 읽어보면 붕대 감는 법이겠군.”


야마자키의 말에 치즈루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야마자키가 가게주인에게 받아온 것은 엄밀히 말하면 이 아니라, 종이뭉치에 가까웠다. 내용을 대강 휘갈려 쓴 종이뭉치를 빠져나가지 않게 적당히 묶여있는 종이뭉치의 외관은 물론이고, 그 양에 치즈루는 자기도 모르게 정신이 한 순간 날려버리고 말았다. 평범한 서적의 10배정도 되는 그것은 존재만으로도 압박을 받을 만 했으니까. 그것을 갖고 온 점주도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야마자키에게 정말 이것이 맞느냐. 이걸로 되느냐. 라고 아름다운 얼굴을 당혹으로 물들이며 몇 번이건 물었다. 야마자키도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지 점주의 말에 당황한 기색을 꾹꾹 누르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할까. 살짝 먼 눈으로 바라보던 야마자키는 밥 시간도 되었으니 일단 밥부터 먹자, 라는 결론을 지었다. 여기까지 옮겨준 점주에게는 사례는 했지만 그래도 요리찻집에 왔으니 음식은 먹고 가야한다라는 것이 야마자키의 의견이었다. 처음에는 야마자키의 내가 사줄 테니 밥을 먹자라는 의견에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라고 손사례를 쳤지만 확실히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는 것도 실례라고 생각했는지 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소바 두 개를 시킨 후,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음식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침묵이 무겁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치즈루가 종이뭉치를 봐도 되냐고 물어왔다. 야마자키도 밥을 기다리는 도중에 보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는지 서로 자료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정독한 결과, 왜 한권이었을 의학서가 번역하니 왜 이렇게 양이 많아졌는지 이해하고 말았다.

이것은 해석본이라고 하기 보다는 낙서장에 가깝다.

일단 위에다 오란드 어로 문장을 쓰고, 밑에 해석의 문장을 달아놓았다. 그렇게 해도 내용물이 두 배로 늘어나게 되는 것은 당연한데, 거기다 중간중간 배가 고프다라는 둥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낙서 같은 것도 눈에 띄었다. 이러니까 분량이 늘어나는 거지. 라며 먼 눈으로 보고 있으면, 야마자키 쪽에서 미안하다라고 사죄의 말이 흘러나왔다. 내용을 보면 볼수록 얼굴을 쓸어내리거나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걸 보아하니 야마자키도 이 사태를 예상하지 못한 듯 했다.

처음에는 바로 둔소로 가져가는 걸까 했지만, 답지 않게 반쯤 해탈한 야마자키가 현실을 외면하는 행동을 취하더니,


[“밥 먹고 가지.”]

 

라는 한마디를 내뱉고 자리에 앉아버렸다. 본인 말로는 여기까지 옮겨줬는데 식사라도 하지 않으면 실례라고 하고 있지만, 살짝 둔한 치즈루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는 동요하고 있었다. 확실히 아무것도 주문하고 가지 않는 것도 실례다. 야마자키의 행동이 도피로 보였지만 그것을 굳이 지적하지 않은 채 야마자키의 앞에 앉았다. 소바를 주문한 것은 좋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어색했기 때문일까. 치즈루가 기다리면서 잠시 종이를 보여달라고 했고, 야마자키도 내용이 신경 쓰였는지 둘은 대화도 잊은 채 자료를 읽기 시작했다. 오란드 어를 안다고 해도 조금밖에 알지 못하는 치즈루에게 있어서 내용은 어려웠지만, 오란드 어의 기초조차 모르는 야마자키에게 있어서는 다른 세계의 언어였다. 그래서 야마자키는 계속해서 치즈루에게 제대로 해석되지 않은 단어를 물었고, 치즈루는 아는 지식을 짜내서 그것을 맞추었다. 마치 퀴즈게임 같은 대화에 두 사람은 눈치 채지 못하고 야마자키는 치즈루가 알려준 문장이나 단어로 의미 없는 번역을 돌리며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가끔 그 주제에 흥미가 생기면 그것에 대해서 토론을 하건 했다. 그런 두 사람을 학구열이 굉장한 사제구나, 라고 생각하며 주위가 훈훈하게 바라보는 것도 모른 채, 두 사람은 필사적으로 문제 맞추기를 하고 있었다.


소바 두 개 나왔습니다!”

“!!!”


그렇게 주변이 보기에 강렬하고 열렬하고 훈훈한 토론을 하고 있으면, 어느새 자신들의 앞에 온 점원이 생글생글한 얼굴로 소바 두 개를 내왔다. 그제서야 지금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를 자각한 치즈루는 갑자기 창피해진 탓일까, 새빨개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 죄송합니다! 시끄러웠죠!”

후후, 아니에요. 두 분의 학구열에 감동받았는걸요. 그리고 가게는 언제나 떠들썩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맛있게 드시고 더 이야기하고 가세요!”


후후후, 하며 두 사람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응원을 하던 점원은 주방에서 카요, 라고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더 주문하고 싶으신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주방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어색하게 웃으며 바라보던 치즈루는 잘먹겠습니다, 라고 두손 모아 말하는 야마자키를 따라 자신도 잘먹겠습니다 라고 말한 뒤 식사를 시작했다.

소바는 놀랄 정도로 맛있었다. 심지어 간도 쿄 식이 아닌 에도 식이다. 오랜만에 먹게 된 고향의 맛에 살짝 감동하고 있으면, 앞에서 묵묵히 우물거리던 야마자키가 입을 열었다.


이 요리찻집은 원래 에도에 있었던 가게였다만. 한동안 주인장의 딸 부부가 쿄에 머물며 가게를 운영한다더군. 이 서. 서적. 서적.같은 것도 반의 반은 에도에서 갖고 와줬어.”

, 그랬군요. 무거웠을 텐데 감사하네요…….”


종이뭉치들을 서적이라고 하기에는 양심이 찔렸는지 야마자키가 서적이라는 단어에서 말을 더듬었다. 그 마음은 이해가 가요. 야마자키 씨. 그렇게 생각하며 옆에서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종이뭉치를 흘깃 바라보며 치즈루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자, 야마자키는 후하고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반의 반 정도지만 말이지. 일단 부탁은 하긴 했지만 나도 초면에 가까운 상대에게 이만한 양을 가져다달라는 무리한 부탁은 하지 않아. ‘에 관련된다면 모를까.”

초면. 인가요.” 

아아, 방금 전의 점원의 아버지가 내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교류하는 사람과 지인이라서 말이지. 원래라면 내가 가지러가는 것이 도리지만 이 곳을 떠날 수 없어서 말야. 무리와 실례를 무릅쓰고 부탁했지

………….”

그런데 결과가 저거라니. 본 순간 좀. 현기증이 났다.”


여전히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종이 뭉치를 흘깃 바라보며 야마자키는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머리가 아파오는지 몇 번 한숨을 쉬고 머리를 짚는 야마자키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치즈루는 다시 종이뭉치에 시선을 주었다.


이 책이 그렇게 중요한 책인가요?”

아직은 몰라. 읽어봐야 알 수 있으니까.”

모르시는건가요.”

일단 오란드의 의술서라는 점에 가치를 두고 구했거든. 나는 동양학쪽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으니 말이지. 그래서 다른 의료법을 보고 싶었어.”

다른 의료법…….”

애매하다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나 자신도 그걸 잘 인지하고 있고. 하지만 한 우물만 파기에 내 실력은 부족하고, 시간도 별로 없어. 그러니까 쓸 수 있는 무기를 몇가지 더 상비해두는 거지. 그게 내 전투방식이고 말야.”


먹 투성이의 종이를 만지작거리며 야마자키는 무표정으로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눈 앞의 종이가 머리가 아 팠는지 크게 한숨을 쉬고 소바에 딸려온 생강을 우물거렸다.


그러고 보니 야마자키씨의 이런 이야기를 듣는 건 처음이네.’


새삼 생각해보면 치즈루는 야마자키 자신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다른 간부처럼 언제나 함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가끔 그가 임무에서 돌아왔을 때 몇 마디 나누거나 의료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기에 모르는 것이 많은건 당연했다. 그래서일까, 그가 자신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기쁘면서도, 간지러운 감각. 그 감각이 치즈루의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 퍼져가는 것 같았다.

치즈루에게 있어서 야마자키는 먼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이렇게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해준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다. 마치, 그와 가까워진 것 같아서.

 

-그러면 한 발자국 더 물러나야지.

 

하지만 기뻐하지 말라는 듯이 머릿속에서 경고음과 함께 경고의 문장이 떠올랐다.

그 말이 맞다. 선을 넘으면 안 된다. 에도에 있을 때처럼 언제나. 웃으며 상대방에게 파고들지 않으며, 자신에게도 파고들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그렇게 다시 한 번 다짐하고 있으면 부엌으로 사라졌던 점원이 미소를 지으며 당고 두 접시를 두 사람 앞에 내려놓았다.


우리는 소바만 시켰는데?”


소바만 나올 줄 알았던 치즈루의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이 야마자키가 물었다. 그들의 반응이 이해가 간다는 듯이 점원이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열심히 하고 있는 사제에게 특별히, 라고 남편이 가져다 달라고 해서요.”


그러니 사양 말고 드셔주세요. 그 한마디를 남기고 점원은 웃으며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생각지도 못한 행운에 치즈루가 눈만 껌뻑이고 있으면, 야마자키가 그렇군. 이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치즈루의 앞에 접시 하나를 밀어주었다.


, . 야마자키 씨. 야마자키 씨가 두 개 다 드셔주세요.”

하나는 네 몫이야. 사양하지 말고.”

그치만. 이런 걸 받을 이유가 없어서.”


가게를 소란스럽게 해서 폐를 끼쳤다면 모를까, 그 반대를 한 기억이 없다. 그래서 눈 앞의 호의에 당황해하는 치즈루를 똑바로 바라보며 야마자키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간부들이 갖고 온 간식들도 그런 식으로 사양했었지.”


야마자키의 지적에 치즈루는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했다.

선을 넘어가지 말자고 결심한 그날부터 치즈루는 간부들의 호의를 거절하기 시작했다. 그들과 더욱더 정을 쌓으면 그 순간을 들킬 것만 같아서. 나중에 올 그 순간을 버티기 힘들 것 같아서. 그 순간을 본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려워서 계속 옛날로 돌아가자고 생각하며 치즈루는 그렇게 행동해왔다.

선을 만든 것은, 다른 사람과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평범한 생애를 보내면 그렇게 아플 일도 없다. 울 일도 없었다. 물론 마음이 졸이는 일은 많겠지만 상처받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런데 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욕심이 났다. 선을 넘어가고 싶다는 욕심이. 실제로 니죠 성에서 자각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어떻게 살자고 결심했는지 조차 잊고 있었다.

즐거워서.

누군가와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왁자지껄하게 있는 것이 즐거워서.

물론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두려움은 즐거움으로, 그들을 좋아하니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 어디선가 에서는 이렇게 생각해버린 것이다.

이 사람들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라고.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한 자신이 창피했고, 용서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선을 더욱 굳건히 하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이유를 물으니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다른 사람들에게처럼 기분 탓 이에요라고 말하면 좋겠지만 그 말을 간파하지 못할 야마자키가 아니었다. 그는 감찰반. 정보를 얻기 위해서 사람의 거짓말을 가려내는 것에 특화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서투른 거짓말 따위 금방 알아차리겠지.


………아니, 다른 분들도 눈치 채신 모양이지만.’


치즈루는 거짓말에 서툴다. 물론 치즈루의 성격 때문인 탓도 있었지만 사람과 많이 대화를 하지 않은 탓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개선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것에 대해서 주로 오키타에게 놀림을 받건 했지만 꼭 고쳐야 한다는 압박감은 없었다. 지금도 조금 더 거짓말이 능숙했다면 다른 분들게 걱정을 끼쳐드리지는 않았을텐데, 라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치즈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당고를 내려다보며 침묵을 지키고 있었고, 야마자키는 그런 치즈루를 무언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만의 침묵이 흘렀을까,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야마자키 쪽이었다.


일단 먹지.”

……?”


분명히 다른 간부들처럼 요즘 너 왜 그러는 거야,라던가 무슨 고민이 있어?라는 물음이 돌아올줄 알았다. 그래서일까, 치즈루가 예상한 질문과 전혀 다른 말을 입에 담는 야마자키의 행동에 치즈루는 그저 눈만 껌뻑일 뿐, 얼빠진 대답만 되돌려주었다. 그런 그녀의 태도를 예상하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별 생각이 없었는지 아무 흔들림 없이 다시 한 번 말해주었다.


일단 먹어둬. 둔소와 달리 여기는 가게니까.”

.”


그렇다. 간부들이 같이 먹자며 가져오는 것과 달리 이것은 가게에서 내놓은 것이다. 만약 거절한다면 그 사람들의 성의를 무시하게 되는 것은 물론, 이 가게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돌지도 모른다. 물론, 마지막은 치즈루의 망상일 뿐이지만. 최악의 가정을 하며 얼굴이 새파래졌다 납득했다를 반복하고 있는 치즈루의 얼굴에서 모든 것을 읽었기 때문일까. 또 쓸데없는 걸 생각하고 있는 건가,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야마자키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뭘 생각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걸 안 먹는다고 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기껏 주신거다. 감사히 먹는 편이 좋다고 봐. 나는.”

, .”

읽히고 있었던 걸까. 치즈루는 창피함에 달아오른 얼굴을 감싸 쥐며 야마자키의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 얼굴의 열이 가실 즈음, 치즈루는 살짝 어두운 얼굴로 방금 전까지 의문을 품고 있었던 것을 입에 담았다.


야마자키 씨는

“?”

야마자키 씨는, 왜 묻지 않으세요?”


-제가 이러는 이유를.


마지막 말 까지 말할 자신이 없었는지 치즈루는 거기서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무덤을 파는 행위라고는 생각하고 있다. 왜 그러냐고 걱정해주는 다른 사람에게는 그런 거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그냥 기분 탓이라고 생각해요, 라고 변명을 한 주제에 그냥 넘어가 준 사람에게는 왜 그러냐고 묻는다. 어째서 물은 걸까. 묻고 싶다고 생각한 걸까. 자신의 모순을 이해할 수 없어 혼란스러워하는 치즈루를 응시하며 야마자키는 입을 열었다.


나는 네게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어.”

…………….”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왜 우리에게. 아니, 그 사람들에게 그런 태도를 취하게 되었는지, 그 계기도, 고민도 몰라. 짐작은 간다만. 그 짐작도 어디까지나 내 짐작일 뿐 확신할 수는 없어. 이 생각이 맞는지 아닌지. 그걸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너뿐이니까 말야.”

………제가, 나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세요?”


처음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치즈루는 신선조에서 감시받는 입장이다. 그리고 산난이 오치미즈를 마시는 사건 때문에 오치미즈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야마자키의 입장에서는 더욱 더 감시해야할 입장이겠지. 그렇기 때문에 야마자키가 묻지 않는다는 것이 치즈루에게는 의외였다.


확실히 지금의 너는 이것저것 알아버린 상태라 미묘한 상황에 있지. 하지만 부장님과 국장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고, 다른 간부들도 지금의 상황을 바꾸지 말자는 의견을 내셨다. 물론 다들 경계는 하시겠지만. 그래도 네가 이제 와서 무언가를 할 거라고는 생각하진 않아. 그리고 너는 산난 씨를 돕기 위해서 위험한 다리를 건너려고 했었지.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네가 신선조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시고 계셔. -물론, 나는 감찰반으로써 완전히 신용하지는 않지만 그건 이해해주길 바래.”

 

[ 나는 감찰반의 입장 상 너를 신용하지 않아. ]

 

그 말을 들은 치즈루는 예전에 그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감찰반은 사람을 의심하는 직업이다. 그것이 설령 동료라도, 선배라도, 후배라도, 친한 사람이더라도. 언젠가 변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을 의심하고 누군가가 그 조직에 해가 되는 행동을 취하기 전에 먼저 손을 쓴다. 그것이 감찰반이다. 그런 그가 그렇게 말해주었다.

마지막에는 그 때와 비슷한 말을 했지만, 지금은 그때와 의미가 틀리다. 완전히 신용하지는 않지만, 완전히 신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의미에 치즈루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런 치즈루의 상태를 눈치 채지 못한 채 야마자키는 말을 이어나갔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기다릴 생각이야. 물론 네 성격에 쉽게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나는 유키무라 군 같은 사람이 무언가 남들에게 말하기 어려운 고민을 안고 있을 때, 그걸 근거 없이 해결해 주겠다며 말해보라는 것을 강요하라는 것은 상처를 헤집는 것이나 같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유키무라 군의 고민을 상담할 수 있을 만큼의 그릇을 가진 사람도 아니야. 알다시피 나는 말 주변도 잘 없고 네가 원하는 말이 무엇인지 고를 자신도 없는 서투른 남자니까.”

…………….”

내가 유키무라 군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들어주는 것 뿐이야. 네가 껴안고 있는 것이 감당이 안될 때, 어딘가에 뱉어내고 싶을 때 그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것 뿐이야. 괜찮다면 기억해줘.”


야마자키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그가 해준 말이 말이 너무 따뜻해서 일까. 치즈루는 살짝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쁘다. 하지만 동시에 죄악감이 들었다. 이런 자신이 이런 신뢰를 받아도 되는 걸까. 하고. 그런 불안함을 감추려는 듯이 치즈루는 얼른 눈 앞의 당고하나를 입에 집어넣었다. 입안에 퍼지는 팥의 달콤함이 조금이나마 불안감을 녹여주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치즈루는 힘없이 웃었다.


………맛있어요. 야마자키 !”

그 말은 나중에 가게를 나설 때 점원에게 해줘. 기뻐할거다.”


그런 그녀의 불안을 굳이 들춰내지 않으려는 듯이, 야마자키는 같이 딸려온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무의식적으로 살짝 웃어주었다.

마치 안심하라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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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멜리스
2017. 6. 4. 03:09

5.

 

골든 위크 4일째. 오늘부터 조센지 배구부를 포함한 체육계 부 활동은 휴일에 들어간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체육관도 잠기게 되어 그 곳에서 배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평소라면 그 사실에 절망할 오이카와와 히나타였지만, 절망할 여유는 없었다. 두 사람에게는 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 있었으니까.


-이와이즈미를 만나러 간다.


그 자리의 공기에 휩쓸려서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실은 오이카와도 정말 이와이즈미를 만나고 싶었기에 그렇게 결정했다. 각오는 했다. 하지만 막상 D-day에 가까워질 때마다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히나타도 마찬가지였는지 시간이 지날 때마다 점점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제안자가 그렇게 긴장하면 어쩌자는 거야. 반쯤 장난으로, 반쯤은 진심으로 그렇게 이야기해보아도 히나타의 긴장은 더욱 가속화할 뿐, 나아질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누군가가 자신보다 긴장하면 오히려 자신은 긴장하지 않는 법칙이 적용된 효과여서일까. 아니면 하도 긴장을 해서 마비가 되어버린 것일까. 어느 쪽의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오이카와는 긴장에서 꽤 벗어날 수 있었지만 문제는 히나타였다.

다행히 배구를 할 때나 이와이즈미를 만나러 간다라는 것을 잊고 있을 때는 괜찮았지만, 그 사실을 떠올리고 난 후에는 온 몸이 빳빳하게 굳어져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감독도 미사키도 다른 선배들도 히나타가 갑자기 긴장을 하기 시작하면 히나타를 걱정하거나, 오이카와에게 너 또 히나 짱 괴롭혔냐고 시비가 걸려오건 했다. 계속 아무것도 아니라며 얼버무리는 것도 한계였기에, 결국 치비 짱에게 공부를 가르쳐줬더니 이렇게 되버렸어요!!!’라고 자신이 들어도 어이가 없는 이유를 대버렸다.


이 말을 꺼냈을 때의 히나타의 경악한 표정은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 에요. 대왕님. 그런 설정 없었잖아요. 라며 뒤에서 히나타가 오이카와를 탓하는 표정으로 강렬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지만 이제 와서 뻥이에요, 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의외로 이 변명은 꽤나 그럴 듯 했는지 모두가 그렇구나, 하고 납득해주었다. 오이카와도 히나타도 이렇게 쉽게 납득해줄 지는 몰랐는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에 서있었지만, 두 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은 아나바라의 중간고사 기대하마라는 한마디와 격려가 담긴 토닥임을 받고서야 그제서야 오이카와는 심각성을 깨달았다. 히나타의 점수가 올라가지 않으면 자신의 책임이 된다. 그리서 선배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대왕님은 남을 가르치는 재능이 없구나-’라고. 프라이드가 높은 오이카와는 그것만큼은 싫었는지 그 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히나타의 공부를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덕분에 딴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 히나타의 긴장이 한동안 풀렸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그리고 D-day가 찾아왔다.


다시 히나타의 집으로 올 예정이었기에 오이카와는 간단한 짐을 들고 히나타와 함께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조센지에 입학한 뒤로 한 번도 돌아가지 않았던 집에 이런 형태로 돌아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세상은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다. 라고 생각하며 오이카와가 한숨을 쉬었다. 히나타의 앞에선 가볍게 이야기 했지만, 실제로 오이카와는 배가 따끔따끔 아파올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히나타의 앞에서는 허세를 부리고 있지만 실제로는 히나타처럼 고장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이와이즈미는 자신을 만나줄까. 이야기를 들어줄까. 전 날에는 걱정과 시뮬레이션을 하느라 한숨도 자지 못했다. 불안감을 지우려고 하는 행위가 오히려 더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오이카와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진정하자, 진정해. 토오루.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잖아. 목적지까지 꽤 시간도 걸리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어떻게 해.’


계속해서 주먹을 쥔 손에 식은땀이 흥건해지자, 오이카와는 그것을 얼버무리려는 듯이 계속해서 바지에 손을 벅벅 문지르는 일을 반복했다. 거기에 계속 목이 탔기에 계속해서 물을 마셔봤지만, 그걸로 갈증이 해소 되지 못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 까지 자는 게 좋겠지만, 긴장 때문에 잠이 오질 않는다. 요 근래 이렇게나 자신을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던가. 정신도 16살 때로 돌아간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면, 갑자기 옆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우욱.”


착각이 아니라면, 이 소리는 분명 뱃속에 들어있던 것이 목구멍으로 올라올 때 내는 소리다. 불길한 소리에 급히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그 곳에는 어느새 준비했는지 검은 봉다리에 얼굴을 박고 있는 히나타의 모습이 있었다.


“-죄송합니다!! 내릴께요!!!”


상황이 긴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창피하다는 생각도 떨쳐버린 채 얼른 내리겠다는 버튼을 누르며, 오이카와가 소리쳤다. 이 순간만큼은 이와이즈미를 만나러간다는 생각을 지운 채 오이카와는 서둘러 히나타를 데리고 이름모를 정류장에 내렸다.

 


* * *

 


. 만 엔.”


자신의 지갑에 딱 한 장 들어있는 1만엔을 보고 오이카와는 자판기 앞에서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주머니를 뒤져도, 짐을 뒤져도, 히나타의 짐과 지갑을 뒤져도 1만 엔과 97엔 이상의 돈은 나오지 않았다. 둘이 합쳐 소지금 297. 큰 액수였지만 이걸로 눈 앞의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먹는 것은 불가능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1만엔 을 집어넣어보았지만 자판기는 친절하게도 1만 엔을 뱉었다, 다시 돌려주었다. 적어도 3엔만 더 있었다면 뭔가 살 수 있었을 텐데. 3엔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깨달은 오이카와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자판기와 벤치를 발견할 수 있었지만, 중요한 물을 구입할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한 모금 정도는 남겨두는 건데.’


계속해서 목이 타는 바람에 비워버린 빈 패트 병에 화풀이를 하며 오이카와는 한숨을 쉬었다. 고개를 돌려보면 영혼까지 검은 봉다리에 토해 내버렸는지 탈진해 있는 히나타가 보였다. 얼른 물을 먹여줘야지 살아날 것 같은데, 지금 현 상황으로 그에게 수분을 섭취하게 해주는 것은 무리였다.


정말이지, 귀찮게 하네.’


원래부터 마음이 못 되어먹은 오이카와는 이 상황에서 자비롭게 아아, 괜찮아. 신경 쓰지 마라고 해줄 정도로 상냥한 위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환자에게 화를 쏟아낼 정도로 마음이 독하지는 못했다.


치비 짱, 이따가 두고 봐!!!!”


현재 오이카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 한마디만을 남기고 근처의 가게를 찾아 달리는 것 뿐이었다. 0 지도에 따르면 여기서부터 약 15분 거리에 작은 가게가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거기에 희망을 걸 수 밖에 없었다. 만약에 그 곳이 문을 닫았다면 또 15분을 달려서 전전 정거장에 있던 슈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만큼은 싫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오이카와는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결과, 오이카와는 두 정거장 전의 근처에 있는 슈퍼에 와 있었다. 오이카와의 예상대로 첫 가게는 문을 닫아있었고, 결국 오이카와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두 번째 정거장으로 뛰어갈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슈퍼는 문이 열려있었고, 오이카와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물과 드링크, 그리고 멀미약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 이거 버스가 더 빠른데...”


이 무거운 짐을 들고 30분가량을 달리는 것 보다 15분을 더 기다려서 버스를 타고 그 정류장으로 가는 것이 더 빨랐다. 왜 이렇게 애매한 시간인 걸까. 버스정류장에 붙어있는 시간표를 노려보며 오이카와는 잠시 고민하더니, 곧 크게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열었다.


뛰어가도 버스가 치비 짱이 있는 곳에 먼저 도착할 것 같고 말야.”


그러니까 이 선택은 어쩔 수 없다. 절대 절대 자신이 매정해서 얼른 히나타에게 가지 않고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이게 가장 합리적이고 체력을 아끼는 길이다. 마음 속 어디선가에서 현재의 자신에게 매정한 것이 아니냐고 손가락질을 하는 또 다른 자신에게 변명을 하듯이 머릿속으로 변명에 비슷한 생각을 떠올리며, 오이카와는 히나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오…….”]


얼마간의 통화음이 울렸을까. 평소와 달리 기운이 없는 목소리의 히나타의 목소리가 스피커너머에서 들려왔다.


치비 짱, 오이카와 씨인데, 괜찮아? 몸은 좀 어때?”

[“괜찮아요오. 물도 마셨고, 조금 쉬면, 괜찮아질지도.”]

얻어 마셔? 옆에 누구 있어?” 


방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두 사람의 수중에 음료수를 살 수 있는 동전과 지폐는 없었다. 그렇기에 히나타가 자력으로 음료수를 사서 마셨을 리 없다. 그렇다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는 결론밖에 나오질 않았다.


그런 곳에 내리는 이상한 사람도 다 있네.’


오이카와와 히나타가 내린 그 곳은 이 곳이 정말 정류장인가, 라고 할 정도로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장소였다. 아니, 자판기와 벤치는 있으니 아무것도 없다는 표현은 틀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곳에 사람이 있다니, 그 사실이 왠지 께림직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거긴 정류장이라고. 토오루. 누가 있어도 이상하진 않잖아.’


순간 범죄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이상한 가정을 고개를 털어 없앤 오이카와는 목 언저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일단 다행이네. 실은 뛰어가는 것보다 버스타고 가는 게 더 빨리 도착할 것 같거든? 오이카와 씨가 올때까지 착하게 있을 수 있어-?”

[“, ! 아니아니. ! 버스타고 와! 짐 지키면서 기다리고 있을게!”]


스피커 너머에서 히나타가 힘없이 웃는 것이 들려왔다. 말을 걸어도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하던 처음과 비교하면 그나마 괜찮아진 편이지만, 그래도 평소와 비교한다면 힘이 없다는 것은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그걸 생각하니 지금 당장 그의 곁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이득이라고 되뇌이며 오이카와는 표지판에 붙어있는 시간표를 바라보다가, 근처의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 보니 혼자가 된 건 진짜 오랜만이네.’


골든 위크에 돌입한 이후로 계속 히나타의 집과 학교만을 오가고 있었기 때문일까, 오이카와의 혼자만의 시간은 화장실과 샤워를 하는 시간 외에는 없었다. 오랜만에 의도치 않게 혼자만의 시간을 얻었지만, 그리 즐겁지 않은 건 분명히 히나타가 마음에 걸려서다. 그 사실에 짜증이 난 오이카와는 애꿎은 돌맹이만을 차 보았지만 마음속에 생긴 응어리는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전부 치비 짱 때문이야.’


그가 멀미로 쓰러지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안절부절 하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오이카와는 다시 한 번 크게 한숨을 쉬었다.


더 이상 치비 짱이 민폐라고 생각하는 건 관두자. 제발. ’


확실히 히나타는 일을 키우는 타입이다 하지만 자신은 그 민폐라는 것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숨을 쉴 수 있게 해주었다. 그가 끌어내주지 않았다면 아마도 오이카와는 아직까지도 모든 것을 보지 못한 척을 하며 도망다니다가 마지막엔 망가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치비 짱에게 감사해야해.’


히나타에게는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가 있었기에 오이카와는 조센지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학교생활에 녹아내릴 수 있었고, 새로이 다시 시작해보자고 다짐도 할 수 있었던 데다가, 이렇게 이와이즈미와에게서 도망치지 않고 그와 제대로 마주하려 움직일 수 있었다. 만약 히나타는 표류동료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분명 오이카와는 지금처럼 여유와 편안함을 가질 수 없었을 테고, 이와이즈미에게서 계속 도망 다니고 있었음이 틀림없다라고 오이카와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오이카와 토오루에게 실망했다. 언제나 자신이 바보 같은 짓을 하면 엉덩이를 걷어 차주고, 잔소리를 하고, 이끌어주고, 믿어주었던 소중한 사람이었지만 이곳의 그는 오이카와가 알던 이와이즈미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든 것은 이 곳의 오이카와 토오루였다.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상냥한 말은 물론 욕도, 자신의 바보 같은 행동과 발언에 태클도 걸어주지 않는데다 잔소리도 해주지 않았다. 그가 오이카와를 포기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완전히 혼자가 되어버렸다. 그 사실에 절망하고 있는 오이카와를 히나타는 손을 잡고 여기까지 끌어주었다. 오이카와가 계속 툴툴거리고 고압적인 태도를 보여도 히나타는 그 손을 놓지 않았다, 끌어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감사하지 않을 리가 없지 않는가. 문제는 자신이 그 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청개구리처럼 그에게 화만 낸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안 된다고 매일매일 다짐은 하지만, 언제나 마지막은 자기혐오와 반성으로 끝나버린다.


분명 이유는 그거겠지. 내가 치비 짱을 자신과 똑같은 선상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거.’


이 시간 축에 표류해 온 시점에서 오이카와도 히나타도 별 다르지 않다. 오이카와가 원래는 히나타 보다 2살 가량 많다 해도, 여기서는 똑같이 1학년이고, 원래 갖고 있던 스텟도 어느 정도 깎인 상태였다. 토스 실력, 체력, 리시브 솜씨, 점프의 높이. 전부 3학년의 오이카와에게 미치지 못한다. 그런 주제에 자존심만은 3학년의 자신 그대로였기에 오이카와는 무의식적으로 히나타를 자신보다 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치비 짱만이 아냐. 나도 생각을 바꿔야해.’


생각이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머리를 세게 쳐 기억이라도 잃지 않는 한 이 빌어먹을 생각과 사고방식이 바뀌는 일은 없을 테지. 그러니 이 나쁜 점이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다.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을 고개 들어 바라보았다. 느긋한 광경에 방금 전까지 바빴던 일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아니까.’


노력하지 않고서 결정짓는 것은 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기에 지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오이카와는 포기할 생각은 추오도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머릿속에 제일 먼저 클리어 해야 할 난관을 떠올리며 오이카와가 벤치에서 일어났다. 저 멀리 버스가 오고 있다는 것을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오이카와는 100엔과 정기권을 꺼내들고서는, 자신 앞에 정차해달라고 말하듯이 크게 손을 흔들었다.

 

* * *

 

어디학교-”


버스에서 내리면, 기다렸다는 듯이 히나타가 자신에게 뛰어오거나, 적어도 대왕님이라고 큰 목소리로 외칠거라 멋대로 생각했다. 언제나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런 오이카와의 예상을 깨듯이 처음 들려온 것은 대왕님이라는 히나타의 목소리가 아닌, 3자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의 주인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삼색 고양이였다. 귀찮았는지, 아니면 일부러 그렇게 하려는 것인지 그는 금발로 염색한 주제에 뿌리 염색을 하지 않은 채 방치해놓고 있었다. 거기다 눈매까지 고양이를 닮은 탓일까, 검정색과 노란색, 그리고 어울리지 않지만 빨간색. 이렇게 3색이 섞인 고양이로 보였다. 하얀색, 노란색, 붉은색. 보통 붉은색이 들어가야 할 장소에 하얀색이 들어가지만 오이카와가 굳이 붉은 색을 넣은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입고 있는 운동복이 상의도 하의도 눈이 아플 정도는 아니지만 눈에 확 들어오는 빨간색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이 녀석 누구?’


방금 전 통화 내용을 떠올려보면 아마도 이 소년이 히나타에게 물을 준 사람일지도 모른다. 소년을 바라보며 머릿속에서 이것저것 추측하고 있으면, 오이카와의 시선을 피하듯이 소년이 몸을 움츠렸다. 여전히 시선은 손에 들려있는 비타에 가 있었지만 딱 봐도 나는 당신의 시선이 불편해요라고 말 없이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면 자신이 소년을 괴롭히고 있는 걸로 보이지 않는가. 불쾌하다는 듯이 오이카와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지자, 그 모습을 발견한 히나타가 그 모습을 지적하며 목소리를 높혔다.


아아!! 대왕님이 켄마 괴롭히고 있어!!!”

, 아니야! 치비 짱! 오이카와 씨는 누군가 하고 궁금해서 본 것 뿐이야!!!”


정말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오이카와가 반론했다. 자신은 그저 그가 히나타가 말한 사람인가, 하고 본 것뿐이었는데. -라고, 본인은 생각하고 있지만 3자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오이카와는 켄마를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있다라는 것이 확연히 보였다. 문제는 오이카와가 그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두 사람은 뚱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튼 치비 짱, 해야 할 말은?”


약과 드링크가 든 봉지를 들어 올리며 오이카와가 살짝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너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했다. 라고 생색을 낼 생각은 아니었지만 오이카와가 온 것을 기뻐하는 것 보다 생판 모르는 남을 먼저 챙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오이카와는 유치한 수법을 썼다. 부스럭, 거리며 눈앞에 나타난 비닐봉지를 죄악감 넘치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히나타는 곧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알면 됐어 알면. 옛다.”


오이카와가 봉지를 내밀자 히나타는 최대한 고개를 숙이며 그 봉지를 받았다. 너무 생색을 내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도 했지만 나쁜 것은 히나타며,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이정도 해도 괜찮다며 속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자신이 고생하는 사이에 제 3자가 나타나 상황을 파파밧, 정리해버렸다. 그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히나타는 켄마의 편만을 들고, 덕분에 오이카와의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현재 히나타와 동갑이라고 해도 정신연령은 그보다 위다. 그러니까 좀 더 어른스럽게 대처하면 좋을 텐데, 라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막상 결과는 이 꼴이다. 크게 한숨을 쉬며 오이카와는 봉지의 내용물을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있었다.


일단 더 가야하니까 약은 한 번 더 먹어두고. 물은 아까 전에 먹었다고 했지? 화장실이 급해지면 곤란하니까 적당히 먹고.”

그런 것 치곤 물이나 스포츠 드링크가 많은 것 같은…….”

물은 많이 있어도 괜찮다구? 또 물 없어서 중간에 내리게 되면 곤란하고 말야.” 

, 고맙습. 아니, 고마워.”


오이카와의 설명에 따라 유리병에 담겨있는 멀미약을 마시는 히나타를 잠시 바라본 오이카와는 다시 한 번 켄마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이카와와 눈이 마주치자 켄마는 살짝 움찔하더니 다시 시선을 비타로 돌렸다. 그러니까 괴롭힐 생각은 추호도 없다니까.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며 오이카와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저 애가 도와준 애? 아는 사람이야?”


방금 전부터 히나타는 그를 켄마라고 부르고 있었다. 켄마라는 단어는 성보다 이름이라고 생각했기에 오이카와는 아는 사람이야?’라고 물었다. 그 물음에 켄마의 시선이 다시 비타에서 오이카와와 히나타에게, 아니, 정확히는 히나타에게로 돌아왔다. 대답을 신경 쓰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기도 전에 히나타의 활기찬 대답이 돌아왔다.


! 코즈메 켄마라고! 죽어가고 있는데 물을 뽑아줬고, 방금 친구가 됐어!”

……아닌데.”

아니라는데. 치비 짱. 혼자서 내적 친밀감만 쌓은 거 아냐?”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히나타를 내려다보자, 히나타는 딱 봐도 나는 풀이 죽었습니다. 라고 주장하는 듯이 어깨를 푹 늘어트리고 있었다. 둘이 함께 있던 시간은 30분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저 소년이 그렇게까지 히나타의 마음에 들 수 있었던 걸까. 오이카와의 머릿속에 의문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히나타의 친화력이 굉장히 높다고 해도 저렇게 조용하고 소심한 것 같은 사람에게까지 일방적으로 저렇게 우리는 모두 친구! 라는 태도를 보일 만한 아이는 아니었다. 상대방이 어느 정도 받아주고, 히나타가 이 사람이라면 안전해, 라고 판단을 내려야지 그 친화력도 발휘할 수 있는 것인데.


아니, 예외는 있지.’


하나는 상대방이 배구를 한다는 것. 물론 배구를 한다고 해도 오이카와처럼 경계하는 상대는 많다. 하지만 저런 타입이라면 배구를 한다는 것만으로 혼자서 내적 친밀감을 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하나는-.


“-켄마!”


후자를 생각하기 직전, 누군가가 오이카와의 생각을 끊듯이 켄마의 이름을 외쳤다. 반대편 정류장에서 뛰어왔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는 검은 머리를 세팅하고 있는 소년이었다. 입은 옷을 보아하니 켄마와 같은 운동부에 소속하고 있는 듯 한 그는, 벤치에 앉아 있는 켄마를 발견하자 겨우 찾았다. 라고 중얼거리며 씨익 웃었다.


야 이 바보야. 버스는 제대로 보고 타라고 했지!”

…………그건 미안해.”

너 말야. 너 찾느라 이번 시합에 못나갔다고? 좀 더 미안해하면 어때??”

어차피 쿠로는 못나가잖아. 선배들이 전부 주전자리 꿰차서.”

………….”


켄마의 말에 소년은 입을 닫았다. 뭔가 찔린 듯 한 표정이었지만, 곧 체념했다는 듯이 크게 한숨을 쉬고선 입을 열었다.


, 너 덕분에 그 망할 선배들의 뒤치다꺼리는 안해도 되지만... 그래도 너 때문에 난리 난 건 알지?”……버리고 가자고 하지 않았어? 선배들이.”

- 쿨럭쿨럭.”


대화를 하고 있는 도중에도 켄마는 단 한 번도 소년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애써 주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 것일까. 그 모습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보고 있던 소년은 갑자기 쿨럭쿨럭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뛰어온 사람이다. 숨을 고르다가 중간에 침이라도 잘못 삼킨 것이겠지. 그 모습을 오이카와가 당황하고 보고 있는 와중에, 히나타가 다급하게 오이카와가 사다준 물을 그에게 내밀었다. 오이카와는 그것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이카와가 아무리 박정하고 자기중심이라고 해도 물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대에게까지 박정하게 대할 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자신이 열심히 뛰어가 사다준 물을 막 남에게 나누어주는 것에 대해 살짝, 아주 살짝 거슬렸지만 이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다. 문제가 있다면-.


, 고마워. 10.”

“-?”

“-?” 


히나타에게 물을 받았을 때 그가 말한 단어 한마디 정도일까. 현재 히나타는 10번이 아니다. 아니, 정확히는 아직 10번이 아니다라는 것이 정답이다. 아직 누군가와 연습시합조차 해보지 못한 조센지 배구 부는 아직 유니폼조차 받지 못한 상태였으니까. 그 상태의 히나타에게 ‘10이라고 한다면, ‘그건 다른 시간선의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 , 미안. 아는 사람이랑 착각을.”

도마뱀 헤어씨?”


오이카와와 히나타가 이상한 목소리를 내자 그제서야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아챈 소년이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 입을 열려는 차, 히나타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히나타의 입에서 나온 이상한 작명에 오이카와와 켄마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지만 소년만큼은 달랐다. 당혹한 표정이라면 당혹한 표정이지만, 당혹의 종류가 틀리다. 예상치 못한 무언가를 찾아냈을 때의 당혹한 표정이다.


…………10? 카라스노의?”

지금은 아니지만.”


그의 말을 반 정도 부정하며 히나타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자 소년은 잠시 기다려달라는 듯이 손바닥을 내밀고 다른 한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뭐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무리도 아니다. 그 모습을 보며 오이카와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현재의 그에게 공감하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무리도 아닐 것이다. 오이카와 자신도 분명히 자기 혼자만 이 세계에 떨어졌을 거라 생각하며 체념하고 있었던 때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자신과 똑같은 처지의 사람을, 그것도 자신이 잘 알고 있은 사람을 만났을 때의 쇼크는 꽤나 크다. 한 순간 사고가 한방에 날아가 버릴 정도니 말이다. 라며, 어느 샌가 오이카와는 득의양양한 얼굴로 멘붕이 온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치비 짱.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상관은 없지만……. 근데 켄마 데리러 온 거죠? 괜찮아요?”

괜찮아.”


그 대답은 소년이 아닌 비타의 화면만을 바라보고 있던 켄마에게서 들려왔다. 그 대답에 소년이 봤지? 라는 듯이 이번엔 소년이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그런고로, 이야기 좀 하자. 저기서.”


소년이 가리킨 곳은 벤치에서 좀 떨어진 풀숲이 었다. 우리와 다르게 이 시간선의 주민인 켄마에게 이야기를 듣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저곳으로 선택했다는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저 곳으로 가면 히나타가 소년에게 돈을 뜯기게 될 것 만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은. 히나타도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일까, 잔뜩 털을 세운 고양이처럼 경계를 하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어보았지만 소년은 그런 히타나의 의견 따위 상관없다는 듯이 그의 뒷목을 잡고 상냥하게 웃었다.


우리가 대화가 필요한 건 사실이잖아? 안 그래? 치비 짱.”

, 그렇지만, 그렇지만 도마뱀 헤어 씨. 바쁘잖아요? 켄마 데리러 온 거 잖아요? 켄마가 괜찮다고 해도 지금 다들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니에요???”

아아, 진짜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시합은 시작했고, 2학년인 나한테는 차례 없다구? 나는 느긋하게 켄마만 데려가면 돼. 그치? 켄마? 우리 이야기 좀 하고 가도 되지?”

마음대로 해.”


켄마의 허락이 떨어지자 히나타의 얼굴은 새파래지고, 소년은 만면에 웃음을 띄웠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하자? 그렇게 말하며 소년은 히나타를 향해 씨익 웃어 보았다. 대화는 중요하다. 서로가 똑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은 방금 알았다. 하지만 제대로 대화를 나눠보기 전까지 속단할 수 없는 노릇이다. 소년이 히나타에게 대화를 해보자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다. 물론, 방법이 이상했지만 말이다.


잠깐만.” 

?” 


그래서일까. 오이카와의 머릿속에서 이 둘만 있게 하면 안 된다고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이대로 두 사람만 이야기하러 보내면 나중에 히나타가 울면서 돌아온다. 평소라면 히나타가 울건 말건 상관은 없지 않나, 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남자는 위험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위험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오이카와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오오, 치비 짱의 보호자신가?”


소년이 이빨을 드러내며 악당 같은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는 것을 발견해서인지, 아니면 성가신 것이 발견된 해서인지 알 수 없는 미소였지만 오이카와는 확신을 가졌다. 그래, 이거다. 분명히 이 미소 때문이다. 답지도 않게 히나타를 감싸게 된 것은. 이런 위험해 보이는 녀석만 아니었어도 자신은 관여하지 않은 채 버스를 기다리며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면 되었을 텐데. 왜 일이 이렇게 꼬이는 걸까. 내심 한숨을 쉬며 오이카와는 입을 열었다.


, 비슷한 거지. 우리 치비 짱을 괴롭히겠다는 의지가 이렇게나 확연히 보이는데 그냥 보내 줄 수 있을 리가.”

아니아니, 우리는 그냥 이야기만 하려는 거라고?”

네 태도와 얼굴을 보면 삥 뜯으러 가는 놈처럼 보이는데 그걸 믿으라고? 정 대화를 나누고 싶으면 나도 데려가면 어때?”

. 이건 치비 짱과 나만이 아는 비밀이야기라서 말야. 3자가 끼어드는 건 좀…….”


소년의 비밀을 강조하는 말에 오이카와가 눈썹을 찌푸렸다. 마치 나와 히나타는 이럴정도로 각별한 사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 같았기에 더욱 더 불쾌했다. 네가 뭔데 우리 치비 짱을 그렇게 부르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걸 막듯이 켄마의 어처구니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 너무 놀리지 말았어야지. 나라도 경계하게 된다고. 가만히 있어도 쿠로는 악당 같으니까.”

무슨 소리야 켄마. 나만큼 상냥한 사람이 어딨 다고 그래?”

상냥함이 다 얼어 죽었네. 아하하하하.”


뒤에서 후광을 뿜으며 소년이 최대한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반론을 해봤지만, 그 반론은 오이카와의 웃음소리가 섞인 말과 함께 와장창창 깨부숴져버렸다.


.”


오이카와의 지적에 히나타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곧 조용히 하라는 소년의 시선에 히나타는 동공을 부르르 떨며 마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주장하듯이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 어딜 봐서 상냥해. 소요가 불쌍하잖아.”

어이어이, 켄마. 너는 누구편이야?”

소요????’


투닥거리기 시작하는 켄마와 소년과 달리, 오이카와는 다른 단어에 반응해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소요. 머릿속으로 단어를 검색해보았지만 나오는 것은 히나타의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저 상황에서 소요라는 단어를 쓴다면 히나타의 이름밖에는 없다. 그 두 가지를 상출 해낸 오이카와의 머리는 개운해지기는 거녕 더욱 더 혼란스러워지고 말았다.


잠깐, 둘이 처음 만난 거 아냐? 게다가 쟤는 이 녀석처럼 우리처럼 표류자도 아닌데? 무슨 일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이름을 부르고 있는거야? 치비 짱이 친화력이 강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머릿속이 복잡하다. 만난 사람과 대부분 친해지는 능력을 지닌 히나타라고 해도 처음 만난 사람과 단시간에 이름을 부르게 만들 정도의 스킬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오이카와는 켄마와 히나타의 얼굴을 번갈아보더니,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어째서인지 기분이 좀 나빠졌지만, 지금은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지.’

아무튼, 정말 삥이라도 뜯으면 곤란해지니까 나도 이야기에 끼어야겠어.”

아니아니, 곤란한데. 그거.”


계속 짓고 있던 악당의 표정이 불쾌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무리도 아닐 것이다. 죽고 나니 다른 시간선에서 눈을 떴다. 이런 소설에서나 나올 것 같은 미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자기도 이야기에 끼워 달라 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처음엔 태도가 불쾌해서 살짝 놀려줄 생각이었지만, 너무 놀리면 제대로 이야기에 끼워주지 않을 것 같았기에 오이카와는 순순히 자신의 정체를 입에 담았다.


나도 표류자야.”

“-!!!”


오이카와의 자백에 쿠로오의 눈동자가 작아졌다. 알수 없는 말을 했지만 분명히 오이카와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 증거로 쿠로오는 혼란스럽다는 얼굴로 아-. 하며 자신의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히나타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의 말이 진짜냐고 묻는 눈빛이다. 그러자 히나타가 고개를 끄떡였고, 그 대답에 소년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다시 한 번 아-. 하며 한숨과 비슷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혼란스러운 것이다. 한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자신과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다고 하니까. 갑자기 머리에 과부하가 왔는지 쿠로오가 계속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자, 그것에 불만을 가진 켄마가 한마디 했다.


쿠로. 시끄러.”

잠깐, 잠깐 봐줘. 이건 진짜 눈 감고 넘어가줘야 할 문제야 켄마. 지금 나 엄청 혼란스럽거든?”

그래그래. 조금 봐줘. 삼색 군. 지금 이 녀석의 머릿 속, 카오스일테니까?”

대왕님. 지금 즐기고 있지?”

설마


물론 거짓말이다. 그리고 히나타도 오이카와의 말 따위 믿고 있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내 머릿속은 혼돈과 혼란과 공포의 카오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라는 걸 똑똑히 보여주는 쿠로오가 재미있어 어쩔 수 없으니까.


아무튼 이걸로 나도 이야기에 껴도 되는 거지?”


그 모습을 좀 더 많이 관찰하고 싶었지만 버스가 올 시간을 생각하면 더 이상 이야기를 지체할 수 없었다. 활짝 웃는 얼굴로 오이카와가 묻자, 소년은 정말 싫은 것을 보는 표정으로 으으, 하고 읆조렸다.


, 성격 안 좋다는 말 많이 듣지?”

그럴 리가. 오이카와 씨는 상냥한 사람이라고?”


방금 전 소년이 했던 것처럼 등 뒤에 후광을 띄우며 최대한 상냥한 표정과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소년의 표정이 급속도로 썩어 들어갔다.


대왕님 성격 안 좋아요. 도마뱀 헤어 씨.”

쿠로같은 타입이네.”


옆에서 히나타와 켄마가 한마디씩 던졌지만 오이카와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그저 소년을 향해 생글생글 웃어보았다.


하아아. 이거 엄청난 강적을 만났나.”

그러니까 쿠로 같은 타입이라니까?”

켄마. 너어…….”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소년이 허탈하게 웃자, 다시 한 번 켄마의 팩트 폭력이 쿠로오를 계속해서 자기에게만 공격을 날리는 그에게 화를 낼 수 없었는지, 소년은 화를 꾹꾹 눌러참으며 계속 게임을 하고 있는 켄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켄마의 시선은 여전히 비타에 가 있었다. 그 모습에 잠깐 화가 울컥 치밀어오른 소년이었지만 능숙하게 화를 참으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포기했다, 라는 것 보다는 지친 것 같은 모습이었다.


, 일단 자기소개부터 할까? 도마뱀 군. 내 이름은 오이카와 토오루. 잘 부탁해.”


그가 제대로 진정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일까, 오이카와가 먼저 자기소개를 하며 손을 내밀었다. 정식으로 소개하는 것은 켄마가 없을 때 하면 될테니 이걸로 충분하다. 상대방에게 그 의도가 전해졌기 때문일까, 소년도 고개를 끄떡이며 그의 손을 잡았다.


쿠로오 테츠야. 앞으로 많이 연락을 주고 받게 될 것 같으니, 잘 부탁한다고?”


다시 한 번 악당 같은 미소를 띄우며 소년, 쿠로오 테츠야는 방금 전까지 짓고 있었던 지친 표정을 완벽히 지우며 씨익 웃었다.

 

* * *

 

나는 알다시피. 철골에 꽂혀서 죽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알다시피라고 하셔도 전 모르거든요? 운 나쁘게 지진 났을 때 공사 중인 건물 밑에라도 계셨어요?”


활짝 웃으며 자해와 비슷한 말을 하는 쿠로오를 어처구니없으면서도 공포 스러운 것을 보는 눈으로 두 사람이 바라보자, 쿠로오는 그저 씨익 웃어보였다. 그 웃음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무마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오이카와는 아무 말도 못한 채 뚱한 표정만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현재 세 사람이 있는 곳은 처음에 쿠로오가 히나타를 데리고 가려고 했던 풀숲이었다. 이야기를 하자고 결론이 나자, 처음엔 켄마가 자리를 비켜주려고 했지만 쿠로오가 그냥 이 곳에서 이야기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당당하게 말하기엔 머리가 이상한 사람 취급당할 위험이 있다는 말에 히나타도 오이카와도 수긍하고선 그의 뒤를 따라서 이 곳에 온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지금 세 사람의 자세일까. 양쪽 무릎에 손을 올리고 쭈그려 앉거나. 아니면 쩍 벌린 채 쭈구려 앉아 있다던가. 여기에 담배만 쥐어주면 그냥 불량소년들이다. 그걸 인식한 오이카와는 한쪽 다리를 끓은 기사같은 자세로 앉았지만, 눈 앞의 두 사람이 너무나 거슬린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런 오이카와의 속내를 모른 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몰라?”

. 모르는데요. 역시 도마뱀 머리씨도 지진으로 그렇게 된 거에요?”

…………. 치비 짱.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말야. 일단 우리 호칭부터 바꿔보지 않을래? 갑자기 어감이 이상해졌다?”


계속해서 도마뱀 헤어 씨라고 하다가 게슈탈트 붕괴가 온 탓일까. 방금 전부터 히나타는 쿠로오를 도마뱀 머리 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 어감이 도마뱀의 둔부 부분을 연상시키게 만들자 쿠로오는 급하게 스톱과 호칭을 바꿔달라는 의견을 냈고, 히나타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럼 쿠로 씨로라고 아무런 반발 없이 켄마가 쿠로오를 부르는 바꾸었다. 호칭에 대해서 별 집착이없다면 자신의 것도 바꿔주면 안되려나. 입 밖으로 내뱉기엔 어째서인지 졌다고 인정하는 것 같았기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지진? 갑자기 여기서 왜 지진이 나와? 내 사인은 철골에 관통당해서 죽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혹시 그 철골이 지진 때문이었어? 그런 거야?”

, 저에게 물으셔도 전 아무것도 모르는데요?”

, 혹시 그 후에 죽은 거야?”

……?”


-이야기가 맞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오이카와 뿐만이 아니었는지 쿠로오와 히나타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렇다면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아도 상관은 없는 것이겠지. 다시 처음부터 확인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는지 쿠로오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사고 날 때 켄마 옆에 있었잖아?”

?”

그러니까, 춘고 1일차 끝나고 돌아갈 때 우연히 만나서…….”

저는 합숙 이후로 쿠로 씨를 만난 적이 없는데요?”


서로의 말에 서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전국대회에서 히나타를 만났다는 쿠로오의 주장과 합숙이후로 쿠로오를 만나지 못했다는 히나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기에 더욱 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3자가 끼어들어서 미안한데, 일단 진행을 위해서 한 가지 묻게 해줘. 도마뱀 군. ‘너는 언제 죽었어?’ ”


혼란스러운 두 사람이 이야기를 진행하게 만들면 이야기도 끝나지 못하고 버스가 올 것 같다고 생각하며 오이카와가 대화에 끼어들었지만, 쿠로오는 그런 그의 행동에 불만을 표하지 않은 채 오이카와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자신의 머릿속을 뒤지며 조심조심 입을 열었다.


“2017. 15. 아니, 4일인가? 방금 전에도 말했듯이 춘고 1일차 끝났을 때.”

…….”

……춘고?”


아마 그 쯤 일거야. 라는 부가설명을 들을 생각도 하지 못한 두 사람이 소리를 높였다. 두 사람이 죽은 날은 12. 쿠로오의 발언을 듣고 충격에 휩싸인 표정으로 오이카와와 히나타는 서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파란 얼굴에서 자신이 한 말은 그들에게 있어서 커다란 충격을 안겨줬다는 것은 알겠는데, 둘이서 거짓말이지, 그럴 리가 없다. 라는 말만 계속 중얼거리고 있으니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저기 말야. 슬슬 설명해줬으면 하는데? 계속 꿔다놓은 보릿자루 취급당한 채 시간만 보내기는 싫거든?”


살짝 공격적인 태도로 나가자 오이카와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자신들이 잘못한 것이 맞다. 하지만 그것과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것은 별개였는지 오이카와는 히나타에게 네가 설명하라는 듯 눈빛으로 지시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 대화를 하는 것은 쿠로오와 히나타여만 했다. 3자인 자신은 두 사람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니까 가만히 있는 것이 베스트였다. 굳이 쿠로오의 말을 빌리자면 꿔다놓은 보릿자루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이 옳다. 오이카와가 꽤나 배배꼬여진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채, 히나타는 그가 시키는 대로 쿠로오에게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대왕님과 전. 201712일에 죽었거든요.”

………………?”


이번엔 쿠로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어갈 차례였다. 표정에서부터 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라고 의문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것만 같은 얼굴로 히나타와 오이카와를 차례로 바라본 쿠로오는 다시 히나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일본어도 한국어도 중국어도,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계속해보라는 듯이 고개를 까닥이는 쿠로오의 말에 따르듯이 히나타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미야기 뿐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지역에서도 강한 지진이 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왕님과 저는 그 지진으로 인해 박살난 무언가 에게 깔려, 죽었어요.”


쿠로오와 달리 히나타는 아직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웃으며 말할 수 없는 모양인지 그의 표정은 말을 내뱉을수록 점점 딱딱해져갔다. 그 표정을 보면 역시 자신이 이야기하는 게 나았나, 살짝 후회가 들었지만 자신은 3자라며 오이카와는 후회를 꾹꾹 안으로 눌러 담았다. 아무리 처참한 죽음이었다 해도, 그걸 제 3자인 오이카와가 말하는 것은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쿠로오도 히나타의 상태를 눈치챘는지 무언가에 대해선 더 이상 묻지 않은 채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눈썹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지진?”

쿠로 씨도 그렇게 죽은 거 아니었나요?”

…………. 아니야. 지진의 전조 따위 없었어. 나는 갑자기 철골이 떨어져서 죽은 거였으니까. 게다가 그렇게 큰 지진이 일어났다면 봄고에도 영향이 있었겠지. . 지진은 없었어. 확실해.” 


자신이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몇 번이건 확인을 하며 쿠로오가 부정했다. 기억이란 것은 애매해서 남이 이렇게까지 밀어붙이면 그랬었던 걸까, 하고 착각하게 되는 법이 있다. 하지만 쿠로오는 애매한 기억속에서도 확실하게 아니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것은 애매해도 그것만큼은 확실해. 힘 있게 부정했지만 히나타는 그래도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싶은지 힘 없이 반론을 입에 담았다.


, 하지만

게다가 내가 죽을 때 치비 짱도 같이 있었어. 이건 확실해. 내 마지막 기억이 켄마랑 네가 나를 보며 경악하고 소리지르는 거였으니까.”


애써 웃으며 쿠로오가 결정타를 날렸다. 쿠로오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쿠로오를 처음 만나는 거지만, 그는 이런 일로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말 없이 쿠로오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으면, 옆에 앉아있던 히나타의 입에서 부들부들 떠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럼, 저는 대체 뭔데요. 아직도 죽을 때의 기억이 이렇게나 선명한데.”


그 말에 오이카와는 히나타를 부르려 했지만, 그의 얼굴에 띄워진 표정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혼란과 분노, 그리고 지금이라도 울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슬픈 감정이, 아니, 방금 오이카와가 알아챈 것보다 더 많은 좋지 않은 것들이 그의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오이카와는 그동안 히나타에게 이런 감정들은 없을 거라 멋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분하다거나, 무언가를 싫어하거나 꺼려하는 부류의 감정은 있다. 직접 보았으니 그것들에 대한 부정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주변에서 쉽게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단순명쾌한 부류의 것들일 것 이라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당연하다. 히나타도 인간이다. 0이나 1로 이루어진 로봇이 아니다. 그러니 그가 이렇게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하게 꼬인 감정을 갖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난 치비 짱의 무엇을 봐왔던 걸까.’


내심 자부하고 있었다. 자신은 이 세계에서 히나타의 유일한 동료이며, 시합에서 토스를 올려줄 수 있는 사람이며,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 그래서일까. 오만하게도 자신은 히나타 소요를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망상하고 있던 자신이 창피해지는 순간이었다.


당장 도망가고 싶다.’


쥐구멍이 있다면 지금 당장 들어가고 싶을 정도다. 자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덮으며 고뇌하기 시작하기도 전에, 쿠로오의 목소리가 오이카와의 정신 줄을 제대로 잡아주려는 듯이 낮게 울려퍼졌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신만이 아는 일 아닐까?”

쿠로 씨.”


신이라니. 판타지세계도 아니고 그런 게 있을 리가. 재미없는 농담은 집어 치우라는 듯한 표정으로 두 사람이 쿠로오를 째려보자 쿠로오는 그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치비 짱. 마음은 알겠지만 나에게 화를 내도 소용없다고 생각하는데? 알고 있잖아. 내가 한 말이 맞을지도 모르고, 내가 이유라던가 원인 같은 걸 알려줄 수 없는 존재라는 것도.”

그건, 그렇지만.”


쿠로오는 오이카와와 히나타와 똑같은 처지다. 게다가 혼자라는 점에서 오이카와와 히나타보다 데메리트를 많이 받았다. 그런 그에게 이 상황은 대체 뭐냐고 묻는다 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히나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묻지 않고서는, 따지지 않고서는 어쩔 수 없었다.


혼란스러운 건 잘 알아. 나도 혼란스럽고 말야. 하지만 우리 셋 중 이게 무슨 일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하고 싶었던 것, 목표로 하고 있던 것이 있었겠지. 그리고 겨우 손에 얻었나 싶었을 수도 있고, 스타트라인에 섰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 희망은 최악의 기억을 남기고 최악에 형태로 사라지고, 우리는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였지.”

………….”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유는 몰라. 그걸 말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 그런데 말야. 이유란 거, 꼭 필요한 걸까?”


쿠로오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오이카와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히나타도 마찬가지였는지 오이카와처럼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 두사람의 모습이 우스웠는지 푸훗, 하고 웃은 쿠로오는 다시한 번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서 크게 의문을 갖지 말자는거야. 확실히 만화나 소설 같은 공상의 이야기 같은 상황에 처해버렸지만 말야? 여기는 현실이잖아. 공상속의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세상을 구하거나 그러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적어도 이 3년간 나는 아주 평화롭게 지내왔고,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어. 그러니까, 쓸데없는 것에 신경 쓰지 말고 하지 못했던 일을 하는데 집중을 해보는 건 어떨까?”

??” 

“3??”

쿠로 씨 3년이라는 건 무슨 의미에요???”

, 역시 그쪽에만 신경 쓰는구나. 너희.”


쿠로오의 의견보다 그 쪽이 더 신경 쓰였는지, 두 사람이 동공이 열린 눈으로 쿠로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정작 쿠로오는 이 반응을 예상했는지 그저 허허 웃으며 두 사람을 자신에게서 떼어놓았다.


말 그대로. 나는 3년 전에 여길 왔다……. 고하면 조금 이상한가. 아무튼 그런 거야.”

아니아니, 그런거야. 라고 말해도 납득도 이해도 잘 안 가는데!!.”

말했잖아? 그런 거 신경 쓰지 말라고. 애초에 이 현상이 뭣 때문에 일어났는지도 모르는데 일일이 신경 쓰면 피곤하잖아. 그래서 선배로써 후배들에게 조언을 하고 싶은데 말야.”


3년 먼저 이 곳에 왔다면 확실히 선배다. 하지만 태도가 저래서일까. 오이카와는 쿠로오에게 반감 이외의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쿠로오도 그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오이카와의 반응이 귀엽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마치 너희들에게 거부권은 없다는 듯 한 태도였다.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이미 휘말려버렸고, 일은 일어나버렸어. 그리고 거기서 끝이야. 뒤에 뭔가 일어나겠지만 그건 공상의 주인공처럼 있을 수 없는 일에 휘말리는 건 아니라고 봐. 그러니까 이 일에 대한 의구심은 버리고, 하고 싶은걸 하자고. 기껏 얻은 제 2의 인생인데 나오지 않는 문제를 풀다가 연습 같은 걸 게을리 했다간 나중에 후회하는 건 너희들 아냐?”

연습은 제대로 하고 있는데? 혹시 도마뱀 군은 잡생각을 하느라 연습도 제대로 못했던 거야?”


쿠로오를 비웃으려는 듯이 오이카와가 크게 제스쳐를 취했다. 하지만 쿠로오도 오이카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편은 아니었다. 오이카와의 눈에 보이는 도발을 능글능글한 표정으로 받아치며 카운터를 걸었다.


오오. 훌륭한데. 하지만 말야, 기억이란 것은 말야. -청나게 애매한거라서 말이지? 잊겠다고 생각해도, 잊고 있었다고 생각해도 갑자기, 전조도 없이 올라오는 경우도 있단 말이지. 만약 그것이 1점을 다루는 시합에서, 자신의 손에 모든 것이 달려있을 때 갑자기 떠오른다면? 그럴 때를 대비해서 얼른 털어버리는 게 낫지 않겠어?”

………….”


반박은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저 말에 이것저것 반박할 수 있는 말이 몇가지 머릿속에서 떠올랐지만, 그것들이 오이카와의 입밖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다. 어째서인지 말들이 목구멍에 턱하고 막혀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 사실에 오이카와가 입술을 깨물자, 쿠로오는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마저 이야기를 이어갔다.


니들도 미련 하나나 두 개정도는 있을 거 아냐? 그걸 하는 데에 집중하자고.”


우시지마를 쓰러트리고 전국에 가고 싶다.

이번에야 말로 그 오렌지코트에 서고 싶다.


서로를 만났을 때에 두 사람은 자신의 소망을 밝혔다. 쿠로오가 말한 대로 예전의 미련을 여기서 풀자고, 오이카와도 히나타도 생각했기에 한 일이었다. 쿠로오의 여기서 미련을 풀자라는 말에는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히나타는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오이카와는 어쩌면 이번에도,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신에게 미움 받는 남자다. 오이카와를 미워했기에 신은 오이카와가 중학교 1학년 때 우시지마 와카토시를 그의 앞에 데려다놓았고, 그가 중학교 3학년일 때에는 카게야마 토비오가 뒤쫒게 만들었다. 분명히 전생에 무슨 잘못을 했거나, 아니면 단순히 신에게 미움받지 않았다면 이런 편성이 될 리는 없다고, 오이카와는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이유로 오이카와는 이라는 존재에 대해 불신간이 엄청났다. 물론 이 세계에서라도 우시지마를, 카게야마를 꺾어버리고 미련을 떨쳐내고 싶다고 생각은 하고 있긴 하지만, 쿠로오처럼 아무 일도 없을 거야라며 이 상황을 신의 선물처럼 생각할 수 없었다.


납득이 안가는 표정이네.”

난 너처럼 이 상황을 그다지 낙관적으로 볼 수 없어서 말야.”

흐음-? 그럼 계속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떨면서 지내겠다는 거야?”

……!”


이번에는 그냥 참을 수 없었는지 오이카와의 몸이 살짝 움직였다. 쿠로오의 멱살을 잡으려다가 관둔 듯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히나타는 그저 긴장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쿠로오는 정곡을 찔렀어?’라고 묻는 것 같은, 사람의 성질을 건들만한 미소로 오이카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탓일까. 오이카와는 자리에서 일어나 쿠로오를 노려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몇 초를 대치하고 있었을까, 누군가가 이쪽으로 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쿠로. 2분후에 버스…….”


분위기가 그리 좋지 않은 것을 감지했기 때문일까, 켄마는 하고 싶은 말을 전부 다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런 소꿉친구의 반응을 본 쿠로오는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대왕님. 우리 켄마 괴롭히지 말아줄래? 저래 뵈도 꽤나 섬세한 애거든?”

오히려 쿠로가 괴롭히고 있었잖아.”


한눈에 상황을 파악했는지 켄마가 크게 한숨을 쉬며 쿠로오를 탓했다. 오이카와는 죽일 듯이 쿠로오를 노려보고 있고, 쿠로오는 그런 눈빛조차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그저 웃고만 있고, 가운데에 낀 히나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있다. 굳이 켄마가 아니더라도 쿠로오가 오이카와에게 시비를 걸었다는 것이 쉽게 추론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소꿉친구를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혹은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본 켄마는,


아무튼 난 전했으니까


라는 한마디를 남긴 채 벤치로 돌아갔다. 그런 켄마를 사춘기가 온 아들을 바라보는 듯한 눈으로 바라본 쿠로오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아직도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는 오이카와의 어깨를 팡팡 쳤다.


, 어디까지나 내 의견이었으니 그렇게 날 세우지 말라고. 친구.”

누가 친구야.”


쿠로오의 손을 거칠게 쳐내며 오이카와가 사납게 뱉어내보았지만 쿠로오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오이카와를 바라보고 있었다.


. 친구지. 아니면 동지라는 말이 좋아? 아님 동료?”


-어느 쪽도 싫어.


그렇게 말하고 싶다는 듯한 표정으로 오이카와가 쿠로오를 바라보았지만 정작 본인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아하하하, 하고 소리 내어 웃었다.


이런 이런. 미움 받아버렸나? 곤란한데?” 

전혀 곤란해 하지 않는 주제에.”

그렇지. 솔직히 난 치비 짱이랑만 연락을 취할 수 있으면 족하니까.”


거기에 또 긍정을 하자 오이카와는 순간 다시 살의가 들끓는 느낌을 받았다. 히나타의 지인이건 표류의 선배이건 지금은 상관없었다. 계속 웃고만 있는 저 면상을 한 대 때리고 싶다. 하지만 자신은 이성인이다. 그렇게 되뇌이며 오이카와가 어떻게든 마지막 이성을 붙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면, 그 사이에 쿠로오는 자신의 연락처를 쪽지에 적어서 히나타에게 건내고 있었다.


이거 내 연락처. 어차피 또 만나겠지만일단 갖고 있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


쿠로오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히나타가 다급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저기, 쿠로씨. !!!!”

“-쿠로!!”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저 멀리서 켄마의 버스가 왔으니 얼른 튀어와라라는 의미가 함축된 단어가 들려왔다. 그의 재촉섞인 외침에 쿠로오는 지금 가, 라고 대답하더니, 히나타와 오이카와의 어깨를 팡팡 치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친구들.”

저기, 저 못 만.”

미안. 나중에 문자로 줘! 나 간다!!”


시야에 버스가 보이자 쿠로오가 급하게 정류장 쪽으로 뛰어갔다. 버스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히나타도 더 이상 쿠로오를 부르지 않았다. 그 대신 쿠로오가 쥐어준 그의 연락처를 무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중요한 이야기를 했어야했다. 살짝 후회가 섞인 옆모습에 오이카와는 방금 전까지 쿠로오에게 화가 났었다는 것을 뒤로 밀어뒀는지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할 말이라도 있었어?”

? ??? . , 괜찮아요. ”


어느새 히나타의 말투가 존댓말로 돌아가 있었지만, 여러모로 혼란스러웠으니까. 라면서 오이카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요하다면 지금 받은 연락처로 쿠로오에게 연락 할 테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겠지, 라고 자신에게 되내이며 오이카와는 벤치로 가자며 손짓했다.


으음, 실은 엄-청 신경 쓰이지만. 묻는 것도 좀 그렇지…….’


여태까지의 오이카와라면 나중에 이야기해주는 것을 기다리겠다고, 귀찮은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자기도 모르게 히나타에 대해 꽤나 관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역시 오랫동안 같이 있으면 정이 생기는구나. 이젠 될대로 되라라고 생각하며 오이카와는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대왕님. 방금 전의 이야기 어떻게 생각해요?”


벤치에 앉아서도 말 없이 연락처만 바라보던 히나타가 겨우 입을 떼었다. 그 사실에 내심 이 공기가 무겁다고 생각하던 오이카와는 이 무거운 분위기가 그제서야 깨졌구나, 라고 안도하며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확실히 그 놈의 지론은 맞아. 원인도 모르고 이유도 모르지. 생각을 포기하고 예전에 하지 못했었던.. 미련을 없애는데에 집중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겠지. 하지만 말야, 나는 당해온 게 너무 많은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낙천적인 생각은 도저히 못하겠더라고. 오이카와 씨가 예전에 좀 많이 착하게 살았다고 해도 이렇게 나에게 유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나? 그런고로 좀 많이 신중해지자는 것이 오이카와 씨의 의견.”

헤에. 대왕님. 많이 꼬이셨네요.”

신중한 거라고 생각해줄래? 치비 짱?”


히나타 왈 마왕 미소를 지으며 오이카와가 빵실 웃었다. 그 이상 무슨 말을 했다가는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 라고 주장하는 듯 한 표정이었다. 그 기백에 밀린 탓 인지 히나타는 버릇처럼 죄송합니다, 라고 외쳤고, 오이카와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알았다면 됐어, 라고 팔짱을 끼며 피식 웃었다.


그러는 치비 짱은 어떤데?”

?”방금 전의 이야기, 어떻게 생각해?”

.저는-. , 버스.” 


히나타가 입을 여는 것과 동시에 저 멀리서 두 사람이 탈 버스가 보였다. 30초 이내에 도착할 것만 같은 거리라는 것을 깨닫자 두 사람은 허둥지둥 짐을 챙겨 표지판 옆에 섰다. 타이밍이 좋은 것인지, 나쁜것인지. 오이카와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버스 문이 열리는 것을 기다리고 있으면, 뒤에 서 있던 히나타가 무어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오이카와의 귓가에 닿았다.


뭐어, 저는 어느 쪽이던 상관없지만요.”

?”


하지만 바람소리와 버스의 엔진소리 때문일까, 그 목소리는 제대로 오이카와의 귀에 닿지 못했다. 얼굴을 찌푸리며 다시 한 번 말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히나타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오이카와보다 먼저 버스에 올라탔다. 그 뒷모습을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오이카와였지만, 곧 운전기사의 재촉에 정신을 차리고는 히나타를 따라 버스에 올라탔다.


, 나중에 물어보면 되겠지.’


멀미하기 전에 얼른 자버리라며 갖고 있던 안대를 씌워주며 오이카와는 문제를 나중으로 돌렸다. 어차피 기회는 앞으로도 많다.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며 오이카와는 히나타의 옆에 봉지와 물병을 두고선 자신도 의자에 기대 눈을 감았다.

 

Posted by 카멜리스
2017. 4. 9. 01:11

 

4.

 

히나타의 집은 조센지에서 버스로 약 40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매일매일 아침 연습을 시작할 때 즈음 아슬아슬하게 도착하는 걸 보아하니 좀 더 먼 곳에 있는 줄 알았다. 무심코 그렇게 중얼거리자 돌아온 대답은 매일매일 자전거 타고 통학하니까요였다. 그 대답을 들었을 때 오이카와는 한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분명히 그는 예전에 집에서 가까운 학교를 골랐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멀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치비 짱의 집은 시골에 있어요?”


무심코 놀리듯이 그렇게 말했을 때 돌아온 부정의 사자후는 아직도 트라우마다. 대체 뭘 먹었기에 저렇게 목청이 좋은 걸까. 그의 집에 비결이 있을 것 같았지만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근처엔 초등학교와 중학교만 있고……. 고등학교가 하나 있긴 하지만 거기에는 배구부가 없어서 제외. 그나마 가까운 곳 중에서 배구부가 있는 곳으로 온 것뿐이에요!”

정말 불모지에서 자랐구나. 치비 짱.”


배구부가 없는 학교가 주위에 있다니. 동정하는 눈빛으로 히나타를 바라보자 히나타는 얼굴을 한껏 부풀리고선 팔짱을 꼈다. 나는 지금 화가 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상태로 놔두면 나중에 반드시 성가셔진다. 귀찮다고 생각하며 그를 버스 안에서 달래고 있는 사이에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리고 3분정도 걷자, 여기저기 주택이 세워져 있는 골목길이 나왔다. 거기서 왼쪽으로 꺾어서 좀 더 걷자 히나타가 도착했어요! 라며 주택 한 곳의 대문을 열었다.

히나타의 집은 평범 그 자체였다. 바깥 구조도 평범, 집안 인테리어도 평범했다. 상냥한 부모님과 귀여운 여동생과 살고 있는 집. 부모님과도, 여동생과도 사이가 좋아서 그럴까. 히나타 가의 분위기는 따뜻하고, 안도감을 느꼈다. 물론 오이카와의 집도 따뜻했지만 그 곳에서는 안도감을 느낄 수 없었다.


원인은. 알고 있지. . 잘 알고 있어.’


그래. 알고 있다. 원인은 오이카와의 방의 창문 중 하나로 볼 수 있는 옆집의 소꿉친구의 방 창문 때문이었다. 그 창문은 마치 오이카와를 거부하는 것처럼 굳게 닫혀있고, 안을 볼 수 없게 두꺼운 커튼이 닫혀있었다. 그것이 왠지 그가 지금의 오이카와 토오루를 거부하는 것 같아서, 오이카와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대왕님! 대왕님 침대에서 주무실래요? 아님 밑에서?”

일단 내가 손님이니까 아래에서 자야지. ……, 그리고 치비 짱. 우리 존댓말 어떻게든 하자. 진짜.”


방금 전 가족들에게 이상한 눈빛을 받았다는 것을 떠올린 오이카와는 절박한 얼굴로 두 손으로 히나타의 어깨를 잡았다. 집에서 오고부터 계속 오이카와에게 존댓말을 쓰는 히나타를 가족들이 의아하게 여긴 것이다. 그 때는 벌칙게임이에요, 라고 다행히 얼버무릴 수 있었지만 앞으로 이 상태는 너무나도 곤란하다.


그동안 선배들이 지적하지 않고 넘어가서 잊고 있었어…….”

저도, 아니, 나도.”


왜 다들 지적을 안 한 걸까. 선배들은 재미있다고 그냥 넘어갔다고 쳐도, 아나바라는 성격상 분명히 지적을 하고 남았을 텐데 왜 아무말도 하지 않은 걸까. 계속해서 의문점이 솟아나는 어지러운 머리를 정리하고 있으면, 옆에 앉아있던 히나타가 필사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 아니! 미안! 잊고 있었어!!”

아니아니. 나도 지적 안했으니까 나에게도 뭐라 할 자격은 없지만. 아무튼 앞으로 이것저것 서로 신경 쓰자. 그 수 밖에 없어.”


너무 편했던 탓일까. ‘지금에 안주해버렸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고, 하물며 얼버무릴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지금까지 아무 일 없었던 것은 단순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

………….”


무거운 침묵이 히나타의 방을 지배했다. 그 침묵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오이카와가 히나타를 힐끗 보면, 히나타는 반성의 기색을 내보이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 지금까지의 자신을 되돌아보는 걸까. 가끔 얼굴이 새파래지거나 침울해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지금 상황을 잊은 채 그 모습을 재미있게 바라보던 오이카와는 곧 제정신을 차리고는 헛기침을 시도했다.


, 크흐흐흠. 잘까. 내일도 첫 차 타야하고.”

, ! 가 아니라 응!!”


어색한 대답과 함께 두 사람은 주섬주섬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오이카와가 제대로 이불을 덮었다는 걸 확인한 히나타는 리모콘으로 전등을 껐고, 한 순간에 방은 암흑으로 뒤덮였다.

내일부터는 새벽부터 밤까지 하드한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얼른 자지 않으면 곤란한 것은 오이카와인데 머릿속도 눈도 말똥말똥한 상태다. 남의 집에 와서 그런 걸까. 원인은 어찌되었던 얼른 자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채 자려는 노력을 해보았지만 성과는 그닥 좋지 않았다.


………대왕님. 자요?”


이미 잠들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일까. 침대 위에 죽은 듯이 누워있던 히나타에게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오이카와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 탓일까. 쿵쾅쿵쾅 뛰는 자신의 심장께를 오른손으로 꾸욱 누르며 오이카와는 애써 괜찮은 척 싱긋 웃었다.


으응? 왜 그래, 치비 짱?”

혹시 깨웠어요?”

치비 짱. 말투.”

, , 내가 깨웠어?” 

아니! 오히려 내가 깨운 거 아냐? , ……. 계속 뒤척였고?”


옆에서 자는 사람을 신경 쓰이게 만들 만큼 자신이 뒤척이고 있었던 건 자각하고 있다. 미안, 이라고 짧게 사과하면 히나타가 당황한 듯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 보였다. 어느 정도 어둠에 눈이 익숙해진 탓일까, 지금 히나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대강 느낄 수 있었다. 표정이 보고 싶지만 지금은 당황하는 모습만으로 만족하자고 생각하며 그 모습을 관찰하고 있으면, 히나타의 표정이 순간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치비 짱?” 


순간 불안해졌기 때문일까. 오이카와가 조심조심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래도 대답이 없어 내심 불안해하고 있으면, 히나타가 고개를 들었다.


대왕님.”

, ?” 


오랫동안 다물고 있던 입에서 나온 것은 의외로 진지한 목소리였기 때문일까, 오이카와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에 힘을 주었다. 지금이 밤이고, 불빛이 하나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빛이 있었다면 긴장했다는 얼굴이 히나타에게 전부 드러났을 테니 말이다. 아직도 히나타를 후배라고 생각해서 인지, 다른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오이카와는 그의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싶었다.


저기, 물어봐도 되요? 왜 집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지.”


이번엔 오이카와가 입을 닫을 차례였다. 답지 않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나 했더니, ‘터부를 건드려도 되는지 고민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방금 전의 침묵도 이해가 간다. 예전에 오이카와가 히나타의 터부를 건드렸을 때의 일을 떠올리고, 혹시 자신도 똑같은 짓을 하지 않을 까 고민하고 있는 거겠지.

이 문제는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걸 두 사람을 알고 있다. 그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고 있다. 그렇기에 오이카와는 지금 히나타가 내뱉은 질문이 가볍게 내뱉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언제나처럼 장난스럽게 비밀~.’이라고 어영부영 넘어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말을 내뱉기까지 고민하고 고민했을 테니까.


………왜 묻는 건데?” 


그래서 장난스럽게 넘기지 않고 제대로 마주하기로 했다. 한가 지 오산이 있었다면, 자신도 모르게 낮은 소리가 나갔다는 것이었다. 그 목소리에 히나타는 물론이고, 오이카와의 표정에도 당혹감이 서렸다.


, . 치비짱-? 오이카와 씨는 화난 게 아니에요! 그냥 단순히 호기심에 물어본 걸까?”

………….”

. 망했다.’


뒤늦게 밝은 목소리로 변명을 해보았지만 여전히 무거운 침묵은 계속되고 있었다.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이런 문제가 되면 난 맨날 치비 짱에게 실수만 하고 있다 말이지.’


반성은 하고 있고, 이후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이것저것 어떻게 할지 생각은 하고 있지만 결과는 계속 이 모양 이 꼴이다. 왜 평소처럼 받아칠 수 없는 걸까. 자신의 한심함이 짜증났는지 크게 한숨을 내쉰 오이카와는 각오를 다지듯이 주먹을 꽉 쥐었다.


“-이와 짱이 무서워서야.”


그의 대답에 베게에 얼굴을 박고 있던 히나타가 고개를 들었다. 히나타가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을 확인한 오이카와는 천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여기에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이와 짱이랑 한 번 만난 적이 있어. ‘오이카와 토오루가 배구를 관둔 탓인지 두 사람의 사이는 서먹한 상태였지만.”

 

[ 이와짱. 나 배구 다시 시작했어!! ]

 

그 골을 메우고 싶은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만나 그렇게 외쳤다. 오이카와에게 있어서 이와이즈미 하지메라는 존재는 소꿉친구라는 것으로 설명하기 부족한 존재였다. 어렸을 적부터 함께 배구를 하고, 같은 팀에서 에이스와 세터로써 고등학교 마지막 시합 때까지 함께 울고 웃고 떠들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을 그 절망의 바다에서 끌어올려준 구원자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일까.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놓고 싶지 않았다. 여태까지 함께 싸워왔던 전우를, 자신을 구원해준 존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눈앞에 있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이와이즈미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와이즈미 하지메라는 존재와 서먹한 관계로 있고 싶지 않다는 것이 본심이었다.

두 사람이 서먹해진 이유는 틀림없이 배구겠지. 그러니 배구를 시작하면 오이카와는 서로가 잘 알고 있는 관계로 되돌아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주제에 말이다.

 

[-어차피 지금뿐이잖아. 기억을 되찾으면 또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텐데.]

[-뭐가 아니야. 아닐 거란 보장이 어디 있어. 나는 이미 너에게 실망했는데.]

[-돌아가. 내 비위 맞추려고 배구 할 생각도 하지 말고. ]


그러니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도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이카와는 이 세계와 제대로 마주하려 들지 않았다. 머리로는 다른 세계다. 라고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마음속 어디서 엔가에는 자신이 원래 있던 세계에 대입했고, 언젠가는 다들 오이카와가 알던 언제나처럼 대해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오이카와의 오만에 대한 질타였다.

너의 장소는 여기에 없다.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밀어내는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는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창피했다. 그제서야 현실을 깨달아버렸다. 그리고 증오했다. ‘오이카와 토오루. 자신의 구원자를 실망시키게 만든 그가 , 있을 곳을 제 손으로 무너트린 그가 너무나도 미웠다. 그와 동시에 오이카와는 이제 두 번 다시 이와이즈미를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만나는 것이 무서워졌다. 또 다시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는 것이 두려웠다. 배구를 사랑하는 오이카와 토오루를 그의 입으로 부정당하는 것을 듣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래서 가고 싶지 않아. 가면 이와 짱을 만날 테니까.”


물론 오이카와는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았다. 간단히 그 곳에서 이와이즈미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만을 간단히 이야기 한 오이카와는 이걸로 끝! 이라며 이야기를 완결시켰다. 뭐라고 하면 좋을지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내가 왜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을까. 강한 후회의 감정을 막고 싶었는지 오이카와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히나타는 이해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해는 바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가라앉은 기분을 외면하고 있으면,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할 만큼 계속 따라 붙는 강한 후회를 떨쳐내기 위해 이를 악 물고 있었다.


대왕님!!!”

우와아아악???”


하지만 그럴 겨를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갑자기 뒤집어쓰고 있던 이불이 끌어내려지더니, 방금 전 까지 새카맣게 물들어 있던 시야가 조금 밝아졌다. 그리고 보인 것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히나타의 얼굴. 예상하지도 못했던 상황에 어리둥절해 있는 오이카와를 바라보며 히나타는 입을 열었다.


만나러가요! 이와이즈미 씨!”

…………?”


목적어는 있지만 누가’ ‘어째서’ ‘라는 문장이 빠져있었기 때문일까. 오이카와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몇 초정도가 지나야 그것이 이와이즈미를 만나러가자라는 뜻이라는 것을 이해한 오이카와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이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은 것일까. 분노가 뱃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각을 확하고 올라왔지만, 참아야한다고 생각하며 억지로 그 감각을 억눌렀다. 여기서 큰소리를 치며 화를 낼 수는 없다. 그렇게 자신에게 몇 번이나 되뇌이며 오이카와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치비 짱. 치비 짱. 내 이야기 제대로 들었어? 이와 짱은 말야.”

하지만 그 때 제대로 이야기 해본 건 아니잖아요? 저는 그렇게 들렸는데.”

………….”


히나타의 지적에 오이카와는 무심코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그때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말에 반박하지 못한채 도망쳐버렸다.

 

-뭐가 아니야. 아닐 거란 보장이 어디 있어. 나는 이미 너에게 실망했는데.

-돌아가. 내 비위 맞추려고 배구 할 생각도 하지 말고.

 

그 말을 들은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에게 맞설 기력을 전부 잃어버렸다. 그는 오이카와가 배구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기에, 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면서 배구를 계속 해봤자 나는 너에게 실망한 채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먼저 벽을 만들었다. 그리고 오이카와는 그 벽을 본 순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말았다. 자신이 오이카와 토오루가 아닌 이상, 이와이즈미와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아니, 처음부터 오이카와가 알던 원래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그래서 도망쳐버렸다. 그리고 지금도 그와 마주하는 것이 무서워서 계속 도망치고 있었다.


…………만나서 뭘 어쩌라고.”

만나서 제대로 이야기를 해야죠.”


계속해서 아픈 곳을 찔려오는 히나타를 원망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오이카와가 중얼거렸다. 누워있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히나타의 눈동자가 어둠속에서 빛나는 것 같다. 저 시선이 무섭다고 생각하면서도, 시선을 피할 수 없다. 마치 뱀 앞에 있는 개구리가 된 것 같은 심정이다. 무심코 침을 꿀꺽 삼킨 오이카와는 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어떻게든 말을 쥐어짜냈다.


무슨 이야기를? 실은 난 네가 알고 있는 오이카와 토오루가 아니야, 라는 이야기라도 하라고?”


지금 옳은 것은 히나타고, 틀린 것은 자신이다. 그런 것 정도는 구별할 수 있는 이성은 갖고 있었지만, 그걸 인정하면 히나타에게 지는 것 같아 오이카와는 억지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치비 짱. 그들은 나를 오이카와 토오루라고 알고 있지만, 실상 나는 그 녀석이 아냐. 나는 이 세계에 있어서 이방인이고, 표류자인데. 있을 곳이 없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뭘 더 어떻게 하겠어??”

그렇다고 지금 이대로 있을거에요?”


히나타의 말에 오이카와는 다시 한 번 입을 닫았다. 평소에는 나는 생각이 없다, 머리가 비어있다는 듯이 행동하는 주제에 중요할 때엔 본질을 찔러온다. 언젠가 보았던 시선이, 눈동자가 자신을 보고 있다.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게 확신 할 수 있었다.


이대로 있을거에요? 그래도 괜찮아요? 대왕님?”

……괜찮을 리가 없잖아!”


그렇다. 괜찮을 리가 없다. 괜찮지 않다. 이대로 이와이즈미와 평생 타인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하지만, 전부 끝나버렸다고? 치비 짱? 전부 늦어버렸어.”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 토오루에게 실망했고, 오이카와는 그런 이와이즈미에게서 도망쳐버렸다. 그걸로 전부 끝난 것이다. 그것이 마지막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오이카와는 멍청하게 그 기회를 날려버렸다.

싫다. 그런 건 싫다. 이와이즈미와 그렇게 될 바에는 차라리 평생 우시지마에게 이기지 못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오이카와에게 있어선 이와이즈미 하지메라는 존재는 없어서 안 될 존재였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나아가 보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아는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 세계에서 어떻게든 혼자서 나아가보려고 했다. 아무도 없는 심해 속에 표류되었다는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출발이라고 생각하며 어떻게든 버티고, 아픔을 묻고, 모르는 척하면서 평소의 오이카와 하지메를 연기했다. 또 다시 물로 인해 숨통이 막히는 것 같은 나날이 계속되었지만, 이건 어리석은 자신에게 주어진 대가라며 오이카와는 힘겹게 심해 속에서 버텼다.


그런 거, 누가 정했어요?”

……?”


히나타의 말에 오이카와가 덜미를 잡힌 사람처럼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오이카와를 바라보며 히나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이건 시합이 아니잖아요. 시합 끝, 게임오버라는 개념은 없어요. 대왕님.” 


전혀 생각도 해보지 못한 발상에 순간 오이카와의 눈동자가 작아졌다. 하지만 쓸데없는 오기가 생겨서일까. 그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이유를 만들고 싶어서였을까. 오이카와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반론을 시작했다.


“이, 이와 짱은 나보고 돌아가라고 했어. 그건 더 이상 네 얼굴도 보기 싫다는 거잖아.”

하지만 두 번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지마, 라는 말은 안했잖아요.”

그게……! 그거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힐 뻔했지만, 다행히 오이카와의 입에서 큰 소리가 나오는 일은 없었다. 순간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목소리 용량에 안심한 오이카와는 작은 목소리로 반론을 시도했다.

히나타의 말은 억지로 들리지만, 실은 정론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에게 두 번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거나, 그 얼굴 보이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인정해버리면, 이와이즈미에게는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자신이 먼저 거리를 둔 것 같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오이카와는 필사적으로 자신이 이와이즈미를 만나선 안 될 이유를 대기 시작했다.


, 이와 짱은 나와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아 하는데, 제대로 이야기가 될 리가…….”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든 이와이즈미씨를 잡아 놓을게요!”


이야기를 들어줄 때까지 절대 그 자리에서 못 움직이게 할 테니 안심하세요. 맡겨만 달라는 듯이 히나타가 두 주먹을 꽉 쥐는 제스쳐를 취했다. 어째서일까.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이와이즈미에게 매달리는 히나타가 떠올랐다. 분명히 시선을 확 끌겠지. 맡겨도 되는 걸까. 라고 생각하며 오이카와는 또 다시 반론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만나서, 어쩌라고. 뭘 말하는 거야?” 

대왕님의 본심이요.” 


히나타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오이카와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오이카와 토오루 건, 대왕님이건, 일단 지금은 그 문제는 넘어가고, 현재 대왕님이 무얼 생각하는지, 뭘 하고 싶은 지 말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들어주지 않는다면?” 


아직도 자신을 거부하며 발걸음을 돌리는 이와이즈미의 모습이 뇌리에 남아있다. 오이카와를 거부하겠다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그에게 이야기를 한 들 그는 들어줄까. 자신의 본심은 닿을 수 있을까. 불안한 듯 오이카와는 자신의 왼쪽 가슴팍을 꽉 잡았다.


그럼 선언을 하죠!”

……선언?”

언젠가, 제가 카게야마 녀석에게 했던 것처럼-.”


히나타의 표정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를 듣고 알 수 있었다. 그 때의 일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아직 그도 전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그 자리에서 외치고 도망치죠 뭐. 제가 잡고 있을 테니 싫어도 들을 것 아니에요.”


오이카와의 머릿속이 한 순간 정지했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바보 같은 일이다, 쓸데없다, 라는 말이 떠다니고 있었지만 정작 오이카와의 입에서 나온 것은 허탈한 웃음소리뿐이었다.


………………하하. 뭐야 그건. 엉망진창이잖아.”

그래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 안 해요?” 


어둠속에서 히나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웃음소리에, 그가 내놓은 해답에 오이카와는 한동안 벙찐 얼굴로 히카타를 바라보더니, 곧 히나타의 웃음이 전염되기라도 했는지 그를 따라 작게 웃기 시작했다. 어처구니없었다. 하지만 왜일까. 그 방법도 괜찮다고 생각해버렸다.


그러게. 확실히 좋은 방법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이와이즈미의 말은 일방적이었다. 그러니 이쪽도 일방적으로 공격해줘도 상관없겠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과거의 자신이 바보같아졌지만, 그래도 지금 안 것이 어디냐고 생각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이와짱이 도망가지 못하게 막아준다는 건……. 치비짱 도 같이 와주겠다는 거?”

그럼요!”


두 주먹을 꽉 주며 결의에 찬 얼굴의 히나타를 본 순간 그를 놀리고 싶어졌기 때문일까. 저 자신만만한 얼굴을 당황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이라고 생각하며 오이카와는 미소를 띄웠다. 히나타가 보면 히익, 마왕의 미소다. 라고 할 정도로 불온한 미소였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위가 어두운 탓에 히나타가 그 미소를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럼 나랑 같이 이와 짱에게 혼나줄 거지?”

“-.”


전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일까. 히나타의 움직임이 한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예상대로의 모습에 오이카와는 재미있어졌는지 일명 마왕미소를 짙게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뭐야, 치비 짱. 나한테는 이와 짱을 만나러가라, 라면서 등을 떠밀어 준 주제에 이젠 나몰라라 하는 거야? 이젠 나를 내버려 두는 거?” 

, 같이 혼나드릴읍읍!”


오이카와의 풀죽은 연기가 통했기 때문일까. 히나타가 각오했다는 듯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그 목소리가 컸기 때문일까. 오이카가 이런 미친, 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히나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급히 그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히나타도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렸는지 오이카와의 행동에 큰 저항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초 정도 있었을까. 다행히 옆방에서 자고 있는 나츠가 깨어난 것 같지는 않았다. 그걸 다행으로 여긴 두 사람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치비 짱? 조용히 할 거지?”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아는 주제에 모든 잘못은 히나타에게 있다는 듯이 물으면, 히나타는 그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오이카와가 손을 떼는 와중에도 히나타의 입에서 대왕님이 잘못한 거잖아요. 라는 질타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바보인건지, 아니면 도량이 넓은건지. 순간 생각한 의문에 그냥 이건 바보다. 라고 결론을 내리며 오이카와는 입을 열었다.


그럼 휴일날 가는 걸로?”


골든 위크 중 3일은 훈련, 4일은 각자 집에 돌아가서 쉬라고 들었다. 아마도 히나타는 이 때 즘 이와이즈미를 만나러가자고 주장한 것이겠지. 오이카와의 추측이 맞다는 듯이 히나타가 고개를 끄떡이자, 오이카와는 크게 한숨을 쉬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알았어. 그 날 돼서 도망치기는 없기야.”


-도망치고 싶은 건 너면서.

입 밖으로 내뱉은 자신의 말에 오이카와는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비난의 말을 내뱉었다. 제대로 그와 마주하자고 결심한 지금도 실은 도망치고 싶다. 그 마음을 숨기기 위해 히나타에게 짖굳은 말을 하고 있는 자신에게 혐오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걱정 마세요! 절대 도망 안갈테니까요!”


자신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두드리는 히나타를 보며 오이카와는 쓴 웃음을 지었다. 알고 있다. 오히려 히나타는 가기 싫어하는 오이카와를 끌고 갈 아이지, 절대 당일에 도망칠 아이가 아니었다. 알면서도 묻는 건 어디까지나 심술이고, 자신에 대한 혐오감 때문이다. 하지만 히나타는 오이카와의 마음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기쁘다는 감정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럼 잘까. 치비 짱. 시간도 늦었어.” 


히나타의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미묘한 기분을 껴안은 채 오이카와는 안녕히 주무세요, 라고 말하는 히나타에게 가벼운 대답을 해주고선 다시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갔다.

 

* * *

 

그 날, 꿈을 꾸었다.

여전히 오이카와는 심해 속에 가라앉아있었고, 숨을 쉬는 것도 힘들었는지 팔다리를 필사적으로 휘젓고 있었다. 오이카와 본인도 그 모습이 꼴사납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살고 싶었기에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움직였다. 하지만 이윽코 힘이 다 빠졌는지 그의 팔다리가 축하고 늘어졌다.

-아아, 이젠 지쳤어.

-……포기할까.

-숨이 막히는 건 익숙하잖아. 괜찮아. 또 다시 익숙해질 수 있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을 끌어올려주었던 구세주는 이젠 없다. 그러니 여기서부턴 자신 혼자서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버텨보았지만 이젠 한계였다.

힘낼 수가 없다. 수면 밖으로 올라갈 수 없다. 그러니 포기하고 숨이 막힌 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누군가가 오이카와의 뒷덜미를 잡았다. 그게 누구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오이카와의 몸이 서서히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무슨 꿈을 꿨더라.”


꿈은 거기서 끝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꿈의 내용은 일어나자마자 전부 잊어버렸다. 꿈을 꿨다는 자각은 있지만, 그것이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 왠지 껄끄러웠다.


뭐 어때. 그냥 꿈이고.’


만약에 악몽을 꿨다면 기분이 찝찝했을 텐데, 그런 기분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상쾌해졌다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서, 오이카와는 더 이상 생각을 관둔 채 이불에서 나왔다.

Posted by 카멜리스
2017. 3. 29. 01:15

1.

 

케이지 2223. 신선조의 총장 산난 케이스케 사망.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외적인 이야기로, 실제로 산난 케이스케는 살아있었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아니게 되었지만.

그 광경을, 과정을, 원인을, 치즈루는 보았다. 보고야 말았다. 보아서는 안 될 장면이었지만, 불행의 여신은 치즈루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만든 붉은 색 액체는 산난의 몸을 침식시켜 고통스러워하게 만들고, 그의 머리를 새하얗게 물들어버리고, 총명했던 갈색눈동자를 이형과 같은 붉은 색의 눈동자로 만들어버리고, 그의 이성을 집어삼켰다. 피를 달라, 목이 마르다. 애원하듯이, 갈망하듯이 산난은 계속 중얼거리며 치즈루의 목을 졸랐다.

오키타가 아니면 분명히 그녀는 죽었다. 다행히 그의 난입덕분에 목숨은 건졌고, 산난도 이성을 되찾아 나찰조를 이끌게 되었다. 신선조의 비밀을 알게 된 치즈루는 원래라면 처분당해야 했지만, 약을 만든 코우도의 딸이며, 그를 찾는 데에 필요한 존재니 굳이 죽일 필요는 없다라는 의견이 과반수를 이뤄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가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산난이 죽은 것으로 처리되고, 거점이 니시혼간지로 옮겨는 둥 여러 가지가 눈 깜빡할 사이에 변해 한동안은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지만, 아직 치즈루는 그 날의 공포를 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떨쳐내려고 해도 처음 신선조에 수감되었을 때 들러붙었던 공포처럼, 그 광경은, 그 고통은 소리 없이 찾아와 치즈루를 괴롭히고 있었다.

변한 것은 또 한 가지가 있었다. 야마자키가 치즈루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여태까지 신선조의 비밀을 겉면만 알고 있던 치즈루가 비밀 그 자체를 알아버린 것이다. 경계하지 않을 수 없겠지.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듯이 주장하고 있었다.



[ 나는 감찰반으로써 당신을 신용하지 않아. 그것이 나에게 내려진 임무다. ]

[게다가 나는 감찰반이라는 입장에서 유키무라 군을 의심하지 않으면 안 돼. 그래도 네 처우가 좋아지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자신에게 되뇌이고 있었지만 치즈루는 자만하고 있었다. 이 나날이 계속될 것이라고, 마음속 어디선가 에서는 그게 진실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니 이 것은 과거에 그렇게 생각했던 자신에 대한 벌이다. 언제나 선을 그어 행동하지 않았던 대가가 이렇게 돌아온 것이다. -라고, 그렇게 자신에게 되뇌어보았지만 그녀의 안에서 슬프다는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말을 걸면 대답해주고, 저쪽에서 치즈루에게 말을 걸어주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지만, 치즈루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쓸쓸하다고만 생각했다.



* * *

 


뭐야. 너도 와 있었냐. 여긴 애들 놀이터가 아니라고


싫은 것을 보았다는 듯이 신선조 9번조대장, 미키 사부로는 치즈루의 얼굴을 보자 대놓고 얼굴을 찌푸렸다.

현재 그와 치즈루가 있는 곳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절때부터 쇼군이 상경할 때 숙소로 만들어진 니죠성의 문 앞이었다. 지금 이 곳은 10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메모치가 체재하고 있고, 신선조는 그의 경호를 위해 출동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이 임무에서 치즈루가 맡은 것은 전령의 역할이었다. 분명히 모두 앞에서 그렇게 이야기해줬는데 미키는 지금 알았다는 듯 한 태도로 치즈루를 깔보기 시작했다.


저도 놀러온 건 아니에요. 확실히 전령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 그래.”


전혀 흥미 없다는 표정으로 미키가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미키 사부로. 그는 이토가 신선조로 왔을 때 함께 온 이토파의 인물 중 한명이자, 이토의 친동생이기도 했다. 신선조에는 그저 형이 들어가니까 나도 들어 간다라는 느낌으로 들어온지라, 신선조의 사람들을 깔보는 경향도 많았다. 물론 치즈루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다른 신선조의 사람들보다 더욱더 깔본다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일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첫 만남 때 혹시 너, 간부전용의 유녀냐? 이 곳 남자들은 정말 취미가 나쁘군.’라고 막말을 던졌을 정도니 말이다. 물론 간부들은 그 자리에서 치즈루는 남자고, 아직 어려서 여자같이 보일뿐이다라고 치즈루를 변호해주고 미키를 비난했지만, 미키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한귀로 흘려들을 뿐이었다. 이 후에 이토에게 무어라 들었는지 사과를 해왔지만 형이 시켜서 한 것이 티가 팍팍 나고 있었다. 그 후로 치즈루에게 시비를 거는 일은 없었지만, 치즈루를 깔보는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치즈루가 미키를 꺼려하는 것도 당연한 결과였다.


검도 제대로 차지 않은 꼬맹이가 쇼군의 경호에 끼어들다니, 정말이지 그 녀석들도 너에게 참 관대하네.”

……확실히 저는 무사도 아닌, 단순한 시동이지만, 그래도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어요. 전령을 말해도 될까요?”


자신의 허릿춤에 있는 소태도를 보고 비웃는 미키를 똑바로 바라보며 치즈루가 입을 열었다. 무사라면 보통 협차, 소도, 또는 단도를 타도와 함께 쌍을 이뤄 차고 다니는데, 이것은 사무라이의 개인적인 명예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 명예를 상징하는 것이 없는 치즈루는 이토가 데려온 사람들에게 계속 무시당하고 있었다. 다른 간부들이 이 아이는 사무라이가 아니라 잠시 협력관계에 있는 아이다라고 대변은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치즈루에 대한 험담이 멎는 일은 없었다. 콘도가 나서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지만, 그랬다간 치즈루에 대해서 파헤치는 놈들이 많아질 뿐이다, 라고 히지카타가 말렸기에 그가 나서는 일은 없었다. 결국 누가 괴롭히면 말해. 라는 식으로 끝맺었긴 했지만, 치즈루는 어떻게든 자신의 선에서 끝내고 싶어서 계속 참고 있었다.


“-말해 봐.”


치즈루의 말에 미키는 더 이상 비꼬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그리고 방금 전 까지 치즈루를 깔보고 있던 눈빛마져 사라져, 한 순간 치즈루는 당황했지만 되도록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시마다에게 들었던 전령을 입에 담았다.


국장은 성내에서 인사를 하고 있는 중이며, 다른 분들은 계속해서 경호를 부탁드립니다.”

알겠다. 전달은 확실히 들었다.”

…….”


비아냥거리지 않고 제대로 전달을 들었다고 말한 것이 의외였기 때문일까, 어떻게든 유지하고 있었던 포커페이스를 무너트린 치즈루가 얼빠진 소리를 내며 미키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소리가 잘 안 들린다라던가 아무리 말해도 잘 못알아 듣겠는데라고 시비를 걸거나 괴롭힐 줄 알았다. 그 마음이 표정으로 드러난 탓일까, 미키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말야. 확실히 너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건 일이라고? 물론 너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워 일을 망치자는 녀석이 있었긴 했지만 그렇게 된다면 형님에게 민폐가 되니까 안하는 거라고? 고마워하지 못할망정 그 표정은 뭐야.”

, .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일단 안심해도 되는 것이겠지. 얼떨떨한 심정으로 감사의 인사를 해보았지만 미키는 그저 코웃음만 칠 뿐, 치즈루의 감사에 대해 일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전령은 야마자키가 하는 거 아냐? 녀석은 뭐하고 너 따위가 대신하고 있냐?”


역시 제대로 이야기를 들은 게 아니었나보다. 미키가 치즈루를 비하하는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미키의 가시 돋힌 말에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야마자키씨도 성벽의 경비를 맡고 계세요. 여러분처럼 한곳에 계신 게 아니라 이곳 저곳 왔다 갔다 하고 계시지만요.”

불쌍하네. 그 녀석도. 무사도 아닌 누구누구가 일감을 빼앗아서 밤새 쉬지도 못하고 왔다리 갔다리 하고 있으니 말야.”

그건……!”

- 몰라. 너 전령이잖아. 여기서 농땡이 피우고 있어도 되냐. 얼른 가버려.”


마치 벌레를 쫒아버리는 듯 한 제스쳐를 취하며 미키가 치즈루에게 툭 내뱉었다. 그런 그에게 치즈루는 더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확실히 지금의 자신은 일을 하는 중이었고, 미키와 잡담을 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미키가 마지막으로 전령을 전항 대상이었다는 것 정도였을 뿐일까. 살짝 분하다는 표정을 어떻게든 숨긴 치즈루는 허리를 숙이며 실례했습니다. 라고 인사를 하고선 원래 위치로 발걸음을 옮겼다.


…………실수, 했을지도.’


옛날이라면 미키의 비아냥거림에도 반박은 거녕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그 자리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방금은 너 따위가 대신하고 있냐?’라는 말에 울컥해버렸다.

언제부터일까. 선을 넘어오기 시작한 것은. 언제나 남을 대할 때는 선을 긋고, 그 선 바깥의 인물로서, 방관자로써 지내왔다. 언제든지 사라지기 쉽도록,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채이지 않도록. 그렇게 살아가고, 죽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왜 자신은 선을 넘어버린 것일까. 왜 욕심을 내게 된걸까. 생각하면 산난이 나찰로 변하기 전에 산난을 위해 을 조사하자고 생각했다. 예전이라면 거기까지 생각은 하겠지만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치즈루는 움직였다. 그 날의 자신에게 의문을 가지며 치즈루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답을 찾았다.


그때는 그저, 산난 씨의 괴로운 모습이 보기 싫어서…….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었어.’


동기는 단순히 그것뿐이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되고 싶다라는 것. 물론 예전에도 누군가를 돕고싶다는 생각은 자주 했었고,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별로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만 도움을 주었지,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자신은 그렇게 행동한 것인가. 머릿속으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답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고서 받을 수 있었다.


나는, 그 선을 넘어가고 싶었던 걸까.”


나온 답을 입 밖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제서야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인지 확실히 자각했는지 치즈루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다행히 다리는 멈추지 않았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해버렸다. 남에게 무언가를 바라서는 안 되는데, 선을 넘어 그들에게 접하면 안되는데, 어느 샌가 자신은 그 법칙을 깨고 행동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행동하고 있었지?


[ -애썼어. 노력해줘서 감사해. 유키무라 군. ]

 

그 물음에 대답해 주듯이 야마자키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아마도 그때부터다. 야마자키가 치즈루의 노력을 인정해줬을 때, 치즈루의 안에서 선을 넘고 싶다는 생각이 싹터버린 것이다.


………그 대가가, 이걸까.’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다. 차가워져버린 야마자키의 태도를 떠올리며 치즈루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잠시 숨을 돌린 그녀는 잠시 말없이 발 아래를 바라보다가, 곧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자신의 얼굴을 짝 소리가 나도록 세게 3번 이상을 때렸다.


………좋아.”


제대로 원래대로 돌아가자. 이번엔 실수하지 말자. 그렇게 다짐하듯이 중얼거린 치즈루는 다시 전령 일에 집중했다.

선 바깥으로 넘어가지 말자, 대가를 바라지 말자,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도록, 자신의 비밀을 내보이지 않도록 주의하자. 그것이 남들과 다른 체질을 가진 치즈루가 크게 상처입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 * *


 

니죠성 주위에는 낮의 순찰용과 다르게 하얀색 하오리를 입은 대사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보였다. 어두운 나머지 같은 편을 공격하지 않도록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지만, 언제나 물색 하오리만을 보았던 치즈루는 그 모습이 아직도 어색하게 보였다.


다들 긴장은.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손조과격파인 쵸슈의 낭사들은 지금 쫒기고 이는 상태고, 여기에는 신선조만 있는 게 아니라 막부의 호위무사들도 있으니 경비는 몇 배나 더 엄중했다. 그러니 만의 하나의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지. 그리고 치즈루도 그들의 생각에 동의하고 있었다.


“-!!!”


갑자기 등줄기가 오싹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감각은 몇 번이나 느껴본 적이 있었다. 검을 겨누어졌을 때, 핏줄기가 선 눈으로 노려져 봤을 때의 감각.

-살기다.

머리가 그것을 깨닫기도 전에 치즈루는 자기도 모르게 소태도에 손을 가져간 채 살기가 흘러나오는 곳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은 화톳불에서 멀고, 달빛으로 만들어진 성벽 그림자의 안쪽이었다. 빛이 없는 밑도 끝도 없는 어둠속에, ‘그들이 있었다.


“-호오, 눈치 챈 건가. 생각보다 둔하지 않다는 거군.”


만족스럽다는 듯한 목소리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처음엔 한명이라고 생각했지만, 치즈루의 예상과 다르게 어둠속에서 걸어 나온 것은 세 명의 남자였다. 금발에 살짝 노란 빛의 기모노를 걸친 남자, 검은색의 하카마를 입은 붉은 머리의 남자, 왼쪽어깨부터 손까지 화려한 문신을 한 갈색 빛의 피부를 가진 남자의 모습을 확인한 치즈루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 삼켰다. 가운데의 남자의 시선이 무서웠기 때문일까, 마치 화살에 세게 몸을 꿰뚫린 사람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저 시선들이, 무섭다. 마치 뱀 앞에 서 있는 개구리의 기분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상대는 자신과 격이 다르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기 때문일까, 치즈루는 그의 앞에서 무엇을 해도 전부 허사로 돌아갈 것만 같다는 절망을 느꼈다.


정신, 그래, 정신, 차리지 않으면. 침착해.’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듯이 치즈루는 고개를 저었다. 저들에게 정면으로 맞서서 이길 수는 없다. 그렇다고 무조건 도망칠 수 있을 리 없다. 분명히 잡힐게 뻔하다. 최대한 머리를 굴리며 치즈루는 눈앞의 세 람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이름만 알고 있지만, 가운데에 서 있는 남자, 카자마 치카게는 예전에 이케다 야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이케다 야 사건때, 사이토를 따라 정면으로 돌입한 치즈루는 2층의 헤이스케와 오키타를 찾아달라는 지시에 따라 먼저 2층으로 올라갔다. 그 곳에서 만난 것이 카자마였다. 오키타와 대치하고 있던 그는 마치 어린아이를 상대하듯이 오키타를 갖고 놀고 있었다. 검술로는 확실히 오키타가 뛰어났지만, 상대는 그것을 압도할만한 힘과 속도를 갖고 있었다. 어떻게든 오키타를 돕고 싶었던 치즈루는 찻잔을 던져 그의 신경을 분산시켰고, 그 틈을 타서 오키타가 카자마에게 공격을 가했지만 카자마는 그 공격마저도 피하고선 그에게 카운터를 먹였다. 기절해버린 그를 지키듯이 치즈루가 소태도를 뽑아 들고 사이에 난입했지만, 그 때 카자마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 채 치즈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 “그 소태도, 네것인가?”]

 

그 시선의 끝이 자신의 소태도에 가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은 그 한마디를 들었을 때였다. 그 말에 긍정하듯이 제 것이에요라고 대답하자, 카자마는 피식 웃으며 물러나주었다.


[ “소태도 덕분에 살아남았군.” ]

 

그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진 그가 사츠마 쪽의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케다야의 사건이 끝난 이후였다.


아마도 함께 있는 것이 같은 사츠마 쪽의 아마기리 큐조 씨와. 초슈쪽의 시라누이 쿄, 씨인가.’


예전에 야마자키가 정리해온 정보를 대조해보며 치즈루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은 예전에 이케다야 뿐만이 아니라 금문의 변에서도 신선조의 앞을 가로막았던 자들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쇼군을 어떻게 하러 온 것일까. 소리를 지르는 것이 나을까, 하지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소태도의 칼자루를 꽉 잡으며 치즈루가 입을 열었다.


.. 왜 당신들이 여기 있죠.”

어째서라는 건 우리가 어떻게 여기로 들어온 것인지를 묻는 거냐?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지. 우리들 오니 일족에게는 인간이 만든 장애물 따위 의미가 없으니까.”


물론 치즈루가 원한 답은 왜 그들이 여기에 있는 것에 대한 대답이었지, 시라누이가 대답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에 대해 항의를 하고 싶었지만 이 이야기를 계속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리라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녀가 항의하기 위해 입을 열기 전에, 아마기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들은 어떤 목적을 위해 이 곳에 왔습니다. -유키무라 치즈루, 당신을 찾기 위해서.”

………?”


왼쪽 가슴께에 파묻혀 있는 심장이 커다란 고동음을 울렸다. 왜 이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걸까. 당혹함과 무서움이 심장에 스며들어가 더욱 더 크게 펌프질을 하기 시작했다.


, 당신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저를 놀리시는 건가요???”


치즈루의 반론에 시라누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카자마는 미간을 찌푸렸다. 두 사람 다 치즈루가 알고 있는데 모른척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마기리만큼은 그녀의 말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니를 모른다고? 제정신으로 말하는 거냐?” 화난 표정의 카자마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그 기백에 겁을 먹었기 때문일까. 치즈루가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에 카자마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아마기리가 아이를 거르는 듯 한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상처를 입으면 금방 아물지 않습니까?”

“!!!!!!”


정곡을 찌르는 말에 치즈루가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그런 그녀의 퇴로를 막듯이 아마기리는 사정없이 말을 이어갔다.


보통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상처가 빨리 아물지 않습니까?” 


아마기리의 계속되는 공격에 치즈루의 얼굴이 이 이상 창백해질 수 없을 정도로 새파래지기 시작했다. 어째서일까, 왜 그가, 그들이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일까. 비밀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사람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치즈루는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살아왔다. 되도록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선 바깥에서 계속 고독한 채로 지내왔는데. 어째서 이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걸까.


, 그렇지, 않아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자신이 생각해도 거짓말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로 떨리는 목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들도 그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크게 한숨을 쉬거나, 어이없는 표정으로 치즈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마기리만큼은 표정을 움직이지 않은 채 치즈루의 진의를 확인하고 있었다.


아앙? 모른다고?”

, 몰라, . 당신들이 말하는 오니도 처음 들어보는 단어고…….”

뭣하면 증명하게 해줄까? 상처구멍 하나 둘 열면 싫어도 인정하게 되겠지.”


철컥, 하고 시라누이의 총구가 치즈루에게 겨누어졌다. 그 모습에 정말로 자신의 위기를 느꼈는지 치즈루가 급히 소태도를 뽑았다. 총과 검. 심지어 실력은 저쪽이 위. 덜덜거리는 손과 다리로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쓸데없는 발버둥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하고 당하기는 싫었다.


시라누이. 귀중한 여자오니에게 상처를 낼 생각이냐.”

그치만 이 녀석이 인정할 생각을 안 하니까.” 


나도 어쩔 수 없다고. 카자마의 제지에 귀찮다는 태도를 취하면서도 총을 내리는 시라누이의 모습에 치즈루는 내심 안도했다. 하지만 시라누이는 여전히 불만이 있는지 작은 목소리로 무어라 무어라 불만을 내뱉고 있었지만 카자마도 아마기리도 전혀 들으려는 시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자신의 시야에서 지운 것처럼 행동하던 카자마는 치즈루가 들고 있는 소태도에 시선을 주더니, ‘많이는 말하지 않겠다.’ 라며 운을 띄웠다.


“‘동쪽의 오니를 뜻하는 유키무라의 성과 그 소태도………. 증거로써는 충분히 갖추어져 있어. 이 이상의 증거는 필요 없을 정도다.”

……?”


유키무라의 성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그리고 그때, ‘소태도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라는 것은 그런 의미였던 것일까. 칼자루를 잡은 손은 어느 샌가 식은땀으로 흥건해져 있었지만 그것에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계속해서 벌벌 떨면서도 제대로 경계태세에 들어간 치즈루를 보며 평화롭게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카자마가 귀찮다는 듯이 다시 크게 한숨을 쉬었다.


말해두지만 널 데려가는 데에 네 동의는 필요하지 않아. 여자 오니는 귀중하다. 같이 와줘야겠어.” 


딱 한번, 딱 한번이었다. 딱 한번 눈을 깜빡였을 뿐인데 어느샌 가 카자마는 치즈루의 코앞까지 이동해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 난거지. 자신의 상식과 맞지 않은 광경에 치즈루가 그 의문을 머릿속에 띄웠다. 그 의문의 답을 스스로 찾기도 전에, 카자마가 손을 뻗어왔다.


이 손에 잡히면 끝이다.


머릿속의 경종이 그렇게 고하고 있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누군가, 누군가!!!’


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뿐이었다. 눈을 꽉 감으며 머릿속으로 그렇게 외친 순간-, 하얀 검날이 어둠을 찢어발겼다.


“-어이어이, 밀회라면 좀 더 분위기 있는 곳을 고르는 게 낫지 않아?”


그리고 뒤이어 익숙한 목소리가 치즈루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야에 보이는 것은 하얀 천에 톱날무늬가 수 놓여진 하오리. 그리고 들려온 목소리는 언제나 자신을 신경써주던 붉은색 머리의 남자의 목소리였다.

거짓말. 어떻게 여기에. 믿을 수 없다는 마음 반, 안도한 마음 반으로 치즈루는 자신을 지키려는 듯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또 네놈들이냐. 시골 개들은 코만큼은 특화되어 있는 모양이야.”

………그건 이쪽이 할 말이다.”

하라다 씨! 사이토 씨!” 


카자마의 비아냥에도 그는 평소와 같은 무표정으로 반론을 입에 담았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확실히 무표정일 텐데 현재 그는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그들이 와주었다는 것이 더 기뻤기 때문일까, 치즈루는 안도한 표정으로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아까 전부터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말, 이해하면 안 될 것 같은 말만을 계속 듣고, 마지막에 자신을 데려가겠다는 그들의 행동에 혼란스럽고 무서웠던 상황에서 자신을 구하러 와주었다. 그 사실에 안도했기 때문일까. 계속해서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던 실이 끊어진 것처럼 치즈루는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제대로 서라.”


하지만 그녀가 완전히 주저앉기 전, 무골한 손을 가진 누군가가 그녀의 팔뚝 부분을 잡아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해주었다. 긴 머리에 날카로운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였다.


히지카타 씨.”

물러나 있어.”


상황이 상황인지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고 치즈루에게 간단히 지시를 내린 히지카타는 타도를 뽑아들며 그녀를 뒤로 숨기듯이 앞으로 나서며 그들을 노려보았다.


쇼군의 목을 노리고 왔나 싶었더니, 이런 꼬맹이 한명에게 무슨 볼일이냐?” 


히지카타가 상대를 도발하려는 듯이 비릿하게 웃었다. 옆에서 하라다가 역시 오니부장이야라고 작게 웃는 

목소리가 뒤 이어 들려오자 카자마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이 화가 난 표정으로 그르렁 거렸다.


쇼군도 네놈들도 지금은 어찌되던 상관없다. 이건 우리들 오니들의 문제다. 끼어들지 마라.”

오니라고?”


카자마의 대답에 히지카타의 눈이 가늘어졌다. 상대의 발언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의심하고 있다는 듯 한 눈초리에 치즈루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저 눈을 몆 번이나 마주한 적이 많았기 때문일까, 조건반사로 몸을 떤 치즈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도 있었냐. 이 녀석의 면상을 보는 것은 금문의 변 이후구만.”

이게 바로 썩을 인연이라는 녀석인가. 별로 기쁘지는 않지만 말이지.”

재회라는 의미로는 여기도 마찬가지다만………. 난 아무런 감상도 떠오르지는 않는군.” 

저희들의 방해를 할 생각입니까. 그렇다면.”


총과 창을 서로에게 겨누며 씨익 웃는 두 사람과 달리, 아마기리와 사이토의 사이에는 언제 서로 공격해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서로 틈만 보이면 언제든지 공격에 들어갈 것이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그들을 보며 치즈루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내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눈앞의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자기도 모르게 뽑아든 소태도를 잡고 자세를 취하려고 하는 그녀를 제지하듯이 검은 손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


갑자기 어둠속에서 툭 튀어나온 검은 팔에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일 뻔한 치즈루였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비명이 아니라 공기뿐이었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바로 그 짝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할 틈을 주지 않은 채 검은 팔의 주인이 작은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을 걸어왔다.


유키무라군. 나야, 정신 차려.”

, ……….”

하고 싶은 말은 알겠지만 일단 심호흡부터 해. 너무 굳어있어.”


야마자키의 지시에 따라 어떻게든 심호흡을 하고선 옆을 보면, 그 곳에는 복면을 썼지만 익숙한 얼굴이 치즈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치즈루를 똑바로 바라보며 야마자키는 여전히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부장들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 그렇지만.”


거기까지 말한 치즈루는 입을 다물었다. 여기에 있으면 자신은 방해만 될 뿐이다. 그걸 알면서도 굳이 이 곳에 있는 것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너무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옛날로 돌아가자. 그렇게 다짐한 게 아까전인데 그걸 또 잊어버리고 있다. 그런 자신에게 실망감을 느꼈지만, 정신 차리라는 듯이 그녀의 손목을 꽉 잡는 야마자키에 의해 치즈루는 다시 현실로 끌여 내려졌다.


무례하다는 건 안다. 후일에 다시 사과를 할 테니 지금은 참아줘. 부장의 명령이다. 이대로 널 둔소까지 호위할거다. 내 속도에 맞추기 위해서 손을 잡고 달리게 될 건데, 괜찮나?”

……….”


마음속으로는 여기서 도망치라는 건가요, 라고 반론하고 싶었지만 여기 있어 봤자 치즈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이 곳에서 얼른 벗어나는 것이 낫다.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치즈루가 고개를 끄떡이자 야마자키가 그녀의 손목을 놓았다. 그의 지시대로 소태도를 집어넣자, 야마자키는 지시에 따라줘서 고맙다, 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평소라면 두 사람 모두 얼굴을 붉힐만한 상황이었지만 사태가 사태 인만큼 효율적인 방법을 고른 것이었다. 야마자키는 복면 때문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치즈루는 마음이 가라앉아있었기에 그 행동에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야마자키가 여전히 대치하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서로만을 바라보며 틈을 보고 있는 오니들의 시야에 치즈루가 벗어나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야마자키가 치즈루의 팔을 살짝 잡아당겼다. 뛰라는 신호다. 야마자키에게 이끌려가듯이 출발했지만, 어떻게든 구르지 않고 그의 속도에 맞춰 치즈루는 필사적으로 다리를 움직였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냐! 공주님!”

아아, 도망 칠 수 있다고!”


시라누이가 그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 야마자키에게 총구를 겨누었지만,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하라다의 공격이 들어와 그의 행동은 실패로 끝났다. 카자마도, 아마기리도 상황은 비슷했는지 계속 공격해오는 사이토와 히지카타 덕분에 야마자키와 치즈루는 무사히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야마자키의 손에 이끌려 달려가며 치즈루는 무의식적으로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아마기리의, 시라누이의, 카자마의 눈빛이 마치 등 뒤에 달라붙은 듯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것들을 떨쳐내고 싶다는 일념을 담아, 치즈루는 야마자키의 손만을 의지하며 어둠속을 달렸다.

 


* * *

 


도착했다. 수고했어. 유키무라 군.”


둔소, 니시혼간지의 문을 통과해서야 야마자키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전속력으로 달렸기 때문일까. 치즈루는 물론 야마자키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언제나 바깥에서 체력을 쓰는 일을 하는 야마자키와 달리, 되도록 둔소에서 생활하고 있던 치즈루는 현재 지옥을 맛보고 있었다. 최소한 토는 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어떻게든 숨을 고르고 있으면, 그런 치즈루가 안쓰러웠는지 야마자키가 등을 쓸어주었다. 그렇게 몇 분정도가 지났을까. 겨우 진정이 되었다는 듯이 감사를 표현을 하는 치즈루를 보고 야마자키는 뭔가 미안하다는 듯 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다. 너무 빨랐나.”

, 아뇨! 괜찮아요. 오히려 거기서 얼른 나올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야마자키 씨!”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인 치즈루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그녀를 진정시킨 야마자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신없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기 때문일까, 다시 한 번 엄습해오는 불안함 때문인지 치즈루는 긴장을 풀지 못한 채 치즈루는 말없이 등 뒤의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괜찮아. 아무리 그 녀석이 강하다 해도 부장님과 하라다 씨와 사이토 씨를 뿌리치고 여기까지 쫒아올 리 없어.”


야마자키는 어디까지나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치즈루는 그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는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 네요. 니죠 성이랑 여기는 꽤나 멀리 떨어져있고요. 그리고,”


아무리 그들이 상식을 초월한 존재들이라 해도 쉽게 그 세 사람을 뿌리치고 이 곳까지 쫒아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야마자키 씨가 함께 있어줘서, 안심이 되요.”


이 말은 진심이었다. 만약 이 곳에 혼자였다면 치즈루는 이미 불안감에 짓눌려 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야마자키가 곁에 있다. 혼자가 아니다. 그 덕분에 치즈루는 조금이지만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치즈루의 대답이 의외였기 때문일까. 야마자키가 한 순간 놀랐다는 듯 한 눈을 했지만, 곧 부드럽게 눈웃음을 지었다.


“-신뢰해줘서 고마워.”


그 한마디에 치즈루는 마음속에 무언가가 북받치는 느낌을 받았다. 오랜만에 그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한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곧바로 부장이 계신 곳으로 돌아가면 안 돼.”

………….”


조금만 더 대화를 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고 입을 열려는 차에, 야마자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다, 전령역이었던 자신이 빠지게 됨으로써 야마자키와 시마다가 그 자리를 메우지 않으면 안 된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치즈루는 자신도 모르게 돌아가겠습니다.’ 라고 내뱉으며 움직일 뻔했지만, 그 전에 야마자키가 진정하라며 살짝 어이없다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들의 목적은 유키무라 군이다. 만약 네가 돌아가면 녀석들은 2차로 공격해올지 몰라. 만의 하나의 일이 일어나면 곤란하니 유키무라군은 둔소에서 대기해주길 바래.”

알고 있다. 여기서 자신이 나서면 안 된다는 것을. 하지만 그들에게, 야마자키에게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니 순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움직이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자신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자신에게도 그들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치즈루는 고개를 끄떡였다.


알겠어요.”

다들 쇼군의 경호로 나가 있으니 현재 둔소에는 남아있는 대사가 별로 없어. 그러니 오키타 씨나 토도 씨와 함께 있는 것이 안전할 거야.”

…….”

그럼, 뒤는 부탁한다.”


그 한마디만을 남기고 야마자키는 문을 빠져나가 다시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혼자가 되었기 때문일까. 갑자기 밤의 적막이 치즈루의 주위에 내리 앉았다. 한동안 야마자키가 사라진 어둠을 조용히 보고 있었기 때문일까. 갑자기 치즈루의 머릿속에 방금 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 사람들은 대체 무엇이었던 것일까. 왜 자신을 오니라고 불렀던 것일까. 왜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머릿속에서 의문만이 솟아올랐지만 그것에 대답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얼마나 그 자리에서 어둠속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이대로는 안 된다 생각했는지 치즈루가 고개를 저었다.


혼자 있으면 이상한 생각만 날 것 같아. 야마자키 씨가 말한 대로 오키타 씨나 헤이스케 군에게 가지 않으면-.’


거기까지 생각한 치즈루는 자신의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이곳에 오기 전 까지 야마자키와 꽉 잡고 있던 손이다. 처음에 그와 손을 잡았을 때, 자신이 체온이 내려간 탓인지 그의 손이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달리는 도중에 치즈루의 체온도 돌아와 서로의 체온과 땀으로 뜨겁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열은 전부 식어있었다.

그 손을 한동안 내려다보던 치즈루는 크게 심호흡을 두어 번 하더니,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 내일부터 다시 원래대로행동할 수 있어.’


지금은 불안감에 눌려죽을 것 같아서 무리지만, 한번 자고나면 가능할 석이다. 그렇게 암시를 하듯이 머릿속으로 몇 번이건 중얼거린 치즈루는 히로마 쪽을 바라보았다. 불이 켜져 있으니 누군가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며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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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멜리스
2017. 3. 13. 09:53

0.

 

스르륵, 하고 붕대가 풀리는 소리가 히로마(広間)에 조용히 들려왔다. 원래라면 아주 작은 소리여서 제대로 들릴 일은 없겠지만, 붕대를 맨 대사와 그것을 지켜보는 헤이스케를 포함한 다른 대사는 그 소리가 지금은 무엇보다 크게 들려왔다. 오랫동안 붕대를 매고 있던 탓일까. 대사의 다리에는 붕대와 각목을 댄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실례합니다. 예의바르게 환자에게 양해를 구한 치즈루는 그의 다리의 상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꿀꺽, 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고 환자가 생각하고 있으면, 진찰을 끝낸 치즈루가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

축하드려요! 완치에요!!!”

오오오오오!!!”

, 이자식! 축하한다!!!!!”

, 아파요! 아픕니다 토도 조장!!!!”


그녀의 완치 선언에 그 자리에 있던 오키타를 제외한 소수의 대사들이 환자보다 먼저 일어나 환호했다. 완치 선언을 받은 대사는 지금 내가 뭘 들었나,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곧 토도의 헤드락 공격에 겨우 현실로 돌아왔는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토도가 겨우 자신을 놔주자 그는 자신의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통증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방방 뛰고, 잠시 바깥으로 나가 가볍게 달리기를 하고 왔다.

아프지 않다. 그 사실이 겨우 머리로 인식되었는지 그는 살짝 눈물을 머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대사- 카와구치는 코를 훌쩍하더니, 울었다는 것을 얼버무리기 위해 실망이라는 듯이 크게 어깨를 떨구는 제스처를 취했다.


-. 완치라니. 이제 다시 나가쿠라 조장의 지옥 훈련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그 모습에 치즈루는 후후, 하고 조용히 웃었고, 헤이스케를 포함한 다른 대사들은 헤죽헤죽 웃고 있었다. 둔한 치즈루도 눈치 챌 정도로 그의 연기는 정말 어색했다. 그래서일까, 다들 저 녀석을 놀려주자. 라고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는 헤이스케의 의견에 찬동하듯이 다들 살짝 고개를 끄떡였다. 다들 자신의 의견에 찬성하겠다는 의사를 확인한 헤이스케는 옆에 앉아있던 치즈루에게도 까발리지 말라는 듯 검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며 씨익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 즐거워보였기 때문일까. 헤이스케처럼 장난기가 발동한 치즈루는 그의 장난에 동조하겠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그래 너! 그 동안 훈련 빠져서 살 맛 났지?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고?”

맞아 맞아. 꽤 대사들 사이에서 유명했었지. 카와구치 군.”


멈칫.


헤이스케와 오키타의 말에 공포를 느낀 탓일까. 마치 오뚝이가 움직이다가 갑자기 멈춘 것처럼 카와구치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게 멈추었다. 사람이 저런 자세로 오랫동안 멈출 수 있구나. 내심 대단하다고 느끼는 치즈루와 달리 이 상황이 즐거운지 악당 같은 미소를 짓고 있던 헤이스케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내가 신팟 짱에게 잘 말해서 늦은 만큼 확실히 훈련은 하게 해 줄 테니까 걱정 말고?”

, , , ,토도, 토도 조장.”


하고 싶은 말은 확실히 있는데 그것이 제대로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지 카와구치가 정신 줄을 놓은 듯 어버버 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불쌍했지만 아직 밝히지 말라는 오키타의 제지에 치즈루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야기를 해버릴 것이라고 멋대로 생각했기 때문일까. 다른 대사들이 그녀의 말을 막듯이 웃으며 묵직한 한 마디를 웃으며 내뱉기 시작했다.


그래그래. 너 저번에 스즈키가 나가쿠라 조장에게 굴려질 때 엄청 놀려댔잖아. 그 대가라고 생각해.”

맞아 맞아. 다른 사람들에게 막 말한 만큼 대가를 받는 거야. 포기해.”

, 으으으…….”


절망했다는 표정으로 카와구치가 털썩 주저앉았다. 저렇게 큰 소리가 나는데 무릎은 괜찮은 걸까. 의사의 딸이자 현 신선조의 의료 쪽을 맡고 있는 치즈루는 방금 완치 판정을 받은 그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을 안쓰러운 눈으로 보고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일까. 카와구치가 빼액소리를 질렀다.


동정하지 마! 동정하지 말라고! , 흐윽. 흐극흐그그극.”

, 저 나가쿠라 씨가 그렇게 까지는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치즈루가 아는 나가쿠라는 상냥한 부류에 속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물론 초반에는 치즈루를 경계하느라 차가운 태도를 취하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이것저것 챙겨주고 있는데다 치즈루를 보는 눈도 상냥해져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런 나가쿠라를 이렇게까지 무서워하는 그가 치즈루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하고 있으면, 절망하던 카와구치가 치즈루의 어깨를 딱 하고 잡았다.


잘 들어. 유키무라. 확실히 다른 조장들도, 토도 조장의 훈련도 빡세고 힘들고 울고 싶지만, 그 중에 나가쿠라 조장의 훈련은 그야말로 지옥이라고!!너같이 근육도 없고 뼈만 있는 꼬맹이는 금세 나가 떨어질걸??????”

, 하아.”


속사포로 나가쿠라의 무서운 점을 쏟아내는 카와구치를 상대로 치즈루는 하아, , 그렇군요. 라는 긍정의 답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가쿠라의 무서운 점을 이야기하고 있으면, 그는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다는 표정으로 벌떡 고개를 들었다.


그래! 유키무라! 너도 같이 훈련 받자!! 나가쿠라 조장의 특별 훈련! 그럼 이 빈약하고 계집애 같은 몸에 조금이라도 근육이 생겨서 듬직해 질...푸악!!!”

작작 해라. 이 망할 녀석아.”


더 이상 못 들어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이 상황을 즐기며 실실 웃던 헤이스케가 표정을 싹 바꾼 채 카와구치의 팔뚝부근을 뻥하고 차버렸다. 옆으로 찬 덕분에 카와구치가 치즈루에게 해를 입일 일은 없었지만, 현재 헤이스케의 얼굴은 그야말로 오니 그 자체였다. 갑자기 험악해진 분위기 탓일까. 그 누구도 말을 하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었다. 다들 이 분위기가 된 이유를 금방 알아챘지만 단 한사람. 이 분위기를 만들어 낸 카와구치만은 사태를 이해하지 못하고 눈만 멀뚱멀뚱 뜬 채 그에게 차인 팔뚝부분을 잡으며 헤이스케를 올려다보았다.


, 헤이스케 군.”

저기 말야. 카와구치 군. 그런 말 보다 먼저 치즈루 짱에게 해야 할 말이 있는 거 아닐까?”

……할 말?”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오키타도 조금은 화가나 있었는지 카와구치에게 던지는 질문에 가시가 돋쳐 있었다. 오키타의 질문과 헤이스케의 태도를 곱씹어보아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지 카와구치는 헤이스케에게 맞은 부위를 어루만지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가 얼굴을 찌푸린 것은 맞은 장소가 아파서였지만, 그게 지금 상황에 대한 불만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를 내려다보던 헤이스케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넌 널 열심히 치료해준 녀석에게 고맙다는 말은 거녕 매도 하냐?”

……….”


그제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는지 카와구치가 납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케다야 사건 때 다리에 부상을 입었었다. 하지만 원래라면 이렇게 시간을 끌만한 부상은 아니었다. 실제로 이케다야 사건 때 카와구치보다 더 심하게 다친 사람도 지금은 대부분 완치해 텐노 산으로 향했으니까. 하지만 카와구치는 그러지 못했다.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붕대는 갑갑하다고 풀질 않나. 나는 이 정도 상처에 굴복하지 않는다. 정신력으로 다 나았다는 헛소리를 하며 다친 다리를 마구 쓰지 않는 둥 여러 기행을 일삼았고, 의료담당인 야마자키와 치즈루에게 나는 이미 다 나았다며 허세를 부렸다. 부상자들 중에 치즈루는 물론, 야마자키의 지시에 제대로 따르지 않은 대사들은 많았지만, 그 중 으뜸을 뽑는다면 두사람은 망설임없이 카와구치라고 말할 것이다. 그 정도로 카와구치는 골칫덩어리였다.

하지만 아픔이라는 것은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오래 가는 법. 결국 카와구치는 다리가 너무 아프다, 이제 못 쓰는 게 아니냐고 반쯤 울면서 야마자키에게 달라붙었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게 그는 장기임무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카와구치의 치료는 치즈루가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치즈루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그였지만, 지금 자신을 치료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녀밖에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는지 치즈루에게 치료를 맡기고 그녀가 지시하는대로 따랐다. 하지만 예전부터 치즈루를 계집애 같은 놈, 비실비실한 놈, 눈엣가시 같은 놈으로 취급하던 카와구치였기에 치료를 할 때마다 치즈루에게 시비를 걸었지만, 치즈루는 카와구치의 치료를 대충하지 않았고, 그 결과 완치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고맙다는 말은 거녕 매도를 하고 있으니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는 헤이스케와 오키타는 물론,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평대사들도 이건 아니라며 카와구치에게 비난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주위의 공기도 그렇고,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급히 치즈루와 시선을 맞추고 고개숙여 사과했다.


미안했다. 유키무라. 그리고 고마워. 나는 평생 이 다리로 살아가야한다고 생각했어. 여태까지의 무례를 용서해줘.”

, , 그게. 저는 괜찮아요.” 

아니, 그동안 나는 너를 밥이랑 방만 축내는 쓸모없는 식객이라 생각했어! 실은 이렇게 실력 좋은 의사였는데도 말야! 너는 내 검의 길을 구해준 은인이야!”

그래, 유키무라! 너는 이 놈의 은인이야! 처음에는 검도 제대로 못 쓰는 호리호리하고 계집애 같은 녀석이 갑자기 나타나서 부장님의 시동이 되고 간부들의 사랑을 독차지해서 얼굴로 꼬셨나하고 생각했지만 전부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사과할게! 부장님이 그냥 얼굴로 사람을 뽑을 사람은 아니지! . 이제 납득했어!”

맞아! 우리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

너희들, 그거 칭찬?”

당연하지요!”

……. 너희들. 해도 되는 말이 있고 해선 안 되는 말이 있는 거, 모르냐?”


카와구치가 사과했기 때문일까. 다른 대사들도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한명 두 명 그녀에게 그동안의 무례를 사과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게 정말 사과인지 아닌지 미묘하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계속되는 그녀를 향한 계속되는 무례한 말에 오키타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다들 무슨 소리냐는 듯이 칭찬하고 있다, 사과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헤이스케는 그걸 그녀에 대한 모독이라고 받아들였는지 낮은 목소리로 평대사들에게 조용히 경고를 보냈다. 이게 어딜 봐서 고맙다고 하는 사람의 태도인가.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그들을 노려보면, 평대사들은 오해라는 듯이 손 사례를 쳤다.


, 아니에요. 저희는 그저 유키무라에게 그동안의 무례를 사과하고 싶어서……!”

처음에는 얼굴도 이름도 계집애 같은 게 어디서 우리 신선조에, 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케다 야에서 활약하는 것을 보고 인정했다고요!!! ”

맞아요!!! 저도 그 후로는 유키무라를 깔보지 않는다고요!!! 그가 온 후로 밥도 맛있어졌고, 깨끗해지고 옷도 찢어지면 정비되고!! 오히려 감사하고 있다고요??”


하지만 전혀 감사하는 것 같지 않다. 인식이 바뀌었다는 것은 확실히 알겠지만, ‘쓸모없는 비실이에서 쓸모 있는 비실이로 승격했다는 듯 한 인식에 오키타는 살짝 한숨을 쉬고선 입을 열었다.


저기, 너희들.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지 않을래? 지금 너희들이 한 말을 사과랍시고 들어봐. 어떤 기분일 것 같아?”


오키타의 지적에 잠시 히로마에 침묵에 내려앉았다. 치즈루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헤이스케가 그걸 말리고선 오키타에게 소지, 나이스. 라고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오키타는 그의 신호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그제서야 자신의 말 실수를 알아차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평 대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해했으려나?”

, !! 죄송합니다! 오키타 조장!”

너희들, 진짜 머리 나쁘네. 사과해야 할 사람은 다른 사람이잖아.”

죄송했습니다! 유키무라 씨!!”

도게자도 필요 없으니까-!! 정말 괜찮아요! 괜찮아!!”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오키타가 싸늘한 미소를 짓자, 그 모습에 겁을 먹은 평대사들은 바로 치즈루에게 석고대죄를 하며 입을 모아 외쳤다. 치즈루가 정말 괜찮다고 옹호를 했지만 그 사죄는 약 몇 분간 이어졌고, 그 상황을 만든 오키타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치즈루를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 일단 완치 판정도 받았겠다. 슬슬 카와구치를 쓸 만한 것으로 만들어볼까. 신팟짱들도 슬슬 텐노 산에서 돌아올 때고?” 


곤란해하는 치즈루를 도와준 것은 헤이스케쪽이었다.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나더니 뚝뚝 소리를 내며 몸을 풀며 그렇게 말하자 그 자리에 있던 평대사들의 얼굴이 일제히 새파랗게 질렸다. 신선조 중 지옥 같은 훈련을 시키는 것을 누구냐고 한다면 다들 나가쿠라의 이름을 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조장들의 지도도 편하다는 것은 아니다. 나가쿠라보다는 덜하지만 헤이스케의 지도도 죽을 맛이 드는 정도였다. 그런 그의 지도를 이렇게 불시에 받게 되다니, 대사들은 다들 죽을 것 같은 표정을 한 채 터덜터덜 일어났다. 그런 대사들의 기합 빠진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헤이스케는 얼른 얼른 안움직이냐고 크게 외쳤고, 그 호령에 대사들은 알겠습니다라고 외치며 4발로 달려나가거나 달려나가다가 넘어지는 둥 온몸으로 다급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이 달려나갈 때 눈물이 맺혀있었던 것 같은 건 기분탓일 것이다. 그렇게 본 것을 외면하며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치즈루에게 헤이스케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다가왔다.


치즈로. 미안. 저 녀석들 제대로 혼내 놓을 테니까.”

, 아냐! 헤이스케군 !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치만 저녀석들. 치즈루가 얼마나 도움을 주고 노력하는데 그렇게 말하고.”

아냐. 헤이스케 군. 저분들은 날 인정 해주신 거야. ”


치즈루는 그들의 인식이 올바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신선조에게 있어서 치즈루는 짐 같은 존재다. ‘보아서 안될 것을 본 목격자인 그녀는 신선조에 있어서 위험요소였다. 처음에는 여자라는 이유로 바로 살해당하지 않고 처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 회의가 열렸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유키무라 코우도라는 것을 알고서는 그의 수색을 도우라는 이유로 둔소에 부장의 시동이라는 직책으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간부들도, 평 대사들도 그녀의 존재를 환영하지 않았다. 오키타는 계속 그녀를 베겠다고 말버릇처럼 말하고, 히지카타는 가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는가 하면, 하라다나 나가쿠라, 헤이스케도 치즈루를 좋게 봐주건 해주기는 했지만 곤란한 것을 보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건 했다.


, 치즈루. 그건.”


그녀의 인정이 무슨 뜻인지 알아챈 헤이스케가 당황하며 뭐라 변명하려 했지만, 치즈루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다른 간부들도 지금 나한테 잘해주시고……. 헤이스케 군도 오키타 씨도 나를 많이 도와주시는걸. 나는 그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해.”

치즈.”

치즈루 짱은 바보구나.”


감동받은 헤이스케의 기분을 깨버리듯이 오키타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내뱉었다. 그리고 헤이스케가 자신의 말에 반박하기 전에 그의 행동을 봉쇄하듯이, 그의 머리에 자신의 팔과 톡을 올려놓았다. 밑에서 헤이스케가 무겁다고 항의를 해보았지만 오키타는 그저 좋은 위치에 팔걸이가 있다며 헤이스케의 항의를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겨우 그런 걸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얼마나 행복의 기준치가 낮은 거야.”

아뇨. 충분히 행복한걸요.”

……이상한 아이네.”


오키타의 쓴 웃음이 섞인 악평에도 치즈루는 그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오키타는 비릿한 미소를 띄우며 계속해서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다.


그래도 말야. 치즈루 짱. 잊으면 안돼? 우쭐해져서 이상한 짓을 하면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널 베어 버릴 거니까.”

소우지!”


그가 웃으면서 내뱉은 냉철한 말에 헤이스케는 당황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돌아온 것은 왜 그래. 사실이잖아라는 정론이었다.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는지 헤이스케가 입을 다물었지만 그녀에게 무어라 해주고 싶었는지 뭐라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만을 지으며 입만 뻥끗거리고 있었다.


, 아냐. 헤이스케 군. 괜찮아. 잘 알고 있는걸!”

그래도…….”


치즈루가 괜찮다는 듯이 두 손을 내저었지만 헤이스케는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끙끙거리고 있었다.


헤이스케. 슬슬 저 녀석들 훈련 봐주러 가야하지 않아? 조장이 여기서 땡땡이 치고 있어도 되는 거?”


정말 괜찮다니까. 치즈루가 그렇게 말해도 끙끙대고 있던 헤이스케의 등을 밀어 준 것은 이 대화를 딴 나라의 일처럼 여기고 있던 오키타였다. 그 말에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듯이 헤이스케가 작게 비명을 지르자, 오키타는 조장이 그래도 되는 건가-? 히지카타씨에게 일러버릴까-. 라며 재미있는 것을 보는 표정으로 헤이스케에게 계속해서 한마디 두 마디 던졌다.


, 치즈루! 이따 방으로 갈께! 이따 봐!”

헤이스케 군! 조심해!”


방금 전 대사처럼 지금이라도 성대하게 구를 것 같은 헤이스케의 뒷모습에 치즈루가 충고를 했지만, 지금의 헤이스케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복도 쪽에서 그가 성대하게 구르는 소리가 날 것 같아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치즈루와 달리, 오키타는 개구쟁이의 표정을 지으며 복도를 쿵쾅쿵쾅 뛰어가는 헤이스케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대사들의 기합소리가 들리는 것을 확인한 오키타는 재미없다는 듯이 하품을 하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그럼 나도 들어가서 낮잠이나 잘까나-.”

. 그럼 약을 먼저 드시고 주무시는 게…….”


오키타가 이번 텐노 산 전투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는 감기였다. 그래서 히지카타가 출병하기 전에 그녀에게 오키타를 잘 봐달라고 부탁을 했고, 부탁을 받은 치즈루는 시간이 되면 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그때마다 오키타는 싫은 표정을 대놓고 짓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제 먹었잖아.”

이 약은 식후에 드시는 거에요. 오키타 씨.”

………….”

라고, 제가 누누이 말씀드렸죠.”


치즈루의 말에 오키타는 시선을 돌린 채 묵비권을 시전 했다. 이런 대화가 이루어진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불리해지면 입을 닫는 오키타였지만 치즈루는 익숙하다는 듯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라고 선언하며 치료도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여유로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일까. 오키타는 다시 한 번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다.

“-너도 참 힘들겠네. 자신의 처우가 바뀌는 노력을 하느라. 나 같은 것도 돌봐야하고.”

그 말은 어디까지나 치즈루의 동요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말이었다. 평소에는 자신의 한마디 한마디에 여러 반응을 보여주는 그녀가 치료에 관해서는 전혀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

오키타의 악의에 가득 찬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치즈루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씁쓸해 보이는 미소를 띄우며 오키타를 바라볼 뿐이었다.


불만이 있으면 말하던가?”


하지만 오키타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지 그렇게 내뱉었다. 하지만 치즈루는 여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선 치료도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일단 이걸 원래자리에 두고 올게요. 약은 언제나처럼 오키타 씨의 방으로 가져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안 먹을 건데?”


소소한 반항을 해보는 오키타였지만, 치즈루는 그가 자신이 약을 갖고 오면 투덜투덜 대면서 먹어줄 거라는 걸 알기에 치즈루는 그저 방긋하고 웃을 뿐이었다. 콘도가 약도 잘 먹고 착한 아이로 있어야 한다.’ 라고 했기에 오키타도 어쩔 수 없이 치즈루가 가져온 약을 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은 걸까. 오키타는 크게 한숨을 쉬고 치즈루에게 빨리 나가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그런 그에게 실례합니다, 라고 살짝 목례를 한 치즈루는 치료도구가 든 바구니를 든 채 히로마를 나섰다.

복도를 걷고 있으면 저 멀리에서 헤이스케에게 훈련을 받고 있는 대사들의 구령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잠시 멈추어 듣고 있던 치즈루였지만, 곧 이럴때가 아니라며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처우가 바뀌는 노력이라.’


그의 말대로, 지금 치즈루는 이것저것 노력을 했기에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입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케다 야 사건 때. 치즈루는 산난의 명으로 야마자키와 함께 목숨을 걸고, 다리가, 폐가 찢겨져나갈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면서 시고쿠야에 있는 대사들에게 전언을 전하고, 이케다야에 들어가 부상을 대사들을 옮기는 것을 돕고, 전투가 끝난 후에는 코우도에게 배운 지식과 그가 치료하는 방식을 본 기억을 총동원해서 부상자들을 치료했다. 그 후, 피가 잔뜩 묻은 대사 복을 세탁하고 수선하는 등 싸움이 끝난 후에도 이것저것 많은 노동을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조금씩 인정해주기 시작 한 것은. 그 사실을 자각 한 것은 이번 아이즈 번()에서 출동이 내려졌을 때 간부들에게 너도 참가할래?’라고 권유받았을 때였다.

하라다는 상냥하지만 매사에 냉정하고 정에 그렇게 쉽게 휩쓸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만약 그가 치즈루가 쓸모없다고 판단했다면 그렇게 권해주지는 않았겠지. 게다가 치즈루의 합류를 원한 것은 하라다 뿐만이 아니었는지 사이토도 그녀의 합류에 찬성한다는 듯이 치즈루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건 그들이 치즈루의 존재를 인정해주었다는 것으로 봐도 좋은 것이겠지. 자신이 없다는 듯이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치즈루는 정원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슬슬 돌아오실 때가 되었지. 다들.’


누군가가 전령으로 와주지 않는 한 출진한 신선조가 어떻게 되었는지 둔소에 있는 사람들은 알 수 없었다.


산난 씨는 슬슬 야마자키 씨가 올 거라고는 했지만.’


어제 저녁 식사를 할 때 산난이 싸움이 슬슬 끝날 때가 되었으니 야마자키 군이 오겠군요.’ 라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 말은 즉 저쪽의 싸움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떻게 알 수 있냐는 치즈루의 말에 그는 그저 평소의 미소를 지으며 단순한 감이라 대답했지만, 그 자리의 그 누구도 산난이 감 따위에 의지해 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치즈루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산난의 말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을 수 있었다.


………야마자키 씨라.’

 

[ 나는 감찰반으로서 당신을 신용하지 않아. 그게 나에게 내려진 임무다. ]

 

예전에 둔소에 고양이가 들어와 모든 것을 휘젓고 다니던 사건이 있었을 때, 야마자키는 치즈루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신용 받지 못하는 관계. 감시받고 감시하는 관계. 그것이 현재 치즈루와 야마자키의 관계였다.


그 분도 조금은. 날 신용해주실까.’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그가 감찰반이 아니라도 야마자키는 치즈루를 신용 할 수 않을 것이고, 신용할 생각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거기까지 생각한 치즈루는 바보 같아, 라고 머릿속으로 중얼거리며 생각을 떨쳐내듯이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환경이 바뀐 탓일까. 자기도 모르게 옛날에 다짐한 것들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 같았다.


……괜찮아.’


그래, 괜찮다. 그렇게 자신에게 되내이며 치즈루는 고개를 숙였다.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 인정해주시지 않아도 괜찮아. 원래부터 그래왔으니까.’


에도에 있을 때부터 치즈루는 그래왔다.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 좋게 보여 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그런 것을 바라지 않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만을 하면 된다. 라고 코우도에게 배워왔기 때문이었다.


[ 절대 무언가가 돌아올 것을 바라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선을 긋고 행동하렴. ]


물론 처음에는 어째서 그래야하는 것인지 몰랐다. 그래서 계속해서 질문을 해보았지만 코우도는 네가 좀 더 자라면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왜 대답을 알려주지 않은 것인지, 왜 코우도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치즈루가 조금 더 성장했을 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신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틀린 무언가가 있다.


그것도 크게 알려지면 평화롭게 살 수 없는 무언가가.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치즈루는 그제서야 코우도의 말을 이해했다. 절대 남에게 무언가를 바라지 말고, 일선을 그은 상태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전력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특별해지는 일은 없어야 하고, 될 수 있는 남과 선을 그으면서 살아야 한다. 그것 외에 자신이 평범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어린 치즈루는 그렇게 깨달아버렸다. 그리고 그 생각은 성장한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야. 괜찮아.’


에도의 진료소에서, 쿄의 신선조의 둔소로.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다. 물론 불안하고, 신선조의 비밀을 알아버린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치즈루 본인도, 간부들도 모른다. 치즈루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자신이 할 수 있은 일을 하며 코우도를 찾는 것. 그것뿐이었다.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크게 한숨을 내뱉더니, 힘내자, 라고 중얼거린 치즈루는 바구니를 꼭 껴안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유키무라 군.”

???!!!!”


생각을 가다듬고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으면, 갑자기 누군가가 치즈루의 뒤에서 말을 걸었다. 그러자 치즈루는 새파래진 얼굴로 꼴사나운 비명을 지르며 손에 들고 있던 바구니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바구니에 들어있던 약들과 붕대와 도구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불쾌한 소리를 냈지만, 치즈루는 그걸 주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식은땀을 흘리며 그 자리에 정지해 있었다.

산난은 이 앞의 방에, 나머지 대사들은 헤이스케와 함께 중원에, 그리고 오키타는 히로마에 있을 것이다. 간부의 방은 이 앞에 있으니 아직은 방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순간 그 날 밤 일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하얀색 머리에, 붉은 눈의 괴물. 마치 미친것처럼 피만을 찾아 쫒던 괴물들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치즈루는 필사적으로 그건 아니라고 부정했다. 그들은 말을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아니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자신을 안심시키며 치즈루는 지금이라도 튀어나오고 싶다고 주장하는 심장을 억누르기 위해 왼쪽 가슴팍을 꽉 누르며 뒤를 바라보면, 그곳에는 치즈루의 머리에 한 순간 떠올린 하얀 머리에 붉은 눈을 가진 괴물이 아닌, 갈색머리에 청록색의 기모노를 입고 있는 남자가 서 있었다.

짧은 앞머리와 달리 그의 뒷머리를 길게 아래로 늘어져 있었지만, 그 머리카락을 꼬랑지처럼 단정히 묶었기 때문일까. 왜나 깔끔한 인상을 주는 남자였다. 하지만 그의 보라색 눈동자와 날카로운 눈매 때문일까. 깔끔하다는 이미지보다는 냉철하고 날카로운 인상을 주고 있었다.


“-야마, 자키. .”

항상 치즈루를 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그였는데, 치즈루의 비명에 놀란 탓일까. 야마자키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놀랐다는 빛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 미안하다. 유키무라 군. 그렇게 놀랄지 몰랐어.”


치즈루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야마자키도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평소답지 않게 말을 더듬으며 입을 열자, 치즈루는 여전히 새파란 얼굴로 두 손을 내저었다.


, 아뇨, 아뇨. 괜찮아요. 저야말로 놀라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야마자키 씨.”

아니, 나도 무턱대고 말을 건 잘못도 있어. 미안하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이어서 그럴까. 치즈루의 얼굴색이 조금은 나아졌다. 그 모습을 본 야마자키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며 정중하게 사과했다.


, 아뇨! 제가 멍하게 있던 게 문제인 걸요! 저야말로 갑자기 비명질러서 죄송해요!”


다른 생각에 집중하고 있던 탓에 야마자키가 오고 있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자신이 나쁘다. 두 손을 모아 허리를 굽히며 치즈루가 계속해서 사죄하자, 야마자키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그럴 필요가 없다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 아냐. 내가 무의식적으로 발소리를 죽인 탓이야. 방금 전 토도 조장에게도 기척지우지 말라고 한 소리 들었고. 미안하다. 이후론 조심하지.”

, 아니에요. 사과하지 않으셔도……. 오히려 제가!”


만약 이 곳에 오키타가 있었다면 너희들, 뭐해?’ 라며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 태클을 걸 정도로 두 사람은 그 상태로 끝나지 않는 사죄의 주고받기를 하고 있었다. 몇 초 뒤 그 사실을 깨달은 야마자키가 여기까지 할까, 라며 쓴웃음을 짓자, 치즈루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네. 그러도록 해요. 라며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


, 야마자키 씨. 어째서 여기에...? 혹시 전령 역으로 오셨나요?”


치즈루의 질문이 이외였기 때문일까. 야마자키의 눈동자가 순간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였을 뿐,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미안하단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 , 미안하다. 유키무라 군. 솔직히 나는 유키무라 군이 아무것도 모를 거라 생각했어. 얕봐서 미안하다.”

?”

내가 전령으로 왔다는 걸 모르고 나를 보면 바로 다른 분들은요? 라고 다른 분들을 찾으실 거라 생각했거든.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네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무시하는 생각이었어. 미안하다.”


, 그는 그녀가 전장의 체계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을 거라 멋대로 얕잡아보고 있었다는 것을 사과하고 있는 것이다. 예상치도 못한 사죄에 치즈루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푸후스 하고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일까. 야마자키가 당혹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치즈루는 웃음을 진정시키며 죄송해요, 라고 작게 사과하며 이유를 입에 담았다.


방금 사과하지 말자며 결론지었는데 또 사과하셔서. 후후.”

………그것에 대해서 사과, 아니. 사과하면 안 되지. 하지만 제대로 사과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너는 이제 감시만 받는 입장이 아닌데다 우리들의 뒤에서 이것저것 도와주고 있는 입장이니까. 그런 네가 아무것도 모른다, 무지하다, 라고 생각하는 방식이 틀린 거야. 너를 인정하지 않는 거니까. 그러니까 이것만큼은 사과하게 해줘. 미안하다. 유키무라군.”

인정하지, 않는 것.”

유키무라 군?”


야마자키의 말에 치즈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정답이겠지. 실제로 그 한마디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자신도 모르게 내뱉었기 때문일까. 급히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은 치즈루는 얼른 또 다시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방금 전의 자신의 말을 얼버무렸다.


정말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요. 저도 산난 씨에게 들어서 야마자키씨가 전령으로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 뿐이고!”

, 그런가.”

!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아주세요! 실제로 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자신의 무지를 강조하듯이 두 주먹을 꽉 쥐며 말하자, 이번에는 야마자키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 웃음이 전염되기라도 했을까. 치즈루도 다시 쿡쿡하고 웃기 시작했다.


참고로 전부 끝났다. 일단 간부들도 상처 하나 없이 전부 무사하시다. 물론 부상자가 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자세한 건 산난 총장에게 보고 하는 것을 들어주길 원한다만…….”

그렇군요! 다행이에요!”


모두가 무사하다는 소식에 치즈루의 표정이 화악하고 밝아졌다. 부상자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모두가 무사하다는 것이 어디인가. 안도하는 그녀의 눈동자가 착각이라는 것은 알지만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을 내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살짝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으면, 갑자기 야마자키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그렇지, . 이라고 중얼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유키무라군. 평 대사들과 무슨 일 있었나?”

?”

방금 전 말했듯이 이 곳으로 올 때 평대사들이 있는 중원을 통해 왔다만. 거기서 다들 유키무라 군에 대해서 대화하고 있었거든. 무슨 일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싶긴 했지만 전부 듣기 전에 토도 씨와 만나서 제대로 못 들어서 말야. 혹시 무슨 일 있었나?”


야마구치의 말에 치즈루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평 대사들과 무슨 일이 있었다 해도 짐작 가는 것이 전혀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방금 전 부터의 일부터 거슬러 올라간 덕분일까, 치즈루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 아마도 카와구치 씨. 때문일지도?” 


방금 전 히로마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자, 야마구치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예전에는 다들 갑자기 굴러들어와 방 한 켠을 차지한 치즈루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들 뒤에서 험담을 하건 했다. 간부들의 영향 덕분인지 다행히 폭력이나 노골적인 괴롭힘은 받지 않았지만, 적의가 섞인 시선을 받는 것은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케다야 사건 때의 공적과 평대사들을 치료해준 것 덕분에 인식이 꽤나 바뀐 듯 했다.


저쪽에서 부상자가 발생했을 때 다른 평 대사들도 유키무라 군이 있어주었다면, 이라고 이야기하던 걸 들었다. 여기에 녹아들어서 정말 다행이야. ”

야마자키 씨.”

노력했구나. 유키무라군.”


안도했다는 듯이 미소 짓는 야마자키와 달리, 치즈루는 복잡한 표정을 띄우며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너도 참 힘들겠네. 자신의 처우가 바뀌는 노력을 하느라.

-노력했구나. 유키무라 군.


 

순간 오키타와 야마자키의 말이 겹쳐 들렸기 때문일까,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치즈루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물론 오키타와 달리 야마자키는 치즈루를 칭찬해주기 위해서 그렇게 말했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왜 그 말에 이렇게 반응해버리는 걸까. 이래서는 안 된다. 야마자키를 곤란하게 만들 뿐이다. 그러니까 평소처럼 감사합니다, 라고 웃으며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고개를 들어 미소를 만들지 않으면.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는 듯이 고개를 든 치즈루의 시야에는 당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야마자키가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유키무라 군.”

, 아뇨! 괜찮아요! 잠시 멍하게 있었던 것 뿐이에요! 그보다 괜찮으세요? 산난 씨에게 가는 도중이었던 것은...”


자신 때문에 꽤나 시간이 지체되어 있었다는 것을 지적해보았지만, 야마자키는 고개를 저으며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확실히 산난 총장에게 가야하지만. 조금 정도라면 괜찮겠지. 게다가 그런 표정을 짓는 널 내버려두고 그냥 가기에는 너무 신경이 쓰여서 말야. 둔소 내부의 싸움을 중지하는 것도 내 임무중 하나고.”

, 싸움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치즈루에게 변명할 시간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야마자키가 그녀의 말을 잘랐다. 본능적인 감 덕분일까, 치즈루는 그가 자신이 제대로 말할 때까지 이 곳에서 꼼짝하지 않겠다는 것을 알았다. 치즈루의 성격상으로 자신 때문에 일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 죄악감을 가질 테고, 그러면 마지못해 이야기를 하겠지. 치사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 치즈루는 그에게 숨길만한 입장이 아니었다. 분명히 잠시만의 침묵이었을 텐데, 치즈루에게는 정말 오랜시간으로 느껴졌다. 그 침묵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일까. 치즈루가 각오를 다졌는지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심조심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오키타 씨에게, 들었어요. ‘처우가 바뀌는 노력을 하느라 고생이 많네하고.”


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의외로 자신은 그 한마디에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자각한 치즈루는 입술을 한번 깨물고선 말을 이어갔다.


제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한건, 언제 살해당할지 모르는 공포를, 잊기 위해서, 였어요.”


사람 베는 집단이라 불리는 신선조. 그 악명은 치즈루의 고향인 에도에서도 소문이 퍼져있었다. 그 악명 높은 집단의 비밀을 알게 되고, 그들의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은 채 초반의 치즈루는 방구석에서 떨며 지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몸은 그때의 공포를 잊지 못한다는 듯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든 일어서기 위해 택한 것이 바로 가사일 이었다. 그나마 이야기가 통할 것 같은 이노우에에게 허락을 받고 자신에게 주어진 방을 청소했을 때, 깨끗해진 방을 본 치즈루는 경 자신의 이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복도를 청소하고, 바느질을 하고, 요리를 하면서 치즈루의 정신상태는 안정되어갔고, 지금은 에도에 있었을 때만큼 안정되었다. 물론 이 행동이 자신을 잘 봐달라고 아양을 떠는 것으로 비추어진다는 것은 먼 옛날부터 뼈저리게 자각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무서움만을 없애기 위해 가사 일을 열심히 했으나, 헤이스케의 그런 것을 해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듣고 자신의 이 행동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다른 의도로 비춰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이것이 자신이 이 장소에서 호흡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신선조의 여러분께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히 있어요. 하지만, 제가 가사 일을 시작한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보신(保身)을 위해서였으니까. 오키타 씨의 말이 맞는 게 아닌가, 생각해서. 그래서. ”


그래서 야마자키의 말에 죄악감이 스멀스멀 올라온 것이다. 하지만 그 한마디는 입에 내뱉기 힘들었는지, 치즈루는 입을 꾹 다물었다가 고개를 들더니, 야마자키를 향해 억지웃음을 지어보았다.


고맙습니다.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누군가에게 털어놓았더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어요.”


얼른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과 진심으로 고마움을 담아 치즈루가 고개를 숙였다. 여러 가지 일로 인해 바쁜 그가 이렇게 자신에게 신경써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도 고마움과 죄악감이 들었다. 그래서 얼른 산난에게 가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유키무라군.”


얼른 이야기를 끝내고 싶어 하는 치즈루와 달리, 야마자키는 아직 그녀와 이야기를 끝낼 생각이 없다는 듯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한순간 겁을 먹었는지 치즈루의 어깨가 눈에 띄게 움찔했다. 그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까. 야마자키는 한 순간 말을 하는 것을 망설였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 행동은 동기가 어찌되었건 신선조의 도움이 되고 있어. , 빨래, 수선, 청소, 그리고 나와 함께 의료활동까지 해주고 있지. 게다가 너는 다른 대사들과 다른 시점을 갖고 있기에 우리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데다, 그 점을 이용해 우리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은 부장도 국장도 아시는 일이다. 게다가. 자신의 보신을 위해서 일을 시작했기에 죄책감을 느낀다고 너는 그랬지만, 나는 별로 그 점에 대해서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본다만.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생각해.”

……?” 


야마자키의 대답이 의외였기 때문일까. 치즈루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선 그를 바라보았다.


애초에 유키무라 군이 우리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유키무라 군이 우리들에게 신뢰를 심어줄 수 있는행동을 해줬기 때문이야. 물론 네 입장은 변하지 않고, 아직 너를 경계해야하지만. 그래도 만약의 날이 올때까지는 유키무라 군이 평온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물론 나만의 생각은 아냐. 국장도, 부장도, 다른 간부들도 그렇게 생각하시분이 많아.”

야마, 자키 씨.”

유키무라 군. 자책감 가질 필요 없어. 지금 이 상황은 너에게 주어진 보상일 뿐이야. 보상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혹시 그래도 네가 자신의 노력에 쓸모없는 죄악감을 갖는다면, 내가 몆번이던 말해주지. -애썼어. 노력해줘서 감사해. 유키무라 군.”


그 말과 함께 야마자키가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치즈루는 손을 내저으며 그에게 고개를 들어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걸 막으려는 듯이 그녀의 갈색 눈동자에서 눈물이 투두둑, 하고 떨어졌다.


, 어어어?”


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야마자키의 말에 무언가가 끊어졌는지 계속해서 그녀의 뺨을 타고 후두둑하고 떨어져 내려갔다.


, 어어.., 죄송해요. 울 생각, 전혀, 없었는, .”


어떻게 해서든 눈물을 멈추려고 노력을 하며 치즈루가 계속 사과를 입에 담았다. 손으로 훔치고 손으로 닦아도 눈물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자 치즈루는 계속해서 죄송해요, 죄송해요라고 똑같은 말만 반복하며 한쪽 손을 내저었다. 그런 그녀의 손에 야마자키가 손수건을 쥐어주자, 치즈루는 처음에 당황하며 괜찮다고 하려고 했지만 야마자키가 가져가라는 듯이 꼭 쥐어주자 조심조심 그것을 받아 얼굴에 가져가 대었다.


조금은 진정 됐나?”


그 손수건에 얼굴을 묻은 채 어떻게든 울음을 멈춘 치즈루가 조심조심 고개를 들자, 거기에는 약통들을 제대로 바구니에 넣고선 정리하고 있는 야마자키의 모습이 있었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이 방금 자신이 떨어트려버린 의료기구라는 것을 알아차리자 치즈루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버렸다. 자신의 일인데 그가 하게 만들어버렸다. 그것에 대한 미안함이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오려던 차에, 야마자키가 괜찮다는 듯이 씁쓸하게 웃었다.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내가 말만 걸지 않았어도 떨어트리는 일은 없던 것이었으니까.”

, 그래도! 죄송합니다! 야마자키 씨! , 손수건도, 빨아서 다시 돌려 드릴께요!”

아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래도-”


안되겠다. 이대로 가다간 다시 한 번 끝나지 않는 대화가 이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대화를 끝낼 방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혼란스러운 머리로 치즈루가 무어라 입을 열려는 순간-.


끼야아아악!!!!!!!!!!!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토도 조장!!”

시끄러! 이것도 못 버텨서 어떻게 싸우려고!!!!!”


저 멀리서 카와구치의 울음 섞인 목소리와 헤이스케의 호통이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헤프닝에 야마자키와 치즈루는 놀란 표정으로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며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더니, 곧 동시에 푸웃, 하고 작게 웃기 시작했다.


……앞으로 유키무라 군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


그렇게 얼마나 웃었을까.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간 야마자키가 입을 열었다.

알고 있다.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저 감시 대상이었던 치즈루가 다른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는다는 것은 그 당시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으니까. 그러니 앞으로 치즈루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상태를 유지할 수도 있고, 아니면 일이 틀어져서 살해당할 수도 있다. 치즈루도 그 사항을 잘 알고 있는지 두 손을 모은 채 그저 그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 그때의 그 눈이다.’

 

[너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어. 그래도 괜찮다면 부디, 나를 따라와 줬으면 해.]

 

야마자키의 눈을 본 순간, 치즈루는 예전의 이케다 야 사건 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날 밤 자신에게 부탁을 하던 그 눈이다. 그 눈에서 자신에게 해를 입히려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일까. 치즈루는 그 시선을 똑바로 바라보며 야마자키의 말을 듣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감찰반이라는 입장에서 유키무라 군을 의심하지 않으면 안 돼. 그래도 네 처우가 좋아지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 나는 감찰반이라는 입장 상 당신을 신용하지 않아. 그것이 나에게 내려진 임무니까. 하지만, 나 스스로 당신의 적이 될 생각은 없어. ]



그 말에 치즈루는 방금 전에 떠올렸던 신선조 둔소에 고양이가 들어왔던 사건을 떠올렸다. 그 때와 비슷한 말이었지만, 의미는 확연히 달랐다. 이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보상이라는 것일까. 그에게 무어라 말 하고 싶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보라색 눈동자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치즈루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니 나도 지금 이상으로 코우도 씨의 탐색에 힘을 쏟아보려 한다. 하지만 역시 나 혼자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어. 그러니까 내가 빠트린 부분을 유키무라 군이 메워줬으면 해. -부탁합니다.”


야마자키가 고개를 숙였다. 그때와 똑같이 마지막은 정중하게 부탁한다는 듯이 존댓말로 바뀌었지만, 현재 야마자키의 인식은 그때와 확연히 달라져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을 향해서 고개를 숙이는 야마자키의 모습에 한동안 사고가 정지한 치즈루였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모은 채 입을 열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해주세요. 저는 여러분의 힘의 되고 싶으니까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치즈루도 야마자키와 똑같이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가 말하는 내가 빠트린 부분이라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부상자의 치료와 코우도의 수색관련이다. 감찰반의 일로 둔소를 자주 비우는 야마자키와 달리 치즈루는 이 둔소에 계속 있을 테고, 그렇다면 야마자키가 없어도 대사들의 치료를 맡길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코우도를 몇 번밖에 만나지 않은 대사들과 달리 치즈루는 그와 함께 몇 년을 함께 해왔다. 그녀도 아무리 코우도가 변장을 하고 있어도 알아챌 수 있다고 그들에게 당당히 선언한 바 있었다. 그러니 대사들 보다 코우도를 발견 할 수 있는 확률은 치즈루가 높았다.


고마워. 유키무라 군.”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야마자키 씨.”


서로의 대답을 듣자 두 사람은 동시에 미소 지었다. 이 공기가 익숙하지 않지만 그래도 싫지는 않다. 그건 야마자키도 마찬가지였는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그럼, 나는 산난 총장에게 보고를 올리러 이만 가봐야겠어.”


저 멀리서 대사들의 비명소리가 계속 들려오자 야마자키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그 사실을 인식한 치즈루가 죄송하다고 다시 고개를 숙이자, 야마자키가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이건 내가 가는 길에 원래장소에 놔둘 테니까, 괜찮다면 유키무라 군은 산난 총장의 방으로 차를 가져와주지 않겠어? 그리고 된다면 오키타 씨와 토도 씨도 불러줬으면 해.”


원래 저 치료도구는 야마자키의 것이다. 그러니 내가 가져다두겠다며 보충설명을 붙이자, 치즈루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 ! 3잔이면 금방 가져갈 수 있어요!”


간부 전원의 차를 준비하는 것보다 시간은 빨리 걸릴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치즈루가 웃으며 대답하자, 야마자키는 아니, 라며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유키무라 군의 것까지 4잔 부탁한다.”

.”


그 말은 즉, 함께 전장의 보고를 들어도 된다는 의미였다. 산난이 예측으로 몇 가지 알려준 것이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이지, 진실이 아니다. 전장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자세하게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중요한 곳에 자신이 있어도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에 포기하고 있었는데, 지금 동석해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졌다. 치즈루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보자 야마자키의 얼굴에 미소가 더 깊어졌다. 마치 그녀의 미소가 전염된 것 같은 광경이었다.


, 손수건…….”

손수건은 나중에 깨끗이 세탁해서 가져다줬으면 하는데, 괜찮나?”

, !!!”


야마자키의 부탁에 치즈루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 모습을 여전히 미소를 띄우며 바라보던 야마자키가 슬슬 가보겠다고 하자, 치즈루는 얼른 두 사람을 불러올게요, 라며 꾸벅 고개를 숙이고서는 헤이스케와 오키타가 있을만한 곳으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던 야마자키는 이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산난의 얼굴을 떠올리고 쓴 웃음을 짓더니,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그의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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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멜리스